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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 / 은희경 / 문학동네
- 1995년 작품
아주 늙은 앵무새 한 마리가
그에게 해바라기 씨앗을 갖다 주자
해는 그의 어린 시절 감옥으로 들어가버렸네
-자끄 프레베르의 시 [새의 선물] 전문
속 표지를 넘기고 바로 나오는 시詩다. 다음 장에 차례가 나온다. 작품의 제목으로 인용된 시의 전문인데 질문거리가 많다.
차례를 넘어, 첫 장은 프롤로그다. 이 제목이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이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책의 첫 장의 첫 소제목으로 크고 무거운 글씨체를 동원해서 강조해야 했을까. 곱씹어보면 무서운 문장이다. 열두 살인데, 초등학생의 이야기이겠군 이라 생각하며 책으로 다시 눈길을 돌리는 순간, '나는 쥐를 보고 있다.'라고 쓰인 첫 문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소설은 무궁화 위성을 쏘아 올린 시대에 사는 한 사람의 어린 시절 삶을 현재의 삶으로 감싸 안은 듯한 느낌으로 구성되어 있다. 해바라기 씨는 받아 넣었지만 먹어 치우지도 못하고, 심고 가꾸고 꽃 피우지도 못한 채, 차갑고 어두운 상자 안에 간직한 한 어른의 삶을 안타깝게 바라보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녀의 삶이 어린 시절 그녀가 받은 선물 때문에 만들어진 것처럼.
그녀도 알고 있다. 그것은 그녀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더 성장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녀는 성숙한 12살에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감정이 메마르고, 타인을 향하여 끊임없이 담장을 높이고, 나의 출발점을 타인과 비교하고, 받아서는 안될 것에 대한 목록을 만들었던, 삶이 농담이라는 것을 이미 깨달은 애늙은이였으니까.
그 기회를 받아들이느냐 물리치느냐 하는 선택은 스스로가 하는 것이지만 선택의 전 단계에서 어떤 기회를 제공하느냐는 순전히 삶이 하는 일이다. 325
작가는 삶을 "선물"로 인식하고 제목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는 새가 주는 선물, 그것은 땅을 딛고 살아야만 하기에, 높아지려면 열심히 땀을 흘리며 올라야만 하고, 남보다 더 높이 오르려면 쉼이 필요할 때에 한쪽 어깨도 나무에 기대지 못하는 인생에 주는 선물, 땅으로 깊이 들어가 썩어라, 그래서 땅을 부여잡고 해를 바라보며 활짝 웃는 해바라기를 꿈꾸라는 선물을 사람들은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선물을 받을지, 말지의 여부는 개인의 몫이다는 것을 본문을 통해서 분명하게 작가는 주장한다.
인디언 선물이 있다. 선물을 정성껏 준비한다. 주고 싶은 사람의 가까이에 선물을 놓는다. 그리고 잊어버린다. 한 톨의 관심도 두지 않는다. 그 선물이 그의 손에 의해 열리고 받아들여지는 것을 하늘의 일이다. 소설의 주인공 "진희"에게도 수많은 선물이 놓인다. 그것을 열거나 말 거냐는 그에게 달려 있고, 열었지만 내 것으로 삼을 거냐 역시 그에게 달려있다. 열두 살의 여자아이가 무슨 판단능력이 있어 그것을 결정하겠느냐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 두었다.
프롤로그가 끝나고, 진희의 어린 시절이 펼져진다.
어린아이의 입장에서 알고 있는 주변 어른의 비밀을 밝히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먼저 자기의 비밀을 시작으로 하여, 이모, 장군이 엄마, 광진테라 아저씨까지 나열한 다음 꼭 자기만의 눈높이로 보이는 사람들의 삶에 대하여 독자에게 전한다. 그 나이 때는 자기만의 세상을 설계하고 그 세계가 전체인 듯 착각한다. 그 세계가 깨져야 진정한 나를 발견한다.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보지도 못하고 나를 접견하지도 못하고 세상에 나오는 경우가 얼마나 허다한가. 지금의 나는 나를 바라볼 수 있는가 하고 자문한다면, 글쎄요라는 답 외에 나는 무엇을 내놓을 수 있을까.
내가 자랐던 시골 환경도 진희 외가와 별반 다르지 않다. 모든 것이 열려있고 사람의 일과 자연의 일, 모두를 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다만 나의 어린 시절과 그의 어린 시절이 다른 것은, 진희의 엄마는 우울증을 앓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나는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처럼 대부분이 비슷한 집에서 자랐을 뿐이다. 그는 그의 삶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나 자신을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분리했다(12쪽). 내가 이 문장을 만난 후, 나는 두려움을 가지고 소설을 대한다. 진희가 이상한 마음이나 행동은 보였을 때, 나는 무척이나 두려웠다. 모두에게 모범생으로 보이는 그가 아주 곁길로 빠지는 것은 아닐까, 극단의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닐까? 마음 졸였다.
12살의 경험만으로 그녀의 삶이 결정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새 장가를 든 아버지가 나타나 진희를 데려가면서 진희의 12살의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아폴로 11호가 아닌 무궁화호를 쏘아 올리는 시절로 돌아오고, 소설의 마지막 장의 소제목은 "상처를 덮어가는 일로 삶이 이어진다"로 열리고, 마지막 문단은 "나는 쥐를 보고 있다"로 시작한다.
나는 쥐를 보고 있다. 수채구멍과 변소 구덩이를 오가는 쥐의 태연하고 번들번들한 작은 눈, 긴 꼬리의 유영, 그리고 심각하지도 비루하지도 않은 회색의 일과들을. 387
어른이 된 1995년의 진희의 삶을 누구도 평가할 수는 없다. 그것은 그녀의 삶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삶이 행복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쥐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을 통해 그녀는 상처를 치유하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녀가 무슨 상처를 받았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눈에는 그녀가 많은 상처를 받았고 보호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선물이지만 감당할 수 없는 선물이 있기 마련이다. 12살의 그가 감당하지 못할 선물들이 삶으로 주어졌다. 그녀의 삶은 그녀의 주위에 포진해 있는 많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그 환경은 어른들에 의해서 꾸며지고, 그 어른들의 말 없는 인디언 선물이 본의 아니게 그녀의 주위에 포장도 하지 않은 채 돌아다닌다. 12살의 진희에게는, 어른이라는 새처럼 자유로운 존재들이 주는 선물······.
아주 늙은 앵무새 한 마리가
그에게 해바라기 씨앗을 갖다 주자
해는 그의 어린 시절 감옥으로 들어가버렸네
이 시가 자꾸 머릿속에서 맴돈다.
* * * * *
아주 늙은 앵무새 한 마리가
그에게 해바라기 씨앗을 갖다 주자
해는 그의 어린 시절 감옥으로 들어가버렸네
-자끄 프레베르의 기 [새의 선물] 전문
Un très vieux Perroquet
Vint lui porter des graines de tournesol
et le soleil entra dans sa prison d'enfant
- Cadeau d'oiseau, Jacques Prevert
A very old Parrot
Came to bring him sunflower seeds
and the sun entered his prison for children
- Google 번역
나는 사랑이란 것은 기질과 필요가 계기를 만나서 생겨났다가 암시 혹은 자기최면에 의해 변형되고, 그리고 결국은 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11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만이 쉽게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11
내가 내 삶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나 자신을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분리시키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본다. '보여지는 나'에게 내 삶을 이끌어가게 하면서 '바라보는 나'가 그것을 보도록 만든다. 이렇게 내 내면 속에 있는 또다른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의 일거일동을 낱낱이 지켜보게 하는 것은 내 20년도 훨씬 더 된 습관이다. / 내 삶은 삶이 내게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거리를 유지하는 긴장으로써만 지탱돼왔다. 나는 언제나 내 삶을 거리 밖에서 지켜보기를 원했다. 12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라는 목록을 다 지워 버린 그때,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13
삶이란 것을 의식할 만큼 성장하자 나는 당황했다. 내가 딛고 선 출발선은 아주 불리한 위치였다. 14
그러나 바로 그렇게 남에게 관찰당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나는 누구보다 일찍 나를 숨기는 방법을 터득했다. / 누가 나를 쳐다보면 나는 먼저 나를 두 개의 나로 분리시킨다. 하나의 나는 내 안에 그대로 있고 진짜 나에게서 갈라져나간 다른 나로 하여금 내 몸 밖으로 나가 내 역할을 하게 한다. / 내 몸 밖을 나간 다른 나는 남들 앞에 노출되어 마치 나인 듯 행동하고 있지만 진짜 나는 내 몸 속에 남아서 몸 밖으로 나간 나를 바라보고 있다. 하나의 나로 하여금 그들이 보고자 하는 나로 행동하게 하고 나머지 하나의 나는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때 나는 남에게 '보여지는 나'와 나 자신이 '바라보는 나'로 분리 된다. / 물론 그 중에서 진짜 나는 '보여지는 나'가 아니라 '바라보는 나'이다. 남의 시선으로부터 강요를 당하고 수모를 받는 것은 '보여지는 나'이므로 '바라보는' 진짜 나는 상처를 덜 받는다. 이렇게 나를 두 개로 분리시킴으로써 나는 사람들의 눈에 노출되지 않고 나 자신으로 그대로 지켜지는 것이다. 29-30
아줌마들은 자기의 삶을 너무 빨리 결론짓는다. 자갈투성이 밭에 들어와서도 발길을 돌려 나갈 줄 모른다. 바로 옆에 기름진 땅이 있을지도 모르는데도 한번 발을 들여놨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뼈빠지게 그 밭만을 개간한다. 68
아줌마처럼 자기의 고통을 드러내놓지 않는 사람은 그 고통을 가슴속에 쌓아놓고 있는 것이다. 해소되지 못하고 가슴속에 차곡차곡 압축 저장된 그 고통은 언젠가는 엄청난 폭발력으로 터져나올 수도 있다. 그렇게 가슴속에 고통을 꾹꾹 눌러 저장하고 있다는 것이 아줌마가 퓬고 있는 진정한 비밀일지도 모른다. 69
고통에는 그것을 은근히 즐길 만한 점도 없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114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에는 이쁘고 좋기만 한 고운 정과 귀찮지만 허물없는 미운 정이 있다. 좋아하는 감정은 언제나 고운 정으로 출발하지만 미운 정까지 들지 않으면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고운 정보다 미운 정이 훨씬 너그러운 감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확실한 사랑의 이유가 있는 그 이유가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지지만 서로 부대끼는 사이에 조건 없이 생기는 미운 정은 그보다는 훨씬 질긴 감정이다. 미운 정이 더해져 고운 정과 함께 감정의 양면을 모두 갖추어야만 완전해지는 게 사랑이다. (...) 어쩌면 미운 정이란 고운 정보다 훨씬 더 얻기 힘든 무르익은 감정인지도 모르겠다.123
정이 똑똑 듣는 말을 들으면 나는 감동하기 보다는 유치함을 느끼도록 길러졌다. 또한 내가 할머니를 통해서 은영중에 배운 바로는, 감정의 균형을 유지해야만 타인에게 굴복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감상을 싫어하거나 혹은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129
나는 내가 엄마에게나 나 자신에게 연민을 느끼기를 원치 않았다. 건드려질 때마다 아픔을 느끼는 상처를 갖는다는 것은 내 삶에 대한 스스로의 조절능력을 상실하는 거였다. 나는 내 상처를 건드리는 사람의 의도대로 반응하면서 살고 싶진 않았다. 130
죄의식이나 공포 같은 강력한 것보다 그리움이나 사랑 따위의 보드라운 것을 이겨내기가 훨씬 힘들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130
고달픈 삶을 벗어난들 더 나은 삶이 있다는 확신은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떠난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기보다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아무 확신도 없지만 더이상 지금 삶에 머물러 있지 않아도 된 다는 것 때문에 떠나는 이의 발걸음은 가볍다. 그런 떠남을 생각하며 아줌마는 사라진 버스 쪽을 그렇게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는 것이리라. 135
상대가 나를 사랑할 때 내가 행복해진다면 그것은 상대의 사랑을 잃을 때 내가 불행해진다는 것과 같은 뜻임응 깨닫고 그 사랑이 행복하면 행복할수록 한편 그것이 사라질 때의 상실감에 대비해야만 하는 것이다. 타인을 영원하고 유일한 사랑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며 이 세상에 그런 사랑은 있지도 않다는 것을 이모는 진작에 알았어야 했다. 304
삶이란 장난기와 악의로 차 있다. 기쁨을 준 다음에는 그것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해서 그 기쁨을 도로 뺏어갈지도 모르고 또 기쁨을 준 만큼의 슬픔을 주려고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너무 기쁨을 내색해도 안 된다. 허석과 만날 일이 기쁘면 기쁠수록 내색을 하지말자. 그리고 한편으로 누구의 삶에서든 기쁨과 슬픔은 거의 같은 양으로 채워지는 것이므로 이처럼 기쁜 일이 있다는 것은 이처럼 슬픈일이 있다는 뜻임을 상기하자. 삶이란 언제나 양면적이자. 사랑을 받을 때의 기쁨이 그 사랑을 잃을 때의 슬픔을 의미하는 것이듯이. 그러니 상처받지 않고 평정 속에서 살아 가려면 언제나 이면을 보고자 하는 긴장을 잃어서는 안 된다. 310
사랑의 시작은 언제나 상대의 이미지에 의해 촉발하는 것이다. 314
나는 삶의 기회에 대해 생각했다. / 구국의 영웅이 되는 것과 살인자가 되는 것의 차이는 그에게 어떤 기회가 주어지는가에 달려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살인자가 되는 것은 그에게 살인을 할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고 배신자가 되는 것 역시 배신의 기회가 왔기 때문이므로. 그 기회를 받아들이느냐 물리치느냐 하는 선택은 스스로가 하는 것이지만 선택의 전 단계에서 어떤 기회를 제공하느냐는 순전히 삶이 하는 일이다. 배신을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지만 배신을 하도록 기회를 마련하는 것은 언제나 삶의 짓인 것이다. 325
사랑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줄 생각이 아니라면 나에게는 어떤 기회가 준비되어 있기에 삶은 내 안에 사랑을 만들었는가. 거기에 대해 삶은 또 무슨 말인가를 할 것이다. 삶이 내게 할 말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이 내게 일어났다. 333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363
사람은 성숙해가긴 하지만 크게 변하진 않는다는 게 내가 알고 있는 진실이다. 380
집착 없이 살아오긴 했지만 사실은 집착으로써 얻지 못할 것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짐짓 한걸음 비껴서 걸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고통받지 않으려고 주변적인 고통을 견뎌왔으며 사랑하지 않으려고 내게 오는 사랑을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 데에 정열을 다 바쳤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3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