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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왕 여호사밧 22:41~50
41 이스라엘의 아합왕 제사년에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이 유다의 왕이 되니
42 여호사밧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삼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수바라 실히의 딸이더라
43 여호사밧이 그의 아버지 아사의 모든 길로 행하며 돌이키지 아니하고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은 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아직도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44 여호사밧이 이스라엘의 왕과 더불어 화평하니라
45 여호사밧의 남은 사적과 그가 부린 권세와 그가 어떻게 전쟁하였는지는 다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46 그가 그의 아버지 아사의 시대에 남아 있던 남색하는 자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
47 그때에 에돔에는 왕이 없고 섭정 왕이 있었더라
48 여호사밧이 다시스의 선박을 제조하고 오빌로 금을 구하러 보내려 하였더니 그 배가 에시온게벨에서 파선하였으므로 가지 못하게 되매
49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내 종으로 당신의 종과 함께 배에 가게 하라 하나 여호사밧이 허락하지 아니하였더라
50 여호사밧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조상 다윗 성에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호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북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 22:51~53
51 유다의 여호사밧왕 제십칠년에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52 그가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의 길과 그의 어머니의 길과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53 바알을 섬겨 그에게 예배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기를 그의 아버지의 온갖 행위같이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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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여호사밧이 유다 왕이 되어 25년간 다스립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행했으나 산당은 폐하지 않아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드립니다. 그는 북 이스라엘 왕과 평화롭게 지냅니다. 아합에 이어 왕이 된 아하시야는 여로보암의 길을 따르고 바알을 섬겨 하나님을 노하시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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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왕 여호사밧 22:41~50
아사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여호사밧이 유다 왕이 됩니다. 여호사밧은 아사와 함께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왕으로 평가받습니다. 비록 산당을 모두 없애지는 않았지만, 우상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방 신전의 남창을 근절하며 신앙적 정결에 힘썼습니다. 여호사밧은 북 이스라엘 왕 아합과 평화롭게 지냈습니다(44절). 그러나 아합과의 동맹으로 아람과의 전쟁에서 죽을 뻔한 일(22:32~33), 아들 여호람과 아합의 딸 아달랴를 결혼시켜 유다에 우상이 흘러들어 오게 한 일, 후일 아달랴가 다윗 왕조 후손을 거의 몰살시킨 일(왕하 11:1) 등을 고려할 때 아합과의 동맹은 옳지 않았다고 봅니다. 같이 배를 만들어 무역하자는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의 제안을 거절한 것을 보면(49절), 유다와 북 이스라엘의 동맹도 점점 약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여호사밧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무엇인가요?
지금까지 나의 일생에서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했던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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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 22:51~53
아합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북 이스라엘 왕이 됩니다. 아하시야는 다락 난간에서 떨어진 후 병들어 일찍 죽었기 때문에 2년간(실질적으로 1년) 짧게 왕위에 있었습니다(왕하 1:2, 16~17). 그는 하나님 앞에서 악한 왕으로 평가받았는데, 아버지(아합)의 길과 어머니(이세벨)의 길과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특이하게 ‘어머니의 길’을 언급한 것은 아하시야가 이세벨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과 아합이 죽은 후에도 계속해서 바알 숭배를 멈추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악한 사람의 행실을 따라가면, 악인의 운명인 패망의 자리까지 따라가게 됩니다.
● 더 깊은 묵상
아버지(아합)와 어머니(이세벨)의 길을 따른 아하시야는 어떤 평가를 받았나요?
최근 일어나는 일 중 내가 분별하고 멀리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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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에 있는 바알
바알 종교는 가나안 정착 초기부터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 파고들어 이스라엘이 멸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우리에게는 잡신이나 우상에 불과하지만, 바알은 고대 근동을 제패한 신으로 숭배되었다. 주전 15세기경부터 가나안 일대 사람들이 섬기기 시작한 바알은 이후 그 지위가 계속 올라가, 어떤 신도 넘볼 수 없는 존재로 여겨졌다.
바알은 사람들에게 성공과 풍요를 주겠다고 약속한다. 원하는 모든 것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물질 만능주의, 돈, 세속적 성공, 만사형통, 이런 것들이 바로 오늘날의 바알이다. 세상은 이런 바알을 숭배하고, 바알이 주겠다는 것을 얻기 위해 바알을 따라가고 있다. 바알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유혹한다.
지금 우리는 바알이 우리에게 그런 것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과거 사람들이 바알이 준다고 믿었던 그것을 얻으려고 한다. 바알을 믿지는 않지만, 바알을 믿는 사람들과 똑같이 살고 있는 것이다. 3천 년 전의 사람들은 바알을 하나님처럼 섬겼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마치 하나님을 바알처럼 여기며 그분께 구하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 백성으로 살기 위해서는 바알과 치열한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한다. 이 전쟁에서 이겨야 가나안 같은 세상에서 구별된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가며,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있다.
가나안에 거하다 / 이진희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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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열왕기상 22장 53절
하나님 백성이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예배할 대상은 살아 계신 하나님뿐입니다. 그러나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는 이스라엘의 왕이신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바알을 섬기며 예배했습니다. 바알에게 예배했다는 말은 바알을 주인으로 삼고 적극적으로 그에게 엎드려 절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섬기면 진도가 임합니다. 하나님만 적극적으로 예배하기 위해서는 내 마음의 공간을 하나님 말씀으로 충만하게 채워가야 합니다.
자기가 군림했던 왕국 열쇠를 주님께 넘겨드린 사람은 주님 왕국에서 살아갈 준비가 끝난 셈이다. - 케이 워런
오늘의 기도
하나님! 제 발이 옳은 길을 걷고, 제 입이 옳은 말을 하고, 제 손이 옳은 일을 하게 하소서.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한 삶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또 작은 죄도 멀리하며 코람데오 신앙으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516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지켜 주시고, 평안 가운데 지켜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주님 보시기에 정직하고, 그분의 말씀과 뜻에 온전히 순종하며 나아가는 삶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자
담담이에게 바른 신앙 교육을 시키고, 그 아이가 주님과 더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분의 세밀한 음성을 들으며 나아갈 수 있는 주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옆에서 열심히 돕도록 하자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담대히 나아가는 삶이 되도록 오늘 하루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도록 하자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41~43,46절 여호사밧은 아버지 아사 왕의 본을 따라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습니다. 아사 왕도 다 해결하지 못한 남색하는 자들을 모조리 추방합니다. 하지만 다른 선왕들처럼 산당은 제거하지 않고,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고 분향하는 것은 막지 못했습니다. 그 앞과 뒤의 왕들도 그렇게 한 것을 보면, 백성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통치 전략이었을 수 있습니다. 아쉬움은 있지만, 그는 선왕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의 중심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도려내야 할 고질적인 악은 무엇이고, 이어받고 잘 계승해야 할 신앙 전통은 무엇입니까?
44,45절 여호사밧은 분열된 상황에도 지속적으로 이스라엘과 교류했습니다. 아들 여호람을 아합의 딸 아달랴와 정략결혼을 시켰으며, 아합과 군사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우상을 숭배하는 북왕국의 타락상이 남왕국까지 유입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맙니다. 연합은 그 자체로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어떤 가치를 위한 것인지에 따라 더 큰 악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신앙적 타협을 감수하면서 분별없이 손잡는다면 더 소중한 것을 잃을 수 있습니다.
47~49절 여호사밧은 분단 이후 중단된 해상무역을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에시온게벨을 중심으로 한 해상무역은 국가 경제에 실익을 주기 때문입니다. 다시스 선단의 파선으로 항해는 무산되지만, 바알 숭배에 깊이 연루된 아하시야의 공동 해운 사업 제안은 거절합니다. 동맹 유지를 위해 북왕국의 제의를 무조건 따르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고, 지혜롭게 외교를 펼쳐 나갑니다. 패전의 경험에서 배운 것은 더 강한 동맹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것입니다.
50~53절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는 2년을 왕위에 있으면서 부모가 행한 악한 길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역사를 통해 드러난 바알의 무능력,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한 부모의 비참한 최후를 보고도 아무 교훈도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향한 부모의 태도가 자녀의 미래에 얼마나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 줍니다. 내 자녀는 내 삶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요?
기도
공동체-날마다 말씀을 통해 보여 주신 의의 길을 따라감으로 부끄럽지 않은 생의 기록을 남기게 하소서.
(왕상 22:41~53절)
❝결코 변하지 않는 순종의 삶❞
❚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정직하고, 말씀 앞에 순종하며 살아가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하십니다.
✔ 어떠한 삶을 사는 인생이어야 합니까?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실천하는 삶이어야 합니다(41~44절).
여호사밧과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의 사이의 대조가 날카롭게 등장합니다. 여호사밧은 삼십오 세에 왕이 되어 이십오 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면서 그의 아버지 아사의 모든 길로 행하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왕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산당은 제거하지 않아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를 드르게 된 것은 큰 오점으로 남습니다. 여호사밧은 이스라엘의 왕과 평화롭게 지냈습니다. 여호사밧은 아들 여호람을 아합 왕의 딸 아달랴와 결혼시킴으로써 이스라엘 왕실과 사돈 관계를 맺고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그에 합당하게 인간을 평가하십니다. 아합과 같다고 평가 받는 삶을 살아갈 것인지 아니며 아사와 같다고 평가 받는 삶을 살아갈 것인지는 전적으로 나의 선택과 행동에 달려 있습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동일하시며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불꽃 같은 눈으로 나의 일상을 살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통치 원리를 따라 정의와 공평을 일상의 삶에서 실천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옳은 길로 행하는 자에게는 의로우신 재판장이 내리시는 의의 면류관이 주어지나 악을 행하는 자는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는 불행을 겪게 될 것임을 깨달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지 아닌지를 잘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거부하는 삶이어야 합니다(45~50절).
여호사밧은 비록 산당을 제거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부친 아사 시대에 남아 있던 남색하는 자들을 이스라엘에서 쫓아내는 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또한 에돔에는 왕이 없어서 이스라엘에서 파견한 왕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아울러 솔로몬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해상 무역의 요충지인 에시온게벨에서 선박을 건조하였습니다. 그러나 배가 파선해서 다시스로 가려던 계획이 실패합니다. 여호사밧 왕이 죽어 다윗 성에 장사되고, 뒤를 이어 여호람이 왕위를 계승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시는 일은 힘써 행하고, 반대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거부해야 합니다. 나아가 내 안에 있는 보이지 않는 우상을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백성들로서 합당치 못한 모든 행실은 하나님의 심판의 불꽃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는 온갖 가증된 악을 척결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일에 앞장서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악에서 철저히 돌이키고 그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일을 전수하는 삶이어야 합니다(51~53절).
유다의 여호사밧과는 극히 대조적인 인물로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의 행위가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의 악한 왕을 평가할 때 ‘여로보암의 길’, ‘그의 아버지의 길’로 행했다는 표현이 종종 등장하는데, 아하시야의 평가에는 하나가 더 추가됩니다. ‘...그의 어머니의 길과...’ 즉 우상 숭배에 빠져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인 이세벨의 길로 행했다는 표현은 그가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악한 왕이었는가를 알려 줍니다. 그는 바알을 섬기고 예배하며 하나님을 노하시게 했고, 아버지 아합이 행한 죄악을 그대로 따라했습니다.
하나님께 내 자신의 삶과 마음을 드렸다면 결코 변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유혹에도 흔들림 없이 묵묵히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더 나아가 주님이 움직이시면 같이 움직일 수 있어야 하겠고, 주님이 멈추시면 같이 멈출 수 있는 결단이 있는 삶이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구원의 주님 안에서 늘 즐거워하며 늘 기뻐하는 삶을 통해 주님께 순종이 있는 삶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진리를 가로막는 사람들의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남으로 아무도 이를 피할 수 없음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부모가 자녀들에게 미칠 악한 영향력으로 자녀들의 삶이 무너지게 될 것임 또한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 되는 삶의 모습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잘 전수하도록 신앙의 본을 보이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살아야 하며, 구체적인 회개와 돌이킴으로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세상의 물질, 명예, 쾌락에 흔들리지 않고 삶의 목적과 방향을 주님께 늘 맞추어 주님의 흔적을 남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왕상 22:41~53절)...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43,46절 ‘하나님의 눈’을 피하고자 했던 아합과 달리(22:30)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눈’에 옳은 대로 행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아버지를 본받아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돌이키지 아니하고”)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비록 산당을 폐하지 않아 우상숭배의 불씨를 남겼고, 미가야의 예언을 듣고도 먼저 결정한 대로 아합과 전쟁에 참여하는 실수도 있었지만, 종교개혁을 주도하는 등(대하 17-20장) 그의 삶 전반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습니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받는 인생이 되기를 구합시다.
44,45절 유다 왕 여호사밧은 통치 기간 동안 북이스라엘과 평화로운 관계를 맺었습니다. 물론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과 아합의 딸 아달랴가 결혼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호사밧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섰기 때문에 형제 나라를 향한 전쟁이나 다툼을 지양했을 것입니다. 북이스라엘과 연합하여 아람과 맞서 싸운 전투에서 패한 일은 그에게 큰 교훈이 되었을 것입니다.
47-49절 여호사밧은 솔로몬처럼 에돔을 지배하고, 에돔에 있던 에시온게벨 항구를 이용하여 솔로몬 시대에 성행한 오빌과의 무역을 재개하려고 시도하지만(9:26-28), 항구에서 배들이 파선되어 한 번도 오빌로 가보지 못합니다. 솔로몬은 항해에 능한 이방인을 통일 왕국 이스라엘의 배에 태웠지만(9:27), 여호사밧은 북이스라엘의 선원을 배에 태우는 것을 거절합니다. 평화의 시대였지만 분열 왕국이라는 한계는 극복할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온전한 회복은 연합과 화해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52,53절 아하시야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왕으로 평가받습니다. 바알이라는 탐욕적 우상을 숭배하니 하나님이 눈에 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버지 아합과 어머니 이세벨이었습니다. 부모가 걸어간 길을 따라 온갖 악을 행하며 백성을 범죄하게 했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했습니다. 우리는 자녀에게 어떤 신앙의 모델이 되고 있습니까?
기도
공동체-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서 선한 자로 평가받도록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게 하소서.
43절 : 여호사밧은 그의 아버지 아사처럼 살면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산당은 없애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계속해서 산당에서 제물을 바치고 향을 피웠습니다.
-여호사밧은 자기 아버지 아사가 걸어간 길에서 벗어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산당만 부숴버리지 않아서, 백성들은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을 하였습니다.
-역대하에서는 여호사밧의 평가를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 이는 그가 그의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께 구하며 그의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라(역대하 17:3~4).
-아사 왕(3대왕) 역시 산당을 없애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열왕기상 15:14).
-여호사밧(4대왕) 역시 자기 아버지 아사의 길을 따라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남유다와 달리 북왕국 이스라엘은 죄악의 소굴로 빠져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8절 : 여호사밧 왕은 오빌에서 금을 실어 오려고 다시스의 배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배들은 에시온게벨에서 부서졌고 다시는 그 배들을 띄우지 못했습니다.
-여호사밧은 오빌(Ophir)에서 금을 실어오기 위해서 다시스에서 선박을 제조하였으나, 그 배들이 에시온게벨(Eziongeber)에서 파선하여 가지 못하였습니다.
-솔로몬도 해상 무역을 통하여 금이나 백향목을 수송하였고, 오빌에서는 금 420달란트를 솔로몬에게 가져왔습니다. 솔로몬 역시 에돔 땅 홍해 물 가 엘롯 근처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지었습니다.
-역대하에서는 배가 파선하고 북이스라엘과 동업이 실패한 원인을 악한 북이스라엘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 왕을 심히 악한 자라고 평가하고 있고, 여호사밧이 서로 동업하여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만들었는데, 여호와께서 왕들이 지은 것들을 파선시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역대하 20:35~37).
[핵심 내용, 중심 줄거리]..........
[1] 경건한 남유다 왕들과 비교되게 북이스라엘의 왕들은 여로보암의 길을 걷고 우상을 섬기는 모습이 보입니다. 특히 아하시야 왕은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악의 길로 이끌고 있습니다. 특히 그의 통치 사례보다는 바알을 섬긴 왕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2] 열왕기상 25장부터 시작된 북왕국 이스라엘 왕들의 이야기가 끝나고, 이제 남왕국 유다 왕들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특이한 점은 아사 왕(남유다 3대왕)이 오랜 기간 통치하는 동안 북왕국 이스라엘은 반역에 반역을 일으켜 무려 나답부터 아합까지 6번이나 왕이 바뀝니다.
[3] 아사 왕의 아들 여호사밧(남유다 4대왕)은 자기 아버지처럼 우상숭배의 고리를 끊습니다. 그러나 산당을 제거하지 못한 것이 끝내 아쉽습니다. 여호사밧의 가장 잘못한 일을 꼽으라면, 아합과 사돈관계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이후 남유다의 역사를 보면, 아합의 딸 아달랴가 남유다로 시집와서 온 왕가를 정복하고 자신이 왕이 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4] 아합이 죽자, 아들 아하시야가 왕(북이스라엘 8대왕)이 됩니다. 아히시야는 아버지 아합의 실수를 기억 못하고 도리어 아합의 죄를 그대로 따르고 바알까지 숭배하는 실수를 범합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
[1] 열왕기상에서는 왕들이 죽고 나서 그 왕의 업적과 사건을 기록합니다. 그 왕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 기준은 두 가지 입니다.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는지? 아니면 다윗처럼 여호와 앞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행하였는가?
[2] 나는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나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하나님은 나의 삶을 평가하시는 분입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올바른 길을 행하였던 여호사밧처럼, 세상의 평가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게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여호사밧이 아하시야의 도움을 거절하는데(49절),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기 위해서는 세상의 도움보다는 하나님 말씀을 더 붙잡고 살아 가는 하루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호사밧의 선택
여호사밧의 치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왕이 된 후에 평생 돌이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개혁자로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개혁한 것이 무엇입니까? 열왕기 사가는 많은 것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마 대표적인 그의 개혁이 남색하는 자들을 쫓아낸 것이었던 모양입니다. 그 시대에도 남색하는 자들이 있었고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이 싫어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우리 시대는 그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싫어하셔서 개혁의 대상으로 삼았던 사람들을 포용한다고 목사로 인정해 주고 동성애도 한 가지 삶의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돌이키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의 삶이어야 합니다. 적당히 타협하고 혼합될 것이면 돌이키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 없습니다.
두 번째는 다시스의 선박을 제조하는 일로 아합의 아들 아하시아와 다시 연합할 기회가 생겼는데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버지 아합과는 가까이 지냈는데 그 아들과는 함께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사밧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44절의 결정을 좋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자 여기서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물어 오시는 질문에 봉착합니다. 무엇입니까? 우리의 한 번 뿐인 인생! 개혁하는 자가 될 것인가 개혁의 대상이 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여러분! 개혁의 대상이 된다는 말은 올바른 그리스도인으로 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살아가 이런 저런 유혹에 돌이켜 하나님을 떠났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기보다 세상을 좇았다는 말입니다.
개혁자로 살 것인가 개혁을 당하는 자로 살 것인가? 여러분! 고민해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한 번 뿐인 이 소중한 인생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에 온전하게 드려서 하나님께 들림 받아 쓰임 받은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개혁하고 잘못된 신앙의 개혁하고 우리 마음 밭을 기경해서 개혁하는 인생!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호사밧의 잘못된 선택(44절)
여호사밧은 하나님 앞에 신실한 개혁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열왕기 사가는 그가 한 일 가운데 아합과 더불어 화평했다고 쓰고 있습니다. 이 화평은 단순한 화평이 아니라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과 아합의 딸 아달랴를 결혼시킨 정략적인 화평이었습니다. 아합과 여호사밧이 어떻게 화평할 수 있습니까? 서로 신앙이 다르고 생각이 다릅니다. 전쟁을 치르면서 여호사밧은 이미 쓴 맛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 아합과 화평했다는 것은 여호사밧의 인생에 오점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특히 이 결혼은 남 유다를 피의 수레바퀴로 몰아넣는 최악의 선택이었습니다. 아들 여호람의 인생도 엉망으로 만든 선택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선택에 대한 열왕기 사가와 역대기 사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아야 합니다.
열왕기하 8:16절 이하에는 이 결혼이 불러온 결과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합니다.
아하시야(51-53절)
한 사람의 인생을 이야기하는데 그가 악을 행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노하게 했다라고 쓴다면 이게 얼마나 부끄러운 인생입니까? 그 선택은 누구의 선택도 아닌 아하시야 자신의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뒷날 우리 믿음의 후손들이 우리가 걸어온 인생을 하나님 앞에 신실했다고 말할 수 있게 매일 매일 신실한 삶을 살아갈 일입니다. 특히 세상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로 삶을 디자인하시기 바랍니다. 그 삶에 후회가 없고 그 삶에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행복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화평은 중요한 것이지만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사람과 화평하고 결혼시키지 말아야 할 사람과 자녀를 결혼시키면 이런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한 국가의 왕이었기 때문에 그 파급력이 엄청났습니다. 우리가 이룬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무엇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바꿀 수 없습니다. 신앙보다 더 중요한 것이 결혼의 조건이 된다면 이 유다의 역사는 각 가정의 역사로 반복될 것입니다.
자신은 평생 돌이키지 않는 신앙의 삶을 살았지만 아들 여호람은 길지 않은 인생을 우상 숭배하다가 죽은 것입니다. 아버지의 결정 때문에 말입니다. 여기에 여호사밧에 대한 열왕기 사가의 미묘한 마음이 있습니다.
열왕기상의 마지막은 유다의 4번째 왕 여호사밧과 이스라엘의 8번째 왕 아하시야로 마무리 됩니다. 여호사밧은 여호와 앞에 정직히 행하고 아세라상을 없애고 태후까지 패하면서까지 우상 숭배를 금하게 했던 아버지 아사 왕의 뜻을 이어 여호와의 말씀을 바로 세우고, 남아 있던 남창을 없앴으며, 산당의 일부도 무너뜨렸지만 남아 있는 것들도 많았습니다(역대하 17, 20장).
아합의 딸과 자신의 아들 여호람을 결혼시키고, 악한 야합 왕과 연합하여 아람과의 전쟁에서 죽을 위기를 겪었지만 무사히 돌아와 선견자 예후의 경고를 듣고 돌이키는 등의 결단을 하였고, 여러 가지 결정하기 어려운 갈등의 상황에서 여호와의 길을 걷기 위한 선한 마음을 잊지 않았음을 열왕기 기자는 증언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이후 그는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요청한 동맹의 제안을 처음에는 수락했다가(역대하 20장)
엘리에셀을 통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통해 그 다시스로 가는 그 배들이 파선된 것을 본 후 이후 동맹을 지속하기를 거부한 것으로 보아, 악한 세력과의 동맹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다는 것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 모습으로 남겨졌습니다. 하지만,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는 그 아비와 어미의 길을 그대로 따르고(52절) 여전히 바알을 섬기고, 그 비참한 부모의 죽음들을 보고도 돌이키지 않아 여호와의 진노를 자아내는 여로보암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죄악을 끊어내고 하나님 나라의 길로 돌이키고, 그 도에 머무는 일은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기 어려운 것임을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31~32)“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심령에 새기고, 온전히 체험되고 능력이 되는 삶의 역사를 통해서 날마다 흔들리지 않는 여호와의 길을 걷고,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기도의 삶이 가능해지게 됩니다. 여로보암의 길을 버리고, 다윗의 길을 택하며, 주께서 인도하시는 하나님 보시기에 참 좋다 여김 받고, 그 선한 일에 쓰임 받는 담대한 그리스도의 증인을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우리를 선한 길로 이끄시고 그 말씀 주시기를 포기하지 않으시며
우리의 심령 가운데 풍성하게 부어주시니 늘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주고 의에 대하여 다시 살아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쓰임 받는 거룩한 자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발걸음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아버지께서 풍성히 채워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모든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주님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의 아버지 앞에 겸손히 엎드리고,
허락하신 은혜에 합당하게 영광을 올려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