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1대 첫 당선된 이래 나의 일상생활과 의원으로서의 처신에 대해 엄격한 원칙
과 기준을 세웠다. 그리고 그것을 철저하게 밀고 나갔다. 부작용도 없지 않았고 욕
도 많이 먹었지만 상대가 이해하면 고맙게 그리고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면 할 수 없
다고 생각하면서 밀고 나갔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나는 어떤 경우에건 화환은 보내지 않기로 했다. 개업을 하거나 회
갑 또는 희수연을 할 때면 내 이름으로 화환을 보내달라는 요청, 때로는 자기들이 만든 화
환에 내 이름만 달겠다는 요청이 수없이 많았지만 나는 단 한번도 그것을 허용한 적이 없다.
자녀 결혼식에 화환을 보내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하는 바람에 얼마동안 뜨악해진 선배도
있었고 부모님 희수연에 내 이름의 화환을 자기 비용으로 세우겠다는 요청을 거절했다가 끝
내 의가 상한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축하하는 마음을 화환
에 담을 필요는 없다는 원칙을 막무가내로 밀고 나갔다.
조화의 경우에는 내 친구의 친상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사람의 친상으로 국한했다. 부인
네들이 이 글을 읽으면 화를 낼지 모르나 장인이나 장모상일 경우에는 그분들을 모셨던 경
우에만 조화를 보냈다. 친구 친상이면 시골이라도 반드시 조화를 배달토록 했고 천하없는
저명인사더라도 나와 특별한 인연이 없을 때는 조화를 보낸 적이 없다. 화환과는 달리 돌아
가신 분의 영전에 마지막 조의를 표하는 것은 예절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나는 또한 나의 일상생활 즉 의식주생활을 일체 바꾸지 않았다. 지금 살고 있는 전셋집에
17년째 사는 것은 물론 내 의지만으로 된 게 아니다. 다행히 집주인이 나에게 무한의 호의
를 가진 분이어서 의원이 된 이후에도 그대로 눌러살고 있는데 그 이외에는 모두 내 의지로
했다. 내가 입는 옷들은 결혼 이후 줄곧 집사람이 담당하고 있으니까 달라질래야 달라질 게
없었고 일상적인 식생활도 마찬가지다. 내가 연구소에 있을 때면 우리가 늘 배달해서 먹는
음식점에서 된장찌개나 육개장 따위를 시켜다가 그 시간에 사무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회
의용 탁자를 식탁 삼아 먹는다.
그리고 의원회관에서는 배달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물론 그 시간에 의원회관 내 방에 있는 사
람들이 모두 함께 둘러앉아서 먹는다. 간혹 내가 좋아하는 청국장집에 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
때 역시 그 시간에 내 방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함께 나가서 든다. 함께 한 손님이 의원이건 장
관이건 일체 차이를 두지 않는 게 우리 방의 불문율이다.
나는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골프를 하지 않았으므로 그 이후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것은 김영삼대통령의 골프 기피와는 다르다. 나는 골프를 즐겨 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취미
를 즐길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싱가포르의 이광요수상처럼 모든 관리들에게 골프를 강요하
는 것도 탐탁치 않게 여기지만 김영삼대통령처럼 골프가 무슨 나라를 망치는 일인 듯이 스
트레스를 주는 것도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더러 내 주변에서는 골프를 안하면 정치하기도 어렵지 않느냐고 묻기도 하나 나보다도 더
골프의 필요성을 느꼈을 김우중회장 같은 분은 골프를 하지 않고서도 세계경영에 임하고 있
지 않은가.
나는 상임위원회 배정을 놓고 경쟁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세웠다. 그래서 내가 배정된 상
임위원회는 늘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으려하는 곳 뿐이었다. 예전에는 경제과학위원회였고
14대 때는 노동위원회였다. 하지만 그런 위원회일수록 보람있는 일거리는 더 많았다. 만약
그런 일거리조차 없었더라면 나의 원내활동 평가가 좋은 점수를 얻었을 턱이 없지 않은가.
나는 또한 나를 만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 사무실에서 만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
다. 의원회관은 출입이 자유로운 정부관리나 기자들을 만날 때 주로 사용하고 그 이외의 경
우에는 연구소를 이용한다. 지하철도 이용할 수 있고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내가 살펴
본 바에 의하면 의원들이 시간에 쫓기는 가장 큰 이유가 길거리에서 보내는 시간 때문이다.
사람들을 이곳저곳에서 만나니까 이동할 때마다 엄청난 시간을 낭비하게 되고 그래서 더욱
바쁘게 되더라는 뜻이다.
나는 장차 사회활동을 할 젊은이들 그리고 기왕에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이
처럼 자신의 기준과 원칙을 가질 것을 권고한다. 왕희지나 김정희가 자신의 필체를 가졌듯
이 생활 속에 자신의 룰을 확립하라는 얘기다. 그것은 절대로 손해를 가져오지 않는다. 오
히려 자신의 삶을 더 옹글게 만들고 나중에 후회할 거리를 줄여줄 것이다.
외국 바이어들 접대를 놓고 "술을 못해서 애먹는다."는 후배가 있었다. 그는 사학과 출신
이었고 그래서 우리 역사는 물론 서양사에도 정통한 친구였다. 나는 그에게 "국립박물관과
경주를 구경시켜라. 그리고 바이어의 나라 역사와 견주어 가면서 설명을 해봐라."고 권했다.
얼마 후 그는 기뻐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으로 찾아왔다. 진짜 인간적인 유대가 생겼고 자
신이 존경받는 사람으로 바뀌어졌다는 것이다.
자기 기준과 원칙을 갖고 사는 사람은 저절로 당당해진다. 미합중국 대통령도 꼬박꼬박 4계
절의 휴가를 찾아먹는 터에 회사 중간간부쯤 되어가지고 "바빠서 가족들과 즐길 틈이 없
다."고 한다면 그건 기준과 원칙이 없다는 증거일 따름이다. 그리고 쭈삣거리지만 않는다면
자신의 기준과 원칙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21세기의 주인공들은 각각 자신의 개성과 취향을 마음껏 살릴 수 있는 다양성이 확보된
사회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런 다양성을 자기류의 생활방식 확립을 통해 더욱 윤택하게 만
들고 즐기기 바란다.
첫댓글 열심히 퍼나르는 일이라도 하렵니다 ..... 탄관진의님을 비롯하여 모든 홍사연님들 ....화이팅 !!!!!!!!!
요즈음 새벽풀잎님께 인사도 제대로 못드렸습니다........바쁘게 활동하시는 모습 늘 감동하고 있습니다..........건강하시고 선거 후 정모때 뵙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