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물 생명권에서 본 축산 상황과 우리사회 | ||||||||||||||||||||||||||||||
- 스스로의 탐욕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모습 [자료-반생명적 축산정책 종식 위한 토론회/우희종] | ||||||||||||||||||||||||||||||
| ||||||||||||||||||||||||||||||
History has a more important task than to be a handmaiden to philosophy.… Its task is to become a curative science. – M. Foucault (History as Therapy, 1984) 오늘 인간은 지구의 주인으로 존재한다. 이미 지니고 있는 핵폭탄만으로도 지구의 생태계를 일순에 무너트릴 수 있다. 이 생태계는 약 140억년의 우주의 역사 속에 45억년의 나이를 지니고 있다고 일컬어지는 지구의 역사 속에 형성된 것이고 이런 흐름 속에서 보면 지극히 짧은 인간의 역사를 생각해 볼 때 참으로 놀라운 일임에 틀림없다. 들여다보면 이렇게 지구 생태계를 뒤흔들 수 있게 된 것은 저마다의 차이를 지니고 존재의 의미가 있는 생태계에 대하여 인간을 중심으로 결정되는 선악을 규정함으로서 존재의 차이를 차별로 바라보게 하는 이성(理性)에 근거한다. 그러나 생태계의 수많은 구성원 중의 하나이자 이러한 이성을 지닌 인간이 지구의 주인으로 등장하면서 잊은 것은 인간이 지닌 욕망의 모습이다. 인간이 주인인양 행세해 온 탓에 온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병든 지구의 증후는 지구 온난화에서부터 신종전염병의 창궐까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그것을 간단히 말한다면 균형의 파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 자신의 욕망에 대한 성찰이 결여된 근대 사회가 추구해 온 욕망의 만족은 기나긴 생태계의 역사성을 무시함으로서 생태계가 지닌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다. 생명체로서의 인간을 존재하게 하는 인간의 욕망이 삶의 현장에서 스스로가 서 있는 생태계를 무너뜨림으로서 자신들의 목을 죄고 있음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지점까지 온 것이다. 이번 발표문은 축산 방역 현장에서의 대량 사육과 도살, 전염병 발생마다 되풀이 되는 살처분과 생매장 등 동물생명권 차원에서의 축산 현실에 대한 글이지만, 동물생명권이 무시된 채 자본 중심으로 진행되는 처참한 축산 현황은 이미 동물의 생명권을 염려하는 많은 시민단체나 환경단체에서 그동안 끊임없이 지적하며 알려 왔기에 굳이 여기서 되풀이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여기에서는 인간의 육식 규모를 언급하여 간접적으로 동물생명권 침해의 규모와 더불어 최근 사회 재난으로 전개된 구제역 사태를 중심으로 동물의 생명권 및 인권이 동시에 무시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살펴본다. 생명의 그물망(Web of life)이라는 표현에서처럼 생태계 내의 모든 생명체가 서로 연결되어 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그물망의 형성은 긴 지구의 역사 속에서 자기 조직적인 창발현상(emergence)임은 21세기 들어와 시스템생물학 등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생명체는 단순한 물질과는 달리 생명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생명체의 특징인 개체고유성은 신경계와 면역계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지만 신경계와 면역계 양쪽 모두 생물체 내부의 자족적인 발생 체계가 아니라 외부와의 관계에 의거해서 개체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창발 체계다. 이는 수정란에 담겨진 유전정보로부터 시작되는 개체 형성에 있어서 성숙한 개체의 해부구조나 생리학적 구성은 기본적으로 필요한 영양분만 있으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배아로부터 자체적으로 자기 형태를 발현하는 발생 양식을 보이지만, 유독 생명체의 개체고유성에 기여하는 신경계와 면역계의 형성에 필요한 정보는 배아 자체가 지닌 정보와 영양분만으로는 부족하며 제대로 된 기능과 형태 발현을 위해서는 끊임없는 외부와의 교류가 필요하다. 이러한 생명체의 주위와의 관계성이야말로 주위에 대한 열려있음, 즉 생명체의 개방성이다. 열린 그물망 구조는 전형적인 자연계의모 습이기에 주위에 의존하여 변화해 가는 열린 관계로서의 생명체는 관계로부터 빚어지는 수많은 변화 속에서 외부 환경에 대하여 반응하고 기억하며 그러한 경험의 총체적 누적으로서 존재한다. 생명체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위와의 에너지 교환 등이 필요하고 환경에 대하여 반응하여 자기 조직화를 통해 진화하는 특징이 있으며, 이는 철저히 주위와의 열려있음으로 가능하다. 따라서 경계를 나타내는 형태를 지니고 자율적인 고유성을 지니며 동시에 주위에 열려 있어 의존되어 있다는 것을 다르게 표현한다면 전체이면서 부분이고 부분이면서 전체성을 지니는 프랙탈 구조다. 시공간에 있어서 생명체는 비록 개체로서 부분이지만 그 자체로 곧 시공간 전체이기도 하다. 따라서 ‘생명현상이란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전체이면서 부분이고 부분이면서 전체인 상태를 유지하는 창발적 현상’이다. 이러한 정의에는 생명에 대한 존엄성이 포함된다. 한 작은 생명이라도 곧 우주 전체이며, 또한 모든 생물체는 더 이상 고립되어 소외되거나 단절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개념은 일반적인 낱개의 생명체와 Gaia와 같은 지구적 생명 모두를 포괄할 수 있기에 온 생명체로서의 생태계도 동일하게 볼 수 있다. 한국은 경제 발전에 따라 이제는 국제 사회의 OECD(국제 경제협력 개발기구) 일원으로서 지구상에서 선진국에 해당된다. 경제 발전에 따라 한국의 육류 소비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고 이러한 경제 발전에 따른 육류 소비의 증가는 그 어느 나라도 예외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육류 소비에 대한 선호도에 따른 목축산업의 비대화 및 생산량 증가를 위한 업자들의 노력도 동물의 생명을 바탕으로 기업화된 산업 구조를 더욱 더 가속하고 강화하고 있다. 현재 66억으로 추정되는 세계 인구와 더불어 후기 산업 시대의 대량 소비문화는 인간을 위해 희생되어 소비되는 동물의 숫자를 기하급수적으로 높이고 있다. 정확한 수치를 얻는 것은 어렵겠지만 이를 추정해 보면 우리의 예상이나 실제 통계 자료보다 훨씬 높은 수치일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 규모를 추정함으로서 인간이 지금이 모습으로 지구상에 존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동물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잡식성인 사람의 식습관을 고려할 때 다양한 동물이 식용으로 희생되겠지만 편의상 현실적으로 조사 가능한 대표적인 일부 가축만을 보아도 연 100억 마리 이상이 희생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수치는 지구상의 식량 편재 상황을 고려할 때 육류 소비가 경제적으로 부유한 선진 국가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현실과 더불어 앞으로 인간의 육류 소비문화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필요성을 말해 준다. 결국 지구 반대편에서 한 줌의 먹을거리가 없어 기아로 사망하는 상황에서 육류 생산을 위해 소비되는 곡물의 양도 엄청나거니와 과연 어디까지 인간의 육류 소비를 정당화해야하는가의 문제이다. 뿐만 아니라 실험동물로서 혹은 스포츠 등을 위해 사망하는 수치를 고려하면 인간을 위해 죽음을 맞이하는 동물의 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끊임없는 인간의 육류 소비와 이를 위한 축산 산업의 비대화는 인구 증가에 따른 지구상의 식량 위기를 조장하는 것으로서 이것은 마치 석유라는 화석연료의 고갈에 따른 에너지 문제의 현실화라는 지금의 상황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의 육류소비가 동시대의 기아 문제에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것처럼 이러한 육류 문화에 대한 대안 문화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 조만간 인간에게는 지구 식량 자원의 고갈을 통해 스스로의 목을 조르게 될 것은 충분히 예견되고 있다. 육식이라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는 그것을 만족시키기 위한 수많은 동물의 희생이 요구된다. 하지만 그러한 우리의 욕망은 동물의 생명권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생존마저 위태롭게 한다. 이것은 우리가 굳이 생태적 관점과 가치관을 지니고 있지 않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상황이며, 결국 인간의 생존과 동물의 생존은 서로 연계되어 있어서 떼어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에서의 사육되고 있는 대표적인 축종별 두수를 확인함으로서 식용으로 사육되어 희생되는 전체적인 동물의 규모를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표 1의 통계에서 보듯이 소는 국내에서 연평균 250만~270만 마리의 규모가 사육되고 있으며, 돼지는 9백만~9백50만 마리, 닭은 1억~1억 3천만 마리 규모의 사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규모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자료를 바탕으로 지난 5년간의 평균치를 기준으로 볼 때, 매년 10% 정도의 범위에서 변동은 있으나 비교적 안정된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표 1). 2) 도축 규모 2007년도에 도축된 가축의 통계를 보면 표2에서 보다시피 소는 60~70만 마리소가 매년 도축되고 있으며, 돼지는 1천3백만 마리 내외, 닭은 6억~6억5천만 마리, 그리고 오리는 3천만~4천만 마리의 규모로 도축이 실시되고 있다 (표 2). 사육되는 동물의 수보다 도축되는 동물의 수가 많은 동물로서 알 수 있는 것은 최소한 돼지와 닭은 태어나 1년도 되지 않아 신속히 도축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사료 효율 및 육질 등을 고려하여 생산성을 포함한 경제적인 측면에서 돼지는 생후 5개월 전후, 닭은 부화 후 3-4개월이면 식용으로 도축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3) 수입규모 2007년 12월에 잠정적으로 계산된 농림부의 ‘축산물 수입 검역통계 순기보고('07년 12월)’에 따르면 국내에서 사육되어 도축됨으로서 희생되는 가축 외에도 국내 육류 소비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막대한 양의 육류가 다양한 나라로부터 수입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표3). 이 2007년도 수치에는 금년 들어 수입이 전면 재개된 미국으로부터의 쇠고기 수입 상황과는 달리 당시에는 미국으로부터의 쇠고기 수입 물량이 매우 적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민의 육류 소비량은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자료에서 보듯이 다양한 육류 수입국의 분포를 볼 때 육류 소비의 문제는 전 세계적 내지 지구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쇠고기, 돼지고기와 닭고기와 같은 전통적인 육류 외에도 국내에서 소비되는 대표적 육류 중에서 어패류가 차지하는 비중을 무시할 수 없다. 어류의 통계로서 정확히 희생되는 동물의 수를 알 수 없지만 전체적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자료로서 해양수산부의 자료를 보면, 매년 250만~300만 톤의 규모의 어류가 인간을 위해 포획 내지 양식을 통해 희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표 4).
이상과 같이 국내에서의 식용 동물의 규모는 결코 작은 수치가 아니며, 이러한 통계 수치 외에도 여기에 포함되지 못한 오리, 토끼 등 여러 동물의 숫자는 물론, 정확한 통계 수치는 없으나 한국 문화 속에서 몸에 좋다는 이유로 선호되어 식용으로 대량 사육되고 있는 개나 사슴, 뱀 등의 동물을 고려하면 이 수치는 더욱 높아진다. 나. 국제 규모 1) 사육규모 국제적인 가축의 사육 규모는 국제식량기구(FAO)의 2008년도 통계를 바탕으로 추정할 때, 지난 3년간 소에서 연평균 13억~14억 두의 사육규모를 보이고 있고, 돼지는 연평균 9억 4천만~9억 9천만 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한편 양은 비록 국내 사육은 미미하지만 국제적으로 연평균 약 10억~11억 마리의 사육 현황을 보이고 있으며, 또한 닭은 연평균 164억~169억 마리의 사육 현황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국내의 사육 및 도축 현황에서 보았듯이 돼지와 닭은 1년 미만 상태에서 도축되기에 현실적으로 식육으로서 희생되는 돼지와 닭의 숫자는 사육 두수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어류의 포획량만으로 바다 생물의 희생을 보수적으로 추정을 해 볼 때 전 세계적 포획량은 연 1억5천만~1억 6천만 톤의 규모를 보이고 있다 (구체적 국가별, 연도별 사육 및 포획 규모는 생략). 2) 미국 사례 특히 미국에서의 도축량은 지구상의 어느 나라보다 규모가 크며, 어류 등의 해양 동물을 제외하고 지상 동물만으로 100억 마리 가까운 도축량을 보이고 있으며 그 과정 중에 사망하는 동물의 수를 포함하면 100억 마리 이상이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표5). 또한 미국에서는 이러한 수치에 더해서 생명공학의 발전을 위한 실험동물로서 2천5백만 마리의 동물이 사용되고 있고, 스포츠 목적으로 사망하는 동물의 숫자는 1억 3천5백만 마리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현황 속에서 많은 동물 권익 보호가들의 활동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은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른다. 육식에 따른 성인병 증가라는 면에서도 결코 권장되지 않는 육식은 대안으로서의 채식문화 전개에 발단이 되기도 한다. 생태계가 지닌 역사성을 철저히 무시하는 신자유주의적 사회에서 육식 문화는 생태적 축산 문화로 이루어지기 보다는 동물을 상품으로만 보는 공장식 밀집 사육과 도축에 의거한다. 지구에 인류가 등장한 이래, 산업 사회 이후 급격히 증가된 인구와 개발 국가에서의 식생활 습관의 변화는 매우 짧은 기간에 이루어졌다. 지극히 짧은 시간 내에 인류의 증가된 동물성 단백 소비를 뒷받침하기 위한 축산의 대규모 산업화로 매우 부자연스러운 인위적 사육환경이 도입되었다. 이는 긴 시간에 걸쳐 안정된 상태를 유진해 온 생태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이고 질병 발생 및 유행 형태가 과거와 다르게 변화한 것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질병의 발생과 유행은 단순히 생물학적 이유만이 아니라 사람이나 동물의 생활 및 사양방식과 더불어 당시의 사회문화적인 요소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동일한 질병도 국가나 문화권에 따라 서로 다른 형태로 유행한다. 이러한 요소들을 간략히 요약만 해보아도 1. 인구 증가로 인한 종간 접촉 증대, 2. 세계화로 인한 교역과 이동 증가, 3. 인구의 고령화, 4. 공중보건 체제의 변화로 인한 의료 양극화 (신자유주의적 사회에서 의료민영화에 따른 의료혜택을 못받는 빈약한 집단의 등장으로 새로운 질병 유행의 터전이 형성된다 - HIV, 결핵), 5. 지구 온난화에 따른 생태계 혼란, 6. 병원 및 의료 활동 증대로 인한 다양한 내성균의 등장 및 파급, 7. 이종장기개발이나 GMO와 같은 인간 위주의 과학 기술, 8. 신자유주의적 소비문화로 인한 집단 동물사육, 9. 가축 품종개량에 따른 유전 다양성의 소실로 인한 질병 유행 등을 들 수 있다. 인구 증가에 따른 대량소비를 위한 가축의 열악한 공장식 사육 환경과 더불어 사회문화적인 상황도 전염병의 창궐 및 급속한 확산에 많은 부분 기여하고 있다. 구제역을 비롯하여 조류독감 등 여러 질병들이 요즘처럼 전 사회의 관심을 끌 정도로 일상화된 것에는 이렇게 인간 위주의 시각과 함께 오직 생산성과 효율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산업구조 및 경제논리가 바닥에 있고, 이렇듯 무분별한 인간 탐욕에 의한 개발과 성장은 도시의 확장, 댐 건설, 도로 연장과 확대, 가축의 집단 사육, 자동차의 범람 등과 더불어 생태계 구성원들(미생물, 야생동물·가축·인간 등)의 접촉이 빈번해지도록 바꾸어놓았다. 세계보건기구 자료에 의하면 특히 지난 30년 동안 발견된 새로운 인간 질병 중 75% 정도가 야생동물이나 가축에게서 유래했다. 신종인수공통전염병의 유행이다. 가장 유명한 질병은 침팬지 혹은 원숭이로부터 인류계 내로 유입된 것으로 알려진 에이즈와, 양으로부터 유래하여 소에게로 옮아간 광우병이다. 또한 과거 유행했던 전염병이 다시 재창궐하는 경우도 많이 관찰되고 있다. 좋은 예로는 조류인플루엔자(AI)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지금도 수많은 동물 바이러스들이 ‘인류계 내로 들어오는 문’을 찾으려고 인간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것이고, 인간의 탐욕이 그 문을 활짝 여는 셈이다. 특히 모든 생명체나 생태계는 복잡계에서 작은 초기 조건에 의해 커다란 차이를 나타내는 나비효과라고 불리는 초기 조건의 민감도를 지니고 있음을 고려할 때 복잡계가 지닌 예측불가능성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상기한 국제적이자 총체적인 생태계의 불균형은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에서도 대규모 동물 질병이 유행하는 상황이 자주 관찰된다. 최근 국제적 규모로 신속하게 파급되어 국내에 들어온 AI도 그러한 사례이며, 또 요즘 사회 재난으로 선포된 구제역의 창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최근의 구제역 사태에서 보듯이 대규모 살처분 및 생매장과 같은 방역대책이 동물의 생명권 차원에서 적절했던 것인지 검토되어야 한다. 사실 구제역의 발생이 동물의 대량 학살로 이어지는 이유는 비교적 간단하다. 구제역이 매우 전염력이 높다는 것 외에는 성체동물에서는 치사율이 낮아도 어린 동물에서는 치사율이 높고, 질병에서 회복된 동물에서 성장이나 사료효율 등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구제역의 확산을 막기 위해 안전지대 확보의 목적으로 주변 일정 거리 내에 있는 대상 동물을 살처분한다. 이처럼 구제역 방역에 있어서 초기 발생에서의 살처분은 질병 확산 방지를 위해 국제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방식이기는 하지만 이 과정에서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OIE를 비롯해 국제 권고 사항이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국내 살처분 과정에서는 이러한 권고 기준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음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사회재난으로까지 구제역이 전국토를 초토화 시키면서 대규모 살처분과 생매장을 불러와 사회 문제로 전개된 것은 무엇보다 당국의 방역 미숙에 의한다. 정부는 구제역이 거의 전국토로 확산되는 시점까지 백신 접종을 실시하지 않고 대규모 살처분에만 의존했다. 그러나 구제역 방역에 있어서 예방백신 접종의 유효성은 이미 2000년도부터 학계보고를 통해 인정돼 있었고 국제적으로도 백신의 현장 적용을 통해 구제역 조기 진압에 성공한 사례가 많았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안동에서 발생했을 때 초동 방역의 실패로 인해 구제역의 급속하고 광범위한 확산이 발생했을 때 예방백신 접종을 실시하여 대규모 살처분을 방지했어야 했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특정 기후 환경에서는 공기를 타고 가깝게는 10 km에서 멀게는 60 km, 바다에서는 300 km까지도 전파됨이 알려져 있기에 현재 국내에서 실시하고 있는 일정 거리 내의 살처분 조치는 초기 발생 상황에서 유효할지는 몰라도 이미 국내 도처로 확산된 상황에서는 별로 유효한 방법은 되지 못한다. 또 구제역 바이러스는 자연계 외부상태에서 그렇게 생존력이 높지 않은 바이러스이기는 하지만 최근 국내에 그 숫자기 급증하고 있는 야생 돼지를 감염시킬 수 있으며, 이러한 야생동물에 의한 구제역 확산 가능성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초기 대응 방식에 있어서 이들에 대한 예방적 조치는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런 면에서 방역과 연계된 가축만의 대량 살처분 및 매몰만이 아니라 질병의 발생 규모에 따라 총체적이고도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대책이 준비되어 현장에 적용되어야 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단순하고 획일적인 가축 살처분 방식만이 적용되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백신 접종을 포함해서 발생 규모에 따른 다양한 방역, 방제 대책의 부재와 더불어 천편일률적인 대량 살처분 상황 등, 준비되지 못한 정부로 인하여 심지어 살아있는 채로 동물을 매몰하는 참혹한 광경마저 연출된 셈이다. 또한 성숙한 사회에서의 동물 생명권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차후로 한다 해도 현재와 같은 높은 인구밀도와 밀집 사육 상황을 지닌 국내 상황에서 동물의 대량 매몰 방식은 환경 측면에서도 많은 문제점을 지닌다. 대규모로 동물을 일시에 묻는 것은 환경오염이라는 측면에서도 많은 문제점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국내의 좁은 국토와 밀집된 생활환경을 고려한다면 방역 차원에서의 동물 매몰이라는 방식은 소각 방식 등으로 다양화했어야 했다. 대규모 살처분에 의한 매몰은 당장 핏물 등에 의한 환경이나 상수도 오염이 거론되겠지만 장차 봄이 되어 따뜻한 상황에서는 이들의 부패가 또 다른 전염병 미생물의 유행을 불러올 위험을 가지고 있다. 2000년도 이후 구제역 방역에 있어서 이미 학계나 외국에서는 백신 병용이 실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번에 살처분만으로 대처함으로써 백신 사용의 적절한 시기를 놓쳤다. 구차한 정부 변명으로써 초기 백신 처방을 실시하지 않은 주된 이유는 돼지고기 수출을 위한 청정국가 명분이었다. 그러나 현재 150만 마리를 넘게 살처분된 동물 수와 1조원을 넘는 방역 비용을 생각할 때 얼마나 정부가 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했는가를 보여준다. 이렇게 청정국가라는 경제 논리로 더 이상 변명이 어려워진 정부는 이제는 자신들의 실기를 변명하기 위해 대부분의 백신이 지닌 일반적 문제점이 마치 구제역백신만의 경우인양 떠든다. 또 백신 접종 동물이나 대규모 매장이나 사후 관리가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임에도 불구하고 백신 접종 동물은 일정 기간 관리를 해야 하고 이를 위한 비용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행태를 통해 신속하고 유연하게 백신 접종을 결정, 실시하지 못한 책임에 대하여 돌려서 변명하고 있는 셈이다. 동물의 생명권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할 때 인간이 받는 피해도 심각함을 이번 구제역 사태는 보여준다. 축산 농가의 경제적 고통은 물론 가족과 같은 가축을 당국 지시에 따라 살처분한 이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은 결국 동물에게 바람직한 환경이 사람에게도 바람직한 환경임을 새삼 말해준다. 한편, 우려해야 할 점으로는 현 상황에 대한 정부의 태도이다. 최근 들어 일부 정부 지원 과학토론회에서는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이 너무도 쉽게 이주노동자를 구제역 사태에 대한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이는 구제역 대유행의 정부 실책을 모면하기 위해 대신 책임질 손쉬운 희생양을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질병의 발생과 유행에는 어느 한 집단만의 잘못도 아니고 종합적인 것이기에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된 것에는 정부, 축산농가, 사료나 약품회사, 오물 수거 차량 등등 모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그러나 지금 정부의 행태는 가뜩이나 식구와 같은 가축을 잃고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 축산농가를 앞에 두고 정부의 실책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특정 집단을 지목해서 모든 책임을 지우려 하는 격이다. 비슷한 사례로써 한국에서 유행하는 구제역 바이러스의 유전자형과 베트남 구제역 바이러스의 유전자형은 2-3일이면 충분히 확인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발생 초기에 베트남을 다녀온 축산 농가 주인을 마치 범인처럼 지목했다. 구체적 사실 확인도 없이 추정만으로 책임을 지워 몰아간 셈이다. 그 후 일본에서 발표된 바에 따르면 이번 국내 유행형은 일본유행형에 더 가깝다. 무엇보다 정부가 책임져야 할 상황에서 언제나 사회약자를 근거 없이 희생양으로 만들어 책임을 회피하려는 공무원들이나 이에 호응해서 정당한 과학적 근거도 없이 '~카더라'식의 결론을 마치 과학적인 것처럼 말하는 일부 학자들에 의해 빚어질 사회적 손실은 매우 크다. 근거도 없이 이주노동자를 거론하는 행태는 결국 사회분열과 더불어 우리 사회에 근거없는 선입견을 만들어 사회를 건강하지 못하게 퇴행시키는 아주 치졸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과거 2008년 정부 실책으로 미국쇠고기 수입 개방으로 인해 발생한 촛불 사태에서 PD수첩을 희생양으로 삼았던 것과 같다. 지금은 단지 이주노동자일 뿐이다. 동물의 생명권이 무시되는 사회에서는 인권도 무시된다. 동물의 생명을 가볍게 보지 않는 사회일 때 인간의 기본적 권리도 무시하지 않는 사회임을 보여주는 간접적 정황이다. 동물 생명권에 대한 무감각이 극복되어야 국제적으로 확립되어 가는 동물의 생명권이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도 거론되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될지 모르지만, 과거에는 못 보던 동물의 대량 매몰이라는 참혹한 모습이 우리들의 안방까지 전달되는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대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생태계와의 열린 관계 속의 인간보다는 자연과 단절된 삶을 추구하면서 절제되지 않은 욕망의 만족만을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는 지극히 왜곡된 시선이다. 이런 잘못된 시각은 인간 먹거리의 과도한 위생 상태로 이어지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거대한 조직화를 통한 경제성 추구와 더불어 지나친 위생개념은 더욱 더 인간 중심의 산업체제로 진행시켜 동물에 대한 인위적 개입을 증대시킨다. 요즘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물의 HACCP(위해 요소 중점 관리 기준)이라는 체제도 대표적 예다. 먹거리를 안전하게 하자는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그러한 체제가 확립되면 될수록 우리는 자연과 동떨어져 이렇게 고립된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그면서도 과거와는 달리 작은 외부 요소의 개입으로도 막대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는 취약한 방향으로 우리 스스로를 몰아가고 있는 셈이다. 열린 생태적 시각이 아니라 경제적이자 상품성만을 위한 다국적 규모의 식량 생산체계와 과도한 위생 체제는 결국 동물에 대한 인위적 개입의 증대와 취약한 사회구조를 불러온다. 비유하자면 모든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고 있는 행태다. 구제역과 관련하여 진행되는 국내 상황은 정부의 근시안적인 단순 방역 대책과 더불어 생물권(biosphere)을 기반으로 하는 생태계를 고려하기보다는 오직 인간 위주의 시각이 근저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번 구제역 유행을 기회로 하여 ‘동물에게 좋은 환경이 인간에게도 좋은 환경’이라는 인식 전환의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언제 질병 창궐을 불러일으킬지 모르는 비윤리적 밀집형 공장식 사육에 대한 총체적 재검토, 생태 지향적 산업구조에의 재편, 그리고 이와 동시에 전염병에 대한 전반적이자 단계별 대응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흔한 오해 중의 하나가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이 인류의 적이라는 생각이다.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병원성이든 아니든 같은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인간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존해왔다. 지금까지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해서 독감을 유행시킨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역시 사람이나 동물과 함께 진화해 온 것처럼 현재 과학지식으로는 알 수 없는 요인에 의해 사람과 동물, 그리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간의 안정된 관계가 변하면서 인플루엔자의 새로운 변종이 등장한다. 이렇게 나타난 신종 바이러스는 생태계를 구성하는 기존 집단 간의 새로운 관계 형성을 유도하며, 이때 인간도 신종 인플루엔자와 새롭게 형성된 안정된 관계를 만들어 간다. 아직 생태계의 총체적 모습을 파악하지 못하는 현대과학은 전염병 관리와 방역에서 미생물을 인간의 적으로 여기고 인간만이 지구상의 유일한 생물종이 되어야 한다는 식의 오만함을 지니고 있다. 신종 전염병에 대한 종합적 이해와 대책을 위해서는 인간중심의 시각을 버리고 동물의 생명권을 존중하는 생태적 틀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변화된 환경 속에서 이번에는 그나마 인수공통전염병이 아닌 구제역만으로도 사회재난이 선포되었지만, 다음에는 새로운 변종 병원체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등장해 인간에게 위험한 신종인수공통전염병으로 나타나 인류를 두렵게 할 수 있다. 반생명적 축산과 방역 대책, 더 나아가 동물과 인간, 그리고 미생물에 대한 생태적 시각과 사회문화 조성이 절실히 요구디는 이유이다. 끝으로 구제역 발생과 방역에 있어서 과도한 언론의 흥미 위주의 보도 행태는 개선되어야 한다. 잘못된 방역 대처나 문제점에 대한 보도는 필요하지만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동물 생명권과 생태적 삶의 모습을 생각하면 경제적 이유로 건강한 생명체의 대량 매몰 현장은 결코 자랑스럽지 못하다. 발생한 전염병이 인수공통전염병이라서 각 개인에게도 치명적인 상황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일반인들에 동물의 대량 매몰 현장을 지속적으로 반복 전달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지닌 동물 생명에 대한 무감각을 그대로 안방 구석구석까지 확산시키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당장은 몰라도 이런 것을 안방에서 태연히 보고 듣게 되는 어린 미래세대가 지니게 된 동물 생명권에 대한 무감각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우희종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