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애미에 도착한 뒤 3일 만에 도복을 입고 도장에 들어섰습니다. “아직 준비가 안됐습니다”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거절 할 수 없었습니다. 강상구 관장은 나름 계획이 있었습니다. “남들 5년 걸릴 거, 1년에 끝내자.”
그렇게 강 관장은 앞으로의 365일을 ‘DJ 조각의 해’로 설정했기 때문입니다. ‘미국판 진짜 마스터 만들기’라는 구상이었죠. 일종의 특별훈련이었습니다. 어지러웠습니다. 고민이 시작되었죠. 그거 아십니까.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100m 달리기 출발 선상에 선 기분 말입니다.
2011년 이제 제 나이도 서른하나입니다.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지고, 머릿속은 하얀 백지 상태로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흥건해지기 시작하면서 이 순간이 지나가기만을 간절히 바라게 되는 초등학생이 된 그런 기분. 바로 제가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죠.
미국 도착 4일 만에 찾은 Snags Martial Arts TNT in Miamigarden 도장에서 강 관장의 주문은 다소 황당했습니다. 정문에서 한 백인 꼬마를 제게 데려왔죠. 그러면서 하는 말이, “마스터 DJ, 개인레슨 해봐”였습니다. ‘예, 뭐라고요? 이제 막 도장에 도착했는데, 저보고 가르치라고요? 말이 됩니까’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역시 참았습니다. 하지만, 아시죠? 그렇게 말하기에는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요. 하겠습니다.” 애써 당당한 척하며 도전했습니다.
그 수련생의 이름은 데니, 4살짜리 사내아이였습니다. 그렇게 데니와 첫 개인 수업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꼬마, 제가 "Attention!(차렷)"을 외쳤는데,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재차 “Attention”을 외치기 수차례, 제 얼굴도 점점 빨개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건 뭐 한 것도 없는데 땀이 비 오듯이 쏟아지기 시작했죠.
그렇게 저의 ‘초등학교 운동회 증후군’은 시작되었습니다. 데니의 부모와 강 관장, 그리고 저를 측은하게 쳐다보는 외국인 사범들의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엄청난 스파크를 저에게 쏘아대기 시작한 것이죠.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울고 싶었죠. 세상에 한국에서 토익이다, 텝스다, 토플이다 공부했던 영어들은 생각조차 나지 않더군요. 대한민국의 영어교육 시스템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더군요.
그러면서 생각나는 영어 한 문장, “Eye contact(눈을 봐라).” 데니가 저를 쳐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곧장 “Horse stance(기마자세)”를 외쳤죠.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주먹지르기와 발차기 등을 쉴 새 없이 주문했습니다. 한 동안의 시간이 흐른 뒤, 시계를 보았습니다. 한참 시간이 흘렀을 것이라 예상했죠. 그런데 이거 무슨 일이랍니까. 고작 10분이라는 시간이 지났더군요. 강 관장의 주문은 30분만 가르치라고 했는데, 앞으로 20분은 도대체 무얼 하라는 것인지. 이미 하얀 제 머리 속은 ‘공황장애’로 인해 시야가 흐려지기까지 했는데 말이죠. 그러면서 간절히 주위를 둘러보며 ‘Help me’를 외쳤습니다. 하지만 저의 천사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마치 계획이라도 한 듯, 그때만큼은 저만치 떨어져 있더군요. 매정한 사람들. 해서 마음을 가다듬었죠.
하지만,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습니다. 무사히 30분을 채우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만 했죠. 자신 있게 영어를 구사해야만 했습니다. 우선 데니의 목소리부터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외쳤습니다. “Show me your yelling power(너의 힘찬 기합을 보여줘)!”하지만 저는 크게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숨이 멈추는 듯 한 충격을 받았죠. 그의 이 한 마디가 저의 자신감을 처참하게 짓밟았기 때문이었죠.
“What? What?” 저를 쳐다보는 데니의 눈초리가 “이 동양인 남자 도대체 뭐라고 떠들어대는 거야”라는 의중이었죠. 이젠 방법이 없었습니다. 철저한 한국식만이 저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아듣건 못하건 간에 난 할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죠. 무조건 큰 목소리로 “Repeat after me. Follow me!”를 “아야, 아야, 아야~~~”를 외쳤습니다. 억지로 30분을 다 채운 저는 거의 실신 직전까지 이르렀습니다. 울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죠. 꾹 참고 자리를 정리했습니다.
도복을 입은 정대길의 미국 데뷔전은 좌절과 실망 속에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이를 앙 다물었습니다. 긴 하루가 끝이 났습니다. 그날따라 어머니, 아버지, 누나가 왜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지.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강 관장이 나지막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Rome was not built in one day.” “힘내.”
첫댓글 시작은 힘들지라도 나중에는 지금에 현실이 큰 힘이될겁니다 힘내세요....
ㅎㅎ ..잘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