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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을 버리고 지식을 버리면 백성에게 백배나 이롭고, 자선을 끊고 도의를 버리면 백성이 절로 효성과 자애를 되찾으며, 잔재주를 끊고 이익을 버리면 (백성사이에) 도적이 없어진다. 이 세 가지는 겉은 꾸미는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부족하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속해야 할 곳이 있으니, 바탕의 순진함을 드러내고 타고난 본성을 지키며 자기중심과 강한 욕심을 버리는 것이 (속해야 할) 그것이다.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 2003. 삼인)
무위당 장일순(1928-1994)
무위당 잠언집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2009. 시골생활)에서는 선생을 이렇게 소개했다. “장일순 선생은 원주에 대성학교를 세운 교육자요, 사람의 얼굴을 담아낸 난초 그림으로 유명한 서화가요, 신용협동조합 운동과 한살림 운동을 펼친 사회운동가이다. 1970년대 원주를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본거지로 만든 지도자요,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이 가능한 공생과 살림의 문명을 주창한 생명사상가이다. 또한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면서 유학 노장사상에도 조예가 깊었고, 특히 해월 최시형의 사상과 세계관에 많은 영향을 받아 일명 ‘걷는 동학’으로 불리기도 하는 등 종교 간의 장벽을 넘어 대화를 추구한 선지자이기도 하다”
얼마 전 그 분의 24주기를 맞아 원주 소초면에 있는 묘소를 다녀왔다. 전국 곳곳에서 선생의 뜻을 잊지 않는 사람들과 새롭게 알게 된 이들이 하나 둘 모였다. 선생은 생전에 그러했듯이 하늘 볕과 자유로운 바람이 스치는 구릉에 누운 풀처럼, 낮게 흐르는 물처럼 계셨다. 머리에 든 것은 물론 마음에 있는 분별함이나 한줌 되지 않는 잔재주를 포함한 버려야 할 것 다 버리고 고스란히 남는 ‘바탕의 순진함’을 노자가 그러했듯이 선생도 말했다. 선생은 꾸미지 않고 하느님을 섬겼다. 가셨지만 곁에 남아 있는 그 분의 목소리를 들으며 시인의 졸시 두 편을 묘소에 올렸다.
모월산에 새겨진 무위당 잠언
이보게, 아무개
하느님 만나게 해줄까
자네가 학교 선생이면 학생이 하느님이여
자네가 공무원이면 지역주민이
자네가 신부나 목사면 신도가
자네가 대통령이면 국민이 하느님이여
아니, 아니 바로 자네가 하느님이여
하느님 만나기 참 쉽지
이보게, 아무개
잠에서 깨어 일어나
그렇지 않으면 고향에 못가
앞에 나서지 마
앞에서는 안 보이는 법
한발 물러서면 잘 보일걸세
옆 사람 글씨 보지 말고 지극정성으로 써보시게
어린아이처럼 티끌 없이 말이야
그래 그렇지 자네 명필이구먼
이보게, 아무개
그저 감사하고 살아
모두가 한들이야
모두가 한뿌리며 한몸이고
모두가 한울님이야
이보게, 아무개
밑으로 기어가
그저 따뜻하게 보듬어
그것이 모두가 사는 길이야
그것이 생명이야
그것이 평화야
그것이 동학이야
그것이 서학이야
그것이 살림이야
그것이 혁명인것을
여보게, 아무개
자네가 나였구만
민들레 씨앗이 날고 있습니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 24주기에
선생님 지난 겨울이 추웠습니다
삭풍이 되어 부는 바람에
장작불은 사그라들고
아랫목은 식어 갔지만
깨진 놈들이 들었던 거리의 촛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지난해 겨울만 추운 것은 아니었지요
선생님이 둑방길을 걷던 그 해도 추웠고
역전에서 김영감과 이서방
박할멈과 최새댁을 만나던 그 해도 어련했지요
그러나 추위를 견딘 아랫것들은 버티고 살았습니다
선생님이 스물 네해전 우리 곁을 떠난 게 아니었음을 압니다
언 땅에 온몸을 구부려 씨앗을 심었고
그 씨앗이 언 땅을 밀고 나와 꽃을 피웠고
한 해 피고 말 꽃이 아니라고 다시 씨앗을 퍼트리는 날이
매년 오늘입니다
선생님,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
하나의 풀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지요
이제보니 선생님은 민들레였군요
언 땅에서 꽃을 피운 선생님을 따라
흩어진 민들레의 씨앗이 이렇게 해해년년 곳곳에서 모여
눈떠서 생명평화을 살자고
손잡고 한살림을 이루자고 작당합니다
선생님, 이제 남과 북의 전쟁이 끝나려 합니다
민들레 씨앗이 분단의 철조망 위에 내려앉습니다
당신이 언 땅에서 올려 보낸 민들레 씨앗이 날고 있습니다
선생님, 민들레 씨앗이 날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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