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에 대하여
가끔 드리는 말씀이지만, 제가 말을 줄이겠다고 맘먹고 노력 한 게 거의 10년 쯤 됩니다. 당연히 처음에는 쉽지 않았죠.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면서 걱정해주는 사람도 있고, 얼마나 가나 보자고 뒤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쨌거나, 지금은 말수가 많이 줄었습니다. 필요없는 말은 거의안하고 지낼 수 있으니 세월의 힘이 무섭긴 하네요.
제 생각에, 제가 말을 줄여서 가장 좋은 것은, 저 때문에 남이 상처받는 일이 줄었다는 겁니다. 잘하지도 못하는 말을 여기저기 싸지를 때는 제 뜻과 달리 상처를 받은 사람이 좀 있었을 겁니다. 그분들이 저에게 말을 안해서 그렇지... 지금 이렇게라도 말이 줄어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제 행동과 관련하여 요즘 노력하는 게 또 있습니다. 바로 짜증내지 않는 겁니다. 짜증은 남에게 내기도 하지만, 저 스스로에게 내기도 하죠. 그런 짜증을 줄이는 게 요즘 목표(?)입니다. 그 짜증의 강도가 조금 커지면 그게 바로 화겠죠. 화는 남뿐만 아니라 나 자신까지 죽이는 무서운 겁니다.
그 화에 대한 책을 읽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인 로마시대때 쓴 글인데도, 지금 읽어도 가슴에 와 닿습니다. 2천 년 이라는 시간의 격차가 주는 낯섦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고대 철학자 세네카의 화에 대한 통찰력이 대단함을 느낍니다.
이 책을 쓴 철학자 세네카는 화를 잘 내는 동생 노바투스의 부탁으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동생을 위해 화를 가라앉히는 방법, 화는 정말로 꼭 필요한 것인지, 억제할 수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해 자세히 썼습니다. 동시에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인 화에 대하여 철학적인 입장에서 접근하며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하였습니다.
사실 세네카가 살았던 고대 로마 시대는 티베리우스부터 네로 황제에 이르는 시기로, 관용과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시기였습니다. 노예제도가 있었고, 양반과 상인처럼 사람 계급이 있는 시기였습니다.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적은 싸워 죽이기도 했던 시기죠. 사실, 이 책을 쓴 세네카는 네로황제의 개인교사였는데, 그도 모함을 받고 유배당해 있을 때 이 책을 썼습니다. 그러다 결국 네로황제로부터 사약을 받고 죽게 되죠. 그렇게 이성이 통하지 않았던 시대에 되도록 화를 누그러뜨리고자 이 책을 활용했나 봅니다.
예나 지금이나 화는 있고, 그 화는 인간의 이성과 의지를 통해서 얼마든지 다스릴 수 있을 겁니다. 세네카의 말처럼 화의 감정은 매우 사소한 것으로부터 비롯되어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마치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죠.
이 책에 있는 세네카의 조언은 단순히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고 타격을 줄일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마음의 여유가 부족한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죠.
비록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살다 간 철학자의 글이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매우 큽니다. 그리고 그의 철학적 통찰은 현대의 ‘화 다스리기’ 분야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요즘 미국은 스토아 철학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합니다. 스토아 철학은 마음, 행복, 돈, 화, 명예로부터 노년, 죽음, 인생에 이르기까지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문제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찾으려 합니다. 잘 알려진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도 스토아 철학의 영향을 받아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고자 월든 호숫가를 찾았다고 합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제1권과 제2권의 전반부에서는 화의 개념을 정의하고, 제기된 반론들에 대해 다시 재반론을 펼치고, 화를 불러일으키는 인식과 판단에 대해 분석합니다. 제2권의 나머지 후반부와 제3권에서는 화의 치유법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처음에 이론을 먼저 보고 그 다음에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치유법에 집중하면서 세네카의 생각을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특히 제3권은 스스로 화의 포로가 되어 날뛰는 독재 군주들의 사례를 들어 화의 잔학성을 매우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차례는 아래와 같습니다.
서문 1 세네카, 정치인이자 철학자인 그의 삶에 대하여
서문 2 「화에 대하여」, 세네카가 쓴 화에 대한 철학적 통찰과 사색 ·
제 1 권 : 화에 대하여
인간의 화는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가
앙갚음에 집중하는 화는 인간의 본성인가
화는 과연 필요한 것인가
꾸짖되, 화내지 말라
이성이 더 강한가, 화가 더 강한가
화는, 바람처럼 공허하다
제 2 권 : 화에 대하여 II
화는 마음의 동의하에 일어난다
사악한 행동에 대해서 화를 내는 것은 옳은가
화는 두려워할 만한 것인가
화를 마음속에서 완전히 떠나보내는 것은 가능한가
화는 솔직함이 아닌, 분별없음의 표현
화는 어려서부터 양육이 좌우
화를 피하기 위한 사전 조건
화의 최대 원인은 “나는 잘못한 게 없다”는 생각
화를 유예시켜야 하는 이유
화를 내어 이기는 것은, 결국 지는 것이다
화를 폭발시키는 당신,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보라
제 3 권 : 화에 대하여 III
상대를 파멸시키기 위해 자신이 파괴되는 것도 불사하는 것이 화다
화는, 마음속 전쟁이다
화에 대한 대비책, 자신의 감정을 선동하지 말라
화에 대한 최고의 치유책은 유예와 숨김이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화를 감춘 사람들
화를 권력인 양 행사하는 사람들
화를 내지 않고 온화함으로 받아넘긴 사람들 ·
화가 당신을 버리는 것보다, 당신이 먼저 화를 버려라
다른 사람이 나보다 많이 가졌다고, 신에게 화내지 말라
그저, 조금 뒤로 물러나 껄껄 웃어라!
타인의 화를 진정시키는 법
화를 내며 보내기에는 우리의 인생은 얼마나 짧은가
책에서 몇 구절 따오겠습니다.
우리가 화를 내는 최대 원인은 “나는 잘못한 게 없어”라는 생각, 즉 “나는 죄가 없어” 혹은 “나는 아무 짓도 안 했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뿐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로 하여금 화를 내게끔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무지와 오만함이다. 또한 화를 내어 승리하는 것은, 결국 지는 것이라고 세네카는 말한다.(24)
세네카의 조언은 오직 우리가 화가 날 때만 유용한 것이 아니다. 그의 철학은 삶이 우리에게 어떤 것을 던져주더라도 우리가 평정심을 유지하고 중심을 잃어버리지 않는 방법을 제시해준다. 좌절과 화는 세상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실망에 대한 비합리적인 반응이다. 오직 합리적인 전략은, 혹시 일이 잘못되어 가더라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살다보면 얼마든지 나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그로 인한 타격을 줄이는 길은 매일매일의 고요한 명상을 통해 미리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철학적으로 사고하고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길이다.(26)
가장 좋은 방법은 화가 나려 할 때 최초의 싹을 억누르고 그 최초의 충동에 굴복하지 않도록 싸우는 것이다. 일단 화가 우리를 항로 밖으로 끌고 가면 안전한 곳으로 되돌아오기가 어려워진다. 화가 마음에 들어와 우리가 그것에 주권을 내어주게 되면 이상은 한 치도 설 자리가 없게 된다. 그 다음부터 화는 네가 허락하든 말든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것이다.(45)
가장 믿을 만한 지혜는 상황을 오랫동안 신중하게 살피고, 끝까지 자제심을 발휘하고, 정해진 목표를 향해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다.(54)
배의 이음매들이 사방으로 느슨해지고 틈이 벌어져서 배 안으로 물이 많이 들어올 때 선장이 선원들에게, 혹은 배 자체에 화를 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보다는 팔을 걷어붙이고 달려가 더 이상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바다에 괸 물을 파래박으로 퍼내고, 보이는 틈은 최대한 틀어막고, 배 밑바닥에 물이 스며들게 하는 보이지 않는 틈에 대해서는 대응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퍼내도 퍼내도 물이 줄지 않고 자꾸만 더 들어온다고 해서 그가 하던 일을 내팽개치지는 않을 것이다. 없어지지 않고 자꾸 생겨나는 악에 맞서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악을 근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우위를 차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101)
아이를 키울 때는 입에 발린 칭찬을 멀리해야 한다. 아이에게 진실을 말해주어라. 가끔은 아이가 두려움을 알게하라. 그리고 언제나 연장자를 존경하고 어른 앞에서는 일어서게 하라. 화를 내며 요구하는 것은 들어주지 말 것이며, 징징거리고 우는 아이는 진정을 하고 난 뒤에야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음을 알게하라. 그리고 부모의 재산은 그가 사용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결점이 있으면 꾸짖어라. (중략) 또한 무엇보다 음식은 간소하게, 의복은 호사스럽지 않게 하며, 또래 아이들의 생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하라. 처음부터 아이가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게 하면 누군가와 비교될 때 화를 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120)
그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자신의 이익에 반하더라도 변호를 해야 하며, 화는 가능한 한 유보해야 한다. 형벌을 유예하면 나중에라도 집행할 수 있지만 한번 집행된 형벌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122)
우리를 화나게 하는 사람이 과거에 우리이게 좋은 일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 화가 누그러질 것이다. 그의 공적으로 잘못을 상쇄하라. 또한 우리가 보여준 관용이 알려져서 우리에 대한 남들의 평가가 얼마나 올라갈지, 그리고 용서를 통해서 유익한 친구들을 얼마나 많이 갖게 될지도 생각하라.(147)
자신이 언제 남에게 악한 일을 한 데서 화가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누구라도 화를 내기 전에 그것을 거두고 싶어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너는 내가 사람들에게 이렇게 경고하기를 바라지 않느냐? 최고의 권력의 자리에서 화를 휘두르는 사람들에게, 즉각적인 복수가 자신의 힘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최고의 행운이 가져다준 엄청난 특권 중 하나로 손꼽는 자들에게, 화의 포로가 되는 사람은 결코 힘이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없으며 심지어 자유의 몸이라 부를 수도 없다는 것을.(165)
화가 사치보다 더 나쁜 이유는 사치는 자신만의 쾌락을 좇지만 화는 남의 고통을 즐기기 때문이다.(168)
모든 것을 보고 듣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설혹 자신이 좀 손해를 본 것처럼 느껴져도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두자. 대부분을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간다면 그만큼 고통도 없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되는 게 싫은가? 그렇다면 매사에 시시콜콜 파고들지 말라.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뭐라고들 하는지, 어떤 고약한 소문이 떠도는지, 게다가 비밀스럽게 묻어둔 것까지 굳이 들춰내는 사람은 자기 감정을 선동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이든 해석하기에 따라 부당한 피해처럼 보일 수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더러는 그냥 무시하고 더러는 웃어넘기고, 그래도 남는 것들에 대해서는 용서하는 것이다.(180)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자신을 자극하고 화나게 하려는 자를 무시해버리는 사람은 누구든 군중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당당하고 꿋꿋하게 견뎌낸다. 맞아도 타격을 받지 않는 것은 진정한 위대함의 특징이다. 이는 마치 몸집이 큰 맹수가 개 짖는 소리에 무심한 것과 같고, 바다의 커다란 바위가 높은 파도가 밀려와 부딪쳐도 끄떡없는 것과 같다.(216)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능력이 없는 것과 할 생각이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먼저 화부터 내지 말고 가만히 판단을 해보면 많은 이들이 너의 화로부터 놓여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는 최초에 마음이 시키는 대로 버럭 화를 냈다가 그럴 만한 이유도 없는데 공연히 화를 낸 걸로 보이지 않으려고 계속 밀고 나간다. 무엇보다 공정하지 못한 것은 우리의 화가 타당하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가 더 고집스러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마치 심각하게 화가 난 것이 그 화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인 양, 그 화를 붙잡고 자꾸만 더 크게 키운다.(224)
우리보다 다른 누군가가 더 후한 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이 가진 것을 기뻐해야 한다. 자기보다 더 행복한 사람들 때문에 괴로움을 느끼는 사람은 결코 스스로 행복할 수가 없다. 내가 기대보다 적게 받았다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내가 너무 많이 바랐던 것이다. 우리는 다른 것보다 이 부분에서 생겨나는 화를 두려워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파괴적이고, 우리가 무엇보다 신성하게 가슴에 품어오던 모든 것들을 공격하려 들기 때문이다.(225)
남들이 가진 것에 눈을 돌리는 사람은 자신의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앞서 있다고 해서 신들에게도 화를 낸다. 그는 부러움으로 자신의 뒤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 채 소수의 사람들을 시기한다. 인간들이란 얼마나 경우가 없는지. 아무리 많이 받았어도 더 받을 수 있었는데 못 받은 것을 부당하다고 여긴다.(227)
우리는 마음이 평화를 누리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평정은 끊임없는 성찰과 바른 가르침, 공명정대한 행동, 그리고 오직 고결한 목표에 대한 촉구에 생각을 집중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만족스럽게 행동하되, 남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으려 애쓰지는 말라. 악평이 너를 따라다닌다 해도 그것이 선한 행동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신경 쓰지 말라.(243)
자, 우리가 사람들 사이에 살면서 숨을 쉬고 있는 동안에는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덕목들을 소중히 여기자. 그 누구도 두렵게 하거나 위험하게 만들지 말자. 우리는 손해와 부당한 일. 모욕과 경멸 따위로부터 높이 초월해 있음을 보여주자. 잠깐의 불편함은 넒은 마음으로 참아보자. 우리가 몸을 돌려 뒤를 돌아보는 순간 어느새 죽음이 지척에 와 있을지니.(248)
당연한 말이지만, 화는 화를 낸 사람에게 반드시 되돌아온다고 봅니다. 그리고 어떤 화건 화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또, 각자가 화를 내는 이유가 다르고 여러 가지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상대에게 또는 자신에게 거는 기대치가 너무 높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쉽진 않겠지만, 세네카는 그러한 화도 노력을 하면 다스릴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 방법으로,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비춰보거나,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두거나,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는 생각을 버리거나, 화를 유예시키거나, 화를 내는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결국 지는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거나, 나보다 더 많이 가졌거나 앞서가는 사람들로 신에게 화를 내지 않거나, 화는 화낸 사람에게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을 아는 등등 여러 가지를 제시해 줍니다.
무엇보다 화를 내며 보내기엔 우리 인생이 너무 짧다는 것을 가슴에 새기며 마음에서 일어나는 화를 다스릴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겠습니다. 저부터... ^^*
창피한 이야기 이지만, 제가 가장 자주 짜증을 내는 대상이 아내인 것 같습니다. 저를 가장 아껴주고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할 사람이 바로 아내인데, 가까이에 있다고 너무 쉽게 대하지 않았나 반성합니다.
[20140415]
‘화’와 관련된 기사가 있어 잇습니다.
분노 조절 안되면 일단 자리를 떠라(문화일보, 2013.4.16.)
지난 3월 3일 광주 광산구의 한 가정집에서 잔혹한 칼부림이 일었다. 칼을 들고 있던 김모(19) 군은 평소 친척들이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못배우고 돈이 없다’는 투로 얘기를 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할아버지의 생신날, 어머니가 친척들의 무시로 모임에도 참석하지 못한 사실을 알게 되자 격분해 칼을 휘둘렀다. 그 칼에 큰아버지가 숨졌고, 할아버지를 포함해 7명이 다쳤다. 이런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우리 주위에서는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하고 벌어지는 일들이 많다.
과거 ‘화병’이란 주부들의 몫이었다. 화를 참다가 속으로 골병이 드는 형태로 답답한 가슴과 얼굴의 열감, 식욕저하, 불면 등이 주요 증상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최근 이런 전형적인 화병보다 화를 참지 못하고 쉽게 격분하는 ‘격분증후군’ ‘급성화병’이 늘고 있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생기는 이 같은 급성화병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화병 전문가 김종우(한방신경정신) 강동경희대병원 교수와 화병의 특징과 치유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 늘어나는 스트레스에 화병도 증가
화는 대표적으로 분노와 연결된다. 분노는 부당한 대우로 인한 억울함과 분함이 주원인이 되며, 일정 시간의 억제 기간 이후에 밖으로 표출을 하게 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과거 화를 참는 기간을 대략 6개월 정도로 보고, 그 이후 병이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분노 억제 기간에 대한 기준이 사라졌다. 즉각적인 분노의 표출이 잦아졌고, 증상도 행동으로 드러났다. 폭발적으로 고함을 지르거나 욕을 하고, 물건을 던지는 행동이 반복된다면 이 또한 하나의 화병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급성화병이 늘어난 데에는 사회적 분위기가 한몫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김 교수는 “빈부의 격차 등 사회의 불공정성이 커지고, 노력해도 안 되는 일들이 생겨나면서 구조적인 스트레스가 늘고 있다”며 “여기에 참는 것이 미덕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사라지고, 그만큼 사람들이 참는 능력도 사라지면서 관련 환자들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 화는 참는 것이 낫나, 내는 것이 낫나
화병은 변화 과정으로 볼 때, 분노기-갈등기-체념기-증상기가 있는데, 전형적인 화병의 경우가 체념기와 증상기에 해당한다면, 급성화병의 경우는 분노기와 갈등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2000년대 이전까지는 체념기와 증상기에서 병이 되는 사례가 많았다. 분노 억제가 누적되면서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잦았고 암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고 알려지는 등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의료계에서는 “차라리 화를 내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즉각적이고 폭발적인 화의 경우는 화를 참는 것과 마찬가지로 건강에 좋지 않다. 화를 내는 것은 교감신경을 과도하게 흥분시켜 신체적으로 혈압 상승과 함께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두근거리고, 손이 차가워지는 증상을 갖게 한다.
또한, 과긴장이 진행되면서 과잉행동으로 번질 우려를 낳는다. 미 심리학자 찰스 스필버거가 제작한 분노 반응 척도에서는 분노 억제(anger-in), 분노 표출(anger-out)이 모두 문제가 있으며, 바람직한 것은 분노 조절(anger-control)이라고 설명을 하고 있다.
▲ 화,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기본적으로는 화를 참는 기술이 필요하다. 즉각적인 분노가 가지고 오는 2차적인 피해를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화가 난다면 잠시 그 자리에서 벗어나자. 화를 유발한 상황이나 장소를 피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즉각 나타난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10분 이상 무작정 걷다보면 많이 수그러드는 경우가 많다.
더 바람직한 자세는 분노의 감정이 있은 이후에 나타나는 자신의 몸과 마음의 변화를 관찰하면서 화를 조절하는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는 것이다. 10분간 심호흡하기, 20분간 차 마시기, 30분간 걷기 등이 대표적이다. 심호흡을 할 때는 들숨보다는 날숨을 길게 하는 것이 좋다. 이는 분노의 감정을 충분히 밖으로 내보내는 과정이다. 분노의 감정을 내보내고 생각을 할 여유가 있다면, 화내는 자신을 합리적으로 점검을 한다. ‘지금 화를 내는 것이 적절한가?’ ‘화를 내면 상황이 바뀔 것인가?’ ‘화를 내고 나서 궁극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자문자답을 하고 모두 그렇다면 화를 낼 수 있다고 스스로 판단하는 시간을 갖자. 화를 표출하는 기술을 습득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화가 날 경우에 상대방을 비난하기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잦은 분노 표출로 인해 인간관계에 곤란을 겪거나 쉽게 열이 오르는 증상이 반복되는 단계에 왔다면 전문가의 치료를 받도록 하자. 화를 단순히 성격상의 문제로 보기보다 하나의 질환으로 이해하고 접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