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지 않은 연말 휴가
일부 대기업 "업무 효율"
대부분 美. 유럽 등과 거래
선진국 기업들과 휴가 맞춰
나머진 '울며 겨자먹기'
재고 쌓이자 공장 멈추고
수주 못 받아 유급휴직까지
LG전자는 이달 26일부터 30일까지 권장 휴무를 한다. 24일이 토요일이기때문에 실제로 내년 1월 1일까지 최장 9일 휴가를 쓸 수 있다. LG전자가 연말 권장 휴가 제도를 실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전자도 직원들에게 12월 마지막 주에 휴가를 가도록 권장하고 있다. 올해로 3년째다. 삼성SDS도 올해 삼성전자를 따라 권장 휴가를 실시할 예정이다.
송년회로 흥청거렸던 연말 풍경이 연말 장기 휴가를 도입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연말 장기 휴가가 늘어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삼성전자. LG전자 같은 대기업은 매출 대부분이 발생하는 미국.유럽과 업무 효율성을 위해 연말 장기 휴가를 도입했다. 선진국에선 연말 휴가가 일반적이다.
다른 한 요인은 '불황형 장기 휴가'다. 2008년 금융 위기와 올 들어 유럽발 재정 위기가 연달아 덮치면서 일거리가 떨어진 일부 업종을 중심으로 연말 휴직이나 장기 휴가를 실시하는 기업들이 있다. 기업으로서는 임직원의 휴가 기간을 늘림으로써 연.월차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내년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이 불황형 휴가는 산업계 전방위로 확산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협력업체로 연말 장기 휴가 확산=대기업이 도입한 연말 장기 휴가는 협력 업체 수천여 곳으로까지 이어진다. LG전자는 3만6000명에 이르는 국내 근무 임직원 가운데 약 80%가 연말 휴가를 쓸 것으로 보고 있다. 필수 인원을 제외한 대다수 임직원이 휴가에 들어가는 셈이다. 따라서 LG전자 납품 업체 가운데 약3분의 2가 LG전자를 따라 연말 연휴에 들어간다. 예컨대 경남 창원의 세탁기 부품 업체 신성델타는 LG전자와 함께 올 연말 공장 문을 닫기로 했다. LG그룹 일부 계열사도 연말 권장 휴가를 실시한다. LG화학은 29~30일, LG디스플레이는 LG전자와 마찬가지로 26일부터 30일까지 권장 휴가를 실시한다.
두산중공업.두산엔진.두산인프라코어 등 두산그룹 전 계열사도 오는 24일부터 9일간 일제히 겨울 휴가를 실시한다. 이러면 창원 주변 협력사들도 따라올 수밖에 없다. 두산 관계자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고자 겨울휴가제(선탄절 휴가)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두산 계열사 임직원의 절반의 외국이이며, 지난해 전체 매출 중 55%가 해외에서 발생했다.
일부 중견.중소기업은 경기 불황으로 겨자 먹기로 연말 휴가를 도입하는 경우도 많다. 르노삼성 자동차는 재고가 쌓이자 생산직을 대상으로 이달 마지막 주 전체를 쉬기로 했다. 자연히 부산 르노삼성 공장 주변 협력 업체들도 덩달아 쉴 수 밖에 없다. 한 협력 업체 사장은 "재고가 늘어나 시행하는 연말 휴가여서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는 조합원 809명 중 280명에 대해 지난 1일부터 육급 휴직을 실시 중이다. 내년 5월까지 이어질 유급 휴직 이유는 불황이다. 2008년 9월 이후 2년여 동안 선박 수주를 하지 못했다. 유급 휴직 대상자들은 통상 급여의 절반 정도를 받는다. 회생 절차를 신청한 미리넷솔라 등 상당수 태양광 업체도 인력 구조조정 또는 휴업을 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중소 제조업체 1400개를 대상으로 한 '중소기업 경기전망(SBH)' 조사결과에 따르면 12월 중소기업 업황전망지수는 87.5로 2009년 8월 이후 2년 4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이 지수가 100이상이면 다음 달 경기가 좋아질 것으로 보는 업체가 그렇지 않을 것으로 보는 업체보다 많다는 뜻이며, 100 미만이면 그 반대를 의미한다.
◇연말 장기 휴가 계속 늘어날 듯
불황 지속 여부와 상관없이 삼성. LG 등 한국의 산업계를 이끌어가는 대기업에서 주도하기 때문에 연말 장기 휴가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이재용 사장은 2009년 최고운영자(COO)를 맡고 '워크 스마트(smart)'개념을 도입했다. 잘 노는 것도 생산성을 높이는 일이라고 판단하고 아낌없는 휴가기간을 주고 있다.
예전처럼 연말에 일해야 할 만큼 일거리가 많이 쌓이지 않는 저성장구조에서 기업들이 직원들의 휴일을 늘려 생산성을 올리려는 일석이조 전략을 펴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전경련 안종현 고용복지팀장은 "우리나라도 장기적으로 선진국처럼 연말 장기 휴가를 주는 기업이 점차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