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사극(史劇) 가운데 인기를 끌었던 것 중 하나가 조선의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내치고 정권을 장악하는 내용을 그린 사극입니다.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내치고 정권을 장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분이 한명회(韓明澮)라는 분인데, 이 분을 세조가 치켜 세울 때 "나의 장자방이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나의 장자방이다라는 말은 나의 작전 참모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런 뜻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장자방은 중국 진(秦)나라 시대에 살았던 장량(張良)이란 인물입니다.
장량의 자(字)는 자방(子房)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한(韓)나라 소후(昭侯)·선혜왕(宣惠王) 등의 5대에 걸쳐 승상을 지냈던 명문가 출신 인물입니다. 그런데 진(秦)이 한을 멸하자 그는 자객들과 사귀면서 진시황을 죽이려고 도모하여 박랑사(博浪沙:지금의 허난 성[河南省] 위안양[原陽] 남동쪽)에서 진의 시황제(始皇帝)를 암살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숨어지내야만 했습니다.
그가 숨어 살던 곳이 하비(下邳 - 지금의 장쑤 성[江蘇省] 쥐닝 현[雎寧縣])이었다고 합니다 : 이 곳 장쑤성에는 유명한 소주나 항주 같은 도시가 있습니다.)
하비에 몸을 숨기고 살던 어느날, 장량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나들이를 나가 돌아 다니다가 다리를 건너면서 노인 한 분을 만나게 됩니다.
장량이 다리를 건너고 있을 때 저 쪽 다리 난간에 앉아 있던 노인 한 분이 갑자기 신발을 다리 아래로 떨어뜨리더니 다짜고짜 장량에게 주워 오라고 시켰답니다.
장량은 어이가 없었지만 신발을 주워다 드렸지요. 그랬더니 노인이 또 다른 쪽 신발 한짝을 다시 다리 아래로 떨어 뜨리고 장량에게 다시 주워 오라 시켰답니다.
장량은 성질이 나서 노인을 한 대 쥐어 박고 싶었으나 꾹 참고 다시 주워다 드렷답니다. 그랬더니 노인이 말씀 하시기를 " 젊은 놈이 가르칠만 하구나. , 다음 날 아침 이 곳에서 만나자"하였답니다.
장량은 다음 날 약속 장소로 갔는데 노인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화를 내며 "젊은 놈이 늙은이와 약속을 하고 무례하게 늦게 온단 말이냐?"라고 호통을 치더니 다음 날 다시 만나자고 해 놓고서 휑하니 가버렸습니다.
장량은 다음날 새벽 다시 나갔지만 노인이 또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역정을 내며 다음날을 기약하고 사라졌습니다.
장량은 아예 그 곳에서 밤을 새며 노인을 기다렸는데, 노인이 나타나 장량에게 책을 한권 주며 "이 책을 부지런히 섭렵하여 몸에 익히고 요긴하게 쓰라. 그리고 훗날 네가 濟水(제수)라는 강 옆의 곡성산(谷城山)을 지나게 될 때 나를 만날 것이다. 그 산을 지날 때 누런 돌을 보면 그것이 곧 나이니라. 하시며 사라졌답니다.
이 때 장량이 받은 책이, 강태공이 지었다고 하는 육도삼략(六韜三略)이라는 설도 있고, 이 앞에 소개한 소서(素書)라는 설도 있습니다.
암튼 장량이 노인에게서 받은 책이 소서라는 설이 더 유력하답니다.
장량은 이 노인에게서 받은 책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여 漢(한)고조인 유방(劉邦)을 도와 項羽(항우)의 楚(초)를 물리치고 중국을 통일하는 주인공이 되는데 작전 참모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합니다.
중국을 통일한 유방(劉邦)은 대업을 완수한 후 자기가 중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이유로,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공격하면 반드시 취했던 한신(韓信), 항우와 싸우는 동안 군수 물자를 어김없이 조달했던 소하(蕭何), 작전을 세우고 실행하여 천리 밖의 승리를 결정 지었다는 장량(張良)때문이었다고 이야기 했답니다.
장량이 겸손하였기에 귀중한 책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답니다. 장량은 그 후 곡성산 아래서 누런 돌을 발견하고 정중히 제사를 지내 주었다고 하는데, 이런 이유로 장량에게 책을 전해준 그 노인을 황석공(黃石公)이라 부른답니다.
첫댓글 ㅎㅎ, 2000년훨씬전의 쭝귁상고시대 역사야그 감회가 새롭습니다...독살스런 유방의 처와, 초패왕의 사랑스런 우희도 생각나네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