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 후퇴 시도”가 교과부가 할 일인가?
- 교과부의 반인권적 초중등교육법시행령 개악 시도를 반대한다! -
지난 1월 17일,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는 학교문화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그리고 1월 21일, 교과부는 이 방안을 입법예고했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교과부는 △학칙에 의한 학생의 권리행사 범위 제한 △출석정지제도의 부활 △학교장의 권한 강화 △학칙에 의한 직․간접체벌 허용 △학교장에게 수업에 활용할 방송 프로그램 선정 권한의 부여 등의 내용을 포함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이하 시행령)을 공고했다. 이 방안들은 초중등교육법시행령의 개정으로 구체화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는 ‘선진화’라는 미사여구를 붙인 학생인권탄압 중 하나에 불과하다. 교과부는 이번 발표를 “학교문화의 선진화”라고 이름 붙였지만 그 내용의 실상을 보면 학생인권의 무력화, 학교독재 강화를 위한 꼼수일 뿐이다. 일부 긍정적인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이는 거의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시행령 개악의 추진은 단 두 차례의 학술 토론회와 한 차례의 폐쇄적 협의회를 거쳐 확정되었을 뿐, 형식적 절차마저도 무시했다고 볼 수 있으며, 시민사회와 학생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비민주적인 과정만을 거쳐 입법예고 되었다. 법률적 근거없이 학생인권을 제한하고 있어 위헌의 소지조차 크다.
특히 경기도에서는 학생인권조례의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자리를 잡기도 전에 학생인권을 후퇴시키는 안을 내놓은 교과부의 의도가 무엇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교과부의 초중등교육법시행령 개악안의 문제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하나, 학교장에게 학칙 제정권을 전면 부여하고 학생들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게 한 것은 학교를 허가된 독재구역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부득이하게 인권을 제한하려면 엄격한 조건과 절차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학교장이 자의적으로 인권을 제한하고 침해하는 것을 허용하는 이러한 내용은 마치 군사독재 시절 유신헌법을 연상시키는, 학교의 시계를 무려 40년은 거꾸로 돌리려는 만행이다.
하나, 출석정지 제도의 도입과 징계 수위의 강화는 학교 현장에서 악용될 소지가 큰 조항이다. 이미 학교폭력예방법에서 다른 학생을 괴롭히거나 폭력을 행사한 학생에 대한 ‘출석정지’ 제도가 있음에도 새삼스레 시행령에 출석정지 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은, 이 제도가 교사나 학교에게 밉보인 학생들을 격리하고 낙인찍는 데 남용될 가능성이 높음을 알 수 있다. 교장이 자의적으로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게 한 내용과 함께 생각해보면 그런 위험은 더더욱 높아진다.
하나, 학칙 준수 서약식을 개최하도록 하여 학생들의 준법 의식을 고양하겠다는 것은 학생들의 의견을 더 존중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준법 의식’은 그 법이 민주적이고 정당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이 학칙이 학생들의 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으며 민주적이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지금 학교들에게 필요한 것은 ‘학칙 준수 서약식’이 아니라 민주적이고 인권적인 학칙의 제정이다. 학교장이 학생의 인권을 마음대로 규제할 수 있게 해놓고서 일방적으로 학생들에게 학칙 준수를 요구하는 것은 독재의 논리이다.
하나, 학생들을 직접 때리지 않고 고통을 주는 이른바 ‘굴리는(간접)체벌’을 허용하겠다는 것은 학생에 대한 인권침해를 계속하겠다는 선언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에서는 이미 수년 전, 체벌을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주는 벌”로 스스로 정의한 적이 있으며, 직접 때리는 체벌과 학생들에게 ‘기합’, ‘얼차려’ 등을 주는 굴리는 체벌 사이에는 특별한 구분을 두지 않았다. 이제 와서 갑자기 '때리는‘ 체벌과 ’굴리는‘ 체벌을 나누고 ’굴리는‘ 체벌만 허용하겠다는 해괴한 논리에는 정당한 근거가 없다. 체벌을 직접 겪을 학생들의 고통은 마찬가지일 뿐이다. UN아동권리위원회에서도 “신체적 처벌은 항상 굴욕적”이라고 밝히며 “불편한 자세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을 포함한 모든 체벌의 금지를 요구하고 있다.
경기도에서는 올해 3월부터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시민사회와 학생들은 경기도학생인권조례의 통과와 시행으로 그나마 학교에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심을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학생인권조례가 자리 잡는 것을 돕기는커녕 교과부는 본격적으로 ‘학생인권 후퇴’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교과부가 나서서 학생인권조례를 지지하고 국민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한하고 침해할 방법을 찾는 데 골몰하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또한 올해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이 담고 있는 정신과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면 교과부는 지금처럼 초중등교육법시행령 개악을 추진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교과부의 시행령 개악 시도 철회를 강력히 요구한다. 교과부가 할 일은 어떻게 하면 학생인권을 더 세련되게 잘 침해하고 학교를 허가된 독재구역으로 만들 수 있을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의 인권을 잘 보장하고, 어떻게 하면 인권을 존중하고 존중받는 좋은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연구하고 힘을 실어주는 일이다. 교과부가 통제해야 할 대상은 학생이 아니라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모든 요소들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반인권 반민주 반교육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악을 철회하라!
2011년 2월 15일
학교 민주주의 후퇴와 학생인권조례 무력화,
교과부 시행령 개악에 반대하는 경기도시민사회단체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