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일어나는 감정 가운데 흥이라는 것이 있다. 흔히 사람들은 흥을 천박하다, 경망스럽다 생각하며 멀리하는 경향이 있지만 흥은 인생사에 참으로 중요하고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감정이다.
철저한 자기 절제로 흥을 억누르고 사는 사람들은 삶의 많은 부분을 손해 보는 사람들이다. 흥이 지나쳐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하여 실수를 하지만 않는다며 적절한 흥은 우리의 삶을 더욱 활력 넘치게 할 것이다.
나는 본래 흥이 많은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친구들 앞에서 춤을 추고 춤 값을 받는 것을 즐겼다. 그래서인지 길을 걷다가도 흥겨운 노래가 나오면 몸이 알고 먼저 움직인다.
오래전 아프리카 콩고에서 전도회를 인도하고 마치는 안식일에 침례식이 있었는데 그 안식일은 완전히 축제의 시간이었다. 아프리칸들의 찬미와 예배는 우리의 그것과는 흥의 면에서 완전히 달랐다.
“여호와는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는 말씀처럼 그들은 그 안식일에 흥에 겨워 춤을 추었다. 그 바람에 나도 덩달아 덩실덩실 춤을 추었던 기억이 있다. 다윗도 참 흥이 많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는 오벳에돔의 집에서 법궤를 모셔올 때 여호와 앞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삼하 6:14)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삼하 6:15)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
하지만 다윗의 이런 행동을 비난하고 비웃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의 아내 미갈이었다.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고 곡을 하여도 울지 않는” 감정 상실의 신앙인은 위선과 자기 체면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타인의 흥과 비애마저 자로재고 평가하는 외식하는 자가 될 수 있다.
(삼하 6:16)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삼하 6:20)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가끔 입술을 깨물고 웃음이나 울음을 참는 사람들을 본다. 어려서부터 자기감정을 억제하도록 교육받은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슬플 땐 울고, 즐거울 때는 박장대소하며 목젖이 보일정도로 웃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나는 훨씬 인간미 있어 보이고 좋다. 하나님도 창조의 모든 과정마다 “기뻐하시고 심히 기뻐 하셨다.” 그리고 희락이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인 것에 나는 감사한다.
다윗은 미갈의 비난에 오히려 (삼하 6:21)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기쁨과 희락의 감정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가장 고귀한 선물이다. 사람이 웃을 때 생기는 미소는 40개 얼굴근육이 빚은 '종합예술'이라고 한다. 인간처럼 웃는 동물은 어디에도 없다. 많이 웃고 또 많이 사랑하며 하나님 앞에서 다윗처럼 춤추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다.
(시 149:3) 춤 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 (시 149:4)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안에 즐거운 감정 곧 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삶이 비록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때론 우리를 바라보시며 잠잠히 사랑하시는 주님으로 인해 신이나고 흥에겨워 춤추며 노래하는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뛰놀줄 아는 주의 자녀들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이 주신 행복한 감정을 죄악시 하지 않게 하시고 경건함이 엄숙함으로 인식되지 말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