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松 건강칼럼 (548)... 당신의 달맞이 소원은?
박명윤(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정월대보름 달맞이
“설은 나가서 쇠어도, 보름은 집에서 쇠어야 한다.” 즉, 객지(客地)에 나간 사람이 부득이한 용무로 설날에 집에 돌아오지 못했으면, 정월대보름에는 꼭 집에 돌아와야 한다는 뜻의 속담이다.
정월(正月)은 한 해를 시작하는 달로서 그 해를 설계하고, 일 년의 운세(運勢)를 점쳐 보는 달이다. 정월 초하루 ‘설날’ 후 보름 만인 2월 11일(토)이 올해 ‘정월대보름’이다.
음력 정월 대보름날은 우리 민족의 ‘밝음 사상’을 반영한 명절로 다채로운 민속이 있다. 즉 대보름 달빛은 어둠, 질병, 재앙을 밀어내는 ‘밝음 상징’이므로 개인과 집단적 행사를 한다. 중국에서는 정월대보름을 상원(上元)이라고 하며, 천관(天官)이 복을 내리는 날이라 한다. 여기에 중원(中元: 음력 7월 15일)과 하원(下元: 음력 10월 15일)을 함하여 삼원이라 부른다. 일본에서는 정월대보름을 소정월(小正月)이라 하여 명절로 삼고 있다.
대보름은 상징적인 측면에서 달ㆍ여성ㆍ대지(大地)의 음성(陰性)원리에 의한 명절로 <달>은 물의 여신이므로 대보름과 농경문화는 밀접하다. 땅과 달을 여성으로 여긴 것은 오랫동안 전해 온 지모신(地母神)의 생산력 관념에서 나온 것이다. <태종실록(太宗實錄)>에 있는 경기도 연안부의 용갈이, 용경(龍耕) 풍속이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기록된 홍주의 용경과 용알뜨기, 영동지방의 용물달기 등은 용신(龍神)신앙이 농경의례와 밀접함을 말해주고 있다.
정월대보름은 우리 세시풍속(歲時風俗)에서는 가장 중요한 날로 설날만큼 비중이 크다. 특히 동제(洞祭), 줄다리기 등 규모가 큰 행사들이 많다. 임동권(任桐權)이 쓴 <한국세시풍속>에는 12개월 동안 총 192건의 세시행사가 수록되어 있으며, 그 중 정월 한 달에 102건이 있어 전체 절반이 넘으며, 정월 대보름날 관련 항목수가 55건으로 정월 한달의 반이 넘는다. 이에 세시풍속에서 비중이 크고 뜻이 깊은 날이기 때문에 ‘대보름’이라고 일컫는다.
우리나라 세시풍속에서 <달>이 차지하는 비중은 <해>의 비중 보다 훨씬 강하고 크다. 실제 농경(農耕)을 위해서는 음력(陰曆)이 한 달 정도 자연계절과 차이가 생길 수 있기에 계절이 보다 정확한 태양력(太陽曆)적 요소인 24절기(節氣)를 쓰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 세시풍속에서는 여전히 <달>의 비중이 결정적이고, <대보름>은 바로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날로 여겨져 왔다.
정월(正月) ‘대보름’의 달빛은 어둠, 질병, 재액(災厄)을 밀어 내는 밝음의 상징이다. 설날이 가족 또는 집안의 명절인데 비해 정월 대보름은 마을의 명절로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집단의 이익을 위한 행사를 한다. 이에 정월 대보름에는 마을 공동의 기원인 풍년(豊年)을 기원하는 형태가 많다.
새해 첫 보름달이 뜨는 정월대보름에는 먹을거리가 풍성하고, 세시 풍속 놀이를 즐기며, 저녁에는 ‘달맞이’로 소원을 빈다. 대보름날을 전후해서 찰밥과 약밥을 먹는 풍속이 있으며, 절식(節食)으로 약밥, 오곡밥, 묵은 나물, 복쌈, 부럼, 귀밝이술 등이 있다. 쌀ㆍ조ㆍ수수ㆍ팥ㆍ콩 등 다섯 가지 곡물을 섞어 지은 ‘오곡밥’은 풍농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어 ‘농사 밥’이라고도 한다. 오곡밥을 먹는 시기는 일반적으로 보름날에 먹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오곡밥은 보름 전날에 먹고, 대보름날 아침에는 쌀밥을 먹는다.
찰밥에 공을 더 들인 것이 약밥(藥飯)이다. 즉, 찹쌀을 쪄서 대추, 밤, 팥, 꿀, 참기름, 간장 등을 섞어서 함께 찌고 잣을 박은 것이다. 전남 지방에서는 찰밥이나 약밥은 시루에 쪄서 성주께 올리기 때문에 성주밥 또는 시루(시리)밥이라고 부른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보름날의 좋은 음식인 약밥은 신라의 옛 풍속이라고 한다.
‘열양세시기(迾陽歲時記)’에는 약밥을 조상께 제사도 올리고, 손님에게 대접하며 이웃에 보내기도 한다고 나온다. 우리 선조들은 오곡밥과 찰밥을 이웃들과 나눠 먹으면서 풍농(豐農)과 안녕, 행복을 기원하고 액운(厄運)을 쫓았다. 성씨(姓氏)가 다른 세 집 이상 이웃집의 밥을 먹어야 운이 좋다고 전해져 서로 오곡밥 등을 나눠 먹었다.
정월 대보름에는 묵은 나물과 복쌈을 먹는 풍속이 있다. 오곡밥과 삶은 나물을 배추 잎, 취나물 등에 싸서 ‘복쌈’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여름에 호박고지, 무고지, 가지나물, 버섯, 고사리 등을 말려 두었다가 삶아서 나물로 무쳐 먹으면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정월대보름 아침 해뜨기 전에 만난 사람에게 “내 더위”하며 더위를 파는 풍속이 있으며, “내 더위 사라”며 친구나 지인들에게 더위를 팔기도 한다.
귀밝이술(耳明酒)은 대보름날 아침 식사를 하기 전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데우지 않은 청주(淸酒)를 마시는데, 아이들은 입술에 술을 묻혀만 주고 마신 것으로 여긴다. 귀밝이술을 마실 때 어른들은 “귀 밝아라, 눈 밝아라.”라는 덕담을 한다. 이는 귀가 밝아진다는 의미와 일년 내내 기쁜 소식을 듣기를 바라는 것이다.
부럼(부스럼)깨기 풍속에 관하여 <동국세시기>에는 “상원 이른 아침에 날밤, 땅콩, 호두, 잣, 은행 등 견과류를 어금니로 깨물거나 까먹으면서 ‘올 한해 무사태평하고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해 주십시오’라고 축수하니, 이것을 이굳히기(固齒之方)라고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부럼깨기에 견과류 대신에 부드러운 ‘무’를 대용하기도 한다.
기복(祈福)행사로 볏가릿대 세우기, 복토(福土)훔치기, 용알뜨기, 다리밟기, 나무 시집보내기, 백가반(百家飯)먹기, 나무 아홉짐하기, 곡식안내기 등을 행한다. 또한 농점(農占)으로는 달집태우기, 사발재점, 그림자점, 달불이, 집불이, 닭울음점 등이 있다. 낮에는 연날리기, 윷놀이 등 다양한 전통놀이를 즐긴다.
마을 주민들은 한데 모여 한 해의 무사태평(無事泰平)과 풍년(豊年)을 기원하는 의식을 진행 했다. 또한 주민들이 함께 줄다리기나 고싸움을 하면서 결속과 단합을 다지기도 했다. 정월 대보름 저녁에 뜨는 보름달의 달빛은 질병(疾病)과 재앙(災殃)을 밀어낸다고 여겨 상서로운 기운이 충만하다고 본다.
‘달집태우기’는 정월대보름 달이 떠오를 때 나뭇가지 등을 모아 만든 달집을 태우면서 풍요로운 새해를 기원하고, 액운을 내쫓는 세시(歲時) 풍속이다. 달집에 불이 붙는 것을 신호로 논둑과 밭둑에 ‘쥐불놀이’를 한다. 서화희(鼠火戱)는 논밭두렁의 잡초와 잔디를 태워 해충(害蟲)의 피해를 줄이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지신(地神)밟기’는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집터를 지켜준다는 지신에게 고사(告祀)를 올리고 풍물을 울리며 축복을 비는 세시풍속이다. 일부 지방에서는 대보름 전후 ‘사자(獅子)춤’ 놀이를 한다. 특히 함경도 북청 사자춤은 유명하다. 사자는 백수(百獸)의 왕으로 동네의 잡귀를 내쫒고 안과태평(安過太平)을 빌었다. 사자를 부처님 사자(使者)로 여기며, 봉산탈춤 등에도 나온다.
서울 남산골 한옥(韓屋)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을 맞아 다양한 세시 행사가 열린다. 즉, 오곡밥 시식, 부럼 깨기, 귀밝이술 시음 등 정월 대보름날에 지키던 옛 풍습을 체험할 수 있다. 해가 지고 보름달이 뜨면 한옥마을 입구에 있는 천우각(泉雨閣) 마당에서 ‘달집태우기’를 한다.
매년 수만 명이 몰려 장관을 이루는 부산 해운대 ‘달집태우기’는 드넓은 백사장에 10m가량, 건물 3층 높이 정도로 생소나무 가지 등을 쌓아올려 만든 달집을 태운다. 올해는 달이 뜨는 시각인 11일 오후 6시 22분경에 시작한다. 활활 타오르는 달집을 배경으로 강강술래가 펼쳐지고, 시민들이 참여하는 ‘대동놀이’도 이어진다.
강원도 삼척에서는 2월 10-12일에 열리는 ‘정월대보름제’에서는 ‘기줄다리기’가 펼쳐진다. ‘기줄다리기’는 1662년 조선시대 삼척 부사(府使) 허목(許穆, 1595-1682)이 저수지 축조 공사를 위해 고안한 것이다. 기줄의 ‘기’는 ‘게’의 삼척지방 사투리이다. 기줄은 한쪽 줄이 4가닥씩, 모두 8가닥으로 나뉘어 게 다리 모양을 연상케 한다. 800kg에 달하는 기줄을 줄꾼들이 당기며, 11일엔 시민 426명이 참여하는 전통 ‘기줄다리기’가 열린다.
정월 대보름은 달을 표준으로 삼던 태음력(太陰曆)에서 일년 열두 달 중 첫 보름달이 뜨는 날이다. 이에 지금도 대보름날은 설날처럼 여기는 풍속이 많이 남아있다. 올해 대보름달이 뜨면 어떤 소원을 빌 예정인지요?
글/ 靑松 朴明潤(서울대학교 保健學博士會 고문, 대한보건협회 자문위원, 아시아記者協會 The AsiaN 논설위원) <청송건강칼럼(548). 2017.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