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
저자 로런 그로프 / 문학동네 / 2018.02.20
원제 Arcadia
페이지 452
책소개
삶의 작은 순간들 속에서 낙원을, 아르카디아를 찾는 한 남자의 일대기!
《운명과 분노》의 저자 로런 그로프의 또다른 대표작 『아르카디아』. 저자의 두 번째 장편소설로 1970년대 히피 문화가 득세하던 시절, 절대적인 자유를 신봉하며 평등하게 일하고 서로 사랑하는 것을 지향하는 대안 공동체 '아르카디아'를 중심으로,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비트라는 남자의 50여 년간의 삶을 따라가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 특유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소설 속 배경이 되는 자연 풍광을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내고, 세상의 밝은 빛과 짙은 어둠을 깊숙이 끌어안은 한 남자의 맑고 진실한 목소리를 독자들의 마음 속에 선명하게 새긴다.
이 작품은 주인공 비트의 삶을 중심으로 반문화 운동이 활발하던 1960년대 후반부터 소설 출간 당시 근미래였던 2018년까지 50여 년의 세월을 모두 4부로 나누어 그리고 있다. 1부에서 비트는 다섯 살이다. 아르카디아가 결성된 후 처음 태어난 아이이기에 '최초의 아르카디아인'이라는 신화적 별명을 얻게 된 그는 바깥세상에 나가본 적이 없다. 2부에서 비트는 열네 살이다. 사춘기를 맞은 비트는 서서히 자신이 사랑하는, 자신이 아는 세상의 전부인 아르카디아의 어두운 면을 보게 된다. 그 사이 아르카디아는 크고 작은 사건을 거치며 결국 와해되고, 비트는 평생을 함께한 사람들과 이별하게 된다.
3부와 4부에서 비트는 바깥세상에 적응해 살아가고 있는 중년의 남자다. 대학에서 사진을 가르치는 그의 삶의 유일한 기쁨은 딸 그레테다. 비트의 삶에서 아르카디아와의 이별은 잇따른 상실의 시작에 불과했다. 그리고 비트의 개인적인 불운과 상실은 바깥세상의 불행과도 맞닿아 있다. 소설 속 2018년, 세상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으로 공포에 떨고, 루게릭병을 앓는 해나와 딸 그레테를 데리고 비트는 어린 시절 떠났던 아르카디아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작지만 어쩌면 삶을 지탱해줄 작고 고요한 희망을 발견하게 되는데…….
저자소개
로런 그로프
저자 : 로런 그로프
폭발적인 서사, 시적이고 우아한 문체, 지적이고 독창적인 서술로 “동시대 가장 뛰어난 미국 작가 중 한 명” “산문의 거장”이라는 평가를 받는 소설가.
1978년 미국 뉴욕주에서 태어났다. 애머스트 칼리지에서 불문학과 영문학을 전공했고, 위스콘신 대학교 매디슨 캠퍼스에서 문예창작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8년 첫 장편소설 『템플턴의 괴물들THE MONSTERS OF TEMPLETON』을 발표했다. 이 작품이 아마존,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오렌지 상,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단숨에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9년 소설집 『섬세한 식용 새들DELICATE EDIBLE BIRDS』을 출간했다.
2012년에 발표한 두번째 장편소설 『아르카디아』가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 여러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며 미국 문학계에서 입지를 다졌다. 이 작품은 미국의 젊은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살롱닷컴의 설문에서 ‘작가들이 뽑은 올해의 소설’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5년 세번째 장편소설 『운명과 분노』를 발표했다. 아마존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 1위’에 오른 이 작품은, 전미도서상과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최종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워싱턴 포스트> <타임> <시애틀 타임스> <커커스> 등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으며,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2015년 최고의 책으로 뽑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역자 : 박찬원
연세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불문학을 공부하고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한영번역을 전공했다. 옮긴 책으로는 『작은 것들의 신』 『프래니와 주이』 『나는 말랄라』『지킬 박사와 하이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아가씨와 철학자』 『베리 밸런타인』 『007 카르트 블랑슈』 『빛의 사슬』 『솔로몬의 카펫』 『파라노이아』 『꽃보다 아름다운 그림 속 꽃 이야기』 등이 있다.
목차
태양의 도시 ...013
헬리오폴리스 ...131
축복받은 자의 섬 ...257
지상 기쁨의 정원 ...335
감사의 말 ...443
옮긴이의 말 _행복한 세상을 꿈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445
출판사 서평
작은 소년, 티끌만큼 작은 소년 비트.
무너진 이상향의 파편을 그러모아
마음속에 일으켜세우다.
총 4부로 구성된 『아르카디아』는 신화 속 목가적 낙원의 이름을 딴 대안 공동체 ‘아르카디아’에서 나고 자란 소년 ‘비트’의 일대기다. 소설은 주인공 비트의 삶을 중심으로, 반문화 운동이 활발하던 1960년대 후반부터 소설 출간 당시 근미래였던 2018년까지 50여 년의 세월을 그린다.
1부 ‘태양의 도시’에서 비트는 다섯 살이다. 아르카디아가 결성된 후 처음 태어난 아이라 ‘최초의 아르카디아인’이라는 신화적 별명을 얻게 된 그는 바깥세상에 나가본 적이 없다. 하지만 널따란 풀밭과 깊고 어두운 숲, 600에이커에 이르는 아르카디아 부지도 그에게는 버거울 만큼 크고 넓다. 함께 사는 친구들과 어른들, 비트를 사랑하는 부모님의 품속에서 비트는 안전하고 행복하다. 다만 겨울이 되면 말이 없어지고 우울해지는 어머니 해나가 걱정스러울 뿐이다. 비트는 우연히 찾은 보물인 그림형제 동화책을 보고 백조로 변한 오빠들의 저주를 풀기 위해 육 년 동안 말을 하지 않았던 소녀처럼, 자기가 꾹 참고 말을 삼키면 엄마가 다시 행복해질지도 모른다고 믿는 순수한 소년이다.
2부 ‘헬리오폴리스’에서 비트는 열네 살이다. 사춘기를 맞은 비트는 서서히 자신이 사랑하는, 자신이 아는 세상의 전부인 아르카디아의 어두운 면을 보게 된다. 계속되는 가난과 굶주림, 마약, 범죄, 내부의 갈등과 반목. 그들의 이상향은 가출 청소년들과 마약중독자들과 범죄자들의 피난처로 바뀌어간다. 그 어두운 시기에 비트가 발견한 빛은 여왕처럼 아름다운 소녀 헬레. 공동체의 리더 격인 핸디의 딸인 그녀를 비트는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아르카디아는 크고 작은 사건을 거치며 결국 와해되고, 비트는 평생을 함께한 사람들과 이별하게 된다.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이후에 펼쳐지는 3부 ‘축복받은 자의 섬’과 4부 ‘지상 기쁨의 정원’에서 비트는 바깥세상에 적응해 살아가고 있는 중년의 남자다. 대학에서 사진을 가르치는 비트에게 삶의 유일한 기쁨은 딸 그레테다. 헬레와의 사이에서 사랑스러운 딸을 얻었지만, 어느 날 산책을 나간 헬레는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비트의 삶에서 아르카디아와의 이별은 잇따른 상실의 시작에 불과했다. 그리고 비트의 개인적인 불운과 상실은 바깥세상의 불행과도 맞닿아 있다. 소설 속 2018년에 세상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으로 공포에 떨고 있다. 루게릭병을 앓는 해나와 딸 그레테를 데리고 비트는 어린 시절 떠났던 아르카디아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작지만 어쩌면 삶을 지탱해줄 작고 고요한 희망을 발견한다.
인 아르카디아 에고(In Arcadia Ego).
나는, 죽음은, 아르카디아에도 있다.
『아르카디아』는 유토피아의 탄생으로 시작해 디스토피아인 미래로 끝을 맺는, 일견 굉장히 비관적인 이야기다. “평등, 사랑, 노동, 모든 이의 필요에 대해 열린 마음”을 기치로 야심차게 탄생했던 그들의 낙원은 유토피아를 다룬 대부분의 이야기들에서처럼, 무엇보다 우리의 실제 역사에서처럼 비극적인 종말을 맞는다. 소설 속 아르카디아 하우스 현관에 새겨진 ‘인 아르카디아 에고(In Arcadia Ego)’, 즉 ‘나는 아르카디아에도 있다’라는 문구는 프랑스 화가 니콜라스 푸생의 그림 제목으로 유명한데, 여기서 ‘나’는 일반적으로 ‘죽음’을 의미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낙원에도 죽음은 있다는 뜻으로 인간의 유한함을, 소설에서는 아르카디아의 최후를 예견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슷한 상징은 비트의 이름에도 있다. 체구가 너무 작아 ‘비트(bit)’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주인공의 본명은 ‘리들리’인데, 이름을 짓게 된 계기가 의미심장하다. 비트의 어머니 해나가 차 안에서 산통을 겪을 때 병원을 찾기 위해 급히 차를 돌리는데 그때 와이오밍주 리들리로 간다는 것이 그만 엉뚱한 길로 들어선다. 그리고 무사히 태어난 아이에게 아버지는 “우리가 가보지 못한 마을 이름에서 따온” 리들리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유토피아라는 말 자체가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의미인 것처럼, 최초의 아르카디아인에게 붙인 이름이 결국 그들이 도달하지 못한 어느 지역이라는 것은 아르카디아인들의 꿈이 좌절될 것임을 예기한다.
하지만 『아르카디아』는 도달하지 못한 이상향, 그 실패 자체에 집중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소설에서 아르카디아가 무너지는 시점은 2부의 끝, 그러니까 중간 지점이다. 아르카디아의 끝에서 이야기는 다시 시작되고 비트의 삶은 이어진다. 결국 소설이 더욱 관심을 두는 것은 무너져내린 물리적 이상향이 아니라 비트라는 인간의 마음속에 공고히 세워지는 이상향이다. 소설에서도 인용되는 『실낙원』의 문장처럼 “정신에는 자기 고유의 공간이 있다. 그리고 자기 안에서 지옥의 천국도, 천국의 지옥도 만들 수 있다”. 결국 『아르카디아』는 물리적 좌표를 점하지 않는, 존재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곳’인 정신이라는 공간에 유토피아를 건설하고, 계속되는 상실 속에서도 끝내 그곳을 지켜낸 한 남자의 이야기다.
주의를 기울일 것.
장대한 몸짓이 아닌 지나는 숨결에,
활짝 피어났다 희미해지며 지나가는 이 순간에……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마치 블랙홀처럼 작지만 커다란 질량으로 독자를 끌어당기는 섬세하고 사려 깊은 관찰자 비트가 있다. 소설을 읽다보면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이 아프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는 독자들이 이야기에 마음을 열고 깊이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요소다. 어린 비트는 따뜻하고 맑은 소년이다. 그는 세상을 주의깊게 들여다보고 때로 다섯 살 아이에게는 너무 버거운 것들까지 깊숙이 받아들인 다음 내면에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재구성한다. 소설이 일인칭시점이 아닌 삼인칭시점으로 서술되어 있음에도, 그로프는 놀라울 만큼 세밀한 필치로 어린아이의 감정과 생각을 독자에게 전해준다.
비트라는 캐릭터가 이토록 생동감 있게 그려진 것은 작가의 개인적이고 각별한 애정의 결과이기도 하다. 소설 앞에 실린 헌사에서도 알 수 있듯, 비트는 로런 그로프의 첫아이인 베킷을 모델로 하고 있다. 작가는 베킷을 임신한 상태에서 아이가 태어날 세상을 염려하며 이 이야기를 구상했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관찰하고 느낀 것을 소설로 썼다. 작가의 표현대로 『아르카디아』는 그녀의 “아들과 함께 자란” 작품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만이, 홀로, 이 세상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상상”하는 비트는 작품 속의 가장 믿음직한 목격자다. 그러나 그것은 비트가 오직 사실만을 증언하기 때문이 아니라 폐허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희망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비트에게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그가 지붕에 비치는 새벽빛에서, 가지 사이를 스치는 바람에서 낙원을 발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비트가 사진작가가 된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프레임 속에 담긴 순간을 영원히 보존하려는 행위다. 순간은 지나가도 사진은 남는다. 비트는 “장대한 몸짓이 아닌 지나는 숨결”에서, 원대한 이상이 아닌 삶의 작은 순간들 속에서 낙원을, 아르카디아를 찾는 사람이다.
기억의 공간에 쌓인 이야기들,
다시 우리의 이야기를 상상하기
“그러나 그는 기억한다. 아르카디아가 들려준 그 기억은 그들 공동의 것이 되었고, 듣고 또 들은 그 기억은 마침내 그의 안에서 이야기로 자라나 비트 자신의 기억이 되고 그와 하나가 된다.” _본문 10쪽
비트가 순간을 영원히 보존하는 또다른 방법은 바로 기억이다. 그러나 『아르카디아』에서 말하는 기억은 개인적인 체험이 아니다. 여기서 기억은 ‘이야기’의 다른 말이며, 함께 공유되고 자라나는 것이다. 소설의 프롤로그는 비트가 태어나기 전, 아직 해나의 뱃속에 있었던 시절의 어느 풍경을 보여준다. 그러나 비트는 그날을 ‘기억’한다고 말한다. 소설 속에서 기억은 이야기의 형태로 전해지고 공유됨으로써 그 이야기와 관계를 맺는 이들의 일부가 된다. 비트는 “우리가 자신에 대해 믿어왔던 이야기를 잃으면 우리는 이야기 이상의 것을 잃는다는 것을, 우리 자신을 잃는다는 것을 이해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평생 동안 쌓인 아름다운 이야기로 가득한 기억의 공간은, 가장 절망스러운 순간 다시 찾아갈 수 있는 최후의 낙원이 된다. 그리고 폐허가 된 과거와 음울한 미래 앞에서 미소 짓는 이 비관적인 이상주의자의 낙원은, 작가가 그리듯 펼쳐낸 문장들을 통해 나무로 자라고 꽃으로 피어나고 눈이 되어 내리면서 읽는 이의 마음속에 거대한 세계로 자리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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