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에 심은 더덕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은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라는 오백여 권의 책을 남겼다. 최고의 학자였지만 다산은 농업을 사랑했고 스스로 농사짓는 것을 좋아했다. 단지 이론이 아닌 농사의 진정한 의미와 그 가치를 알았다. 귀양지 강진에서 두 아들에게 부친 편지를 보면 농사에 대한 다산의 진정성을 알 수 있다. “만일 내가 몇 년 만에 사면되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너희들로 하여금 능히 몸가짐을 삼가고 행실에 힘쓰게 하며, 효제(孝悌)를 숭상하고 화목하게 지내게 하며, 경사(經史)를 연구하고 시례(詩禮)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논의하게 할 것이다. 서가에 3,000~4,000권의 책을 꽂아두고, 양식은 1년쯤 버틸 수 있도록 하고, 밭에 뽕과 마, 채소와 과실, 각종 화훼와 약초를 심되 반듯하고 고르게 심어 기르며 기뻐할 것이다.”라고 했다. 다산의 농업에 대한 사랑을 한마디로 말하면 바로‘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다.
경남 의령군 들녘에 써레질이 한창이다. 옛 농부들은 ‘벼농사는 써레질에 달려 있다’고 했다. 탈탈탈탈 우우우웅~~, 물을 가득 머금은 논바닥을 트랙터가 부지런히 오가며 거친 흙덩이를 잘게 부수고 있다. 사방으로 튀던 흙탕물이 잦아들면, 논은 하늘과 구름을 고스란히 비춰내는 거대한 거울이 될 것이다. 모내기하기 전 논바닥을 가장 평평하고 부드럽게 다지는 것은 풍년을 기원하는 농부의 간절한 준비의식인 것이다. 푸른 모판을 맞이하기 위해 거울 같은 품을 내어주는 오월은 들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게 울렁인다. 써레질이 한창인 은빛 논 옆으로는 누렇게 익은 보리가 황금빛을 출렁이며 농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이맘때 농부에게는 눈코 뜰 새 없다는 말도 부족하다. 거울 같은 논에 물을 가두고 모내기를 하랴, 황금빛 보리를 베어내랴, 농부의 발걸음마다 굵은 땀방울이 맺힌다. 대지는 인간의 부지런한 손길에 응답하며 올 한 해의 풍년을 가져다줄 것이다. 방방곳곳 마다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며 2026년 열 꼭지째 칼럼으로 농사(農事: 논밭을 갈아 곡류·채소·과일 등을 심어 가꾸고 거루는 일)를 이루고 있는 한자를 들여다본다.
농사 농(農)은 정수리 신(曲=囟의 변형)에 새벽 신(辰=晨)이 더해진 글자다. 농부가 새벽부터 정수리에 수건을 쓰고 밭에 나가 곡식을 가꾼다 하여 ‘농사’의 뜻이 되었다. 신(囟)은 한자에서 '정수리'를 뜻하는 상형문자로, 주로 갓난아이의 머리 윗부분, 특히 뼈가 굳지 않아 열려 있는 숫구멍(갓난아이의 정수리가 굳지 않아서 숨 쉴 때마다 발딱발딱 뛰는 곳)이 있는 자리를 본떠 만들어졌다. 신문(囟門, 숫구멍), 신전(囟塡, 어린아이의 정수리가 붓는 병), 신종(囟腫, 숫구멍이 부어오르는 병증)이 좋은 용례이다.
새벽 신(辰)은 별, 새벽, 아침이라는 뜻을 가진 한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辰자는 농기구 일종을 그린 것이다. 예부터 농사를 짓는 일에는 반드시 쟁기, 호미, 삽 등 농기구가 필요했다. 농사를 뜻하는 농사 농(農)에 辰자가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즉, 농부가 새벽부터 농기구를 손에 들고 밭으로 나가 정수리가 땀으로 흠뻑 젖어질 때까지 곡식을 가꾼다 하여‘농사’의 뜻이 되었다.
일 사(事)자는 일, 직업, 재능, 사업, 벼슬, 사고(事故), 국가 대사(國家 大事) 등 다양한 뜻을 가진 글로 뜻 지(𠮛)에 붓 사(肀)가 결합 된 한자이다. 갑골문이 나타날 때, 부릴 사(使), 역사 사(史), 관리 리(吏), 일 사(事)자는 모두 같은 글자였다. 事자는 그 중에서도 정부 관료인‘사관’을 뜻했다. 갑골문에서 사관은 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주관했기 때문에 事자는 제사를 지내고 점을 치는 주술 도구를 손에 쥔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 후 글자가 분화되면서 事자는 일이나 직업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史자는 일을 기록하는 사람으로, 吏는 사람을 다스리는 자로, 事자는 직책으로 분화되었다고 한다. 사무(事務: 맡아보는 일), 검사(檢事: 범죄를 수사하고 공소를 제기하며 재판을 집행하는 관리), 사변(事變: 천재나 그 밖의 큰 변고)이 좋은 용례이다.
모내기를 앞두고 흙을 고르고 바닥을 평평하게 다지는 이 작업은, 비단 벼농사만을 위한 과정은 아닐 것이다. 거친 흙더미를 으깨어 부드럽게 만들고, 높은 곳은 깎고 낮은 곳은 메워 수평을 맞추는 일, 어쩌면 우리네 삶도 이와 같은 것이리라. 마음의 농사에도 모난 구석을 깎아내고 평정심을 찾는 써레질이 필요하다. 푸른 대지가 온몸으로 보여 주는 비움과 채움의 미학 앞에서, 문득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된다. 써레질이 끝난 무논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개구리들의 응원가가 힘차게 울려 퍼지고 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개굴개굴 ~
| 農 | = | 曲=囟 | + | 辰=晨 |
| 농사 농 |
| 정수리(숫구멍) 신 |
| 새벽(별) 신 |
| 事 | = | 𠮛 | + | 肀 |
| 일 사 |
| 뜻 지 |
| 붓 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