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법 승 삼보에 귀의합니다
불 법 승 삼보에 참회합니다
불 법 승 삼보에 감사합니다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 지미사바하
개경계 무상심심미묘법 백천만겁난조우 아금문견득수지 원해여래진실의
개법장진언 옴아라남아라다 옴아라남아라다 옴아라남아라다
도 닦을 마음을 내 오롯하게 이룬 공덕을 드러냄
논-69 또 이 보살은 공덕이 다 이루어져 色究竟處색구경처에서 모든 세간 가운데 가장 높은 큰 몸을 보인다.이는 한 생각에 진여와 맞아떨어진 지혜로 무명이 단숨에 사라진 것을 말하나 `모든 것을 낱낱이 아는 지혜;라고 한다.다연스럽게 사라진 것을 말하니 `모든 것을 낱낱이 아는 지혜'라고 한다.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없는 놀라운 진여의 활동이 있기에 시방세계 나타난 중생들에게 이익을 줄수 있다.논-69-1 첫째 부분에서 ``공덕이 다 이루어져"라고 말한 것은 `보살이 닦아야 할 열가지 마지막 수행단계"에서 수행과정의 모든 행이 그 결과를 다 이룬 것을 말한다.``색구경처에서 모든 세간 가운데 가장 높은 큰 몸을 보인다.이는 한 생각에 진여와 맞아떨어진 지혜로 무명이 단숨에 사라진 것을 말하니 `모든 것을 낱낱이 아는 지혜'라고 한다."고 말한 것은,시왕의 과보에 기대어 따로 나타내는 쪽에 따르면 `보살이 닦아야 할 열가지 마지막 수행단계'에 있는 보살은 第四禪제사선의 임금이며 색구경천에 잇으면서 도를 이룩한다는 것이니,곧 보신불인 타수용신이다.이는 (십시경)의 `과보를 거두는것'에 대한 설명에서 ``九地구지 보살이 대범왕이 되어 이천세계를 맡고 `보살이 닦아야 할 열 가지 마지막 수행단계'에 있는 보살은 마혜수라천왕이 되어 삼천세계를 맡는다."고 말한 내용과 같다.(능가경)에서는 ``비유하면 아리야식이 자기 마음에서 나타난 몸과 세간 같은 것을 단숨에 분별하는 것과 같다.보신불 야래도 이와 같이 한꺼번에 모든 중생계를 깨끗하고 맑은 경계를 수행하는 곳인 구경천의 맑고 오묘한 궁저에 갖다 놓는다."고 하고,또 아래의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욕심이 있는 세계와 무색계에서
부처님이 성불한 것 아니었다네
색계 중의 높은 하늘 구경천에서
욕심을 떠나갈 때 도를 얻었네.
(별기)지금 (능가경)의 뜻을 풀이하여 보자.실제 중생을 수용하는 몸의 뜻을 논한다면 법계에 두루하여 어느 곳이든 있지 않은 곳이 없다.그런데도 ``오직 저 하늘에 있는 몸만 성불한다."고 말한 것은 보살이 나타낸 색과 모습이 중생을 교화하고 받아들이는 몸이기 때문이다.실로 보신은 저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니,이 뜻을 별기는 여기에서 끝난다.
소-69-2 (법망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제4선정 마혜수라천왕궁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대범천왕과 보살들에게 연화장세계의 노사나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근본 마음자리에 속한 법문"설하셨다.이때 석가모니 몸에서 지혜의 고아명이 뻗어 나와 천왕궁에서 연화장세계까지 이르렀다.이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 세계에 있는 대중들을 높이 들어올려 같이 `연꽃 위의 연화장세계'에 있는 백만 억 자금광명궁중에 다다르니,노사나 부처님께서는 백만 연꽃이 밝게 빛나는 광명의 자리에 앉아 계셨다.
그때 석가모니 부처님과 대중들이 한꺼번에 모두 노사나 부처님께 예배를 올렸다.그때 노사나 부처님께서 크게 기뻐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모든 불자들이여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 수행하라.나는 이미 백만 아승지겁 동안 마음공부를 하여 이로 성불할 밑바탕을 삼았다.처음 범부의 위치를 버리고 평등하고 바른깨달음을 이루고 노사나가 되어 연화장 세계에 있는 바다에 머물렀다.내가 머문 곳의 둘레는 천 개의 잎이 있었고,하나의 잎이 하나의 세계가 되어 일천세계가 되었다.내가 천명의 석가모니가 되어 그 일천세계에 머물렀다.또 천 개의 잎에 있는 세계에 다시 백억 동서남북 천하와 백억 보살과 석가모니가 있어 백억의 보리수 밑에 앉아 있었다.이와 같이 천 개의 잎 위에 앉아 있는 부처님이 나의 화신이었고 천백억 석가모니는 천 명의 석가모니 화신이었다.내가 본디부터 근원이 됨으로 노사나라고 한다.게손으로 ``내가 이제 노사나로 연화대에 앉았으니..."라고 하며 많은 법을 자세히 말씀하셨다.이런 모든 글들을 가지고 밑가늠하여 풀이하면 이 단락의 내용을 알수 있다.
의심을 없앰
논-70 물음:허공이 끝이 없으므로 세계가 끝이 없고,세계가 끝이 없으므로 중생이 끝이 없고,중생이 끝이 없으므로 그 마음의 차별도 끝이 없습니다.이와 같이 경계를 한정지을 수 없으므로 알고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무명이 끊어졌다면 다음에 생각이 없는데 어떻게 알수 있기에 `모든 것을 낱낱이 아는 지혜'라고 부릅니까.
대답:모든 경계는 본디 한마음으로서 상념을 벗어나지만 중생들이 헛되이 경계를 보기에 마음에 분별할수 있는 한정된 모스비 있다.헛되이 상념을 일으켜 법의 성품과 들어맞지 않기 때문에 분병히 알수 없는 것이다.모든 부처님은 헛된 견해와 생각을 벗어나 어떤 곳이라도 그 지혜가 두루하지 않는 곳이 없으니 마음이 진실하기 때문이며 모든 법의 성품이 그러하다.자세히 헛된 모든 법을 환하게 비추는 큰 지혜의 작용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방편이 있어 모든 중생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곳을 따라 모두 온갖 법의 이치를 보일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낱낱이 아는 지혜'라고 부른다.
물음:모든 부처님께서 자연스런 업이 있어 모든 곳에 나타난 중생에게 이익을 줄수 있다면 모든 중생이 부처님과 그 분의 신통변화를 보거나 설법을 듣고 많은 이익이 있어야 합니다.그런데 어찌하여 세간의 대다수 이런 일을 볼수 없습니까.
대답:모든 부처님의 버신은 평등하고 모든 곳에 두루하여 억지 의도가 없기에 `자연스런'이란 표현을 쓴다.다만 중생의 마음에 따라 나타날 뿐인데,중생의 마음은 거울과 같다.거울에 때가 끼면 모습이 낱나지 않듯 ,중생의 번뇌가 있으면 법신이 나타나지를 않는 것이다.
소70 둘째 부분에서는 의심을 없앤다.두번의 문답에서 두 가지 의심을 없앤다.처음 대답하는 내용에는 세 가지가 있다.먼저 도리를 세우고,다음은 도리를 보지 못하는 잘못을 들며,그 뒤에는 온전한 도리를 드러낸다.
처음에 ``모든 경계는 본디 한마음으로서 상념을 벗어난 것이지만"이 라고 말한 것도 도리를 세운 것이다.이는 모든 경계는 끝이 있거나 없거나 한마음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끝이 잇으므로 다 알수 있고,끝이 없으므로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는 경계가 아니기 때문에 ``상념을 벗어난 것이다."말한 것이다.둘째,도리를 보지 못하는 잘못을 드는 가운데 ``중생들이 헛되이 경계를 보기에 마음에 분별할 수 있는 한정된 모습이 있다..."라고 말한 것은 보는 곳이 있기에 보지 못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셋째,온전한 도리의 내용을 드러내며 ``헛된 견해와 생각을 벗어난 어떤 곳이라도 그 지혜가 두루하지 않는 곳이 없다. 고말한 것은 보는 곳이 없기에 보지 못할 곳이 없다는 사실을 밝힌다.``마음이 진실하기 때문이며 모든 법의 성품이 그러하다."고 말한 것은 부처님의 마음이 상념을 여의고 한마음의 근원을 체득하여 헛된 생각을 벗어났기에 `마음이 진실하다'고 부른 것이며,한마음을 체득하였기 모든 법의 성품이 된다.이러하므로 부처님의 마음이 헛된 모든 법의 바탕이 되며,헛된 모든 법은 모두 부처님 마음에서 나타난 모습이다.곧 모습은 자체에서 나타나고 자체는 그 모습을 비추는 것이다.이처럼 알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그러므로 ``자체가 헛된 모든 법을 환하게 비춘다."고하니,이는 보는 곳이 없기에 보지 못할 곳이 없다는 까닭을 말한 것이다. 다음 문답에는 두 번째 의심을 없앤다.대답 가운데 ``거울에 때가 끼면 모습이 나타나지 않듯 중생의 마음에 번뇌가 있으면 법신이 나타나질 않는다."고 말한 것은 법신은 본질 같고 화신은 그림자와 같다는 뜻이다.지금 그림자를 나타내는 본질을 근거하기에 ``법신이 나타나는 깊고 깊은 이치 속에 ``버신을 잃었기에 세존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마치 깨진 그릇 속의 달모습과 같다."고 말한 내용과 같다.이것을 풀이하여 보자 .모든 부처님이 세간에 나타나질 않으니 세간에 ``모든 부처님은 늘 세간에 있다고 하는데 어찌 나타나지를 않는가.라고 말을 한다.비유하면 깨진 그룻 속에는 물이 있을 수 없으며,물이 없기에 깨진 그룻 속에 참으로 달이 있지만 나타날수 없는 것과 같다.이처럼 모든 중생도 집중된 마음의 부드러움이 이어지지 않고 다만 흐트러진 잘못된 마음만 이어질 뿐이므로 거기에는 참으로 모든 부처님이 잇다고 하는데 나타나질 앟는 것이다.물은 집중된 마음의 유연성을 비유하는 것이다.
(기신론)과 (섭대승론)이 부처님이 나타나거나 나타나지 못하는 뜻을 똑같이 말하지만 비유한 뜻은 조금 다른 바가 있다.(기신론)에 서는 거울로 비유하였으며 먼지가 있어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중생의 근기를 가지고 밑가늠하여 말한 것이다.부처님을 보는 근기가 성숙한 것을 번뇌가 없다고 하고,그러므로 번뇌가 나타난 것을 가지고 번뇌가 있어 부처님을 보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선성 비구와 조달은 번뇌 가운데에서도 부처님을 볼수 이었기 때문이다.
(십대성론)에서 깨진 그릇에 비유한 것은 사미타가 있어야 부처님을 볼수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과거 염불삼매를 닦아 익힌 힘을 이어가야 이번 생애에 부처님을 볼수 있다는 것을 밝히니, 이번 생애에 삼매에서만 부처님을 볼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왜냐하면 어지러운 마음으로도 부처님을 볼수 있기 때문이다.이는 (미륵소문경론)에서 말한 것과 같다.또 경에서 ``모든 禪定선정이 쉼터가 된다."고하니,이 때문에 선정을 얻은 이는 `모든 보살행을 잘 수행한다.'고 한다.이 논에서는 `반드시 처음 선을 갖추어야 도 닦을 마음을 내는 것은 아니다'고 한다.왜냐하면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헤아릴수 없이 많은 중생이 모두 도 닦을 마음을 냈지만 반드시 선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불 법 승 삼보에 감사합니다 지빈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