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단풍 여행의 시작이었던 오대산
오대산은 지리산・가야산・경주 등 경상도에 속해있지 않은 국립공원 중 처음으로 가 본 국립공원이다. 경상도의 국립공원에 자주 갔던 이유는 반오십을 경상도에서 보낼 수밖에 없었던 내 지리적 환경 탓이 컸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살고 있었다면 전국으로 향하는 직통 버스나 기차를 타고 쉽게 갈 수 있었겠지만 경상도에 살고있다는 제약 탓에 전라도나 강원도 또는 충청도로 가는 것은 큰 마음 먹지 않는 한 어려운 일이었다.
월정사와 상원사로 가는 버스가 출발하는 진부 공용 버스 정류장
오대산으로 간 일정 또한 험난하기 그지없었다. 부산에서 야간 고속버스를 타고 강릉까지 이동한 뒤 강릉에서 평창의 진부로 가는 버스를 타야만 했던 것이다. 진부에서 농어촌 버스를 타고 가고 상원사까지 가는 것만 해도 대략 여섯 시간이 걸린다. 단풍철에는 조금만 늦어도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없다. 상원사로 들어가는 편도 일차선의 좁은 길은 단풍을 보기 위해 찾아온 수많은 차량들로 꽉 막혀있기 때문이다. 눈 앞에 차로 가득찬 도로가 보인다면 망설이지 말고 내리도록 하자. 굳이 산을 오르지 않더라도 환상적인 단풍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오대산에 있다.
국립공원 이야기 4 - 오대산 국립공원
오대산 국립공원은 1975년에 11번째로 지정된 국립공원이다. 면적은 326.348㎢에 달하며 주봉인 비로봉은 해발 1,563m나 된다. 비로봉을 주봉으로 동대산 (1,434m), 두로봉 (1,422m), 상왕봉 (1,491m), 호령봉 (1,561m) 등 다섯 봉우리가 병풍처럼 늘어서 있으며 동쪽으로 따로 떨어져나온 노인봉 (1,338m) 아래로는 천하의 절경 소금강이 자리하고 있다. 오대산 국립공원에 속해있는 계방산 (1,577m)은 대한민국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봉우리며 설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덕유산 국립공원의 적상산 사고지와 함께 조선왕족실록을 보관했던 오대산 사고가 있는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며, 백두대간의 중추로 가치가 높다.
오대산 국립공원 지도 (출처: 국립공원 홈페이지)
평창 진부면을 통해 갈 수 있는 오대산 지구에는 월정사・상원사 같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절이 있다. 월정사는 6・25 전쟁으로 인해 전소되어 예전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없지만 팔각구층석탑 (국보 제48호)을 통해 그 영화를 짐작할 수 있다. 월정사의 역사는 비록 사라지고 없지만 전나무 숲길을 따라 걸으며 산사가 가지고 있는 고즈넉함을 느낄 수 있다. 상원사는 신라의 고승 자장이 지은 절로, 불교를 신봉하던 세조가 이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갈 때 고양이가 도포자락을 잡아당긴 덕분에 자객을 발견해서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상원사 또한 화마의 아픔을 피해가지는 못 했지만 국보 제36호로 지정된 상원사 동종이 남아있다.
오대산 국립공원 탐방안내도 (출처: 국립공원 홈페이지)
강릉 연곡면에 있는 소금강 지구는 1970년에 대한민국 명승 제1호로 지정된 소금강이 있는 곳이다. 옛날부터 맑은 폭포와 수려한 기암괴석, 빼어난 풍광을 자랑해 작은 금강산과 같다고 하여 소금강 (小金剛)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강릉이 고향인 율곡 이이는 <청학산기(靑鶴山記)>에서 소금강의 아름다움을 묘사했다. 소금강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노인봉-진고개-동대산을 거쳐 월정사 계곡으로 넘어갈 수 있다.
오대산 국립공원의 상징인 월정사 전나무 숲길
계방산은 태백산맥의 한 줄기로 동쪽으로 오대산을 바라보고 우뚝 서 있다. 계방산 서쪽에는 운두령 (1,089m)이 있으며, 을수골을 비롯한 계곡과 방아다리 약수와 신약수 등 약수로도 유명하다. 계방산은 각종 약초와 야생화가 자생하는 곳으로도, 주목・철쭉 등이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다. 겨울에 계방산에 오르면 덕유산 못지않은 환상적인 설경이 펼쳐진다. 운두령에서 오르면 고작 488m만 오르면 되기 때문에 등산의 난이도 또한 덕유산 못지 않게 쉬운 편이다. 산 정상에 오르면 강원도가 자랑하는 백두대간 등줄기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북쪽으로 설악산・점봉산, 동쪽으로 오대산・대관령, 서쪽으로 회기산・태기산이 장관을 연출한다.
오대산 단풍은 여기서, 오대산 선재길
상원사까지 가지않고 월정사에서 내리면 아름드리 전나무 숲이 눈앞에 펼쳐진다. 전나무 숲은 사시사철 푸른 모습으로 사람들을 반겨주며, 월정사로 찾아온 사람들의 마음을 가라앉혀 주고 있다. 곳곳이 단풍으로 물든 오대산 숲 가운데서도 전나무는 굳은 절개를 지키고 있다.
전나무 숲을 따라 걷다보면 자장율사가 신라 선덕여왕 12년 (643)에 창건한 월정사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자장율사는 중국으로 유학하여 산서성 오대산의 태화지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한다. 이 때 문수보살이 부처님의 사리와 가사를 전해준 뒤, 신라에서도 오대산을 찾으라는 가르침을 주게 된다. 자장율사는 귀국하여 오대산을 찾았으며, 이 때 월정사를 창건하고 오대 (五臺) 중 중대 (中臺)에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을 조성하였다.
월정사는 오대산의 다양한 신앙과 사찰들을 총괄하는 중심사찰이었다. 통일신라 말과 고려 초에는 9산 선문 중 하나인 강릉 사굴산문의 대표 사찰로 자리잡았다. 조선 시대에도 외사고가 오대산에 들어오면서 숭유억불 시기에도 오대산의 사세는 번창하게 되었다. 월정사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사찰이었지만 한국전쟁 당시 1・4 후퇴 과정 중에 남한군이 월정사를 비롯한 오대산의 암자를 전소시키는 만행을 저지르고 만다. 비록 옛날의 아름다운 사찰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지만 월정사는 문수성지인 오대산을 지키고 있는 중요한 절으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오대산의 최고봉인 비로봉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기나긴 월정사 계곡을 지나쳐 상원사까지 가야된다. 평창군에서 운영하는 농어촌 버스는 계곡 옆으로 나 있는 차도를 따라 상원사까지 가지만 단풍철에는 꽉 막힌 길로 인해 한참이 걸리기 마련이다. 창 밖으로 펼쳐진 단풍을 만끽하려면 상원사까지 가는 것보다 월정사에 서내려 선재길을 따라 걷는 것이 좋다. 선재길은 60년대 말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도로가 나기 전에 스님과 불교신도들이 걷던 길이다. 10km의 평탄한 길로 완주하는 데 3시간 30분이 걸리며, 옛 사람들의 흔적을 통해 과거의 문화를 만날 수 있다.
월정사에서 자생식물관찰원이 위치한 동피골까지는 5.4km로 2시간 10분이 걸린다. 5~6월에 방문하면 오대산의 깃대종인 노랑무늬붓꽃을 관찰할 수 있다. 동피골을 지나면 조릿대 숲길이 이어지며 차가 다니는 비포장도로가 나온다. 숲과 오대천을 따라 걸으면 선재길의 종점인 상원사가 나온다.
선재길은 어느 계절에나 방문해도 아름답지만 단풍나무가 우거져 가을철에 가장 아름답다.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는 높이도 제각각이라 바로 옆에서 단풍잎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도 있다. 계곡 양옆을 뒤덮은 단풍나무는 고요하게 흐르는 물과 함께 오대산의 가을을 만끽할 수 있게 만든다. 오대산의 단풍은 덕유산의 설경과 함께 한국을 찾는 많은 외국인들에게도 자랑할 만한 풍경이다. 선재길을 걸을 때 느꼈던 감동은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한국에는 볼 게 없다며 무작정 외국으로 떠났던 내가 반성하게 되고 깨달음을 얻게 만들어 준 장소가 바로 오대산 선재길이었다. 대한민국 가을의 아름다움을 등산하지 않고 편하게 느끼고 싶은가? 내장산 단풍터널만큼 붐비지도 않으며 자연 그대로의 단풍을 볼 수 있는 오대산 선재길도 하나의 선택지가 될 것이다.
선재길의 끝자락에는 신라 33대 성덕왕 23년 (724년)에 건립된 상원사가 있다. 1・4 후퇴 당시 연합 사령부가 월정사와 함께 상원사를 소각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승려들의 저항으로 이를 막았다. 상원사는 이미 1946년에 화재로 전소되고 1947년에 다시 지어졌기 때문에 문화재적 가치는 전혀 없었지만 당시 화재로 피해를 입었다면 국보인 문수보살상과 동종이 잿더미로 변했을 것이다. 군인들이 불을 놓으려 하자 당시 절의 주지였던 한암은 법당에 들어가 정좌한 뒤 자신과 함께 태우라고 한다. 이를 본 국군 장교는 상원사의 문짝만 떼어내서 태워 연기만 낸 후 돌아갔다고 한다.
상원사 문수전 아래에는 세조의 목숨을 구한 것으로 알려진 고양이상이 서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와 달리 고양이처럼 보이는 상은 실제로는 사자상으로 자세히보면 갈기를 확인할 수 있다. 실제 사자를 보지 못한 채 불경에 묘사된 내용으로만 사자상을 제작하니 이상해져 버린 것이다. 세조와 관련된 일화도 사자상의 의미를 모르던 조선시대 사람들이 모양의 유사성만 보고 지어낸 이야기라 볼 수 있다. 고려 뿐 아니라 조선왕조 시절 국왕은 험준한 태백산맥 때문에 강원도로 간 적 조차 없다.
고양이상뿐 아니라 국보로 지정된 상원사의 문수보살상에도 세조와 얽힌 일화가 있다. 세조는 말년에 피부병인 욕창을 앓았으며 치료차 오대산을 방문해 오대산의 맑은 물에 몸을 담궜다. 그가 몸을 씻고있는 동안 어느 동자가 지나가자 세조는 동자에게 등을 밀어달라고 부탁하였다. 몸을 다 씻은 뒤 동자에게 왕의 옥체를 보았다는 소리를 하지말라고 말하자 동자는 어디 가서 문수동자를 봤다고 말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문수보살의 도움으로 병이 나은 세조는 화공을 불러 문수보살의 모습을 그리게 했지만 어느 화공도 제대로 그리지 못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어느 하루 누더기를 걸친 노스님이 와서 자신이 그려보겠다고 말했다. 이에 세조는 노스님의 몰골을 보고 탐탁치 않아했으나 일단 그 모습을 설명해주려 했다. 그러나 노스님은 자신이 알아서 그리겠다며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세조가 본 문수동자와 똑같았다고 한다. 세조는 급히 어디서 왔냐고 물었는데 노스님은 자신이 영산회상에서 왔다고 하고는 곧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세조는 문수보살을 두 번이나 친견한 셈이며, 세조의 딸 의숙공주가 그림을 본으로 삼아 문수동자상을 조각하여 상원사에 봉안했다고 한다.
상원사를 둘러보고나니 어느덧 오후 1시가 다 되어 있었다. 원래 계획은 비로봉에 오른뒤 상왕봉을 거쳐 다시 상원사로 돌아오는 것이었지만 그대로 하자니 진부로 돌아가는 마지막 버스를 타지 못할 것 같았다. 아쉬운 대로 비로봉까지 갔다가 원점 회귀를 하는 코스를 택했다. 3.5km인 비로봉 코스는 왕복으로 3시간 10분 정도 걸린다. 단풍이 절정인 선재길과 달리 고지대인 비로봉 코스의 단풍은 이미 진 것이 대부분이었다. 곧장 상원사로 향하지 않고 선재길을 걸은 선택이 옳았음을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비로봉에 올라 바라본 오대산의 붉은 능선 또한 선재길 단풍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이번엔 오대산의 다섯 봉우리 중 고작 하나밖에 오르지 못 했지만, 나중에 기회가 되면 나머지 네 개의 봉우리도 정복하자는 다짐을 하며 하산길에 올랐다.
돌이켜보면 오대산 국립공원 탐방은 고작 20%밖에 하지 못한 셈이다. 다섯 봉우리를 뜻하는 오대산 중 고작 하나밖에 오르지 못 했으며, 소금강 지구와 계방산 지구에는 발걸음도 디디지 못 했다. 오대산 역사의 상징인 월정사와 상원사를 본 것과 선재길을 걸은 것이 고작인 것이다. 소금강 계곡의 단풍도 월정사 계곡만큼 아름다우며, 계방산의 설경은 덕유산 못지 않다고 하니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오대산 국립공원에 다시 가 보고 싶다. 기암괴석 때문인지 강원도에선 설악산 국립공원이 더 유명하지만 오대산의 아름다움은 설악산의 그것과 분야를 달리한다. 오대산의 봄 또한 아름답다고 하니 봄꽃이 찾아오는 지금 오대산을 방문하는 건 어떨까. 해외여행을 가지 못한 우리들의 마음이 위로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