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로 통찰… 주방용품 혁신한 '조셉 조셉'인류가 도구를 발명하면서 가장 먼저 쓰기 시작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식기(食器)다. 고분(古墳)을 발굴하면 토기나 돌식칼 같은 것들이 꼭 발견된다. 시기적으로는 신석기 시대, 지금으로부터 약 1만년 전 이야기다.
주방용품은 인류와 함께 발전을 거듭, 지금에 와서는 모양이나 소재, 기능이 모두 비슷비슷해졌다. 그런데 영국의 주방용품 브랜드 조셉 조셉(Joseph Joseph)의 창업자들은 "1만년 동안 써온 식칼과 도마라고 해도 얼마든 혁신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업계가 '더 이상 새로운 식칼, 새로운 도마는 없을 것'이라는 관성에 젖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이 회사의 대표적인 제품 중 하나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접히는 도마다. 도마에서 야채를 썰고 접시에 옮겨 담다 보면 야채가 접시 주변에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도마를 접을 수 있게 했다. 썬 야채를 접힌 도마 가운데로 모아서 접시로 쉽게 옮길 수 있다. 이 도마는 지금까지 900만 개 이상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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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매거진 B 제공
조셉 조셉은 이처럼 주방용품을 소비자 관점에서 혁신해 세계 3대 디자인 공모전인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 연속 디자인 상을 받았다. 수많은 주방용품 가운데 이 회사 제품은 한눈에 식별할 수 있을 만큼 독특하다. 350여개 제품을 세계 100개 국에 팔고, 매출의 70% 이상이 해외에서 나온다.
2003년 창업한 이 브랜드는 이란성 쌍둥이인 창업자 형제의 성(性)을 따서 회사 이름을 지었다. 10분 먼저 태어난 앤서니는 디자인 부문을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동생 리처드는 기업 운영을 총괄하는 매니징 디렉터로 일한다. 앤서니는 청바지에 부츠를 신고 가벼운 니트를 입고 나왔다. 수염을 기른 얼굴에 두꺼운 뿔테 안경을 썼다. 리처드는 비즈니스 캐주얼 차림에 머리를 짧게 잘랐다. 패션 스타일은 정반대였지만, 인터뷰를 하는 동안 주거니 받거니 호흡이 척척 맞았다.
―조셉 조셉의 차별화 포인트는 무엇입니까?
(리처드) "사실 주방용품이라는 게 굉장히 오래된 비즈니스입니다.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냄비나 식칼 등을 만들어서 썼죠. 업계에는 그 관성이 남아 있습니다. 각자의 기능에 집중하다 보니, 전체의 효율은 덜 고려하는 겁니다. 그래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죠. 저희는 이 포인트에서 더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방용품은 21세기까지 오면서 발전이 더뎠고, 저희는 개선의 여지를 찾아내는 데 집중했습니다.
예컨대 요즘은 대도시에서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늘어가고 있잖아요? 집이 작아지고 필연적으로 주방도 작아지고 있어요. 저희는 작은 공간에서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음식 재료를 담아두는 사발과 계량컵을 차곡차곡 겹칠 수 있게 디자인하면 공간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나온 게 '네스트' 라는 이름의 사발 뭉치입니다. 사발 9개가 쌓여 있지만, 사발 1개만큼의 부피만 차지하죠.
늘 '문제는 무엇인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떤 혜택을 줄 수 있는가'를 고민한 결과, 다른 주방용품들과 차별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종종 제품이 출시됐을 때, '왜 이런 제품이 진작부터 없었지?' 이런 식으로 블로그에 포스팅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희에겐 최고의 칭찬입니다. 그동안 사람들이 찾지 못했던 불편함과 문제를 해결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앤서니가 말을 이어받았다.
"예컨대 40대 전업 주부들은 요리 도구를 여러 개 꺼내 놓고 여러 가지 음식을 동시에 합니다. 그런데 도구가 너무 많다 보면 어떤 음식을 어떤 도구로 조리했는지 헷갈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색이 서로 다른 4개의 도마에 4개의 칼이 달려 있는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초록색 도마는 야채, 하늘색 도마는 어류, 붉은색 도마는 육류, 흰색 도마는 가공 식품을 처리하는 데 씁니다. 그러면 재료가 섞이면서 맛이 섞이거나 비위생적이 될 우려를 거둘 수 있어요."
―애초에 그런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습니까?
(리처드) "저희는 정말 오랜 시간 공들여 사람들을 관찰합니다. 잠재 고객을 연령별, 직업별, 성별로 나누고 그들의 주방을 직접 찾아 다니며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습니다. 때로는 일주일, 때로는 반년 가까이 조사를 다닙니다. 10명씩 4~5개 그룹을 동시에 관찰하는데, 예컨대 30대 미혼 직장 여성의 집에 찾아가 어떤 음식을 해 먹고, 어떤 방법으로 요리하고, 설거지는 얼마나 자주 하고, 요리 시간은 평균 몇 분이나 걸리는지를 샅샅이 조사합니다. 정말, 정말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고객들의 삶을 지켜봅니다. 바로 그곳에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볍게만 보고 지나치면 사소한 불편은 절대 찾을 수 없어요."
앤서니는 "관찰을 통해서 통찰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앤서니) "4색 도마는 40대 기혼 여성 그룹을 관찰하다가 개발한 제품입니다. 그들은 다른 연령대나 다른 성별보다 상대적으로 음식에 많은 정성을 쏟습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서 요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음식을 한꺼번에 만들고, 위생에도 신경을 씁니다. 4색 도마는 그들에게 딱 맞는 제품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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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셉 조셉의 창업자인 앤서니 조셉(왼쪽)과 리처드 조셉 형제. / 윤형준 기자
조셉 조셉 제품은 주방용품치고는 파격적인 디자인을 자랑한다. 모양이 장난감 같고, 색상도 화려하다. 무채색 위주의 주방용품 사이에서 빨간색 도마나 보라색 사발은 강력한 인상을 남긴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도 이 회사 제품을 팔고 있다.
많은 사람이 조셉 조셉 제품을 찾는 이유 중 하나도 디자인이다. 앤서니는 "다른 브랜드와 명확하게 구별되는 디자인 요소를 집어넣는다. 그래서 딱 봤을 때 '오, 제법 예쁜데' 싶게 한다"고 말했다.
(앤서니) "주방용품 브랜드 대부분이 기능성에 집중해왔기 때문에 디자인 요소를 별로 고민하지 않았어요. 특히 색은 '그냥 이상하게 보이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었죠. 저희는 여기서 차별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디자인은 저희 브랜드의 언어입니다. 디자인을 통해서 고객과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은 중요하지만 딱 20%만
그러나 조셉 형제는 제품 개발에서 디자인의 비중이 너무 커져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리처드) "저희는 제품을 만들 때, 80%의 기능과 20%의 패션을 섞어서 만듭니다. 만일 예쁜 디자인, 즉 패션의 비중이 50%를 넘으면 그건 위험한 결정이 될 겁니다. 유행은 계속 바뀌기 때문이죠."
리처드는 "디자인이라는 것은 단순히 보기에 좋은 것을 넘어서서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용적 디자인이 돼야 한다"고 부연 설명했다.
(앤서니) "저희는 단순히 예뻐 보이기 위해서 특정 디자인을 차용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빨간색보다 보라색이 예쁘니까 보라색으로 쓰자'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빨간색을 쓰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빨간색은 육류와 비슷한 색깔이기 때문에 고객들이 덜 헷갈릴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겁니다(빨간색 도마를 두고 하는 말이다·편집자 주). 생선은 푸른색을 쓰고요. 제품 용도를 색으로 설명하는 겁니다. 저희는 고객이 제품을 처음 봤을 때 무슨 용도로 쓰는 건지 딱 알아차릴 만큼 쉬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설명서가 필요한 제품은 설계가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철저하게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춘다
조셉 조셉의 제품 개발 철학은 철저히 보통 사람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다. 디자인 총괄인 앤서니 조셉은 "요리사가 사용해 주길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저희는 전문가용 제품을 만들지 않아요. 요리사는 디자인적인 아름다움은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들은 프로이고 요리는 취미가 아니라 직업이거든요. 그러나 아마추어들, 즉 집에서 요리를 하는 보통 사람들은 요리가 직업이 아닙니다. 먹고살려고 하는 일이지만, 동시에 즐거움을 위해서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희가 그 즐거움을 제공하고 싶고요. 저희는 보통 사람들에게 친숙한 제품을 만드는 게 신조입니다."
―두 분 다 요리를 하긴 하지만, 잘하는 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여전히 그런가요?
(리처드) "사실 저희는 절대 프로 요리사가 되지 않으려고 해요. 만약 저희가 요리를 잘하기 시작하면, 자기도 모르게 어느새 전문가다운 생각을 떠올리게 될 겁니다. 예컨대 '이 정도 맛을 내려면 약간의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여기서 프로와 아마추어가 나뉩니다. 아마추어는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싶어 하지 않을 거예요."
브랜드 컨설팅 회사인 JOH의 조수용 대표는 "조셉 조셉은 집에서 요리를 하는 대중의 관점과 입장을 늘 견지하며 제품을 만드는데, 이런 일관적인 의지는 매우 묵직하다"고 말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끈기
조셉 형제의 가족은 할아버지 때부터 산업용 유리 사업을 했다. 아버지가 사업을 확장해 자동차용 강화 유리나 냉장고 선반용 유리, 주방에서 쓰는 강화 유리 도마를 만들었다. 아버지는 서로 다른 대학에서 각각 디자인을 전공한 두 아들을 회사로 불렀다.
(앤서니) "저희는 아버지의 사업에 어떻게 도움이 될지를 고민했어요. 그런데 유리 도마를 보면서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유리 도마 밑에는 고흐나 미켈란젤로의 그림 같은 명화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좀 더 현대적인 디자인도 넣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아버지는 제 생각을 믿어주셨어요."
(리처드) "그게 통했습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옛날 명화가 그려진 유리 도마를 지겹게 여겼던 듯합니다. 아버지는 저희에게 공장을 빌려주시면서 저희 하고 싶은 대로 해 보라고 하셨어요. 고민 끝에 앤서니와 함께 새 브랜드를 시작해 보기로 했습니다. 바로 그 지점이 조셉 조셉의 시작입니다. 첫해는 엄청나게 힘들었어요. 저희 제품을 사 준 고객이 고작 15명에 불과했어요."
―아버지로부터 무엇을 배웠나요?
(리처드) "끈기입니다. 비즈니스는 절대로 예상 가능하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잘될 때는 잘되는데, 안 될 때는 무슨 짓을 해도 안 돼요. 그러나 그때 버티고 끈기 있게 소신을 밀어붙여야 다음에 잘될 때가 옵니다."
리처드는 "제품 하나를 개발하는 데 평균 2~3년씩 걸린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적인 주방용품 업계의 제품 개발 기간은 따로 조사된 바 없지만 길어봤자 두세 달일 것"이라고 말했다.
조셉 형제는 42세로 아직 젊지만, 20세기와 21세기에 사업을 모두 경험했다. 21세기는 어떻게 다를까?
(앤서니) "21세기라고 해도 저희는 빠름의 위기를 상대적으로 덜 느낍니다. 여전히 많은 주방용품 회사는 나무로 숟가락을 만듭니다. 솔직히 1만년 전에도 나무 숟가락은 있었는데 말이죠."
어떻게 주방을 뒤집었나… 경영 시사점 셋
'디자인 관심 많은 30대 후반 주부'
상상 속 인물에 맞춰 제품 개발
조셉 조셉의 사례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경영 시사점을 세 가지로 정리해 봤다.
①관찰
조셉 조셉은 잠재 고객을 연령별, 성별, 직업별로 나누고 이들의 주방을 직접 찾아가 관찰한다. 거기서 통찰을 얻고, 제품을 개선한다. 예를 들어 냉장고엔 얼음을 얼리는 틀이 들어 있는데, 막상 물을 얼려보면 한참 비틀어도 얼음이 잘 떨어져 나오지 않는다. 무리해서 비틀다 보면 얼음이 안에서 깨져버리기도 한다. 조셉 조셉은 소비자를 관찰해 이 불편함을 포착했고 얼음 틀 안에 말랑말랑한 고무 버튼을 넣는 개선책을 내놓았다. 버튼을 '톡' 누르면 얼음이 쉽게 떨어져 나온다.
잠재 고객을 잘게 나눠 관찰하면 좋다. 예컨대 30대 미혼 남성은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도구를 써서 최대한의 만족을 얻고자 한다. 1개의 주걱에 5가지 기능을 담은 유니툴(Uni-tool)이란 제품은 이 관찰에서 나왔다.
②디자인
사람들이 조셉 조셉 제품을 찾는 이유는 십중팔구 디자인이다. 예쁘니까 사고 싶은 것이다.(홍성태 한양대 교수) 조셉 조셉은 그럼에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을 경계한다. 디자인보다 기능이 우선이고, 과도한 디자인이 제품의 목적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조셉 형제에게 디자인이란 예뻐 보이는 수단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다. 그들은 기능과 디자인의 황금 비율이 8대2라고 했다.
③타겟팅
조셉 조셉은 철저하게 보통 사람들을 위해 제품을 기획·개발한다. 앤서니 조셉은 제품을 개발할 때 상상 속 인물을 염두에 둔다고 했다.
"사내에선 존스 부인이라고 부르는데요. 그녀는 아주 영국적인 30대 후반의 가정주부이고, 디자인 제품에 아주 약간의 관심이 있죠. 그렇다고 디자이너 이름을 줄줄 외울 만큼 관심이 많은 건 아니고요. 그냥 예쁜 제품 보면 '예쁘다'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저희는 이런 존스 부인에게 익숙한 물건을 만들고자 합니다. 디자이너들이 좋아하지만, 존스 부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제품이라면 노(No)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