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모 칼럼 2026. 8.29 >
1 비철금속은 중화학 업종이다
박정희의 중화학은 철강 다음으로 비철 비철금속 공업을 중화학 업종에 포함 켰다.
비철금속이란 말 그대로 비철 ( 非鐵 Non- Ferrous Metal), 철(Fe) 이 아닌 금속을 말하는 것으로 통상적으로 동, 연, 아연, 알루미늄, 니켈, 주석, 등을 말한다.
금은을 말하는 귀금속이 있고 비철은 철과 합하여 합금철을 만든다.
AK시대의 반도체에 필수적인 희토류 금속도 있다.
2. 중화학에 의한 비철금속 공업 건설 계획
박정희의 중화학에 의한 비철공업 건설계획은 4 대 전략 품목으로 연(납), 아연, 동(구리 ) , 알루미늄을 다음과 같이 생산기반을 구축하기로 계휙 했다.
@4대 비철금속 생산기반 구축계획
1단계 아연제련 제련소 연산 5만 톤
78년 완공.
동제련소 연산 8만 톤
79년 완공
2단계 연제련소 80년대 중반 완공
알루미늄 제련소 80년대 말 완공
결괴적으로 대한민국은 70년대 말 현재 중화학의 성공으로 비철금속 공업도 육성하여 국가 산업발전에 대공헌을 하게 되었다.
한국은 70넌대 말에 아연과 동 , 80대 중반에는 연과 알루미늄을 생산하고 부산물로 귀금속인 금과 은 그리고 카드뮴과 등을 생산하는 10여 개의 비철금속을 생산하는 국가가 되었다.
3. 일제시 이래 중화학시까지 금속공 업 발전 개요 난상토론
일제 강점 시 북쪽은 천연 지형적 혜택으로 풍부한 석탄과 철광을 비롯한 많은 금속광이 매장되어 있어 개발에 착수했다.
여기에 일제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이용한 수력발전으로 동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100만 kw가 넘는 국가를 만들어 되어 철을 비롯한 다수의 금속 제련소를 건설하였다.
이 조건이 북한이 전쟁물자를 생산하여 625 동란을 일으켰고 3대에 걸쳐 계속하여 전쟁용 무기를 개발하여 실질적 핵보유까지 되었다.
이에 비하여 남쪽은 농본지 국가로서 있는 것이라곤 영월 상동 광산에 중석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남한도 70 %가 산지였으므로 소규모 광산들이지만 그래도 남쪽에 있는 천연자원이라곤 석회석과 무연탄 밖에 없어 광업이 다른 공업보다 발전하였다.
빌전형태는 금과 은의 덕대 생산이었고 지질광물 연구소 그리고 대한중석과 장항제련소가 남한의 광업의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였다
4. 비철금속 공업을 중화학에 포함 반 대
73년 중화학에 의한 비철금속은 한국에는 천연자원이 없는 이상 천연 금속 광석을 주로 남미에서 도입하여 제련소를 건설하여 전술한 바와 같이 비철금속을 제련 생산하는 것이었다.
중화학 선언이 발표되자 비철금속이 중화학 업종이 될 수 없다고 절대 반대하였다.
첫째로, 제련소를 건설한다는 것은 막대한 공해 공장을 수입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한국에는 비철금속의 수요가 전연 없기 때문에 생산하는 제런소를 지어서는 안 된다.
셋째로 수출용 공업으로는 수지가 맞지 않으므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박정희의 중화학은 이유 있는 반항이었지만 비철금속 공업이다음과 같이 절대로 필요하기 때문에 비철금속공업을 중화학에 포함시켜 육성했다.
한국이 70년대 말에 중화학 공업국가 되면 방산과 일반 기계공업에 절대로 필요하기 때문에 비철금속 생산이 필요하여 특수강등 각종 합금을 생산하여야 한다
중화학의 수출 100 억불 달성을 위하여는 새로운 공법과 기술도입 또는 개발하면 수지맞는 제련소 건설하면 충분히 수출산업으로 육성시킬 자산이 있다는 것이었다.
4. 중화학에 의한 비철금속 제련소 건 설 역사 난상토론
중화학 선언에 의한 비철금속 단지에서 1등으로 가장 무난하게 건설된 공장이 아연 제련소였다
제련 규모는 아연괴 연 5만 톤, 황산 10만 톤 카드뮴 30만 생산의 1단계 계획을 74년에 사업인가를 받고 76년에 공장건설에 착수하여 78년 초에 시운전후 78년 11월에 준공식을 거행하였다
사업주체는 연제련에 경험이 있는 영풍상사가 주체가 되어 설립한 고려아연(주)이었다.
영풍은 자금조달 능력이 있는 데다가 과거 동신화학이 연제련소를 건설한 있기 때문에 순조록게 건설이 진행되었다
준공식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하여 한국의 비철금속이 온산단지에서 화려하게 개막하는 테이프를 끊었다고
들째로 동제련소 건설의 역사는 대규모의 지금 투자와 공장건설의 기술적면에서 복잡하여 민간만이 추진함이 곤란하여 한국 광업진흥 공사가 공식적으로는 75년 한국 동제련 (주)을 설립함으로써 시작한다
사업규모는 전기동 연산 8만 톤에 황산 26만 톤과 부산물로 상당량의 금과 은을 부산물로 생산하는 동 제련소를 79년 12월에 준공하였다
동제련과 관련하여 한국의 비철공업 역사를 보면 첫째로 러키 전선 (러키 그룹의 한국 케이블 )의 참여이다
러키그룹의 LG전선이 전선 생산에 동을 시용하는 업체로서 장항제련의 동제련에 참가함을 계기로 학국 광업진흥공사와 함께 하였다
중화학에 의한 온산 동제련소 건설 지주 화사를 만들고 핀란드의 Otokumpu와 일본의 니꼬의 기술제공으로 참여 연산 8만 톤의 동제련소를 79년 10월 준공하였다.
LG는 그룹개편에 의하여 LS가 되어 여타 지주회사들의 주식을 구입하여 LS 니꼬 동제련으로 유지하다가 현재는 단독으로 LS MnM이란 간판으로 대활약을 하고 있다.
LS는 온산에 최신 금속재료 연구소와 판교에 Li나 Bs를 포함한 희소 금속과 희토류 금속을 개발하는 자원 연구소를 설립하여 배터리와 반도체 등의 금속재료 자원획득에 노력한 지 오래됐다.
또 하나의 참여 Model Case는 풍산금속( 창업자 유찬우)이다.
풍산은 60년대 후반부터 동전 소전 생산 1 등국이 되어 미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 동전 소전의 약 90 %를 공급한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첫째로 풍산의 유찬우 사장은 국방부가 미국의 FMS 사업에 의하여 Colt사의 기술과 기자재로 70년대 초에 착공하여 73년에 준공된 M16과 첨단 소충 생산의 국방부 조병창을 인수하였다.
이어서 풍산은 실수요자로 온산에 신동공장을 건설하는 한편 동제련을 건설할 시 지주회사 설립에 대주주로 참여하였다.
더불어 풍산은 정부의 방산육성 정책에 의거 화약과 탄약생산의 2 원화 방침에 의거 경북 안강에 탄약공장을 건설하여 방산에 의한 모든 탄약은 한화와 함께 2 원화로 생산하는 굳건한 체제를 구축하였다.
이상의 Model Case가 최빈국의 국가에서 맨주먹으로 50여 년의 기간에 일구어 낸 중화학의 산물로 국가의 산업 발전에 공헌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최신식의 탄약 생산시설을 갖추게 되었음은 실로 감동적이었다. 눈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는 오원철 수석을 모시고 온산비쳘 금속단지 두 번과 탄약공장 모두를 방문한 적이 있다.
( 이상의 난상토론에는 약간의 착오가 있을 것임을 이해바람)
5. 비철금속 단지 지정의 조건
임해 중화학공업은 첫째의 입지조건으로 포항의 철강단지나 울산의 조선단지처럼 천연적으로 만들어진 방파제가 있는 항만을 필요로 했다
수출 지향성 비철공업은 절대로 필요한 인프라가 수출입용 선박으로 2천 ton에서 3만 톤 선박이 자유롭게 출입하여 30개 이상의 선좌를 만들 수 있는 곳이 라야 했다.
이것은 70년대초 한국의 토목공사의 능력이 대규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