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를 사양한 K리그 대표선수 김대의
스포츠2.0 | 기사입력 2007-06-07 10:36
SPORTS2.0은 창간 1주년을 맞아 올시즌 현재 K리그를 대표하는 선수 한 명을 선정하는 일에 머리를 맞댔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수원 삼성의 ‘폭주 기관차’ 김대의(33)로 의견이 모아졌다. 까닭은 이렇다. 김대의는 기형적인 한국 프로축구의 틀 속에서 국가대표 경력을 고집하지 않았으며 K리그 팬들에게 다가가는데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경기도 화성이 고향인 김대의와 수원성을 찾았다.(사진 김병준)
2004년 6월 29일 파주 국가대표팀 트레이닝센터. 옴베르투 쿠엘류 감독이 한국을 떠난 뒤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을 영입한 한국 축구대표팀의 첫 훈련이 진행됐다. 본프레레 감독과 선수들 모두 의욕이 넘쳤다. 본프레레 감독은 “다음 플레이를 먼저 생각하고 패스나 드리블을 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선수들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고 이내 파주의 녹색 잔디를 적셨다.
이튿날부터 오전과 오후로 나뉘어 반복훈련이 이어졌고 훈련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본프레레 감독은 대표선수들의 체력을 점검하면서 미니게임과 연습경기를 통해 7월 10일 바레인전에 대비한 ‘옥석 고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김대의(33,수원)도 그때 파주에 있었다. 그러나 신임 본프레레 감독의 눈길을 사로잡으려는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김대의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대표팀을 사양한 사나이
김대의는 ‘도쿄 대첩’으로 유명한 1997년 9월 28일 일본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열린 1998년 프랑스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일본전에서 뛰었다. 김대의는 그때까지 A매치 13경기 3골의 기록을 갖고 있었다. 본프레레 감독에 앞서 한국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쿠엘류 감독 아래에선 적지 않은 A매치에 출전했다. 쿠엘류 감독은 빠르고 저돌적인 김대의의 활용 가치가 높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본프레레 감독의 생각도 쿠엘류 감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본프레레 감독은 바레인과의 평가전을 앞두고 실시한 파주 훈련에서 당시 벨기에 주필러리그 안더레흐트에서 뛰던 설기현과 FC 서울의 김은중 그리고 수원 소속인 김대의의 빠른 동작에 특별히 만족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김대의는 본프레레 감독의 데뷔전이었던 바레인전에 뛰지 못했다. 김대의는 파주에 소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왼발목 통증을 호소했다. 그리고 최주영 의무팀장의 허락을 받아 소속팀 수원으로 복귀했다. 본프레레 감독의 눈도장을 받을 수 있었던 기회는 그렇게 사라졌다. 뜻하지 않은 발목 부상이 김대의의 발목을 잡았다.
바레인전이 끝나고 겨우 닷새가 지난 7월 15일 수원월드컵경기장. 부상으로 바레인전을 뛰지 못했던 김대의가 포항전 수원의 선발 명단에 들었다. 교체 없이 90분 풀타임을 뛰었고 4개의 슈팅을 했다. 1-1로 팽팽히 맞서던 후반 22분에는 팀 동료 마르셀이 헤딩으로 떨어뜨린 공을 페널티 지역 왼쪽에서 왼발 슈팅으로 연결해 역전골을 터뜨렸다. 김대의의 활약에 힘입은 수원은 3-2로 이겼다. ‘폭주 기관차’라는 별명을 떠올릴 정도로 그의 활약은 거칠 것이 없었다. 부상의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5월 23일 수원성 근처 음식점에서 만난 김대의는 “(2004년 6월에)아킬레스건이 좋지 않았다. 심하진 않았다. 경기에 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당시 한국 나이로 31살이었다. 내가 뛰는 포지션에는 정경호, 최성국 등 재능 있는 어린 선수들이 많았고 주전으로 뛴다는 보장이 없을 바에야 그들에게 기회를 주자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큰 부상이 아니라면 최주영 의무팀장의 눈은 어떻게 피했을까. 선수 마음대로 들락날락할 만큼 대표팀 지원 시스템은 간단하지 않다. 김대의는 “(최주영 의무팀장에게)대놓고 얘기하지는 않았다. 단지 선수생활을 오래하고 싶었던 내 마음을 알아 차리신 것 같았다. 재활을 열심히 하라고 말씀하셨다. 또 규정에 맞게 행동하라는 지적도 해주셨다(웃음). 내가 선택한 일인 만큼 후회하지 않는다. 2004년은 수원으로 이적한 첫 시즌이었다. 대표팀보다 수원에 봉사하고 싶었고 팬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김대의는 대표팀을 포기한 데 따른 후회는 없다고 밝혔다.(사진 김병준)
2006년 쓰라린 기억
김대의와 수원의 인연은 각별하다. 경기도 화성이 고향인 김대의는 화산초등학교-안용중-정명고를 거쳐 고려대에 입학했다. 차범근 수원 감독이 화산초등학교를 나왔으니 김대의에게는 스승이면서 초등학교 선배다.
차감독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때 김대의를 대표팀에 뽑았다. 일본전에서 긴 시간을 뛰지는 않았지만 당시 활약에 힘입어 김대의는 일본프로축구 J리그 제프 유나이티드로 진출한다. 실업팀 울산 미포조선을 거쳐 2000년 드래프트 3순위로 성남에 입단한 김대의가 FA 자격을 얻어 2004년 수원으로 이적한 데에도 차감독과의 인연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
수원에 정착한 김대의는 2004년 시즌 정규리그와 컵대회를 포함해 36경기에서 7골 3도움을 올렸다. 이듬해 25경기에서 5골 2도움을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36경기에서 5골 2도움을 마크했다. 성남 유니폼을 입고 17골 12도움을 몰아쳤던 2002년 시즌과 비교하면 조금은 떨어지는 기록이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다. 당연한 결과다. 2002년 시즌 성남에서 김대의는 공격수였고 수원에서 김대의는 날개 요원이다. 김대의는 “성남 시절에는 당시 코치였던 김학범 감독님이 페널티 외곽 지역으로 나와서 공을 받지 말라고 하셨다. 수비 뒷공간을 파고 들어서 내 강점인 스피드와 힘을 활용하라는 주문이었다. 수원에 온 뒤에는 날개의 역할이 주어졌다. 성남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은 수비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선수라면 당연히 지도자의 스타일에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성남과 맞붙은 챔피언결정전에 대한 기억은 유난히 쓰리다. 지난 시즌 후기리그 우승을 차지한 수원은 전기리그 챔피언 성남과 챔피언결정전에서 맞붙었지만 1차전에서 0-1로 졌고 2차전에도 1-2로 무릎을 꿇었다. 김대의는 “모든 면에서 성남이 준비가 잘 돼 있었다. 패배를 인정한다. 그러나 막상 우승컵을 놓치자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차경복 전 성남 감독님이 돌아가셨다. 당연히 장례식장에 가봐야 했지만 성남과의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있어서 우려하는 주위의 의견이 많았다. 아내가 대신 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도의상 그럴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신앙심이 깊은 김대의는 지난해 챔피언결정전이 끝난 다음날 교회를 찾았다. 알 수 없는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폭주의 원동력
김대의는 수원 서포터스의 열광적인 응원에 특별히 고마운 마음을 나타냈다. 김대의는 “(수원 이적 첫해인)2004년이 성남에서 뛰었던 4년보다 더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신적인 어려움이 아니라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그만큼 많이 뛰었고 뛸 수밖에 없었다”며 “선수가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수원 서포터스가 만든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수원 서포터스의 매력이다. 선수를 감동시키는 이들의 응원이 없다면 그렇게 죽도록 뛰어 다니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원 서포터스만이 김대의에게 선물을 주지는 않았다. 김대의 또한 수원 서포터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알고 보면 눈물이 많은 남자”라고 고백한 김대의는 지난해 5월 팬들 앞에서 뿌린 눈물을 잊지 않고 있다.
“5월 30일이 내 생일이다. 지난해 수원이 한참 좋지 않을 때 팬들이 생일파티를 해준다고 나를 초대했다. 수원 서포터스가 차감독님의 퇴진을 요구할 때다. 마침 그날 경기를 져 그랬는지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팬들의 심정과 감독님의 처지를 모두 이해하고 있었다. 하나로 뭉쳤던 예전의 기억을 아름답게 간직하고 있는데 서로 반목하고 헐뜯는다는 생각 때문에 힘들었던 것 같다. 다행히 그 일을 계기로 분위기가 좋아졌고 후기리그에 우승할 수 있었다.”
김대의는 특유의 힘과 스피드로 폭주기관차라 불린다.(사진 김병준)
2006년 시즌에 대한 아쉬움은 올시즌을 준비하는 김대의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김대의는 겨울 전지훈련을 통해 최적의 몸상태를 유지했다. 시즌 개막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부상으로 쓰러졌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후배들에 대한 믿음이 강했다. 차감독이 지난 겨울 아쉬움을 토로했던 공격진에 큰 폭의 선수 보강이 이뤄지며 수원의 전력은 더욱 탄탄해졌다.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3월 4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전과의 개막전을 2-1 승리로 장식하며 묵은 징크스를 날렸다. 열흘 뒤 다시 만난 대전과의 컵대회에서는 안정환(3골)과 에두가 4골을 터뜨렸다. 정규리그와 컵대회를 포함해 초반 4경기 성적은 3승1무였다. 대전전에서 교체멤버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안효연과 배기종이 중용됐다. 수원의 좌우 날개에 포진한 이들은 수원의 초반 상승세에 크게 기여했다.
김대의는 그라운드에 서지 못했지만 소속팀의 오름세에 흥이 났다. 김대의는 “K리그에서 뛰는 노장들은 사실 조심스럽게 플레이를 한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쉽게 덤비거나 경솔한 움직임은 피한다. 상대가 반응하기까지 기다려보자는 식이다. 정말 무서운 것은 어린 선수들이다. 우리 팀의 (이)현진이처럼 1대1 상대가 누구든 거칠 것이 없다. 수원의 알짜배기도 현진이 같은 어린 선수들이다. 신구조화가 잘 돼 있는 팀이 2007년 시즌의 수원”이라고 말했다.
6연승의 시동을 걸다
수원의 초반 상승세는 3월 21일 컵대회에서 서울과 만나면서 한풀 꺾였다. 수원은 마토가 선제골을 넣으며 기세를 올렸지만 이후 박주영에게 내리 3골을 내줬다. 경기 종료 직전에는 정조국에게 쐐기골을 허용하며 스코어는 1-4로 크게 벌어졌다. 다음날 차감독의 지도력을 다시금 문제 삼는 보도가 이어지자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만난 수원 구단 관계자는 “한 경기에 졌다고 반응이 이렇게 부정적일 줄은 몰랐다. (마치 수원이 지기를)기다렸던 것 같다”며 혀를 끌끌 찼다.
수원은 3월 21일 서울전을 포함해 3연패했다. 조금이나마 분위기가 바뀐 것은 5만 5천여 명의 구름관중이 몰려들어 K리그 한 경기 최다관중 신기록을 세운 4월 8일 서울전이다. 수원은 신예 하태균의 결승골을 끝까지 지켜 1-0으로 이겼다. 3일 뒤 부산전에 교체 투입되며 2007년 시즌의 시작을 알린 김대의는 “개인적으로는 성남과의 경기가 가장 어렵다. K리그 팀 가운데 전술적 완성도가 높은 팀을 꼽으라면 성남을 들 수 있다. 왠지 모르게 신경이 쓰이는 팀은 서울이다. 올시즌에도 서울에게 진 뒤 연패했고 서울에게 이긴 뒤 더디지만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수원의 본격적인 상승세는 4월 28일 제주전부터 시작됐다. 수원은 제주를 3-0으로 물리치고 이후 6연승의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차감독의 전술 변화가 주효했다. 안효연과 배기종에게 의존했던 공격 흐름이 상대에게 드러난 터라 시즌 초반의 전술을 유지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에 따라 차감독은 기존의 포백에서 스리백을 혼용하기 시작했고 양상민을 공격적인 윙백으로 전진 배치했다. 수비가 안정됐고 부상 선수들의 복귀로 공격의 흐름도 한결 나아졌다. 5월 2일 수원에게 1-3으로 진 서울의 세뇰 귀네슈 감독은 “후반 수원의 전술 변화가 심해 우리 선수들이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다”고 패인을 분석했다.
김대의가 6연승의 시동을 걸었다. 아킬레스건 부상이 길어져 깁스까지 하면서 시즌 초반 벤치를 지켰던 김대의는 제주전에서 박성배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부활을 예고했다. 나흘 뒤 서울을 상대로 후반 교체 투입된 김대의는 17분 만에 강력한 왼발 캐넌포를 터뜨려 팀의 2번째 골을 기록했다. 김대의는 5월 5일 광주전에서도 수원의 2번째 골을 넣으며 3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를 올렸다.
수원은 베테랑 김대의의 복귀에 힘입어 거침없는 6연승 행진을 이었다.(사진 김병준)
“부상 때문에 제주전 이전까지는 소심하게 플레이했던 것 같다. 사실 지금도 왼발목 통증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 아내가 내 경기를 모두 모니터링 하는데 제주전 이전까지는 따뜻한 말 한마디는커녕 잔소리만 했다. 내가 핑계를 대니 변명하지 말라고 호통을 쳤다(웃음). 결혼한 지 시간이 꽤 흘렀지만 지금도 신혼 기분으로 지내고 있다. 아내의 격려로 공격적인 플레이를 해 보자고 마음을 다잡게 됐다. 그 시작이 제주와의 경기였다.”
스파이더맨 세리머니
제주전에서 박성배의 골을 도운 뒤 김대의는 스파이더맨 가면을 뒤집어쓰는 골뒤풀이를 선보였다. 이어 서울전에서 골을 넣은 뒤에는 스파이더맨 장갑을 끼고 두 팔을 활짝 펼치는 골세리머니로 팬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김대의는 “스파이더맨 세리머니를 한 뒤에 아내에게 또 한소리를 들어야 했다. (아내는)’가면을 쓰려면 제대로 쓸 것이지’라고 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아내 조성은 씨의 핀잔을 듣기는 했지만 김대의의 세리머니에 팬들은 즐겁다. 그리고 팬들에게 다가가기를 망설이지 않는 김대의의 적극성은 스타 부재에 허덕이는 K리그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운동만 잘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일부 선수들의 자세를 비판하는 축구 관계자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K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프로선수라면 구단 홍보나 팬서비스 등 경기 외적인 일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프로축구연맹 경기심판규정 제4장 공식경기운영 제35조 인터뷰실시 제2항에 따르면 선수가 인터뷰 요청을 거부했을 경우 4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게 돼 있다. 야구, 농구, 배구 등 국내프로스포츠에도 비슷한 규정이 있다.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는 종목은 K리그가 유일하다.
김대의는 “수원팬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다음에는 어떤 세리머니를 보여줄 것인가’라는 질문이 빠지지 않는다(웃음). 남들이 비웃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세리머니를 하고 어떻게 팬들에게 다가갈 지 생각하는 것부터가 그들의 진심 어린 성원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김대의는 에피소드 하나를 덧붙였다. “가수 이효리가 생일파티에 참석한 팬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100여 명을 초청해 영화를 함께 관람했다는 기사를 봤다. 그러나 팬들과 함께 영화를 본 것은 내가 원조다.”
SPORTS2.0 제 53호(발행일 05월 28일) 기사
김덕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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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읽기가 좀 힘들어요;
..........안읽을래ㅈㅅ
크억-_-
다 읽었습니다!! 제가 이래서 대의성을 좋아해요~ㅠㅠ 아 감동 근데 영화는 언제봤나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