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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의식의 유형과 작동 양상
- 품맛과 손맛 그리고 눈맛 -
권대근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Ⅰ. 열며
이제 수필 창작 과정에서 발견되는 미의식의 유형에 대해 살펴보자. 데소와르는 미적 기본 형태를 순수미, 추미, 숭고미, 우아미, 비장미, 희극미 등으로 분류하여 미적 감정의 질적 차이를 원환적 도식으로 보편화하였지만, 그것이 주제적 차원에서 발견되는 미의식이라 수필 전체를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 필자는 수필미학을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향, 멋, 맛 등으로 삼원화하였다. ‘향’은 인물과 사건의 차원에서 발견되는 일종의 미의식이라면, ‘멋’은 배경이나 분위기 차원에서 발견되는 미의식이다. ‘맛’은 주제 차원에서 발견되는 미감이라 하겠다.
중국에는 시법이 있어, 모든 문필가들이 창작에 앞서, 이 시법을 읽는다고 한다. 시조시인 황산 고두동은 우리나라 문인들이 시법도 모르고 글을 쓴다고 질타한 바 있다. 문학 창작에 어떤 틀이 있다면, 그 하위 부류에 속하는 수필 장르에도 무슨 법이 있음직해서 고민해 본 결과, 수필은 세 가지가 삼위일체를 이루어 문학의 품격, 즉 문학성을 갖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필자의 가설에 불과하다. 필자는 오랫동안 수필을 쓰면서, ‘수필다운 수필이 되려면 어떤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가’ ‘수필의 문학성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골몰하게 되었다. ‘이것이 수필이다’ 했을 때, 적용될 수 있는 기준이나 요건이 이론적으로 뒷받침되어야 우리 수필이 문학의 자리에 당당히 설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수필다움의 평가 영역을 설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를테면 수필은 세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름하여 <隨筆 有三>이다. 하나는 <향>이요, 이는 맛으로 치면 품맛이다. 두 번째는 <멋>이요, 이는 손맛이다. 마지막으로 <맛>이다. 이는 눈맛이다. 흔히 수필 작품을 감상하거나, 해설하면서 향기가 있다느니, 맛이 있다느니, 멋이 있다고들 하는데, 정작 향기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냐고 물으면, 우물쩍거리게 되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용어 하나라도 제대로 정확히 알고 사용해야 함이 마땅할 것 같아 그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위에서 살핀 바와 같이 수필은 품맛과 손맛 그리고 눈맛을 밑거름으로 하여 피어난 꽃이라 할 수 있다. 꽃도 생태에 따라 향기를 달리하듯 수필 또한 어느 특성에 치중했느냐에 따라 성격을 달리한다. 그러나 그 성격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을 가지면서 하나의 수필로 집약되어져야 한다. 본고의 목적은 수필문학의 문학성을 보다 확실하게 구축한다는 차원에서, <수필 유삼>을 수필 창작에 있어서 일종의 <필법>으로 정착시켜, 창작 이론 모형으로 발전시켜 보자는 데 있다.
Ⅱ. 펼치며
1. 수필의 <품맛>
수필의 ‘향’ 즉 ‘품맛’은 인물과 사건 차원에서 발견되는 미감이다. 이는 체험의 진실성과 탁월한 상상력 등이 종합적으로 혹은 유기적으로 촉발시킨다. 인격미, 개성미, 문화미, 관조미, 장인미, 순수미 등이 인물의 특성 속에서 촉발된다고 하겠다. 인격미는 인물이 지니고 있는 인간적 품격과 격조의 미를 의미한다. 이는 대체로 바람직하지 않은 체험을 통해서 바람직한 상태로의 인식의 전환이나 깨달음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인간적 격조를 내뿜는다고 하겠다. 개성미나 문화미, 관조미나 장인미, 순수미 등도 인물의 특성과 인식행위 등에서 촉발되는 미감이라 하겠다.
수필은 향기가 나야 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향기가 없으면 생명이 없는 조화나 다름없다. 수필의 향은 품맛이다. 수필은 글감의 발견으로부터 시작되는 글이다. 글감의 발견은 작가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로부터 글감은 비로소 나에게 새로운 존재가 된다. 품맛이란 글감 자체에서 나는 맛이다. 수필에 있어서 글감은 수필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요소다. 수필의 본질적 요소에서 보면 향기는 제재에 해당한다. 윤오영은 '내가 발견하고 내가 거두지 아니하면 건져 줄 이 없는 가치, 버릴 수 없는 인생의 향기를 풍겨주는 것이면 더욱 좋고, 될 수 있으면 이런 소재를 발견하고, 이런 소재를 찾으면 이미 절반은 성공이다.'라고 하였다. <향>이 있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함의하는가. 꽃도 향기를 갖고 있고, 사람도 그 나름의 향기를 낸다. 과연 수필의 향기, 아니 수필다운 수필이 내는 향기는 어떤 것일까. 향기는 정서적 감화를 이끄는 모든 문장에 두루 통용될 최대공약수다. 수필에 있어서 문장과 함께 생명적이며 매력적 요소라 할 수 있다.
좋은 글을 잘 익은 포도주에 비유하는 것은 그 숙성 과정에서의 오랜 기다림이 만들어낸 짙은 향기와 그에 따른 고아한 빛깔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삶은 발효제다. 글감은 누룩이나 술에 담긴 과일과 알곡에 견줄 수 있다. 이는 수필이 어떠하든 궁극적으로 인간의 문제가 담기면서 감동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명수필의 향기는, 그래서 일생 동안 가슴의 내부에서 번득이는 영원한 메아리에 있을 것이다. 여자의 향기는 절반이 속임수라고 한 사람이 있다. 이는 외부의 번득임이 내부의 번득임에 미치지 못한 데 대한 실망의 푸념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삶의 질이다. 술의 질이 과일이나 알곡, 발효제와의 혼합 상태에 따라 결정되듯 삶의 질도 그것을 위한 노력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향기 있는 문장, 향기 있는 수필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진실>이 있으면 그만이고, 타고난 <소박>이 깃들였으면 그만이고, 독자와 손 마주 잡을 <눈물>이 있으면 그만이다. <진실>, <소박>, <눈물>이 내는 휴머니즘을 능가할 향기가 어디 있겠는가.
수필의 향기는 인간애를 강조한 말이라 볼 수 있다. 지나친 화장은 오히려 역겨움을 주듯, 수필도 ‘미감’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주제를 너무 과장하거나 호들갑을 떠는 기교를 부린다면 품위 없는 문장으로 전락한다. 어디까지나 ‘진실’과 ‘소박’과 ‘눈물’을 바탕으로 해야 할 것이다. ‘아름다운 조화에는 나비가 안 가도, 쓴 냉이꽃에는 나비가 앉는다’는 말은 향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준다고 하겠다.
수필은 정의 문학이다.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고귀한 것이 정이다. 이는 생명의 근원인 에너지와 비유될 수 있다. 현대적 특징인 단절과 소외는 바로 정의 목마름 때문이다. 인간의 정은 삶의 향기요, 휴머니티의 다른 말이다. 인간애의 구현은 감동의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가슴 찡한 사연, 다시 말해 <글감>은 이미 표현 이전에 감동의 씨앗을 잉태에 있다고 할 것이다.<눈물>, <소박>, <진실>이 복합되어 창출할 수 있는 향기로는 1)체험성, 2)서정성) 3)진실성, 4)영원성, 5)인간성이다.
가. 체험성 - 고뇌와 환희
수필 창작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시되는 것은 인간의 삶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문학에서도 인간의 삶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루지만 수필에 있어서는 개인의 체험을 중시한다. 체험은 삶의 길잡이이고, 내일의 새로운 지혜를 여는 열쇠다. 수필의 제재는 가급적 자기 자신의 경험한 사실을 택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소설가는 가상을 전제로 한 미지의 이상적인 세계에 몰입하여 허구의 진실을 유추해내는 과정을 거친다. 이때의 진실은 사실적이고 실질적인 인간의 삶 자체가 아닌 여과되고 가공된 인간 삶의 진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수필에서는 사실적이고 실질적인 진솔한 삶의 체험이 육화되어 서정성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수필은 생활의 텃밭이 아니면 자랄 수 없는 식물이다. 미국의 윌리엄 테너는 <essay and essay writing>에서 글감 25개를 제시했는데, 전부 인간 생활에 바탕을 둔 경험적 사실이라는 것이다. 어떤 분은 글감은 좋은 글을 쓰는 데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글감의 종류나 대상이 문제가 아니라 수필로 잘 빚어냈느냐, 못했느냐가 열쇠지 글감 자체는 수필하고 별 관계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수필감으로 수필을 빚어야 감동을 줄 수 있는 글이 된다. 다시 말해 글감과 주제가 잘 어울리게 만날 때 그 글감은 아주 좋은 작품을 빚게 한다는 것이다. 수필에서 진실은 곧 미다. 수필이 추구하는 진실은 시와 소설의 진실과는 다르다. 말하자면 허구라는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체험적 사실 속에서 진실을 발견하여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 예문 1 >
세 사람은 묵묵히 가묘가 있는 곳으로 오른다. 무심히 보아오던 바위 하나 풀잎까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연분홍 영산홍이 방긋이 반기고, 남천은 하얀 꽃을 달고 그 속에 숨어 있다. 옆에는 산토끼가 새 싹을 뜯어먹는다고 바쁘게 움직인다. 검은 비닐로 씌었던 조그마하던 동백이 번들거리며 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대견스럽다. 조금 있으면 백일홍이 여기저기서 인사를 할 것이다. 초봄부터 개나리, 진달래, 장미, 영산홍, 석류, 수국, 무궁화가 차례로 꽃을 피울 것이다. 집을 지키는 양옆에 선 노송나무를 비롯하여 향나무, 단풍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를 보면 선산은 마치 수목원 같다. 얼마 전 어머니가 잡초를 뽑아 잔디는 말갛게 세수를 한 느낌을 준다. 잔디 귀퉁이 솔바람 그늘에 앉으니 앞이 툭 틔어 동네가 한 눈에 보이고 저 멀리 바다도 보인다.
- 정문자, <상여소리> -
우리네 삶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사랑’과 ‘죽음’이다. 인간이 어느 한 순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주체의 의지에 관계없이 맞아들여야 할 것 중에 하나가 '죽음'이다. 죽음은 삶을 완성하는 한 형태가 될 수도, 모든 것을 허망하게 버리는 삶의 무상일 수도 있다. 죽음을 바라보는 작가의 모습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자연의 이법에 따라 자신이 묻힐 공간에 서 보는 부녀의 모습이 초봄부터 핀 꽃들의 배경으로 아름답게만 보인다.
그녀의 글을 따라 가면 자연이 평화롭게 수놓아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툼도 시기도 질투도 없다. 그녀가 품어 안는 자연은 연산홍이 반기고, 백일홍이 미소를 보내는 곳이다. 갖가지 화초들과 수목들이 빽빽하고, 나무가 없는 중심자리에는 잔디가 예쁘게 단정되어 있다. 가묘가 놓인 자리는 명당이다. 앞이 툭 틔어 동네가 보이고, 저 멀리 바다도 보인다.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진 산 능선에 작가가 위치하고 있지만, 작가의 모습은 참 편안하다. 자연과 동화된 모습이 선연하게 보인다. 작가는 체험 그대로를 통해 죽음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새롭게 하면서 진실을 구현해 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나. 서정성 - 순수와 소박
수필은 참을 희구하는 글이다. 삶에서 참이 결여될 때, 일체의 지식과 기능은 도리어 인생의 참을 은폐, 왜곡하는 수단으로 전락한다. 그러기에 우리가 양심적인 경우일 때만 비로소 글감을 진리를 드러낸다. 일체의 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의 태도부터 참되어야 한다. 솔직하고 순수해야 한다. 중국의 <시법>에 “재부 불아”란 말이 있다. 글을 쓸 때, 재주를 부리면 안 된다는 말이다. 수필가가 순수한 의도에서 글을 쓰지 않고 자기를 과시하고자 하는 동기를 따라서 글을 쓸 때, 그 작품은 결정적으로 실패한다는 것이다. 순수한 의도로 은연중에 작가의 인품이 작품에서 풍길 때 독자는 기쁜 공감에 젖게 된다. 솔직함은 그 자체가 미덕일 뿐만 아니라 마음의 여유와 결합하면 해학을 낳기 때문에 수필에 읽는 재미를 준다. 자신의 경험 중에서도 모자라고 부족한 부분을 솔직하고 꾸밈없이 다루면 좋은 작품이 되는 것이다.
수필을 쓰는 과정은 자기 자신과의 진실한 대면을 도모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을 통해 우리는 인간적 향내를 지닌 존재를 다시 태어나야 한다. 아래 예문은 생활인으로서 사색과 관조를 통해 행복을 느끼는 소박한 여인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는 글이다.
< 예문 2 >
머리엔 희끗희끗 백발을 이고 노안엔 굵은 주름살이 살아온 역사를 대변해 주고 있다. 희미한 시력 속에 선명히 돋보이는 것은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어 온 해로의 참뜻은 아닐까. 황혼의 저녁 노을을 바라보듯이 조금은 처연한 심회로 서로의 마음을 애무하며 흘러가는 물처럼 유장하고, 담담한 부부애의 실상을 보게 되리라. 참으로 멀고도 험한 길을 쓰러지지 않고 용케도 참고 견디어 왔다는 만족감에 스스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백년 해로의 명세가 헛되지 않음에 감사드릴 테지.
- 오승희, <부부애> -
오승희의 <부부애>에 실린 한 구절은 객관화된 자기 표백이다. 이렇듯 넘어온 부부고개의 마음 샘에 고인 감사와 충족의 마음은 자아 관조를 통한 사색의 결과라 하겠다. 문학의 행위는 맺힌 삶을 풀어가는 인간의 가장 순수한 모습이다. 가장 순수할 때 가장 아름다운 것이고, 가장 아름다울 때 가장 감동적인 것이다. 문학은 이 땅의 참되고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을 영원하게 하는 예술인 것이다. 이 땅의 여성들은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그리움과 기다림을 키우면서 자아를 성찰해왔다.
다. 진실성 - 고백과 구원
수필은 개성이 유달리 강한 일종의 고백적 자조문학이다. 그래서 수필은 ‘자화상 그리기’로 표현되기도 하고 자기를 비추는 거울이라고도 한다. 문학의 어느 장르나 개성을 중요시하지만 수필만큼 노골화하지는 않는다. 그 점에서 수필은 개성의 향취가 물씬하게 풍기는 글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자기의 체취나 마음을 송두리째 맛보게 하는 글이다. 수필은 미지근해서는 안 된다. 콧등을 시큰하게 하든지 눈시울을 붉게 하든지 둘 중 어느 하나의 특성을 가져야 한다. 수필 속에는 눈물과 고뇌, 아픔과 슬픔과 기쁨이 있어야 한다. 진실한 수필은 삶의 고뇌로부터 열린다. 고뇌가 고뇌로 거쳐서는 안 된다. 그 고뇌의 진통은 삶을 심화시키고 삶의 환희를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삶 속에서 느낀 감흥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 그 고백이 우리의 가슴을 울려야 하는 것이다.
< 예문 3 >
아무도 거들어 주지 않는 채마밭 들일을 ‘다음 번 봄비가 내릴 때’로 연기하고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이젠 마음까지 텅 빈 듯 좀처럼 봄비조차 내리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중략) 지금 형편으로 봐서는 어머니가 소생할 희망은 거의 없다. 정말 어머니마저 먼 길을 떠나시고 나면 봄비가 내린들 그 비를 맞고 상추와 실파가 자란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봄비, 나를 울려주는 봄비.
- 구활, <나를 울려주는 봄비> -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그가 거처했던 일상의 공간과 사라지거나 헤어진 이후에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실체와의 인연이다. 작가는 노모를 모시고 산다. 봄비만 오면 “옥상의 텃밭에 나가 씨를 뿌리며 ‘애비야, 이것은 이렇게, 저것은 저렇게’라고 작업 지시를 하시며 감사와 흡족으로 충일하셨던 어머니”가 지금은 치매로 ‘가망없이 누워 계신다.’ 이 땅에 부모의 자식이 아닌 자는 아무도 없다. 현대를 살아가면서 부모에게 죄인이 아닌 자가 있을까. 봄비를 맞으며 꺼이꺼이 울고 있을 작가의 그 슬픔에 동감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라. 영원성 - 사랑과 죽음
독일의 철학자 피히테는 ‘사랑은 인간의 주성분’이라고 설파했다. 주성분이 빠진 인간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역설을 가져다 주는 말이다. 사랑은 인간의 근원이 된다는 의미다. 인간의 행동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루소의 말처럼,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랑이 없는 인생을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인간은 동물에 속하면서도 인간을 보고 동물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첫째, 인간은 다른 어떤 동물보다 사고력이 뛰어났기 때문이요, 둘째로는 인간들은 서로 모여서 이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만물의 영장인 우리 인간에게 공통되는 본질이 있다면, 그것은 생(生)과 사(死)라는 운명일 것이요, 영혼과 육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신과 동물과 다른 점은 인간들에게는 자기 생각에서 스스로 만들어 내는 욕망이 있는 것이다. 이 욕망을 선한 의지로 승화시키는 일이 인간다운 삶의 과제가 아니겠는가.
< 예문 4 >
어느 날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다. 당직이라 저녁을 먹고 학교에 들렀는데 여 선생이 퇴근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말없이 운동화로 갈아 신고 양동이로 퍼붓듯 하는 비를 맞으며 운동장을 뛰기 시작했다. 여선생은 그 모습을 보면서도 아무 말 없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퇴근을 하고 있었다.
마흔 바퀴를 돌았을까? 마침내 지친 나머지 나는 사랑을 고백했던 팽나무 밑에 쓰러지고 말았다. 왜 그렇게 눈물은 흐르는지 이건 빗물인지 눈물인지 구분이 안 되었다. 천둥소리마저 요란하게 밤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이듬해 여선생은 다른 학교로 전근을 한다. 그런데도 나는 잊을 수가 없었다.
세월이 흘러 군대에 가게 되었다. 어쩌다가 보초를 서게 되는 밤, 중천에 있는 달을 쳐다보게 되면서 나는 여 선생을 생각하곤 하였다. 그런 세월이 일고 여덟 해였으니 나의 집념(?)은 어지간한 셈이다. 꼭 십 년 뒤에 나는 그 때의 여선생과 11살이나 차이가 나는, 그러니까 나보다 9살이나 연하인 다른 여선생인 현재의 아내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이러니 어찌 사람의 인연을 묘하다 아니할 수 있으랴.
- <첫사랑> -
첫사랑의 기억은 누구에게나 아름답게 남는다. 수필 <첫사랑>은 자신의 첫사랑에 얽힌 추억담이 질펀하게 녹아 있다. 결혼 초창기 첫사랑 이야기를 수필화했다가 필화사건을 유발한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생의 동반자가 이 글을 읽을 텐데도 불구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연애담을 털어놓을 수 있는 작가의 용기에 감복하게 된다.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 많은 만남을 이루기도 하고, 그만큼의 이별을 체험하기도 한다. 프랑스의 시인 마리 로랑생은, ‘죽은 여자보다 좀더 불쌍한 여인은 잊혀진 여인’이라고 했다. 사랑했던 사람으로부터 잊혀진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에는 만남과 이별의 인생사에 운명적으로 내재된 비극이 녹아 있다. 인간은 모든 사람들과 헤어질 수밖에 없는 유한적 존재로서의 운명을 타고난다. 그러나 이 작품은 결구 부분을 통해 인간의 모든 만남은 비극을 예고하고 있지만 그 비극은 또 다른 행복의 씨앗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수필 <첫사랑>은 인간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이별의 아픔이 녹아 있다. 한 남자와 여자가 결혼 전에 겪는 인생의 한 단면이 제시되어 저마다의 가슴에 숨어있는 추억을 환기시킨다. 작가는 첫사랑 그 여인과 헤어지고 난 후, 여덟 해 동안을 그리움에 애타하였고, 끝내는 첫사랑 그 연인이 아닌 다른 여인과 결혼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진솔한 고백으로부터 촉촉한 감동의 힘을 느끼게 된다. 잊을 수 없는 사랑의 끈을 붙들고 절규해야 했던 한 젊은 초상이 신선하게 그려져 있어 더욱 아름답다.
마. 인간성 - 자책과 정한
수필 쓰기를 문장론적인 면에서만 생각하는 것은 적어도 수필의 본질론적 측면에서는 잘못된 것이다. 인생의 경험을 쌓고, 책도 많이 읽고, 풍요로운 마음이 깔려 있지 않으면, 인간을 납득시킬 수 있는 문장을 쓸 수 없는 것이다. 수필은 무엇보다도 작가의 훌륭한 인격을 요구한다고 할 수 있다. 기술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그 인격이 글을 쓴다고 볼 수 있다. ‘수필이 붓 가는 대로 가는 글’이라 한 의미도 어쩌면 여기에 있을 지도 모른다. 이쯤에서 하버드 대학의 C. T. Copeland 교수의 말을 음미해 볼 수 있겠는데, 그는 모범적인 수필가는 “구경꾼이요, 방랑자요, 빈들거리는 게으름뱅이요, 가장 좋은 의미에서의 ‘세계시민’이어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수필가는 대상을 예리하게 관찰하는 습관이 있어야 할뿐만 아니라 경험이 풍부하고 여유작작한 멋을 지니고 풍류도 알아야 하며, 풍부한 교양을 갖춘 지식인이어야 함을 뜻한다. 쿠퍼랜드 교수가 말한 모범적인 수필가의 요건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겠다. 그의 인간적 특성에서 가장 강하게 풍기는 것은 건강한 평민의식이다.
< 예문 5 >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른다. 강원도 깊은 골짜기에 살면서도 삭막하지 않고 티없이 맑은 그녀. 병든 시어머니를 모신 처지에 남편은 배를 타고 외국으로 가고 아들 둘은 군에 가 있으니 여간해서 꺾이지 않는 그녀이지만 견디기 힘들 것이다. 나는 누굴 위해 무엇을 했을까. 나만 잘 되려고 남의 아픔쯤은 예사롭게 생각지 않았을까. 교만하고 배타적인 생각과 태도를 버리고 내 이웃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 윤이 나는 까만 스웨터를 입어 본다. 그녀의 따스한 마음이 배어 있어 포근하다.
- < 뜨개질하는 여인> -
윗글 <뜨게질하는 여인>에는 친구의 인격에서 얻어지는 미감이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인격미는 놀라운 힘으로 작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하고 있다. 뜨개질하는 여인은 달동네인 초장동으로 시집을 오고난 뒤 알게 된 이웃의 친구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배울 점을 남기는 그야말로 한 남편의 아내로서 도리를 다하는, 어머니로서 마음이 착하고, 경우가 바른 그런 친구였다. 배를 타는 남편을 기다리며 싼 털 스웨터로 이웃의 노인들을 보살피는 등 인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강원도로 이사를 간 친구 분이가 보낸 편지를 받고, 작가는 그녀의 인정과 삶에 감동하고 무의미한 일상에 비치는 자아의 투영을 보면서 지금까지의 삶을 자성하며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2.. 수필의 <손맛>
수필의 ‘멋’ 즉 ‘손맛’은 대상의 물질적 본질과 본성으로부터 촉발되는 질료미와 배경이나 분위기 차원에서 발견되는 미감이다. 제재 차원에서 감지되는 형태미나 질료미는 상상력의 작동 과정에서 주제를 만들어내기 위한 기본 이미지를 촉발한다는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배경이나 분위기 차원에서 발견되는 미의식은 비유라는 수사법적인 활용에서 잘 드러난다. 비유의 힘을 빌려서 주제나 인물의 성격을 유사성이나 동일성 등을 함유한 미의식으로 암시하는 경우, 수필에서 소위 말하는 ‘멋’을 낼 수 있다.
수필에 있어서 <멋>이란 어떤 것을 의미할까. 바로 손맛이다. 품맛이 향기를 의미한다면 수필의 멋은 빛깔에 해당한다. 문학을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로 보면 <형상>에 해당된다. 수필에는 <멋>이 우러나야 한다. 여기서 멋이란 정서의 문학적 형상화를 의미한다. 이렇듯 같은 이야기라도 그것을 어떻게 형상화시키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의미는 달라진다. 하나의 대상이나 사건은 작가의 손에 의하여 형상화되는 과정에서 내용이 변질된다. 그것은 작가의 세계관에 따라 그 관점이 달라질 수 있지만 그보다는 작가의 기교가 무엇보다도 큰 자리를 차지한다. 이것이 창작의 특수성이다. 수필은 주제 전달의 과정, 즉 형상화에서 문학성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마음의 눈이 밝은 정서적인 사람만이 수필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정서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바로 "멋"이다. "멋있는 사람"이란 정서가 풍부한 사람을 일컫는다. 언어를 감정 그대로 노골적으로,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부드럽고 윤택하게 각색해서 함축성 있게 표현하는 데서 풍기는 분위기, 그것이 곧 멋이다.
어떻게 하면 멋진 언어가 저절로 구사되고, 멋진 행동이 저절로 나올까? 마음속에 맑고 깨끗한 거울을 달아 두어서, 언제나 자신의 영혼을 가만히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마음속에 해맑은 옹달샘을 파두어서 넘쳐흐르는 물로 마음에 묻은 얼룩과 때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깊고 은은한 소릴 내는 종을 달아 두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 양심의 종을 스스로 울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마음의 눈도 밝아질 것이다. 마음속에 작은 꽃씨를 가져서 항상 자신의 주변을 아름답게 가꿀 줄 아는 지혜도 <멋>을 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주제의식의 전달방법, 즉 대상이나 사건의 형상화 기법을 살펴보는 것이 곧 수필의 <멋>을 창출하는 일이다. <멋>을 내는 기법에는 네 가지가 있다.
가. 주제의식의 의미화
의미화란 주제의식을 구체화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자기화의 수법이다. 기법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작가 자신의 독창적인 수법인 것이다. 때문에 그 의미화 작업은 틀에 매인 방법이나 요령으로서는 절대 불가능한, 작자 나름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으로 주어진 제재를 분석하는 개성이요, 이해하는 마음인 것이다.
(a) 격정의 밤이 깊어 한 줄기 밧줄 같은 소나기라도 쏟아져 보라. 바람도 자고, 맑게 갠 이튿날 아침, 하얀 모래밭에 흩어진 빨간 꽃잎들이야 말로 임을 그리다 지쳐 병실의 하얀 침대요 위에 쏟아 놓은 30대 여인의 각혈이 아니겠는가.
(a)는 오창익의 <해당화>란 수필의 종결구다. 주제는 ‘열애’다. 바다 건너 멀리 떠나간 임을 그리는 여인을 해당화에 비유하고, 그를 기다리다 지친 여심을 비바람에 진 빨간 꽃잎으로 의미화하여 “30대 여인의 각혈”이라 했다. 이는 수필다운 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사물이나 사실에서 의미를 캐어내는 의미화를 거쳐야 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나. 종결어미의 회화화
문학다운 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언어의 구체적인 형상화를 거쳐야 한다. 수필에 있어서 언어는 수필어로 묘사되어야 할 것이다. 정적인 이미지를 동적 이미지로 바꾸어 놓으면 수필어가 된다. 시각어를 통해 종결어미를 설명보다 묘사를 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서술어를 회화화한다는 것은 상투적이고 진부하고, 이미 눈과 귀에 익은 표현을 되도록 피하기 위해 설명적인 정적 서술어를 동적으로 영상화한다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언어들이 엮어내는 이미지를 새롭게 창출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서술어에 힘을 실어주면 언어는 활기를 띠게 된다. 이런 표현은 아주 재미있는 특질이 있어 산 언어를 접한 듯한 느낌을 준다.
(b) 요란한 뻐꾸기 소리가 창가에까지 들려왔다. <c> 요란한 뻐꾸기 소리가 창을 흔들고 있었다. (b) 단풍이 온 산에 붉게 타오르고 있기에 발이 절로 멈춰졌다. <c> 붉게 타오르는 단풍이 발을 붙들고 놔 주질 않았다. (b)월남의 더위, 그것은 하늘에 불화로를 달고 지상으로 내쏘는 용광로였다. <c> 월남의 더위, 아스팔트 길에 군화 자국이 5cm나 되게 박혔다.
<c>는 (b)의 서술어를 동적으로 회화화한 문장이다. (b)보다 훨씬 더 <c>가 감각적 구체성을 띠면서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다. 수필문장의 함축화
문장이 비유를 만나면 멋을 내면서 더욱 진솔해지고, 참신성을 띠게 된다. 수필 문장은 다른 산문어와는 달리 본질적으로 함축성이 담겨야 하는 것이다. 비유는 필자의 느낌이나 생각을 독자에게 더욱 정확하게, 참신하고 생동감 있게 진실하게 전달하는 구실을 한다. 추상적이고 복잡한 사상을 표현할 때, 비유를 쓰면 구체적이고도 간결하게 나타낼 수 있다. 사람들은 구체적이고 단순화된 것을 더 오래 기억하는 법이다.
(d)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세상은 온통 불바다, 거기에 데일세라 몸을 움츠리고/ 아, 그의 정열은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불기둥이었다./ 유리컵이 얼음 같다./ 아버지의 노기에 찬 음성이 나무에 얹힌 눈조차 떨어지게 울려왔다.
(e) 산골의 날씨는 무섭게 추워지려는데 짝을 버리고 혼자 남쪽으로 갈 수 없었던 애절한 황새의 정, 조류에 따라서는 암수의 애정이 별스런 놈도 있지만, 그것이 모두 그들의 본능이라 했다. 그러나 어쩐지 그들의 하찮은 본능이 오늘 따라 인간의 종교보다 더 거룩하고, 예술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 김규련의 <거룩한 본능>, 결말 부분 -
(d)는 문장을 비유나 상징을 사용하여 문장을 함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e)는 작품의 주제를 드러나지 않게 함축해서 문장의 분위기 속에 깔아두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이미지를 창조하는 작업인 것이다. 수필에 있어서 함축은 문학성과도 밀접히 관계한다.
라. 중심사상의 상상화
훌륭한 주제가 중요한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전하는 방법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아무리 감동적인 것이라고 해도 그 주제는 대개 평범한 것이다. 그것이 만일 쉽게 설명투로 표현되었다면 별로 감동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표현의 방법이 주제의 무게와 가치를 결정한다. 그리고 그 표현 방법의 핵심은 대개 상상력을 유발시키는 이미지 성공 여부에 달려 있기 쉽다. 자연에 대한 사랑이 소중하다는 주제를 전하기 위해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 등을 많은 지식을 통해서 설명하는 것으로 성공하기 어렵다. 다만 그 같은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감동을 주는 장치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 장치가 바로 상상화다. 주제단락의 상상화, 즉 문장을 통한 중심사상의 상상처리는 바로 그 주제의 효과적이고도 원활한 의미전달을 위해서다. 수필의 주제 전달은 정서의 구체화로서만 가능하기에 그 방법은 지적이기보다는 정적이어야 하고, 직접적이기보다는 간접적이어야 효과적이다. 다시 말하면, 그 내용이 설사 교훈적인 것, 비평적인 것, 지시적인 것이라 해도 그 전달은 어디까지나 독자로 하여금 깨닫게 하고, 느끼게 하고, 공감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심사상의 상상화는 미적 감동과 충격을 주기 위한 필수적 전략이다. 주제의 전달 방법은 어디까지나 상징, 암시, 생략 등 상상적일 수밖에 없다.
(e) 어떻든지 그믐달은 가장 정 있는 사람이 보는 중에 또한 가장 한 있는 사람이 보아주고, 또한 가장 무정한 사람이 보는 동시에 가장 무서운 사람들이 많이 보아준다. 내가 만일 여자로 태어날 수 있다면 그믐달 같은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
(e)의 마지막 주제문, “그믐달 같은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는 문장은 ‘고독’이란 글의 주제의식을 상상화한 것이다.
마 주제의식의 구체화
주제의식의 구체화란 선택된 소재에 대한 자기 해석의 한 방법으로써, 제재를 개인적인 경험으로 자기화하는 관점이다. 주제와 구성 그리고 상상은 문학의 3요소다. 특히 수필은 주제와 제재를 기본 요소로 하기 때문에 주제의 구체화는 매우 중요하다. 주제란 한마디로 글의 중심사상이다.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는가의 요지요, 주안점이다. 흔히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쓴다느니, 무형식의 글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붓 가는 대로 쓰고 형식이 없다고 해도 일관된 주제가 있어야 한다. 일관된 주제가 있으면 그 글은 붓 가는 대로 써지는 글이 아니다.
주제는 이야기의 뼈대가 되는 동시에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요, 맥락이 된다. 옆길로 나가다가도 주제를 바로 찾거나 세우면 그 글은 다시 바른 궤도로 돌아오기 마련이며 중간에서 막히지 않고 술술 풀려 나가게 된다. 그리하여 주제는 문장의 정점이요, 목적지며 일관성과 통일성을 생명으로 한다. 일관성과 통일성은 수미가 서로 맞아야 한다는 말이다. 머리와 꼬리가 맞지 않으면 그 글은 제대로 된 글이 아닌 것이다. 처음에 ‘검다’고 했으면 계속 ‘검다’는 줄거리를 잡아야 하고, ‘아니다’면 계속 ‘아니다’는 일관성과 통일성을 지녀야 한다.
예를 들어 보겠다. 입춘이 지난 어느 햇볕 다사로운 날 공간이 넉넉한 카니발을 타고 문우 몇 사람과 따뜻한 남쪽 마을 남해에 가서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며 해변로를 따라 산책을 하고 바다가 바라보이는 횟집에서 싱싱한 회도 먹고, 유람선을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하자. 이를 소재로 한 편의 수필을 쓸 경우, 주제 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그냥 출발에서부터 돌아올 때까지의 여정을 재미있게 리얼하게 쓴다면 그것은 보고서나 기행문은 될지언정 수필이란 문학작품은 되지 않는다.
남해 여행의 과정이 하나의 수필이 되려면, 여정과 여정마다에서 느낀 점을 추출하여 그 중 무엇을 중심(사상)으로 의미화하여 글을 전개할 것인가. 그 중심이 곧 주제가 된다. 남해 여행은 수필가에게 있어 소재며, 현실이며, 결과다. 먼저, 부산에서 남해까지 갔다오는 과정에서 두드러지게 뇌리에 잡히는 느낌이나 사건을 골라 본다.
1) 한양 프라자 앞에서 느낀 신록의 환희
2) 고속도로를 지나는 과정에서 본 함정 단속 경찰에 대한 불쾌감
3) 가게 일 때문에 못 가지만 마중 나온 문우와의 우정
4) 따뜻한 남쪽, 남해의 아름다운 바다와 서정
5) 회를 먹으면서 생각해 본 살생과 죄의식
6) 귀로의 차 안에서 느끼는 봄나들이의 즐거움
7) 몇 년 전에 가본 모습과 달라진 어촌의 쓸쓸한 풍경을
한일어업 협정과 결부시켜 본 일
8) 노량 대교에서 탄 유람선을 통해 비로소 느낀 청정바다의 절규
이상의 몇 가지 사실적 경험을 토대로 작품화함에 있어 주제를 설정한다면 ‘봄나들이’나 ‘ ’남해 서정‘ 등 포괄적인 주제를 설정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좀더 인상적인 경이로움을 나타낸다면 열거된 몇 가지 주안점 중 한 가지에만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그 낙점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수필가의 주관, 인생관, 가치관에 따르겠지만, 그때 그때의 심경이나 기분에 좌우되기도 한다. 동일한 소재라도 그것을 추리고 얽어매는 시각과 각도에 따라 내용이나 주제가 달라질 수도 있다.
주제는 한 가지만 고집할 수 없고 때에 따라서는 복합적일 수 있지만 가능하면 한 가지로 압축하여 구체화를 이루는 게 글의 일관성과 통일성을 위해 좋다. 또 주제는 앞의 예와 같이 세분화할 수 있고, 포괄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포괄적인 주제는 관념적, 추상적으로 흐를 수 있는 반면에 세부적 주제는 구체적, 실제적임으로 가능하면 세부적 주제를 택하는 게 좋다. 더 쉬운 예를 들면 ‘봄’이라는 제재로 수필을 쓸 때, 주제의식의 구체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소생’, ‘희망’, ‘사향’, ‘회고’, ‘출발’ ‘청춘’ 등 유사한 사상이 인접 내통함으로써 주제가 분산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의식의 구체화는 ‘소생’이면 ‘소생’, ‘희망’이면 ‘희망’ 어디까지나 어느 하나로 집약되고 응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3. 수필의 <눈맛>
수필의 ‘맛’ 즉 ‘눈맛’은 주제 차원에서 발견되는 미의식이다. 데소와르는 미적 기본 형태를 미적 정취의 기본 형식으로 분류하여, 미와 추를 기본 축으로 하여 숭고미에서 비극미가 파생되고, 희극미에서 우아미가 파생된 것으로, 그리고 숭고미와 우아미는 양감정으로, 비극미와 희극미는 혼합감정으로 설명하고 있다. 주로 ‘눈맛’은 정신적 위대성을 내포하는 숭고미, 비극미, 희극미 등에서 나온다. 특히 희극적 미감은 골계의 하위 유형인 위트, 해학, 풍자, 반어 등에서 만들어진다는 측면에서 예리한 ‘맛’을 낸다. 추미 또한 정신적인 자유의 부정에 의한 왜곡(저속한 것, 염증 나는 것, 풍자적인 것)을 내용적으로 내포하고 있으므로 순수미와 대립되는 개념으로서 수필의 맛을 낸다고 하겠다.
수필은 삶의 체험에서 우러난다. 지식과 체험과 사상이 용해되어 예술적인 문장으로 표현될 때, 한 편의 멋진 수필이 탄생된다. 아름다움은 현란한 빛깔과 진한 향기를 통해서만 구현되는 것이 아니다. 시대 현실과 가치관의 차이에 따라 위정자의 이념에 따라 달리 정의되고 평가되지만, 어떠한 현실 속에서도 진실이 배제된 아름다움은 존재할 수 없고, 존재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 일반적 통론이다. 한 작가의 가치는 한 시대를 대변함으로써 그 폭을 확장할 수 있다. 현실이나 대상을 보는 예리한 눈맛이 수필의 맛이다. 수필의 맛을 문학 본질적 요소로 보면 <인식>에 해당한다. 수필의 <맛>은 대상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하는 데서 나온다고 하겠다. 수필 창작에 있어서 중요한 사고 유형은 창의적인 사고와 비판적인 사고다. 두 사고 유형은 맛있는 글을 쓰는 데 바탕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정재호는 <수필의 맛>에서 “설익은 설교나 어설픈 철학으로는 수필의 참맛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수필의 맛은 담담하지만 무미건조해서는 안 되며 시적 향취도 있어야 하지만 시처럼 난해해서도 안 되고 소설 같은 재미도 있어야 하지만 속되어서도 안 되고 철학성이 있어야 하지만 현학성이 짙어서는 안 된다. 송엽차는 솔잎의 까칠한 지성과 물의 무기교의 맛과 쾌감을 주는 설탕이 녹아서 한 잔의 차로 승화된 것이다"고 하면서 맛있는 수필을 송엽차에 비유해서 설명하고 있다.
독창성과 비판성을 가져오면서 수필의 고고하면서도 담박한 맛을 주는 양념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그렇다고 모든 수필에 반드시 위트, 유머, 새타이어, 아이러니, 파라독스가 들어가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장르의 특수성으로 보아 수필은 그런 점을 쉽게 수용할 수 있는 친화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것들이 수필문학의 맛을 낸다는 것이다. 수필의 오미라 불리는 이들은 글에 생동감을 주고, 재미나 흥미를 북돋아 주고, 웃음을 선사하며, 긴장감과 놀라움을 제공해 준다.
여기에는 관습적인 불문율이 있다. 처방에 있어서도 조제의 원리와 배합의 원리가 있듯이 그 친화성의 원리가 있다. 바꾸어 말해서 비상이 들어가야 할 약이 있고, 감초가 들어갈 약이 있다는 논리다. 풍자와 반어, 그리고 역설은 비상에 비유해 보고, 기지와 해학을 감초에 비유해 본다면, 중수필에는 비상이 들어가야 제격이고, 경수필에는 감초가 들어가야 그 맛과 효능이 배가된다.
가. 기지(독창성-참신성)
‘기지’는 영어로 위트라 번역되는데, 우리말 사전의 뜻으로는 “그때 그때의 경우에 따라 재치있게 변통하는 슬기”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문학적 용어로는 “짧고 교묘하여 놀라움을 일으키도록 계획적으로 고안된 일종의 언어적 표현”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지만 꼭 언어적 표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발한 판단이나 어떤 사물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나 의미를 도출해 내는 능력도 기지의 소산이라고 볼 때, 판단이나 해석적 능력의 기지도 있을 수 있다.
똑 같은 새소리였지만 서구인들이 그것을 즐거운 노래소리로 들어 ‘새가 노래한다’고 표현한데 반하여 한국인들은 슬픈 울음으로 들었기에 ‘새가 운다’라고 표현했다는 발상, 그리고 물에 빠지거나 혹은 뜻하지 않은 조난을 당했을 때, 한국 사람은 ‘사람 살려’라고 하지만, 영국 사람들은 ‘핼프 미’라고 한다는 대비를 통해서 한국인의 의타성을 도출해 낸 해석력, 우리는 배고픈 민족이기에 미각어도 발달되었고, 그래서 더위도 ‘먹고’, 나이도 ‘먹고’, 욕도 ‘먹고’, 심지어 사람의 성격을 평가할 때는 ‘싱거운 놈’, ‘짠 놈’, ‘매운 놈’이라 했다는 해석 등은 기지에서 나온 발상이고 해석이라 하겠다.
나. 해학(사회성-시대성)
생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에 의하면 유머란 긴장의 돌연적인 해방, 신경의 휴양이라고 한다. 바로 여기에 유머의 진수가 있다. 울음이란 모든 동물의 공통 분모요, 웃음이란 유인원의 특징이라고 임어당은 그의 <동서양의 해학>에서 말한다. 그 점에서 보면 유머는 인간 정신의 개화다. 그러기에 최고의 유머란 사려 깊은 웃음으로 인간의 힘을 조장하는 청량제요, 수필의 맛을 한껏 우려내는 조미료다. 그것은 우주적인 연민의 정에 의해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말하자면 모든 인생에 대한 슬픔과 동정에 찬 통찰 속에서 드러난다.
유머는 대개 우스갯말이나 우스운 외양이나 우스운 행동양식에서 나온다. 그러면 수필에서 유머를 어떻게 도입할 것이며 또 어떤 종류의 수필에서 수필가의 유머 감각이 필요한지를 살펴보자. 먼저 우스개 말일 경우는 수필 작품에 부분적으로 끼어 넣어 분위기를 우선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유머러스하게 꾸미려면 우스운 외양이나 행동에서 그 소재를 구하면 된다. 이런 것에 걸맞는 소재라면 인물스케치, 성격상의 결점, 신체상의 특징 내지 결점, 상대방이나 나의 특이한 버릇, 무지나 오만, 건망증에서 나온 어처구니없었던 실수담, 음이나 뜻으로 말미암아 이상한 해프닝이 일어난다는 성명수필 등을 들 수 있다.
장자는 어느 과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느 날 장자가 산책을 나갔다가 아주 슬픈 얼굴로 돌아왔다. 제자가 그 까닭을 물은 즉 장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길을 가다가 웬 상복을 입은 부인을 만났는데 땅에 꿇어앉아 축축한 무덤을 부채질하고 있지 않는가. 왜 그러느냐고 물었지. 그랬더니 그 여자 왈, ‘저는 사랑하는 남편에게 생존시 그의 무덤이 마르기 전에는 재혼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지요. 그런데 이 고약한 날씨 좀 보세요.’라고 하지 않겠어.”
위와 같은 유머가 없었다면, 중국에도 신경쇠약자가 많았을는지 모른다는 말이 있다. 중국의 병서인 <삼략>에는 부드러운 것으로서 억센 것을 제어한다는 “유능 제강”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대자연의 진리를 꿰뚫는 말이다. 그러기에 최고의 유머란 사려 깊은 웃음으로 인간의 힘을 조장하는 청량제다. 그것은 우주적인 연민의 정에 의해서 더욱 두드러진다.
다. 풍자(비판성-저항성)
수필에서 풍자가 지니는 뜻의 비중은 크다. 풍자를 글자풀이대로 보면, 풍은 빗대서 바른 말을 한다는 뜻이고, 자는 찌른다는 뜻이다. 남의 결함이나 결점을 직선적으로 말하지 않고, 돌려서 말하거나 다른 말로 빗대서 말하는 것을 이른다. 따라서 풍자는 사회 죄악이나 사람들의 옳지 못한 것을 대상으로 한다.
풍자는 재치가 있되,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 냉소, 조소, 자학, 야유, 독설, 희롱, 빈정거림, 비난, 비평, 비꼬는 따위의 개념이 담긴다. 수필이 아닌 다른 장르에 있어서는, 남을 헐고 찌르는 표현 방법에 별로 어려움이 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직간접으로 작자가 드러나는 수필에 있어서는, 남의 결점이나 결함을 다룬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수필은 작자의 품격이 바탕에 깔려 있는 까닭이다. 따라서 수필에서의 풍자는 그만큼 표현상의 기술이 따른다. 풍자는 솜방망이 속에 들어있는 송곳 같은 것이라고 한 말이 있다. 북송의 문장가 구양수가, 사회를 어지럽히고 해치는 간사한 무리들을 빗대서, ‘증창 승부’라는 글을 쓴 것도 그런 것이다.
라. 역설(논리성-복합성)
역설은 처음에 듣거나 읽을 때 정상적인 경험과 보편적인 지식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거나 거짓처럼 보이지만, 한참 따져보면 참을 뜻하는 표현이다. 파라독스는 사실과 모순되는 듯하기 때문에 독자를 당황하고 긴장하게 한다. 그리하여 주의를 끌고 의미를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
다음은 이대규의 <수필의 해석>에서 인용한, 수필에 나타난 패러독스의 예다.
(1) 성인의 가르침은 알기 쉽다. (2) 그런데 성인의 가르침을 연구하는 학자가 성인의 가르침을 어렵게 한다. (3) 학자는 성인의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연구하지 않고, 성인의 가르침을 나타낸 말을 복잡하게 따지기 때문이다.
위의 예문에서 (2)가 역설이다. 영구는 연구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을 알아내려는 활동이다. 알기 쉬운 것을 모르게 하는 활동은 연구의 원래 목적에 어긋난다. (2)와 같은 활동은 독자의 상식이나 기대에 어긋나기 때문에 (2) 와 같은 말은 거짓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1)과 (3)의 문맥에 의하여, 거짓 같은 (2)의 말이 참이 되므로, (2)는 패러독스다.
마. 반어(철학성-사상성)
아이러니는 표현된 말과 그 뜻, 한 인물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의 사실, 인물의 동기와 행동의 결과가 반대인 것을 뜻한다. 아이러니에는 언어적 아이러니, 극적 아이러니, 사건의 아이러니가 있다.
이대규는 <수필의 해석>에서 ‘언어적 아이러니는 반대되는 표현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것, 즉 말하는 것과 의미하는 것이 반대되는 것’이라 하였다. 언어적 아이러니는 전달되는 의미를 강화하거나 상황의 심각성을 강조한다.
(1) 혜월 선사는 흉년에 굶는 사람들에게 버려진 몇 백 평의 땅을 개간하게 하여 논을 만들었다. (2) 그 논을 개간하는 데 든 비용은, 같은 논을 사는 데 드는 비용의 몇 곱이 더 들었다. (3) 선사는 참으로 어리석은 일을 한 것이었다. (4) 그러나 선사는 많은 사람이 굶주림을 면하고, 새 논이 생긴 것을 기뻐했다.
바로 위의 예문의 (3)은 아이러니다. (3)을 보통말로 바꾸면, ‘(3.1) 선사는 참으로 슬기로운 일을 한 것이었다’로 될 것이다. (3.1)과 같이 평범하게 표현하지 않고, (3)과 같이 아이러니로 나타나면, (3.1)의 의미가 강화된다.
극적 아이러니는 작품 속의 말하는 이나 어떤 인물이 아는 것을 또 다른 인물이 모르는 것이다. 이것은 한 어리석음과 다른 인물의 슬기로움이나 훌륭함을 강조한다.
1.나는 기차 탈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늙은 방망이 장수에게 방망이를 깎아 달라고 부탁했다. 2.노인은 오래도록 방망이 깎기를 계속했다. 3.기차 탈 시간이 가까워 오자 나는 빨리 깎으라고 재촉했다. 4.재촉하면 방망이를 팔지 않는다고 노인은 화를 냈다. 5.나는 불쾌하고 화가 났다. 6.노인은 일을 멈추고 담배를 피웠다. 7.나는 불친절한 노인에게 증오심을 느꼈다. 8.한참 후 노인이 나에게 방망이를 주었다. 9.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방망이를 주었다. 9.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방망이를 주었다. 10.아내는 요즘 사기 어려운 좋은 방망이를 사왔다고 기뻐했다. 11.나는 그 노인이 좋은 방망이를 만들려고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12.그리고 훌륭한 노인을 멸시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 예문의 극적 아이러니는 3에서 7까지 지속된다. 이 아이러니는 11과 12에서 작가가 새롭게 깨달은 것은 강조한다.
사건의 아이러니는 동기 실현을 위한 행동의 결과가 동기와 반대가 되는 것이다. 사건의 아이러니는 비합리적이고 어리석은 동기와 비참한 결과를 강조한다. 박문하의 ‘잃어버린 동화’에 사건의 아이러니가 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공허한 마음에 위안을 얻으려고 ‘초가’를 찾는다. 그러나 그는 초가가 헐린 빈터를 보고 상실감에 젖는다. 그리하여 그는 초가를 찾기 전보다 더 큰 공허감을 맛본다. 이 아이러니는 작가의 공허감을 강조하는 효과를 낸다.
Ⅲ. 나가며
지금까지 필자는 수필 창작의 이론 모형 연구 차원에서 미의식의 유형과 작동 양상을 중심으로 해서 필법, <수필 유삼>에 대하여 고찰해 보았다. 미의식에 대한 연구는 수필을 예술로 승화시키기 위한 전략에 속한다. 숙명 같은 수필의 잡문성을 나름대로 극복해 보고자 했으나 본고의 내용은 부족한 점이 많다. 좋은 수필의 요건에 세 가지가 전부일 수 없다. 한 편의 문학수필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주제, 제재, 문장, 구성 등 구성적 요건뿐만 아니라 주제의 의미화, 문장의 개성화, 구성의 다변화 등 기능적 요건의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필자는 수필문학의 발전을 위해서 부족한 분야에 대해서 차근차근 연구하고 또는 하나하나 보완해 나갈 것을 약속한다. 특히 수필의 <향기> 부분은 계속 연구 검토함으로써 이론 모형을 보다 구체화해야 할 것이다.
진정 좋은 수필은 진통과 고뇌 속에서 태어난다고 했다. 그래서 수필을 창작함에 있어 필법에 대한 진통과 고뇌는 좋은 수필을 낳는 씨앗이요, 어머니다. 수필은 언어를 부리는 역량에 따라 작문이 되기도 하고, 잡문이 되고, 작품이 되기도 한다. 작문과 잡문의 수준에서 벗어나 작품의 수준에 든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수필 유삼>의 필법을 수필 창작시 기법으로서 활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끝으로 롤랑 바르트의 육성을 들으며 본고를 마무리 짓고자 한다. 그는 ‘글쟁이’와 ‘작가’를 확연히 구별하라고 했다. 이 말은 ‘글쟁이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언어를 이용하는 사람이고, 작가는 전달 차단적 언어를 재료로 쓰는 사람이다. 작가는 말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어떤 언어적 물질을 만들어내는 거인이다‘고 정의하고 있다. ’수필 유삼‘의 차원에서 곱씹어 보면, 더욱 의미심장한 말이다. 본고가 한국수필의 질적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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