*50년대 지식인의 비극적 현실인식-<광장>
전장의 직접성에 포박되어 있던 직접 체험세대의 분단소설은 최인훈의 '광장'에 이르러 비로소 극복될 수 있는 계기를 얻는다. 이 작품의 주인공 이명준은 남쪽도 북쪽도 모두 버리고 중립국을 택하여 조국을 등지나, 결국은 그것조차 포기하고 바다에 몸을 던지고 만다. 그가 남북 어느 쪽도 택하지 않은 것은 남한은 '비루한 욕망과, 탈을 쓴 권세욕과, 그리고 섹스뿐'이고 북한은 '당이 주인공이고 개인은' 없어, 말하자면 양쪽 모두 타락하여 '가슴 속에 불타야 할 자랑스러운 정열'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파악이 한갓 관념에 불과하며, 그리하여 구체적 형상화를 통해 육체를 갖추어야만 하는 소설의 기본에 미달됨은 누구나 지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중요성은 주인공이 남북을 넘나들며 이동시점을 취하도록 설정, 전후세대에 의해 씌어진 분단소설의 편향된 주관적 시점을 넘어 분단문제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 그리고 분단문제를 이데올로기의 측면에서 접근함으로써 분단의 원인(배경)에 대한 심층적 분석에의 길을 열어놓았다는 점 등에 있다. 작가가 '빛나는 4월'이라 명명한 4.19가 가져온 넘치는 자유 속에서 씌어질 수 있었던 이 작품은 한국 분단소설사의 한 기념비적 작품으로 솟아 있다.
--분단문학비평, 김승환 공저(청하, 1987) p.88
손창섭, 장용학으로 대표되는 50년대 문학은 전쟁에 대한 휴유증을 일방적인 피해의식으로 표현했는데 이러한 6.25에 대한 일방적 피해의식의 문학이 방향전환을 하게 되는 것은 최인훈의 <광장>이다. <광장>에서 작가 최인훈은 6.25의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6.25를 하나의 의식화된 이념의 형태로 포착한다.
최인훈은 이명준의 입을 통해 남과 북에 가로놓인 이념의 장벽을 신랄히 비판한다.
"......개인만 있고 국민은 없습니다. 밀실만 푸짐하고 광장은 죽었습니다. 각기의 밀실은 신분에 맞춰서 그런 대로 푸짐합니다. 개미처럼 물어다 가꾸니깐요,.....아무도 광장에서 머물지 않아요. 필요한 약탈과 사기만 끝나면 광장은 텅 빕니다. 광장이 죽은 곳"
이라고 남한을 비판한다. 그래서 주인공 이명준은 월북한다. 그러나 북쪽도 남쪽 못지 않게 부정적이었다.
"......아하, 당은 저더러는 생활하지 말라는 겁니다. 일이면 일마다 저는 느꼈습니다. 제가 주인공이 아니고 당이 주인공이란걸, 당만이 흥분하고 도취합니다. 우리는 복창만 하라는 겁니다. 당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느끼고 한숨지을 테니, 너희들은 복창만 하라는 겁니다."
이명준이 원하는 세계는 '개인의 밀실과 집단인 광장이 맞뚫려 있는'세계였다. 그런데 그의 조국은 밀실만 있고 광장이 없는 남과, 광장만 있고 밀실이 없는 북으로 갈라져 있다. 여기에 주인공 이명준의 갈등과 괴로움이 비롯된다. 그가 포로 수용소에서 제3국을 택한 것은 지극히 온당한 행위였다. 그러나 이명준은 현실과 이념사이의 괴리감을 견디지 못하고 타고르호에서 뛰어내린다.
최인훈이 그려낸 주인공 이명준은 50년대 지식인의 현실인식과 당시 사회 이념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역사의 격랑에 휘말린 고통스런 지식인 이명준의 최후는 50년대 지식인의 비극적인 현실인식을 잘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아직까지 이 작품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것은 남북한 모두 이명준이 살던 시대와 별반 차이 없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데 있으며, 이러한 이념적 대립이 해소되지 않는 한 통일은 요원한 일이 되리라는 씁쓸한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