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구멍카페
박윤희
콧구멍카페 문을 연지 벌써 4년째다.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남편과 의견이 그렇게 잘 맞지는 않은 편이었지만 퇴직 후의 일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보인 덕분에 콧구멍카페가 생기게 된 것이다. 텃밭을 일구며 소일하려는 남편과 자연 속에서 살고 싶었던 내 생각이 합치되면서 고향동네의 언덕배기를 둘러보았다. 남쪽으로 앞이 탁 트여 멀리 금오산이 보이고 햇살 잘 드는 좋은 곳을 찾아 두어 마지기 되는 밭을 일구고 한쪽 가에 여섯 평 농막을 앉혔다. 남편은 일하다가 흘린 땀을 씻어내는 그늘, 그리고 차 한 잔 할 수 있는 공간이면 만족한다고 하더니 400여 평 중 6평만 할애한 것이 글 쓰는 내게 너무 미안하다며 농막 앞에 마루 몇 장을 깔아 데크를 만들어 평상을 놓고 그늘 막도 씌워 주었다. 나도 고마운 마음에 데크 아래 흙을 정돈해서 마당을 만들고 마당가로 꽃잔디 몇 포기 심었다.
우리의 2부 인생 시작은 초라하고 볼품이 없었다. 40여 년간 공직의 삶을 마무리하고 고향을 찾아 번듯한 집을 지어 멋진 노후를 시작할 줄 알았던 친지들과 동네 어른들이 처음 얼마간은 농막을 지날 때마다 “콧구멍만한데서 뭘 하노? 농사도 아무나 짓는 게 아닌데.” 라면서 걱정 반, 비난 반의 소리를 내셨다. 농막은 울타리도 담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고라니도 고양이도 거침없이 드나들기 딱 좋은 곳이기도 했다. 거기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입살에 오르내리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내가심은 꽃잔디가 가뭄으로 인해 처음 뿌리 내리고 이듬 해 꽃을 피울 때까지 많이 힘들었던 그 이상으로 나 자신이 농막에 적응하는 것이 어려웠다. 지난 3년 간 남편은 열심히 밭을 갈고 나는 농막을 지나는 길손들이 그냥 지나가는 일이 없도록 차를 대접하며 말을 걸기도 하고, 쉬어갈 것을 권유했다. 몰래 들어오는 도둑고양이에게도 나눔을 하고 이름 없이 찾아온 들풀에겐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며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다. 키 작은 들꽃이 농막을 찾아주면 고마워서 야생화 사전을 뒤적여 가며 이름을 찾아 불러주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되었다. 날마다 밭에서 일하다가 목이 마르면 들러주시는 동네 어른들 덕분에 농막이 콧구멍찻집으로 불리게 되어 우리 농막은 콧구멍카페라는 닉네임을 달게 되었다. 언젠가 갓 퇴직한 후배가 만나자고 연락이 와서 나도 모르게 “콧구멍카페로 와.”라고 했더니 후배가 길 찾기로 전파에 잡히지 않는 ‘콧구멍카페’를 입력했을 만큼 콧구멍카페는 인기와 함께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올 봄엔 주름이, 별꽃, 제비꽃, 꽃다지, 봄맞이꽃이 제일 먼저 마당 한쪽에 자리하고 앉아 차려내지도 않은 햇살을 서로 한 잔씩 나누며 나에게도 햇살 한 잔 내민다. 아마도 코딱지풀꽃(꽃다지)이 가장 먼저 일어나 봄을 우려낼 햇살을 맞이했나 보다. 햇살 한 모금에 콧구멍카페 마당에 꽃잔디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분홍꽃망울을 터트려 벌, 나비 떼는 꿀차 주문에 바쁘고 나는 시어(詩語)줍기에 더 바쁘다. 혼자 조용히 앉아 심산해당화의 잔잔한 꽃 춤을 감상할 여유가 없다. 이러다가 작은 풀꽃들을 위한 한 편의 봄(春시)를 읊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지기도 전에 여름 손님 맞을 준비로 바빠질 것 같다. 저녁이면 무논의 개구리들이 카페에 들려 솔로에 듀엣 혼성팀까지 라이브 콘서트를 해서 나는 날마다 늦은 밤이 되어 잠자리 든다. 잠들기가 바쁘게 햇살과 바람이 아침을 알리며 창을 두드릴 정도로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날마다 콧구멍카페에 손님이 복작거린다. 덕분에 퇴직 후의 무료한 나의 삶에 대해 미리 걱정했던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쉼터로 시작된 6평 농막이 작은 풀꽃 하나에도 관심가질 수 있게 해준 콧구멍카페가 되어서 좋다. 사람과 자연이 함께 교감을 나누고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어서 행복하다. 내일은 또 어떤 손님이 찾아와줄지 기대해 본다.
콧구멍만한 여섯 평 농막에
카페를 열었다
손바닥 그늘에 앉아
바람 한 잔 마시고
밭갈이로 흘린 땀방울에
풍년을 꿈꾸는 곳
제비꽃 한 송이에도
벌, 나비 떼가 북적거리는 봄
콧구멍 한 번 벌렁거리면
온 세상이 내 것이 되는 곳
콧구멍카페에
오늘은 뒷집 강아지랑 야옹이가
손님으로 앉았다
어떤 차를 주문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