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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고려대 야구부는 '금품수수' '구타' '운동기계'라는 공포의 클린업 트리오를 맞아 선전하고 있다. 선발 여건욱의 투구처럼. |
“고려대, 연세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나도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당시 광주일고 감독님께서 날 다른 대학으로 보내려고 했다. 어쩌겠는가.” 25년 전의 일을 회상하던 문희수 동강대 감독은 잠시 뜸을 들인 뒤 “그래 홧김에 해태(KIA의 전신)로 방향을 틀었다”며 멋쩍게 웃었다.
1983년 문희수는 모교 광주일고를 전국대회 3관왕으로 이끌며 ‘초고교급 투수’라는 찬사를 받았다. 당연히 그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전국의 대학팀들이 몰렸다. 그러나 문희수는 이미 고려대, 연세대 두 학교를 점찍어둔 상태였다. 어디 문희수만 그랬겠는가. 당시 웬만한 고교 선수라면 으레 양교가 목표이게 마련이었다.
“해태로부터 계약금 1천700만 원을 받았다. 당시 광주 아파트값이 250만 원 정도할 때였다. 엄청난 금액이었다.”
1984년 파격적인 계약금을 받고 해태에 입단해 1988년 한국시리즈에서 MVP에 뽑히기도 했던 문희수. 정작 그가 한국프로야구에 미친 영향은 따로 있었다. 바로 ‘고교 졸업 뒤 대학진학’이라는 기존 관행을 깨고 ‘고졸-프로’라는 새로운 공식을 성립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때 문희수의 등장이 실업야구와 함께 성인야구의 한 축을 담당하던 대학야구의 몰락을 의미한다는 걸 눈치챈 야구인은 아무도 없었다. 특히나 대학야구의 양대산맥 고려대-연세대 체재의 재편을 뜻하는 것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창단 60주년을 맞는 고려대 야구부
1948년 창단한 고려대 야구부는 지난 60년 동안 대학야구의 강자로 군림했고 수많은 스타 선수들을 배출해 ‘야구계의 마르지 않는 샘’으로 불렸다. 그러나 시작은 화려하지 않았다. 반대였다.
1922년 창단한 연세대 야구부가 줄곧 성장가도를 달렸다면 고려대 야구부는 창단과 해채 그리고 재창단을 반복하며 명맥을 잇기에도 바빴다. 성적이 좋을 리 없었다. 1970년대 초반까지 연세대, 성균관대, 중앙대 등에 밀려 B급 팀으로 분류됐다.
1973년 대통령기 결승 건국대전에서 홈런을 친 뒤 동료선수들의 환호를 받던 '몰키' 허구연 |
그러던 것이 1974년 춘계연맹전 우승을 계기로 위상이 급변했다. 이 대회에서 고려대는 8승1무1패로 한양대와 연세대 등을 따돌리고 압도적인 실력 차로 우승을 차지했다. 각각 타선과 마운드를 이끈 김용희(SBS 해설위원), 황규봉(전 삼성)의 공이 컸다. 그러나 뭐니해도 당시 4번 타자의 맹활약을 빼놓을 수 없었다.
대회 내내 홈런과 타점을 기록하며 연세대 ‘홈런타자’ 김봉연, 영남대의 ‘야구천재’ 김재박 그리고 건국대의 ‘다람쥐’ 이해창을 제치고 MVP에 뽑힌 고려대 4번 타자는 몰상식하리만치 잘 친다고 해 ‘몰키’라는 별명을 달고 있었다. 그가 바로 MBC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허구연이다.
이때를 기점으로 고려대는 대학야구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특히나 1978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준우승 멤버 6명이 한꺼번에 고려대로 입학하며 이른 바 ‘고려대 시대’가 시작됐다.
이후 양상문(LG 코치), 선동열(삼성 감독), 박노준(히어로즈 단장) 등 초고교급 선수들이 차례로 고려대 유니폼을 입으며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고려대 전성시대가 이어졌다. 이 시기 활동한 선수들이 박동희(작고), 조성민(MBC ESPN 해설위원), 손민한(롯데), 진갑용(삼성), 김동주(두산) 등이었다. 여기다 고려대는 이상훈(가수), 최희섭(KIA), 김선우(두산) 등 메이저리거를 무려 3명이나 배출해 미국에도 이름을 떨쳤다.
고려대 출신 지도자들도 부지기수다. 아마추어 야구는 물론이려니와 프로야구에서도 이광환(히어로즈), 김경문(두산), 선동열(삼성) 등 고려대 출신 야구인들이 지휘봉을 잡고 있다.
고려대 야구부의 몰락? 신 창단 !
8월 5일 목동구장. 인하대와 고려대가 KBO총재기 대학야구대회 8강에서 맞붙었다. 대부분의 야구관계자들은 투수진에 앞선 고려대의 승리를 예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려대 선발 박성호는 195cm의 장신에서 시속 150km의 강속구를 뿌리는 에이스였다. 1회초 고려대가 선취점을 내자 예상은 맞는 듯 했다. 하지만 낙관은 오래가지 않았다.
박성호가 인하대 타선에 2회 3볼넷, 1안타를 묶어 2점을 내준 뒤 3회 바뀐 투수 임치영 역시 3점을 내줘 1-5로 역전을 허용했다. 고려대가 7회 2점을 따라붙으며 추격에 나섰지만 인하대 구원투수 이성원의 구위에 밀려 결국 3-5로 패했다.
KBO총재기 대학야구대회에서 호투하는 고려대 신정락 |
고려대의 패배는 사실 놀랄 일이 아니었다. 2006년 14년 만에 춘계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올시즌 전반기까지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올시즌은 춘계리그 예선에서 연세대에게 9회 역전패하고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 예선 1차전에서 성균관대에 2-3으로 패하며 2대회 연속 예선탈락을 기록하는 수모를 겪었다.
지난해 1월 부임해 2년째 고려대 야구부를 맡고 있는 양승호 감독은 그러나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춘계리그에서 연세대에 역전패 한 뒤 어린 선수들이 경기 후반만 되면 실수를 연발하고 있다. 일시적인 현상이라 생각한다.” 양 감독은 그렇게 말한 뒤 정작 가장 상대하기 힘든 타자와 일전을 벌이고 있는 중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게 무슨 소리일까.
“‘부패’, ‘구타’, ‘운동기계’라는 공포의 클린업 트리오와 싸우고 있다.” 순간 양 감독의 눈에서 비장감이 느껴졌다.
공포의 타자, ‘부패’와 ‘구타’
고려대는 국내외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820명에 달하는 국가대표를 배출한 스포츠 인재의 요람이었다. 그러나 근간에는 금품수수와 구타로 이미지가 실추됐다.
지난 6월 KBS 1TV ‘시사기획 쌈’이 파헤친 심판 매수와 승부 조작, 체육 특기생 진학 비리 등의 중심엔 고려대와 연세대 두 사학명문이 있었다. 특히나 고려대는 입학 청탁금으로 1억여 원의 돈을 받은 혐의로 고려대 농구부 코치가 구속되고 아이스하키부 총감독이 선수들에게 가혹행위를 한 것이 드러나 큰 충격을 줬다.
고려대 야구부 양승호 감독은 “금품에 대해서만은 어떤 의미에서든 투명해야 한다는 것이 학교의 방침”이라며 “과거 고교 졸업생에게 돈을 주고 스카우트했던 관행도 이젠 옛날 일이 됐다”고 강조했다.
경기도 송추에 위치한 고려대 숙소. '구타'로 유명했던 고려대 야구부는 악습의 고리를 끊고 몰라보게 달라졌다 |
실제로 우수 고교 졸업생들은 많게는 1억5천만 원 적게는 몇 천만 원의 스카우트비를 받고 대학행을 선택했다. 우수선수를 확보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면야 그것보다 좋은 대학홍보도 없다. 그러나 이것이 ‘더러운 먹이사슬’의 시작이었다. 대학이 스카우트비 마련을 위해 그 선수의 스카우트 비용을 대줄 다른 고교 졸업생을 물색하는 이른 바 ‘선수 끼워팔기’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양 감독은 “‘선수 끼워팔기’가 오랜 관행일지 모르지만 배임수재혐의로 명백한 사법처리의 대상”이라며 “선수가 큰돈을 만지고 싶다면 고교 졸업 뒤 프로에 가면 될 일이지 고려대에 입학하는 것 자체가 영광인데 무슨 스카우트비냐”며 반문했다.
이상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현실은 전력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양 감독은 그런 전력약화라면 마다하고 싶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연세대와의 정기전은 양교의 최대축제인 만큼 정예멤버로 맞서야겠지만 일반 대회는 그렇지 않다. 실력이 없는 고학년들에게도 자주 기회를 제공해 프로 스카우트의 눈에 띄도록 하고 어째서 자신이 끝까지 야구를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지 일깨워줘야 한다.” 지난해 양 감독이 부임한 뒤로 고학년 이탈자들이 줄어든 건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프로감독 만큼이나 파리 목숨이 대학감독이다. 학교 본관 장식장에 트로피가 정체되는 해가 길어질수록 감독의 재임기간은 짧아질 수밖에 없다. “이기수 총장님의 의지가 분명하다. 대학스포츠는 성적보다 투명성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분이다.” 양 감독의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17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던 지난 2월에 17대 고려대 총장으로 취임한 이기수 총장은 국내 유일의 대학스포츠 월간지 'SPORTS KU'
대학 스포츠월간지 'SPORTS KU' |
고려대 야구부는 교내 지방향우회, 해병대 전우회와 함께 선후배 기강이 가장 확실한 곳으로 꼽혀왔다. 그러나 말이 ‘확실’이지 실상은 구타와 기합이 횡행했다. 과거부터 한양대와 더불어 고교야구선수들의 공포의 대상이었던 고려대 야구부는 그러나 이젠 구타와 안녕을 고한 상태다.
08학번의 어느 새내기 선수는 “선배들이 무섭기로 소문난 고려대라 걱정이 많았지만 아직 한 대도 맞지 않았다”며 “타교 친구들이 놀랄 정도”라고 말했다.
유능한 운동기계보다는 사회에 적합한 학생선수가 바람직
양 감독은 경기도 송추 고려대 야구장에 선수들의 여자친구가 찾아오면 포상금을 준다. “자기 남자친구가 땡볕에서 얼마나 고생하는지 봐야한다”는 게 취지다. 만약 선수 가운데 여자친구가 없다면? “미팅을 하라”는 양 감독의 집요한 권유를 들어야 한다.
경기도 송추 고려대 야구부 숙소에 마련된 체육단련실 |
고려대는 공식적으로 오후, 야간 2회 훈련만 실시한다. 방학 때는 오전, 오후, 야간 3회이나 야간훈련은 자율에 맡긴다. 예전 같으면 ‘4탕’이라 해 새벽, 오전, 오후, 야간훈련을 빠짐없이 해야 했다. 양 감독은 훈련시간 조정이 금품수수, 구타근절과 맥을 같이한다고 밝혔다.
“운동만 하도록 강요하면 운동기계만 될 뿐이다. 그렇다고 졸업생 가운데 몇 명이나 프로에 입문할 수 있나.” 양 감독은 따라서 “운동과 함께 정상적인 학교교육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고려대 야구부 1학년생들은 전원 강의를 듣는다. 강의과목도 실용교육에 초점을 맞춰 스포츠 마사지, 스포츠 테이핑, 트레이닝 방법론, 스포츠 심판론 등을 준비했다. 졸업 뒤 선수가 아니라도 다양한 스포츠 분야에서 일하도록 하려는 학교 측의 배려다.
체육특기자의 특성을 감안해 5개 체육부(야구, 축구, 농구, 럭비, 아이스하키)와 개인종목 학생선수 70명을 한 반으로 조직하기도 했다.
‘운동기계’에서 ‘학생선수’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고려대의 노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체육부 감독의 위치를 단순 기술 전수자가 아니라 명실 공히 전인교육의 지도자로 확장해 1학점을 매기도록 권한을 부여했다.
양 감독은 “연습 때의 생활태도나 해당종목을 연구하려는 자세 등을 평가한다. 따라서 감독도 선수들을 보다 면밀히 관찰하고 선수들도 운동장이 강의실의 연장선상이라는 긴장감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학야구의 현주소와 미래, 'U리그'를 도입하라
근간 대학스포츠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축구가 대표적이다. ‘U리그(University League)’의 출범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역사적 사건이었다.
U리그 출범 이전 대학축구대회는 토너먼트 일색이라 부작용이 많았다. 대회기간 중 수업에 참여하지 못한 선수들이 속출했고 일정상 1주일에 3경기 이상을 치러야 만큼 선수들은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려야 했다. 무엇보다 토너먼트 대회에서는 충분한 경기수를 확보할 수 없어 경기력 향상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U리그가 출범하며 모든 것이 바뀌었다.
5월 1일 5개교 축구장에서 동시에 개막전을 연 U리그는 수도권 10개교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전·후기 각 9라운드를 펼쳐 팀당 18경기를 치르도록 했다. ‘고-연전’을 U리그 라운드 가운데 하나로 포함하는 등 흥행에도 각별한 신경을 썼다.
토너먼트 대회의 단점을 한꺼번에 일소한 U리그의 출범은 그간 맨땅구장을 보유하고 있던 몇몇 대학에서 고급 인조잔디 포설계획을 발표하며 축구인프라 발전에도 기여한 셈이 됐다. 야구계가 흔히 농담처럼 부르는 ‘족쟁이’축구계가 이번에도 야구계보다 한걸음 한 서게 된 것이다.
야구부 숙고에 걸려있는 '야구훈' |
현재 대학야구에서는 오랜 전통의 추계리그가 사라졌다. “프로 2차 신인지명이 8월 16일 열리는데 가을에 경기를 해서 무엇하느냐”는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된 결과다. 더워도 대학선수들의 프로행을 위해 더 많은 경기를 프로 스카우트 앞에서 보여주자는 대학야구계의 열의가 돋보이는 장면이다.
고려대 전력, 투수진은 ‘A’, 공격력은 'B'학점
고려대 야구부원은 총 36명이다. 박성호, 여건욱(이상 4학년), 신정락(3학년) 등으로 채워진 투수진은 나쁘지 않다는 게 아마추어 야구계의 공통된 평가다. 오른손 정통파 박성호는 신체조건과 빠른 공이 장점이다. 그러나 구종이 단순하고 제구가 좋지 않은 게 흠이다. 신정락은 지난해 팀 내 최다승(7승)투수로 선발과 구원투수의 장점을 골고루 갖춘 사이드암이다.
프로 2차 지명, 여건욱을 주목하라
여건욱은 올시즌 김준(SK)졸업 이후 팀 내에서 가장 믿을만한 투수로 힘과 제구력을 겸비한 오른손 정통파다. 곽정철(KIA)과 광주일고 동기로 강종호(히어로즈), 나승현(롯데)이 1년 후배다. |
문제는 타선이다. 심재학(은퇴), 김동주, 최희섭(KIA) 등 거포가 즐비했던 고려대 핵타선도 이젠 옛날 이야기다. 특히나 공·수를 겸비한 포수와 장타자 부재가 눈에 띈다.
물론 송구능력이 뛰어난 포수가 부족하고 나무배트 도입 이후 장타가 ‘확’ 줄어든 건 고려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양 감독도 이를 잘 알아선지 ‘뛰는 야구’카드로 팀 체질개선에 나섰다. 안동현, 홍대산, 주우영 등 4학년생들이 선봉이다. 그렇다고 거포가 사라진 건 아니다.
부산고 출신으로 신인 2차 지명에서 이름이 불릴 것으로 예상되는 2루수 겸 3번 타자 권영준은 지난해 4홈런을 몰아칠 정도로 힘이 좋다. 올시즌은 19경기에 나와 타율 2할3리, 2홈런, 6타점으로 다소 부진했지만 “프로행을 대비해 여러 가지 기술을 익히고 보충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라는 게 코칭스태프가 밝힌 부진의 이유다.
두산 김현수의 타격을 좋아한다는 권영준은 2루수치고는 보기 드문 왼손타자로 약점인 바깥쪽 대응력을 높인다면 워낙 타격폼과 센스가 뛰어나 중장거리 타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박철우 전 해태 4번 타자의 아들 박세혁. 아버지와 달리 수비가 좋다. 그러나 타격은 역시 아버지가 낫다고. |
새내기 박세혁도 주목할 만한 야수다. 전 해태 타이거즈 4번 타자 출신의 박철우(현 고려대 인스트럭터)씨의 아들인 박세혁은 신일고 시절부터 투수리드와 수비력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주전 포수를 꿰찰 만큼 기대주다.
지난해 프로 2차 지명에서 LG가 낮은 순번으로 선택했으나 스스로‘타격 정확성이 떨어진다’며 대학행을 선택한 박세혁은 권영준처럼 우투좌타다. 만약 박세혁이 프로에 입문한다면 오랜만에 최기문(롯대)의 뒤를 잇는 우투좌타 포수의 등장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내년 시즌 선수수급은 이상이 없을까.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스카우트가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다.” 1992년부터 95년까지 OB(두산의 전신)에서 스카우트로 활동했던 양 감독은 스카우트의 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감독이라도 자신이 없으면 현역 프로 스카우트들한테 묻는다. 그러면 스카우트들이 ‘누구를 보라’고 조언한다. 그때부터 해당 선수를 관찰하기 시작해 80%정도를 프로 2차 지명 이전에 뽑는다.” 어째서 이때 선수수급을 끝내지 않는 걸까. 대개 고교야구 감독들은 7, 8월이 되면 한 명이라도 대학진학을 시키지 못할까봐 애간장을 태운다. 바로 이때를 공략하면 수월하게 우수 고교선수를 영입할 수 있다.
“나머지 20%의 여운을 두는 건 2차 지명이 끝난 뒤 지명을 받지 못한 우수선수들을 영입하기 위해서다. 벼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마련이다.”
양승호 감독을 주목하는 이유
고려대 야구부 양승호 감독은 현 대학감독 가운데 유일하게 중·고·대·프로감독을 두루 경험했다. 신일중, 신일고 감독일 때 조인성(LG), 김재현(SK)등이 제자였다.
야구부 탄생 60주년을 맞도록 역대 고려대 감독은 5차례만 바뀌었다. 양승호 6대 감독은 프로의 경험을 살려 새로운 대학야구를 선보이려 한다. |
2006년 6월 LG 이순철(히어로즈 수석코치)전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사임하자 그의 뒤를 이어 감독대행으로 취임하였으나 이후 김재박 전 현대감독이 LG 새 사령탑으로 오며 우여곡절 끝에 고려대 감독으로 부임했다.
양 감독은 프로감독시절부터 인품이 후덕하고 주변이 깨끗하다는 평을 받았다. 그래서인가. 오해할 일은 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대표적인 학부모들과의 관계다. 양 감독은 경기도 송추 야구부 숙소에 되도록 학부모들이 오지 않도록 한다. 예외는 있다. 신입생 상견례와 김장 때다.
고려대 야구부원의 학부모들. '운동기계'가 아닌 '학생선수'를 지지하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야구의 주인들이다 |
“어차피 숙소에는 잔일을 맡아 해주시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있다. 신입생 상견례야 새로운 식구를 맞으니 다들 인사를 나누기 위해 오시는 것이고. 김장이 중요하다. 이틀 정도 걸리는데 아버지들은 땅을 파고 어머니들은 직접 김장을 담근다. 밤에 오순도순 모여 맥주 한잔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어떤 자리보다 알차고 정이 넘친다.” 양 감독의 진심이다.
고려대는 지금까지 수많은 우승컵으로 그들이 얼마나 야구명문인지 증명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야구명문의 모델이 되려 한다. 바로 투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진정한 학원야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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