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탑/ 조미정
독도는 한반도의 심장 같기도 하고 바다의 산실 같기도 하다. 꽃봉오리 같은 해를 밀어 올려 한반도 아침의 빗장을 연다. 수 천 수 만 개의 노을빛이 물고기처럼 펄떡거릴수록 생명탄생의 순간은 장엄하다. 마지막 어둠을 밀어젖히기 위해 단전에 힘을 모은다. 하늘이 벌게진다. 괭이 갈매기 울음소리 두둥둥 하늘위로 울려 퍼질 즈음 우리나라 영토 중에서 가장 먼저 해를 토해낸 바위섬이 마음의 행간을 그린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초목이든 생명 있는 것들을 깨우는 해의 발아래 납죽 엎드린 독도의 모습이 뜻밖이다. 하나인 줄 알았는데 섬이 여럿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다족류의 껍데기처럼 울퉁불퉁한 바위섬 두 개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우산봉’과 ‘대한봉’을 각각 봉우리로 둔 동도와 서도이다. 주변에는 여든 아홉 개의 작은 바위섬들까지 올망졸망 거느렸다. 왜 지금까지 독도는 외로운 섬이라고 막연히 생각해왔을까. 망망대해에 우뚝 솟아올라 어엿한 일가를 이룬 독도는 거칠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에도 위풍당당하게 서있다.
섬과 섬이 서로 깍지를 끼면 혼자일 때보다 단단하다. 사실 독도는 영토의 막내가 아니라 제주도나 울릉도보다 수백 년이나 빨리 태어난 화산섬의 맏이다. 맏이가 짊어진 등짐은 무겁다. 이천 미터가 넘는 깊은 바닷물에 풍덩 몸을 담그고 홀로 영토의 동쪽 끝을 지켜야한다. 하지만 ‘따로’가 아니라 ‘함께’였기에 독도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에서도 맏이로서의 책무를 다할 수 있었나 보다. 잦은 시련에도 의연함을 잃지 않는 것은 본래 지니고 있는 성품 자체가 강건하고 변함없기 때문이리라.
뿔 같은 모습이 우람한 두 개의 탑으로 보인다. 탑의 꼭대기를 장식한 보주처럼 머리 위에 해를 얹은 석탑이다. 듬직하면서 선 굵은 서도가 다보탑이라면, 날렵하면서 선이 섬세한 동도는 석가탑을 닮았다. 부처님의 진신사리 대신 국토수호라는 민족의 염원과 희망을 담은 섬, 결연한 독도를 마주하노라면 가슴이 불뚝불뚝 뛴다.
천오백여 년 전, 신라의 젊은 장군 이사부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서쪽에서 불어오는 유월의 바람은 순풍이다. 동으로 출정하기 딱 좋은 날임을 직감으로 알아차린다. 7년 동안 만반의 준비를 해왔으니 두려움은 없다. 큰 동작으로 푸른 동해 바다 위에 커다란 목선을 띄운다. 행운을 빌어주는 수호신은 돛대를 높이 세운 배 안에 버티고 앉은 목우사자다. 나무를 깎아 만든 사자는 우둔하고 사나운 우산국 사람들을 굴복시킬 비장의 무기이기도 하다. 정화수를 떠놓고 달에게 빌었던 어머니들처럼 장군도 마음을 모아서 기도한 덕분일까. 울릉도와 독도를 처음 우리나라 역사 속으로 편입한 이사부가 지켜낸 것은 동해의 바다였고 민족의 자긍심이었다.
일본이 왜곡된 내용을 역사교과서에 실었다는 소식에 이사부의 사자처럼 두 눈을 부릅뜬다.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긴다. 우산국을 신라의 영토로 편입시킨 이사부가. 두 차례나 일본으로 건너가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확인문서를 받아온 안용복이, 칙령41조로 독도가 우리 땅임을 법령으로 공포한 고종황제가 무덤에서도 어이없는 웃음을 짓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일제가 가장 먼저 침탈한 땅이 바로 독도다. 아직도 어리석은 야욕을 드러내는 것은 그만큼 독도의 숨은 매력이 크다는 것을 반증함일 것이다.
지켜야 할 것이 있을 때 사람들은 탑을 쌓는다. 독도는 단순한 바위섬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절절 끓는 염원을 담고 있다. 용암보다 뜨겁고 바위보다 견고한 염원은 돌 하나하나에 빗물처럼 스며든다. 새겨진다. 단단한 바위 표면이 지대석이라면 바위틈에 뿌리박은 식물은 탑의 몸돌을 지붕처럼 덮은 옥개석이다. 험난한 세월을 증명하듯 탑의 몸은 뼈마디가 깎이고 가뭇가뭇 검버섯으로 덮였다. 원래의 돌 색깔을 잃어버린 지는 오래다. 그런데도 백오십 킬로미터의 먼 뱃길을 마다않는 것은 독도가 거기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독도에 이끌리는 것은 한반도의 숙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갈비뼈가 잃어버린 짝을 찾듯이.
뭇사람들의 탑돌이가 시작된다. 삼십 여분 동안 동도의 이사부길을 따라 걷는 빠듯한 일정이지만 모두는 한마음 한뜻이다. 상기된 볼에는 설렘이 피어오르고 벌어진 입에는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가슴은 뜨겁다. 독도에 처음 왔어도 한눈에 같은 핏줄임을 알아본 까닭이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또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대로 수 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도록 우리 땅이라고 잠재된 의식이 화산 폭발하듯 뜨거운 혈관을 타고 솟구쳐 올랐음이랴.
어느 호국사찰의 탑이 이보다 전율스러울까. 오천만 국민의 염원이 층층이 쌓여 최고의 호국불탑이 된 독도는 눈길이 닿는 곳마다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하다. 맨 먼저 눈에 들어온 숫돌바위는 단지 칼을 갈았던 바위가 아니라 독도를 지키기 위해 애쓴 독도 의용수비대들의 넋이 담겨있다. 동북 사면에 위용을 드러낸 한반도 바위를 내려다 볼 때는 백두의 천지를 보듯 속이 울렁거렸다. 얼마나 간절하면 스스로 바위에 형상을 새겼을까. 바위가 고취시킨 애국심은 독립문 바위에 이르러 절정에 다다른다. 동쪽 절벽 끝에서 한반도의 시작을 알렸다. 독도는 영토의 끝이 아니라 영토의 시작이다. 온몸으로 독도를 지켜온 사람들의 마음이 촛대바위에서 서도로 이어져 은은히 타오르는 듯하다.
백두대간의 험준한 산맥이 동해바다를 건너 한반도 동쪽 끝으로 내달렸다. 해산은 바다 밑에 잠겨 있다가 460만 년 모습을 드러냈다. 새우주가 탄생한 듯 솟구친 용암이 조금씩 굳어 쌓이다가 수면 밖으로 내민 봉우리가 독도다. 독도의 모습은 범상하지 않다. 온통 바위뿐이다. 흙이라곤 모두 파도에 씻겨가 버린 탓에 생명이 살 수 있을까 염려가 앞선다. 기우였다. 갈매기가 천지로 날아오르고, 바위 틈사이로 초록의 생명이 끈질기게 움트고 있는 독도는 무인도가 아니라 생명의 땅이었다.
척박한 땅일수록 생명이 있는 것들은 몸을 낮춘다. 바위섬 상부를 띄엄띄엄 뒤덮은 초목들은 불어오는 해풍에 무릎 아래에서 흔들린다. 해국, 제비쑥, 땅채송화, 섬초롱 꽃 등 키 낮은 풀뿐만 아니라 사철나무 같은 목본 식물도 겨우 땅을 긴다. 하지만 육지 어느 식물보다 강인하다. 살아남기 위해 짠물에 몸을 단련시키고 따가운 햇살에 잎을 두텁게 하기 때문이다. 바위뿐인 독도가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는 생명이 살지 못할 것 같은 땅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몸피를 키워내기 때문이 아닐까.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그리움과 갈망의 공간이 있다. 독도는 한반도 동쪽 끝의 외로운 섬이지만 우리 민족의 얼에 잠재된 그리움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해가 뜨는 독도에 서 있으면 어디선가 우우웅- 가슴을 때리는 소리가 태극기처럼 힘차게 펄럭인다. 나라를 지키다 산화한 호국영령들의 넋과 독도를 수호하느라 역사에 족적을 남긴 조상들의 다짐이 거대한 바다 산에 부딪쳐 내는 소리다.
오천 년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을 닮아 어떤 외세의 침략과 야욕에도 흔들림이 없는 독도, 내 삶도 그런 독도를 닮고 싶다. 나무가 옹이를 만들며 단단해지듯 삶의 바람과 파도에 맞서 싸우며 아름다운 삶의 무늬를 만들고 싶다. 귀환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가 상념에 잠긴 나를 깨운다. 선상에서 내다보니 어느덧 자오선을 따라 중천으로 솟아오르는 해가 187,554제곱미터의 거대한 탑 위로 푸짐을 햇살을 쏟아내고 있다.
첫댓글 2013년 수필 연구반 학생이었습니다.
독도의 동도 서도 두 섬을 다보탑과 석가탑에다 빗대어 민족의 수호신으로 의미화한 점이 좋았습니다.
하나의 주제로 수렴되지 못하고 이리저리로 초점이 흐려진 점은 눈에 거슬리네요.
곽흥렬 교수님, 건강히 잘 지내시지요?
저도 그 점이 맘에 걸렸는데 운이 좋아서 수상을 했습니다. 좋은 합평 감사드립니다.
조촐한 글 올려주신 박순태회장님께도 감사말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