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안대군의 묘는 전주시 덕진구 금상동 산59-1번지에 있다. 20여년만에 다시 찾았는데, 예전에 봤던 모습과 달리 보인다. 제1차 왕자의 난을 통해 방석이를 죽이고 한껏 고무된 상태에서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박포의 꼬드김에 넘어간 회안대군은 제2차 왕자의 난으로 몰락하고 만다. 본인의 몰락은 모든 가족의 불행이 되었고, 힘든 삶이 기디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방원과의 전투에서 패한 후 황해도 토산으로 귀양의 갔다가 안산과 익산, 순천 등지를 떠돌다가 전주에 정착한다. 이후 말년에는 충청도 홍성으로 이주한다. 그곳에서 한많은 삶을 마감하는데, 묘소는 전주외곽에서 쓰고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한양에서 지관을 보내 묘자리를 잡아주었는데, 왕이 나올만한 명당이라 묘소 뒷편의 용맥에 뜸을 떴다는 말도 전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지방에 떠도는 말이고,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조선시대 야사집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실제 현장을 간산하면 용이 생룡으로 변화하는 모습인데, 회안대군의 자리는 결인속기처에 묘를 조성하고 있어 제왕이 나올만한 명당이라 할 수 없다. 그리고 회안대군은 왕실의 족보인 선원록에 그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죽었다. 그 후손들도 오랜 세월 왕족으로 인정받지 못하였으며, 숙종조에 이르러 겨우 선원록에 그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쿠데타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으나, 실패하면 비참해진다.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모두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앞쪽은 부인 묘이고 뒷쪽이 회안대군의 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