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
가야국 (加耶國) 현악기를 가야금 (伽倻琴)이라 했다.
가락국(駕洛國)이 발해만에 있던 시절, 쌍건하가 흐르는 일대 금미달 지역에서 쓰던 현악기다.
현악기는 태고적 부터 있었다.
유목민이 쓰던 삼현금( 三絃琴) 악기가 해금 (奚琴), 호금 (胡琴)이다.
이에 현을 더하여, 현학금(玄鶴琴), 비파(琵琶)란 이름으로 나타났다.
그 시절에 가야국 가실왕(加耶國嘉悉王) 이 12 현금을 만들었다.
가야국 가실왕(加耶國嘉悉王)이 고점려(高漸麗)가 쓰던 고조선의 현악기 축(筑)에 현을 더하여 12 현금(十二弦琴) 가야금 (伽倻琴)을 만들었다.
축(筑)은 본래 5현금으로 5음이 있었다. 수미(胥靡)가 불암성 (傅險)에서 5현금으로 연주 했다.
이는 옛부터 고조선 영역 산서성 (晉: 隸)에 전해 오던 7현금에, (일년) 12 개월을 상징 하여 현을 더해 만든
현악기다.
가야금(加耶琴)이란 이름이 중국 문헌에는 없다.
삼국유사에는 거문고 갑을 쏘라는 사금갑 설화 (射琴匣說話)가 눌지 마립간(訥祗 麻立干; 재위 417년 ~ 458년)
시절에 실렸다. 삼국사기에 가야금과 관련된 예기가 실렸다.
일곱살에 왕이된 진흥왕 (眞興王, 재위: 540년 ~ 576년)이 551년에 개원개국 (改元開國)하고 삼월에 낭성(娘城)을 순찰하다 우륵(于勒)이 제자들과 같이 니문 지음악 (尼文知音樂) 하여 왕이 특별히 환대했다.
왕이 하임궁(河臨宮)에 머물면서 그 음악을 연주하라 했다.
국란이 생겨 우륵이 악기를 들고 신라에 투항해 왔다. 하여 그 악기를 가야금이라 이름 했다.
가시리 ( 작가 미상의 고려 가요 )
사료를 종합해 보면 단군조선의 마지막 수도 금미달에 살던 단군이 가실왕 (嘉悉王)이다.
그가 전국시대에 금미달을 떠나 중원으로 내려 갔다.
가실이란 글자는 “excellent; joyful; auspicious, know, learn about, comprehend” 최선을 다해본
현명한 왕이란 뜻이 있다.
대평성대 (大平盛代)를 이루었던 지도자를 이별하는 송별회에서 남아있던 우륵과 그의 제자들이 떠나야만 하는
왕이 되돌아 와서 또다시 대평성대를 이루기를 기원하는 노래가 가시리다.
신라 가야 모두 발해만에서 내려 왔다.
신라 고기에 우륵을 열숙현(省熱縣), 즉 열하성 사람이라 하고 그들이 부른 음악을 진(秦聲)나라의 성으로
병주양주 (幷梁二州) 지역이라 했다.
가야국 가실왕은 진(秦)나라가 친입 한 금미달 지역에 있었다.
가시리를 가야 망국 지음 (加耶亡國之音)이라 했다.
현명한 지도자를 이별하는 송별회에서 우륵과 그의 제자들이 떠나야만 하는 왕이 되돌아 와서 대평성대 (大平盛代) 를 다시 이루기를 기원하는 애절한 감정을 가야금을 뜻으며 읊었던 노래다.
가시리 4장 후렴 은 흔히 풀이 하는 “악기 소리를 흉내낸 말”이 아니다.
“나ᄂᆞᆫ 위 증즐가”는 “대평성대(大平盛代)” 와 같이 당시 훈역 했던 어음“위 증즐가 (危症增加)를 한글로 기록
했다.
선학들이 가요의 발생지와 장소, 그 유래를 몰라 잘못 풀이 했다.
진흥왕 또한 가시리의 내력을 몰라 (남녀간을 애정을 읊은) 음란한 음악이라 했다.
현대어로 풀이 하면 “나라는 위태로운 증상이 날로 증가 하는데 , 아 태평성대 여”가 된다.
옥편
국한사전(國韓辭典)의 대명사 옥편(玉篇)은 옛적 부터 전해 오던 이상한 글자 기자 (奇字)에 능통한 고야왕
(顧野王; 519-581)이 만들었다.
옥편이란 글자를 새겨 놓은 옥돌이란 뜻이다.
옥새 (玉璽) 와 같이 북쪽 홍산문화권 에서 나타났다.
호공만(胡公滿)의 후손으로 알려진 진(陳) 나라는 춘추시대 산동성 서쪽에서 나타나 동쪽으로 밀렸다가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밀려 복건-광동성 일대에서 수(隋, 581년- 619년)나라에 정복 당했다.
고야왕의 옥편(玉篇) 일부가 바다를 건너 한국과 일본에 이르렀다.
Lee Mosol 블로그에서 퍼온 글로 일부 편집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