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무관학교 교가에 담긴 독립운동가들의 역사인식
흑룡 ・ 2023. 4. 10.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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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군 양성의 요람 신흥무관학교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 6월 길림성 유하현 삼원포에서 우당 이회영 선생과 둘째 형 영석 이석영 선생이 주축으로 '신흥강습소'를 세운 것이 시작입니다. 석주 이상룡 선생과 일송 김동삼 선생 등이 함께 했습니다. 신흥강습소는 이후 신흥무관학교로 교명을 바꾸고 1920년 폐쇄될 때까지 독립군 3,500여 명을 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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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무관학교 출신 독립군들은 청산리전투 등 대일항쟁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고, 의열단 등 무장독립 단체의 주축으로 활약했습니다.
신흥무관학교 교가
신흥무관학교 교가는 조지아 행진곡으로 알려진 <조지아를 행진하며(MarchingThrough Georgia)>의 곡에 가사를 개사한 것으로 작사가는 미상이지만 석주 이상룡 선생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1절
서북으로 흑룡태원 남의 영절의
여러 만만 헌원자손 업어기르고
동해섬 중 어린 것들 품에다 품어
젖먹여 기른 이 뉘뇨
우리 우리 배달나라의
우리 우리 조상들이라
그네 가슴 끓는 피가 우리 핏줄에
좔좔좔 결치며 돈다
2절
장백산 밑 비단 같은 만리낙원은
반만년래 피로 지킨 옛집이어늘
남의 자식 놀이터로 내어 맡기고
종설움 받는 이 뉘뇨
우리 우리 배달나라의
우리 우리 자손들이라
가슴치고 눈물 뿌려 통곡하여라
지옥의 쇳문이 온다
3절
칼춤추고 말을 달려 몸을 단련코
새론 지식 높은 인격 정신을 길러
썩어지는 우리 민족 이끌어 내어
새 나라 세울 이 뉘뇨
우리 우리 배달나라의
우리 우리 청년들이라
두 팔 들고 고함쳐서 노래하여라
자유의 깃발이 떴다.
석주 이상룡 선생은 안동의 유력한 가문인 고성 이씨 후손으로 강제병탄이 되자 조상의 신위를 땅에 묻고 99칸 대저택 임청각을 팔아 독립자금을 마련하여 일가족과 함께 서간도로 망명한 독립운동가입니다. 이상룡 선생의 행적 중에서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안동에 있을때부터 단재 신채호 선생과 교류하고 1913년에 『대동역사(大東歷史)』를 썼다는 점입니다.
안타깝게도 『대동역사』는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석주유고』에 '대동역사를 초(抄)했다'는 구절이 있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럼, 교가의 가사에 담긴 뜻을 살펴볼까요?
"서북으로 흑룡(黑龍) 태원(太原) 남의 영절의"
서북(西北)은 우리 역사 강역의 서북을 말합니다. 북쪽으로는 흑룡강, 서쪽으로는 지금의 산서성 태원에 이르고, 남(南)으로는 영절(절강성)까지 우리 역사강역이었다는 뜻입니다.
① 태원: 고구려 제5대 모본왕때 요서를 경략하는데 이곳에 태원이 있습니다.
2년(49) 봄에 장수를 보내 한(漢)의 북평(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 등을 습격하였다. 그런데 요동태수(遼東大守) 제융(祭肜)이 은혜와 신의로 대우하므로 다시 화친을 맺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고구려는 초기부터 정복 전쟁을 활발히 진행하는데 '다물' 정신에 근거한 것입니다. 다물은 '다시 찾는다'는 뜻으로 단군조선과 부여의 강역과 정신을 회복하여 구한(九韓)을 통일한다는 뜻입니다.
② 영절(절강): 백제는 지금의 중국 동쪽 지역을 점령하고 다스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구당서』의 '월주'는 지금의 중국 절강성 소흥현입니다.
《구당서(舊唐書)》에서 전하기를 “백제는 부여의 별종으로 동북쪽은 신라이고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면 월주에 이르고 남쪽으로 바다를 건너면 왜(倭)에 이르며 북쪽은 고려이다. 그 왕이 거주하는 곳으로 동·서의 두 성이 있다.” 한다.
"여러 만만 헌원자손 업어기르고"
'헌원'은 사마천이 『史記』에서 자신들 한족(漢族)의 시조로 묘사한 인물로 사방의 중심이라는 뜻에서 황제(黃帝)로 추존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동이배달국 14대 자오지천황(치우천황)에게 반역을 했다가 72회 전투에서 모두 지고 항복해서 운사(雲師)의 벼슬을 하사받은 인물입니다. 이들 헌원의 자손 한족을 우리 동이 배달겨레가 여러 만대에 걸쳐서 업어 길렀다는 뜻입니다.
"동해섬 중 어린 것들 품에다 품어 젖먹여 기른 이 뉘뇨"
'동해섬'은 동해에 있는 섬나라 '일본'을 말하며 '동해섬 중 어린 것들'은 '일본열도에 사는 일본인'을 뜻합니다. '품에다 품어 젖먹여 기른'은 단군조선 이래 부여와 4국 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일본열도로 이주하여 문물과 제도를 전하고 국가를 세우는 과정에서 어린 애와 같이 유치했던 일본을 문명하게 길렀다는 뜻입니다.
"우리 우리 배달나라의 우리 우리 조상들이라"
배달은 지금으로부터 5898년 전, 환웅천황께서 태백산 아래 신시에 개천하신 나라 '밝달'국을 말합니다.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옛날에 환인(桓因)의 서자(庶子) 환웅(桓雄)이 천하(天下)에 자주 뜻을 두어,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伯)을 내려다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며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웅(雄)이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정상 신단수(神壇樹;神檀樹) 밑에 내려와 신시(神市)라 하고 이에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하였다.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명(命)·병(病)·형(刑)·선악(善惡) 등 무릇 인간의 삼백육십여 가지의 일을 주관하며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이때에 웅족과 호족이 있어 같은 굴에 살면서 항상 신(神) 환웅(雄)에게 기도하되 화(化)하여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이에 신 환웅은 신령스러운 쑥 한 타래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百日)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의 모습이 될 것이니라.’라고 하였다.
곰과 호랑이는 그것을 받아서 먹어, 기(忌)한지 삼칠일(三七日)만에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금기하지 못해서 사람의 몸이 되지 못하였다. 웅녀(熊女)는 혼인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매양 단수(壇樹;檀樹) 아래서 잉태하기를 빌었다. [환]웅이 이에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 그녀와 혼인하였다. [웅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니 단군왕검(壇君王儉;檀君王儉)이라 하였다.
『삼국유사』 고조선 조
밝달을 한자로 옮기면서 배달(培達)이 되었는데, '밝달'에서 밝은 '밝다'는 말이고 '달'은 양달, 응달처럼 땅을 말합니다. 따라서, 밝달은 '밝은 땅'이라는 뜻이며, 태백산도 '크게 밝은 산'이란 뜻으로 '밝달'이 됩니다. 『삼국유사』에서 단군조선의 도읍지로 나오는 '백악'도 '백산'과 같은 말로 역시 밝은 산, 밝달을 뜻합니다.
(단군왕검이) 평양성(平壤城)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하였다. 또 도읍을 백악산아사달에 옮겼는데 ...
『삼국유사』 고조선 조
"장백산 밑 비단 같은 만리낙원은"
백두산을 장백산이라고도 합니다. 장백산은 중국에서 부르는 말이니 쓰지 말자는 얘기도 있었지만 그 땅에 살았던 이들이 우리 조상들이었으니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만리낙원'은 단군조선의 옛 강역을 만리라 한 것입니다.
신흥무관학교 교가가 전하는 메시지
신흥무관학교에서 배운 교과목은 군사, 국어, 국사인데, 이중에서 국사는 대종교 김교헌이 지은 『신단민사』와 『신단실기』로 알려져 있는데 초기에는 석주 이상룡 선생이 쓴 『대동역사』를 교재로 했다고 전합니다. 따라서, 교가의 가사는 석주 이상룡 선생의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썼거나 『대동역사』로 교육 받은 누군가 쓴 것으로 보입니다.
끝으로, 신흥무관학교 교가를 감상해보시죠 :) 대전시 홍보대사 뮤지컬배우 고은성씨가 부른 영상입니다.
[출처] 신흥무관학교 교가에 담긴 독립운동가들의 역사인식|작성자 흑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