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아버지
최광자
이미 가버린 서럽던 순간들 영원히 잊혀질 수 없는 아린 가슴을
쓸어 내리며 아픈 상처와 불효를 조금이라도 덜고 싶다.
“잘사는 것이 부모에게 효도다" 하시며 결혼식 날 내 손등을 토닥
이던 아버지 자식사랑이 유별나시어 한 살 세살 터울로 딸 여섯을
줄줄이 얻으셔도 싱글벙글 하시며 금줄 매시고 장작불 지펴 후산 처
리까지 하셨다는 아버지.
목재업으로 바쁘신 중에도 딸들 목욕을 씻기시며
"그놈 참 잘생겼다."
여장부라 부르시고, 겨울이면 따끈따끈하고 고소한 노오란 군밤을
맛있게 구워 주시며
"따뜻하지?"
하고 물으시던 아버지.
대청 뒤로 울창한 등나무 숲을 만들어 그 곳에 털이 곱슬곱슬한 양
을 기르고 대문에는 철봉을 고정하여 그네를 매어 주셨고 그 시절에
탁아 방처럼 놀이터를 만들어 주시던 자상하고 멋진 나의 아버지였
다.
우물가에는 커다란 함석 물통에 참외를 띄워 놓고 물놀이를 즐기
던 집. 집안 곳곳에 숯 가마니와 장작을 차곡차곡 산더미 같이 쌓아
두고 근심 걱정 없이 지낸 풍요로운 동화 속 같은 유년시절이었다.
그러나 꿈속에서도 그리운 그 집은 6·25 때 폭우같이 퍼부어진 폭
탄으로 흔적조차 없어졌다. 우리 집과 주변의 모든 가옥들은 피비린
내 진동하는 흉물스런 전쟁의 부산물이 되었다 등나무 울창한 숲이
인민군의 은신처가 되었고 엄청난 폭격은 철부지 가슴에 두렵고 참
혹한 영상으로 남아졌다.
사변이 할퀴고 앗아간 상처로 상심한 아버지께서는 끝내 당신의
일생을 비운으로 남겼다.
그 후 아버지는 서화를 취미로 하셨는데 주로 대나무와 포효하는
달밤의 호랑이를 그리셨다 한 마리의 호랑이가 탄생하기까지는 한
달 혹은 두 세 달을 심혈을 기울이셨다 곱고 부드러운 털 하나 하나
에 섬세한 애정과 정성을 다하시며, 고통의 위안을 얻는 각고의 작업
을 하신 아버지였다 그러나 현실적인 생계 때문에 작업을 강요당한
아버지는 그림을 훌쩍 팔아버리고 눈치만 보는 어머니와 가족모두에
게 소외감을 느끼셨는지 한마디 말씀도 없이 그림에서도 손을 놓으
셨다 서운함이 가슴에 서려 한마디 표현조차 없으신 건지..…
가솔들이 아버지의 마지막 소망마저 팔아 버린 것이다.
호랑이는 아버지가 토해내는 통한의 절규이며, 울분과 좌절의 몸
부림인 것을 누군들 상상이나 하였던가! 단란한 여름밤, 대청마루 가
득 가족들이 둘러앉으면 아버지께서는 막내 동생의 실로폰을 치며
"도파파파솔라 도라솔라솔 파라라솔 솔파레도" 기분 좋은 아버지
는 음이 틀리는 것도 모르시고 계명에 맞춰 희망가를 부르시면 우리
도 멜로디를 따라 한다.
결혼 전, 집에서 기르는 비둘기를 잡아 우리에게
“약이다. 옛 말에 비둘기 고기를 먹으면 자웅만 낳는다.”
하시며 속는 셈하고 먹으라 하셨다 자식이 많으면 고생할까 둘만 두
라는 예시인 것이다.
혈압과 간경화로 몸이 불편하게 되면서
“제비가면 나도 떠나야지."
하시며 돌아가실 날을 예언하듯 하셨다 우리 모두 9월9일에 한 자
리에 모이면
“8남매 다 보고 죽으면 여한이 없다고 생각해 떠날 날을 정했건만
쉽게 가지 못하는구나."
하셨다.
그 말씀 속에 번뇌와 질병의 고통으로 시달리는 내면의 숨결을 눈
치 못 챈 자식들.
불운의 쓰라린 응어리를 풀지 못하고 삶의 시린 부분이 힘겨워 자
신과의 싸움에서 처철하게 몸부림치다 한 맺힌 삶을 가슴에 안고 흘
연히 떠나 하늘나라 가신 아버지.
내가 둘째 아기 출산 전 한동안 못 뵌다고 바셀린을 아픈 팔꿈치
에 듬뿍 발라 맛사지와 찜질로 죽은 세포를 떼어내고 부드럽게 해드
렸더니,
“이제 너를 귀찮게 하는 것도 마지막이다. 아비는 네가 잘사는 것
못보고 죽는다" 하시고는 잘살라며 팔다 남은 산문서 한 권과 쪽지
편지 한 장을 주셨다.
"아가, 지금은 연탄이 흔해서 숯이 필요 없으나 다시 옛날로 돌아
가는 세월이 오면 숯이 필요할 때 팔거라 참나무 산이다" 하셨다.
나는 그 순간도 말씀의 진의를 모르고 마냥 불쌍한 아버지의 병약한
모습과 공허한 말씀에 오빠가 편지 받으면 좋은 약 보낼 거라며 울며
돌아섰다.
그 후 9월9일에 제비 따라 가신다던 내 아버지는 3월3일 제비 오
는 날에 홀연히 떠나가셨다 우리가족 모두가 아버지의 죽음을 방관
했고 재촉한 결과가 되었다. 아버지 앞에 통곡하며 엎드린 나는 죄인
이다 특히 난 더 죄인이다 오빠에게 끝내 전해주지 못한 아버지의
마지막 편지는 어째서 소중히 간직하였나? 누구에게 언제, 무슨 의
미로 전하려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에서 기막힌 고통을 읽는다 마지막 고통
의 순간들이 얼마나 힘없는 저항이었는가! 사람은 누구나 삶이 힘겹
고 희망이 절망으로 다가오면 한 두 번은 하늘나라로 가고 싶다고 절
규 할 때가 있다 죽음의 길이 사는 것 보다 더 큰 고통이기에 끝내
택하지 못하면서 마음으로만 선택 버리는 길 몸서리쳐지는 지독한
공포감 못내 이승과 이별의 아쉬움 자신이 사랑하던 혈육과 분신
을 떨치지 못하는 미련! 패배자의 오기! 가련하신 분..…
이순의 삶을 살다 가신 그 언저리에 아버지 가신 마지막 길.
30년이 된 지금도 눈물의 사부곡을 부르며 잃은 것의 안타까움과
그리움 삶의 환멸 앞에 고통과 좌절이 사무치는 아픔과 쉼 없는 눈
물로 지낸 아버지를 지금에서야 이해하겠노라고.
뵈옵는 그날에 용서를 빌겠노라고 하늘 나라에서 뵈면 외로울 때
함께 하지 못했고 힘들어 방황할 때 위로해 드리지 못한 불효 죄를
용서해 주십사하고.
오늘도 아버지의 영령 앞에 고요한 평화를 불효 여식은 촛불을 밝
히고 기원한다.
서러운 눈물도 괴로운 질병과 고통도 없는 곳에서 영원히 안식하
시기를... 영원토록.
2001 9집
첫댓글 30년이 된 지금도 눈물의 사부곡을 부르며 잃은 것의 안타까움과그리움 삶의 환멸 앞에 고통과 좌절이 사무치는 아픔과 쉼 없는 눈물로 지낸 아버지를 지금에서야 이해하겠노라고.
뵈옵는 그날에 용서를 빌겠노라고 하늘 나라에서 뵈면 외로울 때 함께 하지 못했고 힘들어 방황할 때 위로해 드리지 못한 불효 죄를
용서해 주십사하고.
오늘도 아버지의 영령 앞에 고요한 평화를 불효 여식은 촛불을 밝히고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