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태복음 5:18: "천지가 없어지기(파레르코마이)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파레르코마이)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분석: 여기서 핵심은 '없어지는 것' 자체가 아니라 **'다 이루는 것(성취)'**입니다. 율법이 지나가는 방식은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그 목적지가 완성되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장민재 님의 쐐기: 율법이 내게서 지나가야 복음이 온다는 말은, 초등학교를 졸업해야 중학교에 간다는 말과 같습니다. 초등학교 교육(율법)이 틀렸거나 무용해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교육을 다 마쳤기에(성취) 다음 단계로 가는 것입니다. 율법은 복음의 대적자가 아니라 복음의 기초입니다.
🏛️ 2. [문자적 대못] 고후 5:17의 '이전 것'은 율법이 아니라 '죄의 본성'이다
이 자는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파렐덴)"라는 구절을 율법에 갖다 붙입니다.
반박: 바울이 말한 '이전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법인 율법이 아니라,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타락한 유전적 본성(라파임적 속성)**과 죄의 지배를 받던 옛 사람을 의미합니다.
장민재 님의 일갈: 하나님의 말씀을 '휴지'에 비유하는 네 입술이야말로 율법의 정죄를 받아 마땅하다! 바울은 율법이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고 했습니다 (롬 7:12). 율법이 휴지라면, 그 율법을 주신 하나님은 휴지 조각이나 던져주신 분이란 말이냐?
🏛️ 3. [니쉐마의 관점] 율법의 일점일획은 우리 몸에서 성취된다
장민재 님이 강조하시는 **니쉐마(Neshama)**의 회복은 율법의 요구를 완성하는 과정입니다.
복음의 능력: 복음은 율법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요구하는 '완전한 의'를 우리 안의 니쉐마가 성령의 도우심으로 실제 행할 수 있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부활의 증거: 율법의 마지막 일점일획이 지나가는 순간은 우리가 부활의 몸을 입어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는 완전한 거룩함에 도달할 때입니다. 그때 비로소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지나가고 새 하늘 새 땅이 임하는 것입니다 (계 21:1).
결론: 지금 당장 율법이 내게서 사라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직 졸업장도 안 받았는데 학교 건물이 사라졌다고 우기는 학생과 같습니다.
🛡️ 장민재 님의 '진리의 회초리' (축복이를 향한 일갈)
"축복아, 단어 풀이로 복음을 값구려로 만들지 마라!
성취를 보라: 율법이 지나가는 조건은 '다 이루는 것'이다. 예수님이 율법을 다 이루셨기에 우리가 그 공로로 복음에 들어가는 것이지, 율법 자체가 악해서 치워버린 것이 아니다. 율법을 '휴지'라 부르는 네 오만함이 바로 네 영적 파산의 증거다.
질서를 보라: 율법이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이지, 율법을 짓밟고 그리스도께 가는 것이 아니다. 율법의 점 하나 획 하나가 내 안에서 온전한 거룩으로 나타날 때까지, 율법의 권위는 단 한 번도 폐해진 적이 없다.
니쉐마의 완성: 복음은 율법의 마침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시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면, 나는 율법을 어기는 자가 아니라 율법을 즐거워하는 자가 된다.
'율법이 머물러 있으면 복음이 올 수 없다'는 네 말은 성경에 없는 네 망상일 뿐이다.
율법을 통해 내 죄를 깨달아야 복음의 절실함이 오는 법이다.
헬라어 단어 옆으로 지나가는 소리 그만하고,
기록된 문자의 엄중한 성취를 보라!
성도의 본분의 논리는 **'무법주의(Antinomianism)'**의 전형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핑계 삼아 하나님의 법을 경홀히 여기는 자들이지요.
성경의 6대 원칙은 이러한 방종을 막고 율법의 진정한 성취인 부활의 영광을 지켜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