乾造:戊午 乙卯 甲子 乙亥
大运:丙辰 丁巳 戊午 己未 庚申 辛酉 壬戌 癸亥 甲子
자평진전에 따르면 이 명조는 양인용재가 됩니다. 양인용재는 식상운이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명조는 경신 신유 관살대운에 빛을 발하게 됩니다. 무인이 아니라 학자로서 이름을 떨치게 됩니다.
86 76 66 56 46 36 26 16 06
甲 癸 壬 辛 庚 己 戊 丁 丙 - 乙 甲 乙 戊 : 85세 乾命(1918. 남회근)
子 亥 戌 酉 申 未 午 巳 辰 - 亥 子 卯 午
[松栢] => 金克木하면 火가 살아나는 이치를, 즉 金養火의 이치를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참고자료) 첨부한 파일은 주역현이 남회근선생 사주를 분석한 것입니다.
조용헌 살롱] 대만의 國師 남회근①
무협지를 읽으면서 그 필요성을 절감했던 두 가지 단어가 ‘사부(師傅)’와 ‘내공(內功)’이라는 용어였다. 인생 기로에 직면할 때마다 찾아뵙고 상의드릴 만한 사부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일은 벌여 놓았지만 막상 뒷감당을 못할 때마다 나의 내공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절감한다. 내공을 갖춘 사부가 과연 어떤 인물일까. 그런 사람이 바로 국사(國師)이다.
근래 20~30년 동안 대만에서 국사 대접을 받고 있는 인물이 남회근(1918~)이다. 장개석과 장경국이 국사로 모셨고, 지금도 나라 안팎의 중대 사안이 있을 때마다 정계와 재계의 지도자들이 자문을 하고 있는 어른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전통 고전들을 섭렵하면서 여러 분야의 대가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하는 복을 누렸다. 유·불·도의 경전뿐만 아니라 그 수행방법에도 두루 통달하였으며, 10대 중반에는 무술 사부를 만나 검술에도 조예가 깊다. 20세 무렵에는 사천성의 아미산에 들어가 폐관(閉關) 수련을 한 바 있다.
산에서 내려와 항일운동에도 참여하였으며, 국공내전이 벌어지자 티베트로 들어가 2년 동안 대장경을 공부하였다.
이후에 국민당 정부를 따라서 대만으로 들어와 중국의 전통문화와 고전들을 강의하면서 제자들을 양성해 왔다. 오천 년 중국문화의 정수를 한몸에 지니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넓이와 깊이를 겸비한 인물이다.
그는 모택동 정권이 들어설 때, “대륙도 50년 후면 다시 전통으로 돌아갈 것이다”라는 예언을 한 바 있고, 그때를 위해서 50년을 준비했다는 설이 있다.
그가 저술한 ‘주역강의’, ‘논어강의’를 비롯한 30여종의 저술들은 문화혁명으로 전통문화가 깡그리 사라진 중국 본토의 대학생들에게 전통의 향기를 회복하게 해주는 교과서로 읽히고 있다.
그는 1992년에 자신의 고향인 절강성 온주(溫州)에다가 자신을 따르는 화교의 재력가들을 동원하여 철도를 개설한 바 있고, 이때부터 장쩌민을 비롯한 본토 실세들과의 신뢰관계가 형성되었다.
이번에 후진타오와 롄잔의 ‘국공회담 5개항 합의’를 보면서 그가 배후에서 어떤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을 해 본다. 왜냐하면 국민당과 공산당 양쪽에서 모두 존경을 받고 있는 국사이기 때문이다.
조용헌 살롱] 대만의 국사 남회근(2)
직관과 영감을 강조하다 보면 일관성이 결여되기 쉽고, 논리와 분석을 중시하다 보면 비약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남회근은 특이하게도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추었다.
20대 초반에 사천성의 아미산에서 폐관(閉關) 수련을 하면서 ‘우주와 자기 자신이 하나 되는’ 돈오(頓悟) 체험을 이미 하였고, 이후로 수십 년의 세월 동안 한자문화권의 천재들이 남겨 놓은 방대한 고전들을 차근차근 섭렵하였다.
모든 고전이 그렇지만 동양의 고전들도 그것을 읽는 사람의 정신적 깊이에 따라 해석의 층차가 각기 다르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돈오를 체험한 그의 고전해석은 남다른 바가 있다.
‘역경’에서 말하는 ‘천일생수 지육성지(天一生水 地六成之)’에 대해서, ‘우주의 첫 시작이 물이며 지구가 형성된 이후는 공간이 사방과 상하로 나누어진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지이생화 천칠성지(地二生火 天七成之)’에 대해서, ‘지구가 형성된 후 회전하고 마찰함으로써 발생한 전기에너지가 하늘의 북두칠성과 연결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제갈공명의 장인이었던 황승언(黃承彦)과 스승인 방덕(龐德)이 모두 뛰어난 은사들이었다고 설명한다. 역사적 전환기에 자신들은 무대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공명과 같은 뛰어난 제자를 무대 위로 내보냄으로써 역사를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다. 역사를 바꾸면서도 이들 은사는 전혀 그 역사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가 하면 춘추(春秋)의 의미에 대한 설명도 기막히다. 봄철 3월과 가을철 9월에 드는 춘분·추분 두 절기만이 경도·위도상으로 볼 때 태양이 황도(黃道) 중간에 이르는 때여서, 밤낮의 길이가 거의 같고 기후도 춥지도 덥지도 않아 온화하다. 바로 춘분과 추분의 이 평형성 때문에 역사를 ‘춘추’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문화혁명을 겪으면서 족보 없는 문화가 되어 버린 대륙에서는, 남회근이라는 사부를 통해서 자신들이 잃어버린 정신적, 문화적 정체성을 회복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는 1980년 홍콩에다 ‘시방총림서원(十方叢林書院)’이라는 살롱을 설립하였다. 올해 88세의 고령이지만 기경팔맥(奇經八脈)이 뚫린 건강한 몸으로 찾아오는 명사들과 학인들을 만나고 있다고 들었다.
첫댓글 목이 혼잡하니 이공부저공부 많이한 팔자/부목사주라 대륙을 횡당하면서 돌아 댕겻나 봄니다,,
결국
신자진으로 하직한명,,,신유대운은 사망운인데,,살앗다면 누군가 대신햇슬 경우에 해당댐니다,,
쟁재의사주로 경쟁적(전투적)인 삶을 사는 象이라 봅니다. 식상으로 강한 木을 설기하여 財를 生하면 되겠으나 火氣 식상이 木을 소통시키지 못하고 있으므로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丁巳 戊午 己未는 식상생재하여 木이 누설되어 財를 生하나 旺한 木氣를 채우기에는 부족합니다. 쟁재의 사주는 食傷運을 만나 財를 生해도 일주와 재가 균형을 이루기 전에는 부족함은 면하기 어려운 사주입니다. 庚申 辛酉運은 지지가 련육되어 관인상생이 되니 성취가 되고 있는 象이라 사료됩니다. 癸亥 甲子運의 말년은 세상이 뜻과 같지 않으니 편안한 삶은 아니라 봅니다.
이렇게 원국이 쟁재의 사주인 경우 성공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미안합니다. 제가 사망년도를 잘못 기록했습니다.
95세 갑자대운 임진년 사망입니다.
중국의 음양명리학자는 무토가 투간하면 양사주 기토가 투간하면 음사주로 본다는 학설을 주장한다고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악비 사주는 음사주, 남회근 사주는 양사주
그동네도 혼란스럽기넌 매 한가지 갇슴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