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가 필요해! / 김경빈
미소는 오늘도 우리 교실이 얼마나 소란스러울지 걱정을 하며 학교로 간다.
학교로 가는 길에 소린이가 달려왔다.
“미소야, 네 얼굴 괜찮아? 어제 정수한테 머리와 눈두덩을 맞았잖아?”
“응, 괜찮아. 맞을 땐 머리가 띵 했는데, 자고 나니 아프지는 않아.”
“눈 부위가 조금 퍼렇게 됐다. 엄마는 뭐라고 하셨어?”
“아니, 지난번에도 엄마께 말씀드렸다가 나만 혼났었어. 여자애가 칠칠맞게 남자애랑 장난이나 친다고, 그래서 말을 하지 않고 그냥 조금 부딪쳤다고만 했어.”
“맞아, 그날도 넌 공부하고 있을 때, 걔가 가위로 네 머리카락을 자르려고 하다가 얼굴을 긁은 거였잖아.”
“응, 내가 대꾸를 안 하니까 그랬는데, 이제는 정수 같은 아이들은 아예 무시하려고.”
“그게 낫겠다, 근데 담임선생님도 그 애를 어떻게 못하나 봐.”
“요새 담임선생님들이 어디 힘이 있니? 잘못해 놓고도 자기 엄마를 데리고 와서 딴소리나 해서 피해자에게 거꾸로 뒤집어씌우고 자기 잘못 없다고 우기잖아?”
“그러게, 교실에도 CCTV를 달아야 하지 않겠어? 옆 학교는 CCTV를 교실에까지 달았대. 그래서 교실에서 소란을 벌이면 바로 부모에게 경고를 날린대. 우리 학교는 화장실하고 복도만 있는데, 우리 교실에는 특히 있어야 할 것 같아. 정수가 잡아떼기 시작하니까. 선수, 명식이, 여자아이인 나정이까지 남자 애들처럼 자기들이 사건을 저질러 놓고도 모두 다른 사람 탓만 하잖아.”
“맞아, 우리 반은 특히 달아야 할 것 같아. 정수가 먼저 잡아떼기 시작하니 왜 그렇게 오염되는 아이들이 많은지, 담임도 힘들 거야.”
“맞아, 정수한테 당한 애들은 참 많은 것 같아.”
정수는 반에서 대표적인 개구쟁이이다. 아니 개구쟁이가 아닌 심술쟁이이다. 친구와 같이 놀다가도 지 마음대로 안 되면 바로 폭력이 나오는 아이이다. 한두 번 놀다 당한 친구들은 정수하고 잘 놀지 않는다. 숫자게임이나 보드게임 같은 머리 쓰는 게임 같은 것은 하지도 못한다. 그냥 단순하게 끼우기나 쌓기 블록 같은 것만 할 뿐이다.
어제도 미소와 소린이가 지영이와 쌓기 놀이하다 정수한테 당했다. 여자들끼리 놀고 있는데, 끼워달라고 하도 졸라서 같이 해주게 했는데, 자기가 질 것 같으니까 지영이가 쌓은 것을 그대로 쓸어버렸다. 사과하라는 미소의 말에 주먹으로 미소의 얼굴까지 때렸던 것이다. 담임은 정수의 횡포일 거란 생각을 해 보았지만 소린이와 지영의 말을 뛰어넘어 우기는 정수 때문에 그냥 일지에 기록만 했다.
“정수는 집에 가서 미소 엄마께 사과 말씀 전화 드리라고 해. 알림장 가지고 와. 얼굴에 상처를 남기면 부모들은 속이 상한 거야. 알았어?”
담임은 알림장에 일어났던 일을 간단히 메모를 하고 사인까지 해서 돌려주었다.
“네.”
알림장에 써준 기록을 보고선 마지못해 볼멘소리로 그냥 짧게 대답은 했다.
미소의 담임은 교무실에서 학교장을 만나면 CCTV를 필요하다고 건의를 하고 있는 중이다. 학교 측에선 교실에서의 일상이 너무 기록으로 남게 될 수 있어 싫어하는 선생님들이 많다고 했다. 인격적으로 침해될 수 있다는 말에 담임은 반에서 일어나는 상황과 억지를 쓰는 정수라는 아이 때문에 교실이 엉망이 된다는 말을 하고는 있는 중이다.
정수가 교실 분위기를 망치다보니, 다른 아이들까지 물이 들어가고 있어 교실을 정상으로 돌리는 방법은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고 그 근거를 바탕으로 부모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된다는 생각이 담임이나 지영이네 반 친구들의 생각인 것이다. 정수는 담임이나 애들이 지적을 하면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우고 자기변명만 늘어놓는다. 아이들 30명보다도 정수 한 명이 담임의 온 힘을 빼고 교실 아이들에게 고통을 안기고 있다. 그런 아이를 트러블메이커라고 담임이 말이라도 하면 부모는 오히려 담임이 자기 아이를 몰아세운다고, 차별을 한다면서 담임을 몰아세운다.
오늘도 정수는 자리를 바꾸어 달라고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보나마나 5교시 수업을 하기 싫어서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짝꿍인 얌전한 서연이가 자기 말을 외면하고 아예 무시하니 자기와 놀아줄 못난이나 아주 예쁘고 잘난 여자 짝을 하고 싶은 것 같다. 솜씨 좋은 지영이와 함께 앉고 싶다고 담임한테 조르기까지 한다. 지영이는 미술에 소질이 있어 그리기 등을 아주 잘한다. 옆에 있는 친구는 곁에서 보기만 해도 실력이 늘어 실기 점수를 받을 땐 무조건 A+를 받는다. 말썽을 피우지만 실기 점수엔 욕심이 있는지 그런 지영이와 짝을 하고 싶어 했다. 지금 짝인 서연이는 정수 같은 애는 아예 벌레 보는 것처럼 싫은 티를 팍팍 내고 성질을 내니 도저히 참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선생님, 오늘 5교시엔 자리 바꿔요.”
아침 1교시부터 5교시 음악 시간을 어떻게 넘기고 싶어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하더니 막상 5교시가 되니 더욱 난리를 쳐댔다. 보나마나 리코더 연습도 안했을 게 뻔했고, 지보다 못났다고 생각했던 호영이까지 리코더를 아주 잘 불어대니 그것도 기분이 나쁠 것 같다.
“선생님, 자기가 앉고 싶은 사람하고 앉기로 해요. 랜덤으로 하지 말고 칠판에 이름을 쓰기로 해요. 저는 서연이 같은 애들 싫어요.”
“난 너보다 더 싫어도 가만있거든?”
서연이도 째려보며 맞장구를 친다.
“정수가 앉고 싶은 사람이 따로 있는 거니?”
“그건 비밀이죠. 일단 칠판에 여자 아이들 이름을 먼저 쓰고 남자 아이들이 그 옆에 이름을 쓰면 되잖아요?”
“웃겨, 전 그 반대예요. 남자 아이들 이름을 쓰고 여자 아이들이 이름을 쓰기로 해주세요.”
서연이가 딱 부러지게 정수의 의견에 반대를 들고 나왔다. 담임도 참 난감한 표정이다. 그러는 사이에 아이들은 여기저기서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다. 착실한 사람이든, 개구쟁이든, 자리를 바꾸는 사실에 빠져들어 자기만의 짝을 생각하는 눈치들이다. 교실은 어느새 음악시간이 아닌 자리 바꾸는 시간이 되어버린다.
“그러면 두 가지 방법을 다 써보자. 정수 말대로 여자 아이들 이름을 먼저 쓰고 남자 아이가 자기가 앉고 싶은 사람 옆에 이름을 쓰는 것과, 서연이 말대로 남자 아이들 이름을 먼저 쓰고 여자 아이들이 그 옆에 이름을 써보는 거다. 어때? 둘 다 같이 나오는 경우는 짝이 되는 것이고, 다르게 나오는 경우는 그 사람끼리 다시 정하는 것 어떠니?”
“싫어요. 그러면 좋아하는 아이들은 계속 자기들끼리만 앉을 거예요.”
“그럼 자리 바꾸는 것은 컴퓨터 랜덤으로 해서 앉는 게 낫지 않겠어? 여긴 정수 너만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교실이 아니야 그리고 아직 자리 바뀐 지도 한 달이 다 되지 않았잖아?”
담임의 목소리가 조금 사나워지자. 정수는 그 다음 대꾸는 하지 않고 조용해진다.
“알겠어요.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할 게요.”
“그래, 우리가 짝도 마음대로 고르지 못한다는 것도 서러운 일이긴 하지, 선생님이 칠판에 두 가지 좌석 표를 만들 게. 여자나 남자나 이름을 먼저 쓰는 순서나 안고 싶은 자리도 서로가 모두 다를 테니 그렇게 하자.”
담임이 여자 아이들 이름 먼저 쓰기 칸을 만들었고, 그 옆에 남자 아이들 이름 쓰는 좌석 칸을 만들었다. 위치 선정은 여자들끼리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이긴 사람부터 써 나가게 했다. 남자 아이들도 자기들끼리 가위 바위 보로 해서 이긴 사람이 자기가 앉고 싶은 위치에 이름을 적어가게 했다.
“자기가 정했다고 새로운 짝이 되는 게 아니야. 이건 두 가지 방법에서 공통점을 찾아보는 것뿐이야. 결정된 것은 아니니 서로 싸우지 말라는 말이다. 최종 짝이 결정되면 뒤 칠판에 선생님이 자리 위치를 써서 붙일 거야. 한 달도 안 되어서 또 자리를 바꾸어 달라고 하면 그 사람은 혼자 앉힐 거야 알았지?”
미소는 제발 정수만은 같이 앉지 않기를 바랐다. 정수가 지영이 옆에 이름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가위 바위 보에서 호영이가 1등으로 이겨서 지영이 옆에 이름을 써 버렸다. 정수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을 했다.
한편, 여자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가위 바위 보를 하고 남자 아이들 이름이 있는 좌석 표에 이름을 넣기 시작했다. 지영이도 작지만 조용하고 말 잘 듣는 호영이 옆에 이름을 썼다. 서연이는 선수 옆에다 자기의 이름을 썼다. 공놀이와 운동을 아주 잘하는 선수는 체육 시간에 정수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친구이다. 여자 아이들의 이름이 써지고 정수 옆에는 마지막에 남았던 나정의 이름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거 무효예요. 다시 해요.”
정수 옆에 여자 말썽꾸러기 나정이 이름이 올라가는 순간, 책상이 뒤엎어지고 정수가 또 쳤다. 가위 바위 보도 불공평하다고 까지 했다.
“정수! 너 좀 복도에 잠깐만 나가 있을래?”
“왜요? 왜 나만 복도로 나가야 해요? 차별하지 마세요.”
또 교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고 아이들은 정수에 대한 성토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정수야, 너도 이젠 4학년이나 되었잖아? 언제까지 네 맘대로만 하려고 해? 네가 앉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한테 양해를 구하고 서로 바꾸는 방법도 있잖아? 네 마음대로 안 되면 교실을 왜 이렇게 소란스럽게 하느냐고?”
“선생님이 제 마음을 알아요? 애들이 모두 날 싫어하는 걸 아시느냐고요?”
“알면서 그래? 친구들이 싫어하는지 알면 네가 고치려고 노력을 해야 할 거 아냐?”
“내가 잘 하려고 해도 애들이 날 믿지 않아요. 자꾸 날 피한단 말이에요.”
교실 문을 확 열고 정수는 밖으로 튀어 나가버린다.
“선생님, 정수는 빼고 우리들이라도 수업을 해요.”
야무진 서연이가 의견을 말하자,
“알았다. 리코더를 꺼내라. 음악 수업을 해야지. 지영이하고 소린이가 가서 정수 좀 잘 달래서 데리고 올래?”
지영이와 소린이는 할 수없이 뒷문을 열고 나간다.
“선생님, 우리 교실에는 CCTV를 빨리 달아야 해요.”
서연이가 한마디 한다.
“그렇기도 하지만....... 참 미소 얼굴은 괜찮니? 정수 엄마한테서 전화는 왔었어?”
“네, 엄마가 그냥 정수 같은 아이들과는 놀지 말라면서 큰 흉터는 생기지 않아 다행이라 했어요. 교실에 말썽쟁이가 있으면 피하는 게 상책이래요.”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래요.”
선수의 말에 아이들이 까르르 웃어댄다. 소란스럽던 교실이 언제였나 싶을 정도다
아이들이 수업을 하는데 뒷문을 열고 정수는 여자애들을 따라서 들어온다.
“CCTV, CCTV!"
아이들이 합창을 하자, 정수가 입을 연다.
“미안해!”
지영이하고 소린이가 어떻게 설득을 시켰는지 온순해진 게 신기할 뿐이다.
“CCTV가 모든 걸 다 해결할 수는 없어, 할 수 없으면 설치를 하겠지만 지금처럼 서로 달래주고 사과하는 분위기로 가면 좋겠다.”
담임의 말에 미소는 정수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한 번 노려본다.
첫댓글 문학상에 도전하느라 동화를 두 편 장만했어요. 그 덕에 여기저기 실을 작품을 만든 것이지요. 요즈음은 이 정도는 아닐 거에요.
교실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며 만들어 봤네요.
Evergreen님, 잘 읽었습니다.
개구쟁이 심술꾸러기 미꾸라지 정수로 인해 흐려진 교실 분위기가 정상을 되찾아가는 과정이 재밌습니다. 카메라 설치가 능사가 아닌 것 같습니다.
미술 실기에 영향을 주는 좌석 배치의 갈등 등이 급우 간에서 해결점을 찾으니 이상적입니다. 복도에서 어떤 대화가 있었기에 반전이 되었나 궁금합니다.
한강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이후 문학에 관심을 갖고 습작을 하고 있다는 자체에서 긍지를 느낍니다. 동인지 발간에 대비하여 소설 한 편 더 써 봐야겠습니다.
'채식주의자'는 부커상 탔을 때 사서 두 번 읽어 봤는데 같은 사건을 두 사람의 시점에서 보아 깊이와 현실감이 더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용이, 과감하게 기존의 관념과 상식의 울타리를 허물었기 때문에 문제 삼을 수도 있겠지만 한쪽으로는 자유로움을 느꼈습니다. 다시 읽어 보고 한강의 다른 작품도 읽어 봐야지요.
저는 문학이 사람들의 역사적 인식을 만들어내는 것이기에 한강이나 그 아버지 세대의 사람들 소설을 읽고 저 나름대로 많은 혼돈을 겪었었지요. 그 때 나온말들이 민족주의, 민족작가들이었지요. 그게 다 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혼돈도 혼자 느꼈지요. 한강의 문제도 남남간의 대결과정에서 한쪽에 편향성이 있다보니 국가의 정체성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고요. 노벨재단에서는 특히나 기존 세대간의 관념 탈출이니 새로운 인간극복이니 그런 특별함을 보고 상을 주었을테니만 그 결과를 따지는 것은 우리 역사와 국민이 가져야 한 몫이겠지요.
평론을 많이 가르쳐오신 선생님답게 문학성으로 다가서는 자세는 인정합니다. 하지만 노벨상과 그것으로 파생된 내용의 역사성은 조금 문제가 된다고 봅니다. 왜냐면 사람들은 티비드라마나 소설의 미화된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그게 문학의어떤 한 목적이 될 수도 있고요.
제 작품에 대한 분석도 감사합니다. 복도에서 애들끼리 지들만의 생각을 서로 나누어 해결을 했겠지요.
서주님의 소설이 또 나오기를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내용입니다
세대 차이겠지요
호호호. 맞아요. 선생님 시대와는 전혀다른 교실이 되었었으니까요. 그런데요, 지금은 더 큰 문제가 뭔지 아세요?
저렇게 수업 방해를 하는 아이도 없고 교실의 개념도 사라지게 되어간다는 것이예요. 어쩌면 저 이야기도 2010년대의 교실 분위기였고, 벌써 교실의 역사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지금은 교실에 아이들의 숫자가 너무 없다하고 입학생이 한자리수이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허다하니 그게 더 큰 문제일 거에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