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제목 : 교만이란
본문 : 잠언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의 주제는 '교만'입니다.
교회 다니는 많은 사람들은
소돔과 고모라의 죄를 단순히 성적인 타락으로만 기억합니다.
물론 창세기에는 그러한 모습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소돔의 죄를 훨씬 근본적인 차원에서 설명합니다.
에스겔 16장 49절은 말씀합니다.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곧 그와 그 딸들에게 교만함과 음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으며 또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하나님께서는 소돔의 죄를 먼저 교만, 풍요 속의 안일함, 그리고 가난한 자를 외면한 무자비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의 전승인 탈무드에도
이러한 사회상을 보여 주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굶주린 사람에게 몰래 빵을 준 한 소녀가 있었는데, 소돔 사람들은 그녀를 붙잡아 온몸에 꿀을 바르고 벌떼에게 물려 죽게 했다고 합니다.
이 전승은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기록이라기보다,
자비를 베푸는 것조차 죄가 된
소돔 사회의 잔혹함을 보여 주는 이야기입니다.
창세기 18:20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여기서 '부르짖음'은 억눌린 사람들의 절규를 의미합니다.
또한 출애굽기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노예 생활의 고통 가운데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오늘은 이 두 부르짖음을 함께 살펴보며 하나님께서 우리 시대에 주시는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 교만은 하나님을 잊어버린 마음입니다.
잠언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말씀합니다.
'교만'이라는 히브리어는 가온(גָּאוֹן)입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께 사용될 때에는 위엄과 영광이라는 긍정적인 의미이지만,
인간에게 사용될 때에는 자기 자신을 높이고 하나님보다 자신을 앞세우는 오만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도 익히 알고 계시듯
인간은 흙으로 지음받았습니다.
'겸손(Humility)'이라는 영어 단어는 Humus, 곧 '흙'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습니다.
또한 'Human'이라는 단어도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흙에서 왔으므로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낮아져야 함을 보여 줍니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말했습니다.
"겸손을 잃어버린 인간은 참 인간일 수 없다." 라고
그렇습니다.
겸손은 자신을 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위치를 바로 아는 것입니다.
반대로 교만은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서 밀어내고 자신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소돔은 풍요를 누렸지만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풍요는 감사가 아니라
교만을 낳았고, 결국 공동체 전체를 무너뜨렸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적인 성공, 높은 학력, 좋은 직장, 건강, 명예….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는 순간 교만은 시작됩니다.
두 번째. 교만은 결국 무자비를 낳습니다.
에스겔은 소돔의 또 다른 죄를 말씀합니다.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였다."라고
교만은 혼자 끝나지 않습니다.
교만은 반드시 사랑을 잃게 만들고,
결국 무자비를 낳습니다.
탈무드에는 소돔의 잔인함을 보여 주는 여러 전승이 있습니다.
나그네를 일정한 길이의 침대에 눕혀 키가 작으면 억지로 늘리고,
크면 발을 잘랐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역시 실제 사건을 기록한 것이라기보다, 소돔 사회가 얼마나 비인간적이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전승입니다.
그 사회에서는 사랑이 죄가 되었고, 자비가 범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은 단순한 개인의 타락이 아니라 무자비가 제도화된 사회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 것만 지키면 된다."
"가난은 개인의 책임이다."
"남의 일에는 관심 갖지 말자."
믿음으로 구원 받은 성도들은
이러한 생각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교만은 결국 이웃의 아픔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세 번째. 하나님은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탈무드는 그 소녀의 절규가
하나님께 상달되었다고 전합니다.
성경에도 같은 장면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2장 23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고역으로 말미암아 부르짖으매 그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흥미롭게도 창세기 18장 20절의
소돔의 '부르짖음'(자아카)과
출애굽기의 '부르짖다'(자아크)는
같은 히브리어 어근에서 나왔습니다.
이 단어는 억울한 사람이 하나님께 올리는 절규를 의미합니다.
출애굽기에는 또 다른 단어 '샤브아(שַׁוְעָה)'도 사용됩니다.
이 단어는 단순한 외침이 아니라
"살려 달라!"는 절박한 탄원을 의미합니다.
결국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억눌린 자들의 절규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은 외면할 수 있습니다.
권력은 침묵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무관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들으십니다.
그래서 소돔을 심판하셨고,
애굽에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동일하십니다.
* 억울한 사람들의 눈물,
* 가난한 자의 탄식,
* 사회적 약자의 외침을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네 번째.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은 우리는 과거의 소돔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어느 시대보다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 풍요 또한 하나니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풍요를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 그런데 약자를 돕는 것이 손해처럼 여겨질 때,
* 사랑보다 경쟁이 앞설 때,
* 성공이 최고의 가치가 될 때,
* 가난한 사람을 부담스러운 존재로 여길 때,
우리는 소돔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사회적 약자의 부르짖음을 들으십니다.
* 외로운 노인의 눈물,
* 학대받는 아이들의 울음,
* 소외된 이웃의 한숨,
* 병든 자의 기도….
그리고 교회에 물으십니다.
"너는 그들의 소리를 듣고 있느냐?"
교회는 세상의 성공을 자랑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의 눈물을 닦아 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결론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구원 받은
우리에게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째,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여라!
둘째, 가난한 자와 약자와 이웃을 사랑하여라!.
셋째, 억눌린 자의 부르짖음에
귀 기울이는 성도가 되라고!
미가 6:8절은 말씀합니다.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애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마 25:40절에서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교회 안에서만 신앙생활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나그네를 환대하며,
소외된 이웃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내어놓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살아 있는 믿음입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교만을 내려놓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겸손과 사랑을 회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억울한 자의 부르짖음을 들으십니다.
그리고 그 부르짖음에 응답하는 사람으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가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약자의 눈물을 닦아 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시기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005, 10, 4(26, 7, 17수정)
jykch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