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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순이 그대! 내 손을 잡으시오"
사랑하는 님과 오손도손 살고 싶다! 이랫던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지만...
눈 한번 질끈 감고 나니 흰머리가 생겼고
시간은 그렇게 가고 말았네!
오늘은 대구 인근에 남겨두었던 달성군 하빈면의 하빈천 19km를 걷고자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호남정맥길에 자빠링 이후로 무릎이 좋지 못해 겨우겨우 걸음 하다가 가산에서 경사진 곳에서 20일간 일하다 보니 무릎이 반쯤 골병든것 같다.
무엇보다 최근 전북 고창천이나 갈곡천 이후에 조금 쉬며 집근처 병원에 다녔더니 감각이 떨어졌나 발원지 찾아 경북 칠곡군 지천면 신리 마을 끝에서 산으로 올라와 e산경표 지도를 펼쳐보니 발원지는 저짝 산 너머에 있고 결국 잘못 찾아 엉뚱한 곳으로 올라와 있다.
고요한 산사(山寺)에는 바람따라 부딪히는 은은한 풍경소리와 목탁소리 따라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나!"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길 위에서 천주교가 던지는 "그대 어디로 가는가"라는 시그널이 붙어있다.
"글쎄"길이란!
길위에 서기까지 적절한 때를 기다리다 보면 평생 기다려야 할 수 있으니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일단 나서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리고 이 세상 어디에도 우리가 찾는 정답은 없으니
답(答) 같은 것 찾지 말고 하고 싶은 것, 좋아서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 그게 바로 답일 수 있다.
길을 찾아가며...
발원지 찾아서 내려올 송정 저수지에서 묵은 임도길 따라 산으로 올라가다 보니 길은 지난 추석날 후손들이 벌초를 잘해둔 무덤가에서 끝나고 잠시동안 가시잡목을 헤집고 올라가니 천주교 한티로 가는 길을 알리는 시그널이 반긴다.
흙냄새 좋고 낙엽향 좋은 임도길 따라가다가 산으로 접어드니 귀를 쫑긋 세운 산토끼(멧토끼) 한 마리가 부리나케 뛰어간다.
해발 500미터 아래에 서식하는 산토끼는 2018년도에 거의 멸종되다시피 했다는데
최근에 토끼를 본 게 아마도 낙남길의 고성군 대가면 길산천 인근에서 본 게 마지막이었는데 토끼란 녀석 참으로 오랜만이다
토끼는 2㎢에 21년 기준으로 3,2마리라는 충격적인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산토끼는 태어나면 몇 시간 뒤에 뛰어다닐 정도로 빠른 움직임을 보인다.
풀밭과 아스길이 너무 많아, 생태 통로 단절, 그리고 야생 고양이 출현으로 산토끼가 많이 줄었고 무엇보다 숲이 우거져 토끼가 먹을만한 풀이 자라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팔공산 국립공원 가산에서 이어지는 황학지맥길에 만나는 장원봉(372m)의 남봉(南峰) 격인 270봉에서 하빈천이 발원되어 약 19km를 흘러 달성군 하빈면 동곡리에서 낙동강에 안기는 하천이다.
270봉 모습
이곳에서 남쪽 방향을 잡아 무작정 내려가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를 임도길이 길게 이어지고
지나온 경로
한동안 무릎관리를 잘했나
무릎이 멀쩡 해 뛰고 걷고 빠르게 진행했으며
육신사 왕복 4KM 뺀 거리
시간당 9km 속도로 진행.
이상태라면 내년에 천리길 2개 정도는 무난히 할 것 같다.
임도길
계곡으로 들어가면 잡목이 격하게 반기지만 지난여름에 비하면 낙엽이 많이 떨어져 진행하기 좋고
시원해서 더 좋다
내려온 곳
내려갈 곳
계곡길에 꼭 필요한 가죽 가시장갑과 무릎 보호대
가죽장갑과 무릎볼호대는 한여름에는 땀띠 날 지경이나 요즘 같은 때는 안성맞춤이다
발원지 물을 찾아서
맑은 물은 산정에서 발원하기에 아래로 흐르면서 여러 더러운 것들과 부득이 싸워야 하는데 늘 더러움에 지는 편이며, 여러 가지 잡다한 것들이 싸워할 상대가 물(水)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지나온 길
지나갈 길
3대에 걸쳐 빌어먹던 어느 총각이 왜관읍에서 지천면으로 넘어갈 때 고갯마루에서 허기와 갈증에 쓰러진 여인을 발견해 둘러업고 마을로 가던 길에 전 재산인 빈 깡통을 걸어 두었다는 이야기 속의 깡통은 이미 녹이 슬어있고
이후에 여인과 잘 살았다는 이야긴데 믿거나 말거나한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페인트는 신나와 찰떡궁합이며, 이 녀석을 진즉에 주워 들고 270봉인 장원 남봉(南峰)에 걸어 두었더라면 뭇 산객들이 깡통봉이라 불러주었을 텐데...
어느 시인이 썼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땐 그는 나에게로 와서 하나의 꽃이 되었다가 아닌 깡통이 되었다"
오래전 영산강 발원지를 찾아가며 주전자 하나를 주워 정상 나뭇가지에 걸어두고 주전자봉이라 불렀고 지금은 산이름이 주전자봉이 되었다.
내려가는 길에
날씨가 쌀쌀하니 왕 꿈틀이 녀석들은 보이지 않아 좋고
아침에 올라가던 임도길을 다시 만나서
물 빠진 송정 저수지
사람은 살면서 밑바닥까지 보여 주기 쉽지 않은데
가끔 밑바닥이 뭔지 보여 주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저수지의 밑바닥이란 내년 봄이면 맑은 물로 다시 가득 찰 일이지만 사람은 한번 밑바닥이 보이면 그 길로 끝이다.
내려온 계곡길
송정 저수지 아래의 송정 마을인데 대부분 공장이 들어섰고
공장과 내려온 장원 남봉이 보이고
도당 저수지
대나무 낚싯대 하나 던져 놓고 한가롭게 세월을 기다릴법한 곳
물은 이렇게 흘러와
4번 국도인 칠곡대로와 서울-부산 간 경부선이 지나는 곳을 지나
매밀밭하면 "장똘 허생원과 허풍 조선달 그리고 착한 동이" 세 사람이 엮어가는 "메밀꽃 필 무렵 이야기"가 최고인데
달 밝은 밤 물레방앗간에서 목욕하는 모습을 숨어서 본 허생원이 봉평 최고의 미인과의 처음이자 마지막 나눈 꽁냥꽁냥 첫사랑
메밀밭에 첫눈이 내려앉은듯한 모습이다
척박한 땅에 잘 자라는 메밀
메밀은 봄에 파종해서 8월에 수확하는 경우와
7월 하순에 파종해서 10월에 수확하는 경우가 있다
솟티 저수지
한가로운 하천길에 낚시객 한분이 지긋이 앉아 붕어 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이를 두고 "붕신"이라 부르고
하빈천 따라가다 보면 상류 마을인 지천면 송곡리에서 하빈면 동곡리까지 비닐하우스로 농사를 짓는데 대략 6㎢정도이며
하류인 하빈면 봉촌리 인근으로는 공장과 시설 비닐하우스로 농사를 지는데 3㎢정도 된다.
단배추 농사를 짓는데 하우스 한동은 대략 150평 기준이며 1년 매출이 8백만 원이라고
한 해에 5-7번 정도 수확하는데 인건비, 약값, 재료비 주고 나면 300-400 정도 남는다고 한다.
논농사 200평 기준으로 한 해에 30-35만 원 남는 걸 가정할 때 많이 남는다고
내려가는 길에
물은 깨끗하고 피라미 가족들은 다가오는 겨울을 대비하는지 분주하게 움직인다
우리나라 민물고기는 대략 210 여종이라고 하나
이런 하천에 어떤 종류의 물고기가 사는지 피라미, 붕어, 미꾸라지 그 외 몇 종류만 살 것 같다.
비닐하우스에는 대부분 단배추와 상추, 부추가 심어져 있고 부추 1kg에 2,500원에서 3,000원으로 헐값이라고 한다.
하천길 끝나고 강정보 옆에 은숙 씨 집에 가서 잔치국수와 부추전이나 먹고 가야 할 것 같다
내려가는 길에 본 비닐하우스
대평 2리 마을 유래는 토질이 좋아서 콩(豆) 농사짓기 알맞아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콩 농사에 종사하여 두천리(豆川里)라고 불렀다는 마을이다
꼬마 자동차도 보이고
대평 2리의 250년 된 느티나무와 마을 회관
가는 길에 길막하는 포터와 콤바인으로 탈곡하고 톤 백 자루에 나락( 벼 낟알)을 담는 모습
쌀 1kg을 생산하는데 300-400리터의 물이 들어간다고 하니
1톤 자루이니 벼 1톤을 생산하는데 물이 얼마나 들어갈지 계산해 보시기 바란다.
지나온 장원봉과 하천길
내려가는 길에 본 하천은 부유물이 가득하고
하천길을 따르다가 잠시 왕복 4km의 순천을 본관으로 하는 박 씨(順天 朴氏) 사육신(死六神)의 한 사람인 박팽년 후손이 사는 달성군 하빈면 묘골마을로 가본다.
묘골은 순천 박 씨 박일산(朴壹珊)이 처음으로 들어와 터를 잡은 곳이며, 박일산은 사육신의 유복손(遺腹孫)으로 사육신 가운데 유일하게 대를 잇게 된 직계의 명문가 집안의 후손이다.
1456년 사육신은 숙부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발각된 이른바 병사사화로 인해 "삼족(三族)을 멸(滅)하라"는 세조의 명령에 따라 가문(家門)은 멸문지화(滅門之禍)되었다
당시 박팽년의 차남인 둘째 며느리 성주(星州)를 본관으로 하는 성주 이 씨(李氏)께서 임신 중이었는데 "아들을 낳으면 죽이고 딸을 낳으면 관노비로 보내라"는 조정의 명(命)이 있었다
당시 함께 있던 여종도 임신을 했는데 이 씨 부인은 노비로 내려온곳이 대구관아 였으며 그곳에서 아이를 낳았는데 아들이었고 여종은 딸을 낳았다.
"마님! 제가 아들 낳고 마님께서 딸을 낳은 것으로 하시죠.대감마님의 대가 끊겨서는 안되지 않습니까!"
여종이 기지를 발휘하여 아이를 맞바꾸어 위기를 넘겼고 박팽년의 손자인 박비(朴婢 박 씨 성을 가진 노비)라는 이름으로 성장했다
박 비는 17세까지 어미를 어미라 부르지 못했으며 신분을 숨긴 채 살다가 성종 임금 때 경상 절도사로 부임한 이모부 이극균의 도움으로 조정에 찾아가 박팽년의 자손임을 밝히고 자수하였고, 성종 임금은 박비의 내력을 듣고 박일산(朴壹珊)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노비의 신분을 면천해 주었다고 한다
사육신(死六神)은 곧 일편단심(一片丹心)
"한 조각의 붉은 마음이라" 그래서 心자를 붉게 만들었나 살아서 갖지 못하는 그 이름 "님 향한 일편단심" 사지가 절단되었지만 사육신께서 그토록 모시고자 했던 단종을 따라가면 만날 수 있을까?
얼마 전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피를 철철 흘린 사육신이 단종의 꿈에 나타나는 것을 보았는데 진짜라면 주군(主君)의 꿈에 불경스럽게 피를 흘리며 전하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비록 사지가 절단되어 전국 팔도로 보내졌으나 가장 단정한 모습으로 주군을 찾아왔을 듯..."일편단심"이라 이곳에 서면 글귀가 새롭게 보인다
육신사(六臣祠)
기와집 사이의 큰길 정문을 지키는 태극무늬의 외삼문(外三門)
육신사(六臣祠)를 알리는 현판이 있으며 혼백(魂魄)이 드나드는 문은 굳게 닫혀있고, 일반인이 드나드는 문은 열려있다
사내(祠內)로 들어서면 사육신의 행적을 기록한 육각형의 돌기둥(碑) 자리하는데 그 뒤로 내삼문(內三門)과 숭정사(崇正祠)가 있다
잡인의 출입을 금하는 붉은 홍살문이 있으며
이곳에서 옷깃을 여민다
육각형의 돌기둥에는 각각의 사육신 이름과 행적을 기록하였고 서쪽에 매죽헌(梅竹軒) 성삼문의 기록이 적혀있다
사육신(死六神)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는 세조 2년 단종복위운동 중 김질의 배신으로 모두 처형당한 분이다
그 뒤에 작은 비석은
박팽년의 시구
-까마귀 눈비 맞아-
까마귀 눈비 맞아 희는 듯 검노매라
야광명월(夜光明月)이 밤인들 어두우랴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고칠 줄이 있으랴.
천대 만대까지 이어지도록 오석(烏石)을 정과 망치로 정성껏 파서 적어 넣었다.
숭정사(崇正祠)를 지키는 외삼문(外三門)의 성인문(成人門)
숭정사(崇正祠)
내삼문(內三門)이 굳게 닫혀있어 대문밖에서 까치발로 서서 구경한다
숭정사는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유응부, 하위지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으로 처음에는 충정공 박팽년의 위패만 모셔 배향(配享)하다가 그분의 현손(玄孫) 참고로 현손이란 "나"로부터 아래인,자(子),손자(孫).증손자,현손:까마득하다는 뜻이고 그리고 위로는 부(父). 조(祖). 증조, 고조(高祖)가 있겠다
아래로는 까마득하다는 뜻의 검을 현(玄)을 쓰고. 위조상들께는 높을고(高)를 쓰는데
우리도 누군가에게는 현손이고 또 세월이 흘러 높고 높다는 뜻의 고조 할배로 불릴 때가 있다
현손이던 박계창이 박팽년 선생의 기일(忌日6월 8일)에 잠시 잠이 들었는데 참화(慘禍)를 당한 여섯 충신이 함께 대문으로 들어오는 꿈을 꾼 후 다섯 분의 위패를 더 모셔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사육신은 1456년 6월 8일에 거열형을 당했으며 목은 효수되었고 시신은 조선 팔도로 보내졌다.
다만, 유성원은 주동자들이 끌려가기 전에 가족과 함께 자결하였다.
사육신중 성삼문의 시신 일부가 논산에 묻혀있다.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 산 58번지
충신의 묘(墓)인데 초라한 모습이다
그 외 서울 노량진에도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응부의 시신일부를 모신 묘가 있으며 후에 유성원 하위지 등가묘(假墓)를 만들었다
제(祭)를 지내면 이런 모습일 듯
숭정사와 돌기둥(碑)
조선 최고의 성군이신 세종께서 병상에 누워 집현전 학자인 박팽년, 성삼문 등을 불러 "내 손자 홍위를 잘 부탁하오"라는 말씀을 남기셨고...
다음 왕인 병약한 문종이 왕위를 이었지만 2년 뒤 승하(昇遐) 하시고 어린 단종이 그 뒤를 이어 왕위(1452년)에 올랐다
하지만 1년 뒤인 1453년 숙부의 계유정난과 2년 뒤인 1455년에 수양이 왕위에 오르고 또다시 1년 뒤에 이분들이 어떤 길을 걸었는지
함께 하고자 했던 밀고자 김 질이 장인이던 정창손에게 거사를 밀고했고, 이 거사는 세조의 귀에 들어가 이때 죽은 사람을 충신(忠臣)이라 불렀고
그 반대인 기회주의자들은 성공의 지름길로 갔으며 배신자의 표본인 김 질은 정승(우의정과 좌의정)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돌기둥 정면에는 취금헌(醉琴軒) 박팽년의 행적이 쓰여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런 가능성이 없다"
결국 사내들은 모두 끌려가 사지가 찢어지는 형벌을 받아 죽고 아녀자들은 노비로 끌려가고
사지가 찢어지는 형벌과 목은 효수되었지만 "님 향한 일편단심" 백 년이 가고 천년이 가도 이분들의 눈물을 알 수 있을까
그동안 몇 번 찾았던 육신사에서
밖으로 나와 묘골은 순천 박 씨들이 사는 곳인데
순천 박 씨는 견훤의 사위로 고려 태조를 도와 개국 공신이 된 박영규를 시조(始祖)로한다.
참고로 (고려 태조를 도운 1등 공신 신숭겸은 평산신 씨, 배현경장군은 경주배 씨 중시조로 알려졌다.)
그 뒤 집안의 족보? 가 중간에 없어져 후손들은 고려조에 보문각 대제학을 지낸 숙정(淑貞)을 중시조로 하고 있는 명문가 집안이다
충신(忠臣)이자 충절(忠節)의 대명사 박팽년이란 이름 하나만 놓고 봐도 명문 중의 명문가다
육신사를 나와 박두을 여사 생가로 향한다
박두일 여사 생가
사육신 박팽년의 유일의 핏줄이 대 삼성그룹의 뿌리가 되었고...
삼성그룹 창업자 고(故) 이병철 회장의 부인이며 사육신 중 한 분인 취금헌 박팽년의 후손으로 21세에 이병철 회장과 결혼을 했다. 생가는 최근에 복원한 듯한데 본채(本)와 헛간만 복원되었고 사랑채나 대문은 복원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제 묘골의 육신사를 뒤로하고 도로가 양쪽에 순결을 상징하는 백일홍 나무가 심어진 곳으로 맞배지붕의 충절문(忠節門)을 지나 다시 하천가로 달려간다
지방하천 하빈천
멀리 대구 교도소가 보이고
살면서 절대 절대 가서는 안될 곳 중의 하나다
내려가는 길에
길가에 해독작용과 피부미용에 좋다는"고들빼기" 케러 나오신 아주머니 두 분과 이야기 나누고 달달한 커피까지 한잔 얻어마신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고들빼기 찐사랑에 씨가 마를 지경이라고 한다.
그 옛날 길가메시가 영생(永生)의 풀을 찾아 세상 끝까지 찾아다니던 게 우리나라의 고들빼기는 아닌지
뭐 하다 이제 이러는지
지나온 하천이며
물색이 영 마음에 안 든다
하빈천이 낙동을 만나는 곳
하천가에 수양 버들이나 버드나무 한 그루쯤 있어야 하천이라 부를 것 같다.
하빈천이 낙동을 만나는 배수문 위에서
트랙 끄고 자전거길로 뛰어서 강정보까지 5km
오늘은 하루 종일 조랑말이 되어 뛰어본다
낙동강
지구 전체의 70%가 물이며 약 1,385경 리터이며 이중에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물은 0,007%다
낙동강아 잘 있어라
강정보까지 와서 잔치국수 잘하는 은숙 씨 집에 와서 이야기 나누다 집으로...
다음 하천은 전북 진안으로
그동안 걸었던 한국의 하천
낙동강.한강.금강.섬진강.영산강.남강.황강.금호강.반변천.위천.
내성천.밀양강.소양강.북한강.섬강.평창강.홍천강.달천.보성강.감천.
태화강.형산강.삼척오십천.만경강.동진강.가화천.삽교천.안성천.영강.논산천.
임천강.회천.미호천.갑천.백천.회야강.미천.병성천.덕천강.안림천.
청도천,단장천.양천.신녕천.병천천.무주남대천,서시천.용전천.길안천.봉황천.
초강,쌍계천,양산천,횡천강.위천천.영천강.한천,서천,금천,공릉천.
운곡천.이안천.가곡천.영덕오십천.어천.지장천.왕피천.송천.양양남대천,강릉남대천,
오대천.정선송천.옥동천.임진강.청미천.복하천.경안천.탄천.수영강,광려천.
중랑천.안양천.오수천.요천,황룡강.고막원천.지석천.진위천.한탄강.가평천.
조종천.왕숙천.유등천.유구천,무한천.동북천,탐진강.곡교천.지천.보청천.
석천.구량천.쌍천.무심천.기계천.고부천.원평천.주진천.와탄천.전주천.
사천강.불갑천.함평천.토평천,반월천.밀양청도천.동천.계성천,오목천,밀양동천.
가천천.신반천.영양동천.의성남대천,광천,평해남대천.웅천천.당진천.정안천.조천,
차천,신천,북안천,고현천,고천,곡강천,아천,직지사천,한천.남천,
광주천,영동천.조령천,신등천.화포천.주천강.남천.북천,함안천.태화강.
경산남천.송야천.흑천.광산천,석성천,조만강,북천,마읍천,연곡천,화매천,
추령천,동진강,제천천,곤양천,신천천,형산강,주천강,노성천,삼천,두월천 ,
서화천,미호천,대창천,창원천,남천,온천천,대종천,용동천,광천.신전천,
원당천,냉천,안평천,이천,석교천,강경천,산북천,주방천,구천천,청통천,
동화천,팔거천,추풍령천,영오천,진전천,청계천,대천,신평천,반성천,초곡천,
고성천,진동천,삼호천,단계천,이언천,신반천,유하천,황계천,주수천,함양 위천,
사천천,화죽천,창릉천,소가천,계수천,지우천,화순천,경천,옥과천,순천동천,
광양서천,광양동천,대천천,탑천,소양천,서낙동,삼천천,옥천천,영암천,만봉천,
와항강,연산천,마곡천,수어천,주교천,이사천,관곡천,두계천,석항천,금상천,
고산천,풍산천,삼포천,금강천 남상천,광천천,금천천,현산천,해남천,판교천,
길산천,고창천 ,갈곡천,하빈천 254개 누적거리 11.905KM
앞으로 46개 진행하면 하천길 끝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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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빈까지 가셨으면
동곡막걸리하고 하빈에 국수가 엄청 유명한데요...
다시 다녀오셔야할듯...ㅎ 전현무계획4에 나왔던 칼국수하고 돼지수육,암뽕추천드립니다
강정보에 잔치국수 잘 하는 은숙씨도 만나보고
좋았습니다.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이번 글은 첫 구절부터 재미가 나서
꽤나 기대하며 읽어 내려가는데
이어진 글도 참말로 재미나게도 써 내려가셨습니다
깡통에 얽힌 이야기는 어디서든 귀 동냥을 해 들은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방장님 꿈에서 흘러나온 것인지 모를 일이나
꽤나 그럴싸하게도 지으셨기에
봉이 김선달도 울고 가겠다 싶었고
이것저것 많은 이야기들이 가슴에 와 닿았지만
내색하고 싶지는 않고
그러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메밀꽃 그 사진에
눈길도 머물고 마음도 머물러 버리는데
새하얀 빛이 가득한 보름달 아래
새하얀 메밀꽃이라
허생원의 마음을 動하게 했던
그 날 그 길 위의 세 사람이 그려져 한참을 그냥
바라만 봅니다
동이를 바라보는 허생원의 먹먹한 마음이
하얀 달빛 하얀 메밀꽃 위에 자꾸만 머물러 있는것 같아
그냥 한참을 쳐다보다 갑니다
참 예쁘게도 참 슬프게도 찍으셨습니다
방장님께서 걸으시는 길 위엔 사연이란게 있어서 좋습니다
사연들이 있어서 그래서 재미라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길 걸으시는 걸까요??
그래서 인문 인문 하시는 걸까요??
암만 그래도 적당히 걸으십시요
골병 나면 결국 나만 손해입니다
우리는 매일 길위에 서지만 어떠한 어떠한 이유가 없는한 길위에 있다는걸 모르고 살아가죠
페인트와 신나의 찰떡 궁합
허생원과 메밀
아지매와 고들빼기처럼
내년까지 하천 졸업?하려니 조금 바빠질듯하여
시간 나는데로 돌아다녀봐야 겠습니다.
글 감사드리며 오늘도 좋은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아이고 전국에 강 하천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네요
아직도 남았다니 주변의 인간사는 모습이 항상 마음에 와 닿습니다
하빈천 수고하셨습니다
국내 어지간한 하천은 대부분 걸었구요
내년 가을이면 어느정도 마무리될것 같습니다..늘 따뜻한 관심 감사드립니다
숭정사에 내려오니 햇살과 하늘은 너무 멋진 가을인데~ 주변에 단풍이 아직 내려오지 않았네요!ㅋㅋ
무릎이 다시 생생해지셨다니 다행입니다. 허나 그래도 아끼십시오!ㅋㅋ 내년에도 장거리를 준비하시는 것 같습니다.ㅎㅎ
벌써 어떤 걸음으로 이야기를 해주실지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46개나 남으셨다니~ 나열된 이름을 보니 까마득합니다.ㅋㅋ 다녀오신 하천이 더 많겠지만요!^^
날이 춥습니다. 몸 관리 잘 하십시오!^^
지나온 하천을 순서대로 나열해보니 꽤 많아보입니다.
내년 가을이면 어느 정도 마무리될것 같구요
저도 졸업이란걸 해볼것 같습니다
가을길에
하빈천 발원지를 찾아서
돋보기를 쓰고 읽다 보니 눈이 아파 1/2 밖에 못 읽었습니다.
그래도 무릎이 멀쩡해져서 내년에 천리 길 2개는 무난하시다니 기대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ㅎㅎ저도 눈이 아파서 안경쓰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글 감사드리며 강북5산종주 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
@배병만 부귀 "메타쉐콰이어길" 이군요.돈까스(모래재넘어) 못드셔서 안타까운 마음입니당.올한해 진안을 수십번도 더 오간듯요~^^
안타깝게 돈까스사진을 못찍었네요.대신 함박스테크 사진으로 대체합니당!
@천사 손님도 없던데
예약 안하면 국물도 없다고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박두을 여사 이름은 처음 들어봅니다.
마지막 하천 정리된 것 보니 엄청나네요 ㅎ
아직도 가야할 하천이 46개나 남았다니 참 많기도합니다.
박두을 여사가 삼성 그룹의 뿌리가 되었죠
내년 가을쯤 대충 마무리됥듯 합니다.
글 감사합니다
사육신의 흔적이 있어 아껴두셨던 하천이었을까
아니면 꽁꽁 숨어있다가 방장님 레이더에 딱~허고 걸린것일까
갑순이와 갑돌이를 시작으로 이야기가 많은 하빈천 걸음
방장님 말씀처럼 흰머리는 늘어가고
버려진 깡통 하나에서도 이야기를 뽑아내니~ 이야기 마술사가 따로 없으십니다.
방장님께서 여인 하나 보쌈하고 싶으셨던 것은 아니셨을지?? ^^
팝콘 터지듯 꽃봉오리 열어젖힌 메밀꽃 한송이 코 대고 킁킁 느껴보고 싶어지며
노랗게 익은 벼 위를 슝~ 나르는 꼬마 자동차 붕붕이~
님 향한 일편단心~~ 사육신의 육신사 이야기~ 논산 언급에 방긋~
어쩐지 집터 기운이 남다를 거 같은 박두일 여사 생가
254개 하천 걸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당.
깡통이 비록 녹이쓸어 있지만 산정에 3년만 버티면 산이름으로 오를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늦게 발견해서...
이번주에 국가명승지 월출산 잘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작년여름
육신사 둘러보고 입구 묘운한옥카페 커피
한잔, 하빈면 동곡칼국수 줄 기다려
소문난 국수 한그릇 먹고 온 기억이 납니다.
안내 팜플릿 보면서 구경했었는데 방장님
역사자료 자세히 읽어 보면서 육신사 다시 더듬어 봅니다.
역시 방장님 입니다.
남은 하천길 잘 마무리 하세요.
저는 길 가다가 잔치국수만 찾는데 경상도 잔치국수는 간장 맛이 좋은데 그외 지역의 잔치국수는 간장이 별로라 라면으로 대신할때가 많습니다.
역사이야기는 틈틈히 하지 않으면 금방 잊혀지기에 책을 자주봐야하죠
고문님 글 감사합니다
제 집(하빈 동곡2리)근처를 다녀가셨군요.저는 이곳에 살아도 한번도 하빈천을 따라걷지 않았고 일부 차로 가기만 했는데,,,ㅎ 문산정수장까지는 자주 갑니다.
아무튼 대단하십니다.상상이 불가한 남은 하천길도 잘 마무리 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