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2023, 5, 21)
제목 : 구원의 첫 단계
성경 : 롬 3 : 9-11
한 교회에 장로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함께 교회 다니는 가까운 지인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았습니다.
그 고민의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자기는 교회의 장로까지 되었는데 아직까지 세례를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교회 처음 나와서 교회를 다니는데 조금 열심을 보이자 교회 목사님이 세례를 받지도 않는 자기에게 집사 직분을 덜컥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르자 이번에는 관례대로 안수집사가 되고 또한 어느덧 장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장로까지 되었는데 세례를 받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뭐하고, 세례를 받자니 창피하고 고민이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누구에게서 들은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이런 얼렁뚱땅 신앙이 결국 부실 신앙을 낳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너무 쉽게 취급되는 것이 있다면 구원교리입니다.
대부분의 복음 전도에서 복음을 제시하고 영접 기도를 따라하게 합니다.
사실 저도 그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불신자가 예수를 영접하고 믿는다고 고백하면 그 자리에서 당신은 구원 받았다고 선언해 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그렇게 예수를 영접하고 믿는다고 고백하면 구원을 받은 것일까요?
베드로 사도는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벧전4:18)는다고 말했습니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예수님에게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눅13:23)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13:24)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구원 받는 사람이 적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해마다 연말이면 등장하는 구호단체가 구세군입니다.
이제는 구세군의 종소리가 연말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구세군을 창설한 사람이 영국의 윌리엄 부스입니다.
한 기자가 다가올 20세기에 당면한 가장 큰 위험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윌리엄 부스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회개 없는 용서, 중생(거듭남) 없는 구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앞에서 말한 영접 기도가 왜 문제입니까?
회개가 생략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거듭남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요소들이 생략된 채 구원 받았다고 말해버리는 것입니다.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존 플라벨(1628-1691)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가지는 일은 일반적인 찬동이나 수긍과는 전적으로 다른 본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진정한 믿음으로 착각하는 것은 매우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잘 되고 형통하고 복 받는 것입니까?
그것은 극히 작은 부분입니다.
성도는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은 저와 여러분이 구원받는 것입니다.
구원 받느냐 못 받느냐에 따라 영원한 삶이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사람은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은 지옥 불에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신앙생활의 전부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이 얼마나 불확실합니까?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죽음은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구원을 확실히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 어떤 일보다도 자신의 구원을 위해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은 성경 다음으로 사람들이 많이 읽은 기독교 고전입니다.
여러분 천로역정을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천로역정은 한 크리스천이 멸망의 도시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천로역정은 존 번연 자신의 구원 받는 과정을 기록한 것입니다.
존 번연이 자신의 구원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존 번연은 어느 날 방문 옆에 앉아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는 서너 명의 가난한 여인들의 말을 엿듣게 되었습니다. 그 가난한 여인들의 말을 엿듣고 존 번연은 그때의 자신의 감정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내 생각에 그들은 마치 온통 기쁨으로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매우 즐거이 성경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고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은혜가 충만히 넘치고 있었음으로, 그들은 마치 신세계라도 발견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이 가난한 여인들은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도 구원 받은 사람들의 모습이 증거 되고 있습니다.
벧전1:8-9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 하는 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저와 여러분에게 이러한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과 기쁨이 있습니까?
보지 못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하고 있습니까?
이러한 증거들이 있다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증거들이 없다면 자신의 구원을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 영혼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 단계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다 죄 아래 있다는 것은 죄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누구도 예외가 없는 것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죄인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죄인은 현재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습니다.
여러분 저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사람은 예수를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에베소서 2장 3절을 읽고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말씀은 이것입니다.
엡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저는 목회자입니다.
그런데 목회자로서 그 동안 내 삶을 돌아보니까 내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낸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며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내 욕심대로, 내 마음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았던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진노의 자녀는 저 불신자들이 아니라 내가 바로 하나님의 진노의 자녀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회개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죄인의 운명은 또 어떻게 될까요?
죄인은 죽은 후에 심판을 받게 됩니다.(히9:27)
그 심판은 죄의 심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지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히 10:3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여러분 이런 말씀을 들을 때 두려움으로 다가와야 합니다.
공포로 다가와야 합니다.
그래야 죄인이 회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죄인은 결국 어떻게 될까요?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계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리차드 백스터(1615-1691)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옥의 고통이 가장 무서운 이유는 영원하기 때문이다.
수천만 년이 지나도 지옥의 고통은 언제나 처음과 같다”
역시 18세기 청교도 존 에인절 제임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옥은 하나님의 진노가 영원토록 부어지는 곳입니다”
이것이 죄인이 처한 운명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죄인들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잘 지냅니다.
자기는 평안하다고 말합니다.
눈이 가려져서 자신이 처한 위험을 전혀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살전 5: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그런데 사실 타락한 인간은 스스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 11절에 보면 “깨닫는 자도 없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에 어부였습니다.
어부 때의 이름이 시몬입니다.
시몬이 그 날도 갈릴리 호수에 나가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날이 새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호숫가에 앉아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오셔서 시몬의 배에 오르시고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호숫가에 있는 무리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눅5:5)하고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랬더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도움을 청하여 두 배에 채우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보세요. 베드로가 고기 잡았다고 기뻐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어부인 시몬 베드로가 죄를 지었으면 얼마나 지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임재 앞에 갑자기 자신의 죄가 생각이 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렇게 고백합니다.
눅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여러분 성령이 하시는 일은 죄인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요 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예전에 시골에서 아침에 문 틈 사이로 햇볕이 들어온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일직선으로 들어 온 햇볕에 그 동안 보이지 않던 먼지들이 얼마나 잘 보이는지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께서 죄인의 마음을 비추실 때 비로소 죄인이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상태에 있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된 사람이 그리스도께 나오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의 비참함을 알게 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앞에서 인용한 존 플라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에 대한 각성으로 고통당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께 나아가지 않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질서입니다.”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사무엘 루더포드(1600-1661)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죄로 인해 신음하는 밤과 아파하는 영혼을 가진 일이 없다면 당신은 아직 그리스도를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된 사람이 발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죄인을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님은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10: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이런 단계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령 하나님께 구하여 나의 죄를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죄를 깨닫게 된 사람이 회개하게 되고, 회개한 사람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