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작은 교회 놔두고 그 위에 59층 건물, 서울은 무조건 밀어” 재미 건축가 김용원(67ㆍYK 건축사사무소 대표)씨는 을지로 재개발 현장의 목격자이자, 당사자다. 강남 테헤란로 포스코 센터를 설계한 그는 4년 전 귀국해, 현재 철거가 진행되고 있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 3-4구역의 한 빌딩에 사무실을 차렸다. 가족 명의의 빌딩이었다. 그의 증조부는 1993년 건국 포장이 추서된 애국지사 김조현 선생이다. 을지로 출신 재미건축가 김용원 그는 “증조부의 뒤를 이어 그의 조부도 독립운동을 펼치다 하얼빈으로 피신했고 귀국해 을지로에 자리 잡고 간장 공장을 운영하셨다”며 “이 일대에 독립운동가의 집터가 꽤 많은데 나 역시 미국으로 가기 전 유년 시절을 가족의 보금자리인 을지로에서 보냈다”고 덧붙였다. 최근 작고한 아버지를 대신해 빌딩을 관리하면서 그는 을지로 일대 재개발에 휘말렸다. 그는 “박원순 시장이 재생이라고 말해왔지만, 가족이 겪은 것은 분명 재개발이었고, 시행사 주도의 대규모 재개발에서는 을지로가 절대 보존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재개발 사업 자체가 문제다. 지주(地主)들이 75% 동의하면 이들의 땅을 넘겨받은 시행사가 사업시행인가를 받고 사업 주체가 되면서 다른 목소리를 담을 수 없다. 보존은 사치다. 시행사는 ‘최대 이익’만 바라보며 달린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받아 추진하기 때문에 시간은 곧 돈이다. 재개발에 동의하지 않는 25%의 지주와 세입자 모두 강제 수용으로 쫓겨난다. 수용 과정에서의 편법과 불법, 놀랍게도 여전하다. 2019년 서울 을지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도시의 생애 주기상 다시 짓는 일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세운상가 일대를 재생한다고 방향키를 잡았을 때, 제대로 된 조사부터 해야 했다. 을지로의 생태계와 매력을 살리면서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 연구하고 방법을 찾게 해야 했다. 밀고 네모반듯한 건물 짓는 게 제일 싸고 빠른 방법이다. 한국 재개발의 현주소다.”
“1977년 완공한 미국 뉴욕의 씨티 그룹 센터가 훌륭한 사례다. 59층짜리 고층 건물인데 10층 높이의 필로티를 세우고 그 위에 건물을 지었다. 기존에 있던 작은 교회를 보존하기 위해서다. 교회는 새롭게 개발되는 현장에 여전히 남게 됐고, 그 위로 엄청난 높이의 네 기둥을 박고서 고층 건물이 들어섰다. 비용은 많이 들었지만, 빌딩 아래 뉴욕의 오밀조밀한 거리는 지켜졌다. 건물 아래에 교회와 카페와 공원이 있고, 햇살도 들어온다. 뉴욕의 명소가 됐다. 한국의 전통과 유산을 미래 자손에 남겨줘야 하는 책임이 한국인에게 있지 않나. 정치가든 공무원이든 사업가든 아무도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
“옌청시는 한국의 자동차부품 기업을 유치해 발전하고 있는 도시다. 그곳에서 대규모 산업단지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데 자문을 맡고 있다. 중국 공무원들이 내게 아이디어를 달라길래 ‘당신들의 과거를 파헤쳐 발굴해보겠다’고 했다. 과거와 오늘과 내일을 잘 연결해야 도시의 자산이 된다. 옌청시 공무원들이 한국에 답사 왔을 때 인사동 골목길부터 봤다. 허허벌판에 짓는 산업단지조차도 과거와의 연결을 고민하는데, 건축적으로만 봐도 이렇게 자산이 많은 을지로를 무작정 밀고 네모반듯한 건물을 올린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재검토가 아니라, 일단 중지부터 해야 한다. 지금도 철거는 진행 중이다. 구청에 철거 신고만 하면 현장에 사람이 살든 살지 않든 확인 절차도 없이 철거된다. 을지 면옥 옆 구역까지 철거용 비계가 설치됐다. 을지로는 조선 시대 나라가 허용한 시장인 ‘육의전’의 배후 공장이기도 했다. 일대를 파기 시작하면 옛터와 유물이 쏟아질 텐데 서울시는 대책을 가졌는지, 지금 상황을 보면 대충 치울 것 같다. 옛 유산을 보호해야 경제효과를 거둘 수 있는 시대인데도 그런 문화적 감수성이 없어 안타깝다.” 관련기사 “을지면옥 살린다”…서울시 재개발 재검토에 찬반 논란 / KBS뉴스(News)
게시일: 2019. 1. 23. 최근 서울 을지로 부근의 오래된 음식점들이 재개발로 철거된다는 소식에 비판 여론이 일었는데요, |
출처: 하늘나라 -2- 원문보기 글쓴이: 하늘나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