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인물 탐구 - 홍계관, 남사고, 전우치
■ 귀신같은 점을 치고도 오해받아 사형 당한 점쟁이 홍계관
장님 홍계관은 귀신처럼 점을 잘 친다고 이름이 알려졌다. 하루는 자신의 수명을 계산해 보니 아무 해 아무 달 아무 날에 반드시 비명으로 죽을 운명에 놓여 있었다. 곧 죽게 된 가운데서 살아남기를 구하는 점괘를 뽑아 풀어 보니, 임금이 앉아 있는 용상 아래 숨어 있으면 모면할 수 있다고 되어 있으므로, 그 사실을 임금에게 아뢰었더니 임금이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였다.
그날을 당하여 용상 아래 숨어서 엎드려 있었는데, 그때 마침 쥐 한 마리가 난간 앞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임금이 홍계관에게 말했다.
"쥐가 이곳을 지나갔는데 몇 마리인지 네가 시험 삼아 맞추어 보아라."
"세 마리입니다"
임금이 그의 터무니없는 말에 노여워하여 즉시 형관에게 압송하여 참형에 처하도록 명하였다. 그 당시 죄인을 사형시키는 장소가 당고개 남쪽 강변의 백사장에 있었다. 홍계관이 사형장에 이르러 다시 한 괘를 뽑아 보고 사형 집행관에게 간곡히 사정하였다.
"한 끼의 음식을 먹을 만한 시간만 집행을 지연시켜 주면 살아날 길이 있습니다."
형관이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였다.
한편 임금은 홍계관을 압송하게 한 뒤에 그 쥐를 잡게 하여 배를 가르게 하고 보았더니 새끼 두 마리가 뱃속에 있으므로 크게 놀라며 이상스럽게 여겨 중사(왕명을 전달하는 내시)에게 급히 따라가서 사형 집행을 정지시키도록 명하였다. 종사가 빠르게 말을 달려 당고개 위에 이르러 바라보니 한창 사형을 집행하려는 참이었다. 그가 집행을 중지하라고 큰 소리로 외쳤지만 그 소리가 미처 형관에게 들리지 않는 것 같아 급히 손을 저으며 중지시키려고 하였다. 형관이 멀리서 그 광경을 보고 빨리 집행하라고 재촉하는 신호인 줄 잘못 알고 그만 목을 베고
말았다.
중사가 돌아와서 그런 사유를 아뢰었더니, 임금이 "아차, 아차" 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당고개의 형장을 아차 고개라고 고쳐 불렀다.
■ 임진왜란을 예고한 남사고
남사고(1508-1571)의 본관은 영양이며, 호는 격암이다. 그는 풍수, 천문, 복서, 상법에 있어서 유전되지 않은 비결까지 모두 터득하였다.
그가 젊었을 때에 울진에 있는 불영사로 가다가 길에서 전대를 짊어지고 서 있는 어떤 중을 만났다. 그 중이 지고 있는 짐을 남사고가 타고 있는 말에다 얹어 달라고 애원하므로 남사고가 허락하여 얹어 주었다. 함께 불영사에 이르러 부용봉에서 놀다가 소나무 아래에서 장기와 바둑을 두는데 중이 갑자기 외마디 소리를 크게 지르고는 모습을 감추었다. 한참 지나자 그의 코 끝부분이 처음으로 드러나더니 점차로 온 몸이 드러나면서 말하였다.
"두렵지 않은가?"
"무슨 두려움이 있겠소."
"그대가 겁을 내지 않으니 가르칠 만하다"
중이 그에게 비결을 주며 말하였다.
"그대는 비범한 골격을 지녔으니 힘쓸지어다."
중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어디론지 떠나 버렸다. 남사고가 이때부터 천지조화의 심오한 비밀을 환히 보게 되었다. 만년에는 천문학교수로 서울에 있었다. 그런데 마침 태사성 주위에 테를 두른 모양의 빛이 보여 불길한 징조를 예고하였다. 관상감정 이번신이 모든 일을 자신이 떠맡겠다고 하였다. 남사고가 웃으면서,
"떠맡을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하고는, 서둘러 고향으로 돌아가다가 도중에서 죽었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손곡 이달이 통곡하며 시를 썼다.
난새와 봉새 같은 인물이 저승으로 훌쩍 떠났는데
그대가 다듬어 놓은 장막 아래 다시 누가 있는가.
사위와 제자들 유고를 수습하니
옥골의 복숭아꽃은 만세토록 봄이구려.
격암이 일찍이 새벽에 동쪽을 향하여 주문을 외며 사람들에게 말했다.
"살기가 등등하다. 임진년에 왜적이 반드시 크게 이를 터인데 나는 미처 보지 못하겠지만 그대들은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서울의 지형을 이렇게 논하였다.
"동쪽에는 낙봉이 있고 서쪽에는 안현이 있어 서로 다투는 형상이니 틀림없이 동쪽, 서쪽의 다툼이 있을 것이다. '낙'자를 풀어 보면 '각마'가 되니 반드시 분열되어 제각기 설 것이고, '안'자를 풀어 보면 '혁안'이 되어 위태로웠다가 편안해지니 서인은 처음에는 위태롭다가 나중에는 편안해질 것이다"
뒤에 그 말이 과연 들어맞았다. 격암이 또 예언했다.
"사직동에 왕기가 있어 종묘사직을 중흥시킬 임금이 반드시 그 구역에서 나올 것이다"
그 말대로 선조가 그곳에서 살다가 명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고, 임진왜란을 평정하여 종묘사직을 중흥시킨 임금이 되었다.
남사고가 자기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기 위하여 명당을 구해서 장사를 지낸 뒤에 그 묏자리를 보니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묏자리를 여러 번 옮기게 되었다. 그러다가 맨 마지막으로 한 묏자리를 얻게 되었는데 명당 중의 명당이라 할 수 있는 용이 날아서 하늘로 올라간다는 비룡상천의 형국이었다. 남사고는 너무 좋아 그의 아버지 유해를 그곳으로 옮겨다 장사를 지내며 흙을 퍼 봉분을 쌓았다. 이때 일을 거들던 한 일꾼이 노래를 불렀다.
"아홉 번을 옮기고 열 번 장사지내는 남사고야 용이 날아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만 생각하지 마라. 말라 죽은 뱀이 나뭇가지에 걸린 형국이 여기가 아닌가."
남사고가 듣고서 놀랍고 이상하여 산 형세를 다시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과연 죽은 내룡이었다. 급히 그 일꾼을 따라나섰지만 갑자기 보이지 않고 어디로 떠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명당이란 제각기 주인이 따로 있는 법이어서 억지로 차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제야 남사고가 탄식하고, 겨우 피해가 없는 정도의 묏자리를 가려 다시 옮겨 장사지냈다.
남사고가 젊었을 적에 여러 번 향시에는 합격하고서도 회시에는 낙방을 하므로 어떤 사람이 물었다.
"자네는 왜 남의 운명은 잘 맞히면서 자신의 운명을 잘 맞히지 못하여 부질없이 해마다 헛걸음을 하는가?"
"개인적인 욕심이 발동하면 술수가 도리어 어두워지는 법일세"
■ 밥알을 내뿜어 나비가 되게 한 전우치
전우치는 본관이 담양인데 대대로 송도(개성)에서 살았다. 전우치가 언젠가 기재 신광한의 집에 갔더니 규암 송인수가 미리 와 있었다. 기재가 전우치에게 말했다.
"어찌 장난을 하지 않는가?"
조금 있다가 그 집에서 볶음밥을 대접하였는데 전우치가 한창 그 밥을 먹고 있다가 입 안에 든 밥을 뜰 쪽으로 내뿜으니 밥알이 모두 흰 나비가 되어 이리저리 날아가 버렸다.
차식이 아들 차천로에게 말하였다.
"하루는 전우치가 와서 두시 한 질을 빌려 갔는데 나는 그가 죽은 줄 모르고 빌려주었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죽은 지가 이미 오래이더라"
그 뒤 전우치는 옳지 못한 도술을 부려 사람들을 현혹시킨다는 구실로 신천 감옥에 갇혀 있다가 마침내 옥중에서 죽었다. 신천 태수가 사람을 시켜 그의 시체를 꺼내다가 임시로 매장하게 하였는데, 얼마 뒤에 친척들이 이장하려고 널 뚜껑을 열어 보니 널 속이 텅 비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