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같은 백암길 집보다 쪽방이 더 편하다.
아산 '봄에실농장'의 선우가 백암길에 그림 같은 집을 마련해 주었건만,
마음은 늘 동자동 쪽방에 가 있다.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싼다”는 말이 날 두고 한 말 같다.
죽는 날까지 동자동을 지켜보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에 발목 잡혀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월요일에 동자동 가서 목요일 아산으로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약속도 약속이지만, 팔 년 동안 쪽방에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쪽방 생활에 더 익숙해져 버렸다.
동자동 빈민이 다른 곳의 넓은 방으로 이사 갔으나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더러 있어 처음엔 이해되지 않았으나 살아보니 알 것 같더라.
다들 새로 간 곳에 아는 사람이 없어 외롭기도 하지만,
복지혜택이 쪽방촌에 집중되는 것도 한 원인이다.
무엇보다 좁지만 꼼짝하지 않고 편하게 사는 것에 길들어 버린 것이다.
요즘은 몸이 아파 술 마실 일을 만들지 않다 보니
인사동이나 전시장도 특별한 일이 아니면 가지 않는다.
단 하나 정동지 장터 촬영을 위해 운전해 주는 것이 유일한 여행인 셈이다.
지난주에는 동자동 쪽방에 처박혀, 온종일 누웠다 앉기를 반복하였다.
주말에 아산만 갔다 오면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다.
일을 두고 견디지 못하는 체질이라 너무 무리해서다.
시골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지 않은가?
쪽방 계단 오르내리기도 힘들어 하루에 한 번씩 밥 먹으러 갈 때만 나온다.
나온 김에 여기저기 동내를 돌아보는데, 길가에 위수범씨가 힘없이 앉아 있었다.
술 생각이 간절하나 몸에 문제가 생겨 참고 있다는 것이다.
‘새꿈공원’에는 낯선 젊은이들이 여기저기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서울역광장 노숙인들은 예전보다 많이 줄었으나, 곤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서울역 앞 차도 공사가 마무리되면 공사판 언저리에 터 잡아 살던 노숙인도 쫓겨날 때가 된 것 같다.
비닐 움막을 들여다보니, 김지은이가 그 무더운 곳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김밥천국’에 들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쪽방에 올라가기 위해 골목을 접어더니,
박갑석이가 벌인 술자리 옆에 이기영이와 임백수씨가 무료하게 앉아 있었다.
“조기자~ 피죽도 못 얻어먹은 것처럼 왜 그리 비실비실해?”
이기영씨는 날 더러 항상 조기자라고 부르는데, 사진 찍히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임백수씨는 내 이빨을 보더니, “신청만 하면 공짜로 만들어 주니 틀이 하라”며 조언해 준다.
틀이가 귀찮기도 하지만 밥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어, 있어도 하지 않는다고 했더니
“하기야! 그 나이에 할멈 만날 처지도 아니니, 그렇긴 해”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쪽방으로 올라가려고 보니, 3층 사는 이명옥씨가 퍼져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 여인도 다리에 문제가 있어 계단을 기어 오르 내리지만, 하루에 한 번씩은 밥 먹으러 나온다.
계단 올라 갈 힘든 고행을 앞두고 잠깐 쉬는 것이다.
좁은 계단을 독차지해 기어오르려면 시간이 많이 걸려 나부터 먼저 올라왔다.
나 역시 4층까지 올라가면 다리가 후들거려 밖에 나가기가 싫은 것이다.
쪽방에서 하는 일이란 컴퓨터 끼고 놀다 누워 자기를 반복하니 편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 역시 누워 티브이 보는 것이 전부인데,
화장실 가는 일을 빼고는 활동반경이 좁아 힘쓸 일이 없지만,
몸의 기능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망가지는 것이다.
저녁은 빵으로 간단히 해결하니 나갈 필요가 없지만,
빵이 떨어져 불편하지만 라면으로 해결했다.
쪽방에 있으면 하는 일이 없어 몸은 편하지만, 아산 갈 날이 은근이 기다려진다.
힘들어도 마음 편한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오 갈데없는 다른 사람에 비해 선택받은 삶이 아니던가?
몸은 힘들어도 마음 편한 것이 행복이었다.
사진, 글 / 조문호
첫댓글 점점 연세가 드시니 몸이 따르질 않으신것 같아 마음이 쓰입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요 아무래도 쪽방촌은 방에 올라다니기도 힘드실테니 아산에 정착하심도 좋을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