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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 Love Soccer (축구동영상) 원문보기 글쓴이: 밸라무능
여자친구들아, 날 좀 보소!
나가토모가 축구를 처음 시작했던 때로 돌아가면, 이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린 시절의 그는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선수였다. 조금 발이 빠르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특색이 없었지만 말이다.더구나 그가 축구를 처음 시작했던 초등학교엔 축구부 인원이 채 10명도 되지 않았다. 축구를 시작한 이유도 그저 ‘학급 여자친구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였다.
여자친구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는 확실한 무기가 필요했다. 나가토모는 브라질 대표팀의 드리블러,데니우손의 개인기에 매력을 느꼈다. 체구도 비슷하고, 스피드는 자신이 있었기에 데니우손 정도는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얼추 화려한 기교를 선보이는가 싶었으나 여자친구들의 시선은 냉랭했다. 작고, 고릴라 같은 얼굴에 축구부라고 해도, 막상 축구도 별로 못하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거기다 천성이 게으른 탓에 하라는 연습은 안 하고, 그 시간에 오락실에서 시간을 때우기 일쑤였다.
중학교 입학 직전엔 지역 클럽인 에히메 FC 유스팀의 입단 테스트를 받았지만, 당연히 떨어졌다. 딱히 눈에 띄는 특징도 없거니와 연습을 안 하니 체력도 엉망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해서도 변화는 없었다.여전히 그는 잘난 척은 심하지만, 노력은 하지 않는 프로지망생에 불과했다.
이노우에 히로시와의 만남
나가토모가 입은 트레이닝복 상의에 인테르의 엠블럼이 선명하게 보인다. 불과 4년 전까지만 해도 철저한 무명에 불과했지만, 그는 이제 밀라노에서 생활하고, 그 유명한 ‘산시로’에서 홈 경기를 치른다. 등번호 55번 나가토모의 유니폼은 일본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현지에서도 날개돗힌 듯 팔리고 있다. 잘난 척은 심하면서 노력이란 단어는 싫어했던. 어린 시절의 치기어린 모습은 지금의 그에게서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노우에 히로시 감독님과의 만남으로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이노우에 감독님 덕분이었습니다.”
중학생 나가토모를 지도했던 이노우에 히로시는 나가토모의 모든 것을 뜯어 고쳤다. 축구선수로서의 능력은 물론, 축구를 대하는 자세와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까지도. 때마침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던 나가토모는 축구를 시작한지 7년 만에 처음으로 축구란 스포츠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가끔 일탈을 꿈꾸며 연습장을 몰래 탈출하여 오락실에 가도 이미 이노우에가 출입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일탈은 허무하게 끝이 났고, 연습에 빠진 만큼 2배, 3배로 혹독한 체력훈련을 받았다.
2011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연장 후반에 터진 이충성의 결승골을 도운 것도 그의 끝을 알 수 없는 체력에서 나왔다. 백스리 전환으로 승부수를 띄운 자케로니는 나가토모를 왼쪽 윙백으로 전환시켰다. 지지부진하던 흐름 가운데, 나가토모는 마치 교체로 나온 선수처럼 연장전에서도 활발한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기어이 측면을 돌파하여 크로스를 전달했고, 10분 뒤에 일본은 아시안컵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저질 체력을 고치지도, 고칠 생각도 없었던 중학생 나가토모는 이노우에를 만나면서 최고 수준의 체력을 자랑하는 선수로 변한 것이다. 이노우에와의 만남은 나가토모의 축구 인생에서 첫 번째 터닝 포인트였다.
북치는 청년
이노우에 히로시의 지도를 받으며 나가토모의 기량도 업그레이드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일본 축구가 원하는 ‘엘리트’다운 맛은 없었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무명 생활은 계속되었다. 조금만 재능을 보여도 황금세대, 혹은 백금세대란 단어를 쏟아내며 동세대 어린 재능들을 세트로 묶어 조명하길 좋아하는 일본 미디어의 눈에 나가토모는 보이지 않았다.
잘난 척과 뽐내기만큼은 초일류였던 나가토모에게 그런 상황은 내심 서운할 만도 했으나 그는 이미 이노우에를 만난 뒤였다. 고등학생 나가토모는 연습이 끝난 뒤에도 남아, 홀로 연습을 소화했다. 문제는 도무지 성장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작은 체구였다. 혹시나 성장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2학년으로 진급하기 전까지 근력운동은 아예 포기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눈에 띄는 성장은 없었다.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 월등히 많은 훈련량을 소화한 것도 작은 체구에서 비롯된 컴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함이었다.
초조해졌다. 작은 체구와 평범한 기량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고교 졸업을 앞두고 있음에도 J리그와 대학 팀은 그를 외면했다. 가까스로 축구부가 있는 메이지 대학에 입학했지만, 축구선수가 아닌 일반 전형이었다.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자 프로를 향한 꿈도 사라지고 있었다. 잦은 포지션 이동도 불만이었다. 수비형 미드필더까지는 참을 수 있었지만, 전문 수비수로의 전환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학 입학 직후에 증세가 시작된 디스크는 나가토모의 선수생명에도 위협을 끼쳤다. 축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전까지 나가토모는 하루 24시간 중 절반 이상을 축구화를 신고 살았지만, 이제 더 이상 신발장에서 축구화를 꺼낼 필요가 없어졌다. 대신 그가 선택한 건 빠찡코였다. 축구화가 필요 없어진 자리를 유흥과 빠찡코 중독이 대신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빠찡코를 기웃거리다 낮이 되면, 축구부 응원단에서 북을 쳤다. 경기장 안에서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응원석에서 그가 두드리는 북엔 경쾌한 리듬이 살아 있었다. 너저분한 옷차림, 전혀 미동도 없는 무표정한 얼굴에서 나오는 경쾌하고, 박력이 넘치는 리듬은 그야말로 모순 덩어리였다.
좌절의 나날을 보내던 그에게 손길을 내민 건 가족과 동료들이었다. 방황을 끝내야 했고, 이를 주저할 시간도 없었다. 마음을 다 잡아 근력운동을 다시 시작했고, 볼을 다루는 감각을 회복했다. 죽도록 싫었던 수비수 전환도 적응을 마치자 나가토모의 기량은 무서울 정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측면 수비수로의 전환은 그의 축구인생에서 두 번째 터닝 포인트였다.
일본인답지 않은 일본인
디스크를 치료하고, 측면 수비수로 완전히 자리를 잡은 나가토모의 성장에 일본 축구계가 주목하기 시작했다. 대학선발,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되었고, J리그 FC 도쿄 입단이 결정되었다. 이 모든 것이 불과1년 사이에 진행되었다. 1년 전에 빠찡코에 빠져 정신 못 차리던 청년이 어느새 올림픽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고, 프로 축구선수로서 자리매김하였다.
하지만 성장이 빨랐던 만큼 시련의 시간도 빨리 찾아왔다. 대학과 프로의 세계엔 전혀 다른 깊이가 존재했던 것이다. 베이징 올림픽은 최악이었다. 나이지리아, 네덜란드, 미국을 상대한 일본은 3경기에서 단 1골만을 기록한 채 3전 전패로 탈락했다. 나가토모 개인이 받은 충격도 상당한 것이었다. 대학 레벨과 프로의 세계에 엄청난 차이가 존재하는 것처럼 프로와 세계적인 레벨 사이에도 설명하기 어려운 차이가 있음을 온 몸으로 느꼈다.
“베이징 올림픽은 정말이지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미국과의 경기에선 제 실수로 인한 실점으로 허무하게 패배하고 말았죠. 무방비 상태에서 허점을 그대로 노출한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국제무대에서 큰 좌절을 겪었음에도 나가토모는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고, 오히려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보였다. 이유는 그가 일본인답지 않은 일본인이기 때문에 그럴 지도 모른다. 인테르로 이적하기 전에 체세나에게 그를 지도했던 마시모 피차덴티 감독의 설명이 이를 증명한다.
“우리는 일본인 선수의 영입을 원합니다. 나가토모처럼 내면이 강하고, 적응속도가 빠른 선수라면 더욱 좋겠죠. 이전에 영입했던 나카무라 슌스케와 대화하는 데는 반년이란 시간이 필요했지만, 나가토모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의 몸엔 라틴 쪽 피가 섞여있을 겁니다.”
일본의 스포츠 저널리즘은 예전부터 ‘일본인이 할 수 있을까?’와 같은 의문을 꾸준히 던져왔고, 이는 나가토모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챔피언스리그에서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를 끝낸 나가토모에게 일본인 기자들이 대거 몰려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지금까지 일본인이 유럽에서 측면 수비수로 성공하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믹스트존을 빠져 나가던 나가토모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일본인이 유럽 선수들과 비교해 체구는 작다. 그러나 체구가 작은 만큼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다. 유럽 선수들에게 전혀 뒤질 것이 없는 체력과 스피드, 운동량은 내 장점이기도 하다. 자신이 가진 장점에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강팀들과 충분히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적인 능력도 성장할 수 있지 않은가.”
애초에 일본인이 가질 만한 상식의 벽이 나가토모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본성이 그렇다. 별 볼일 없는 선수로 평가받으면서도 마치 자신감이 넘치는 일류선수처럼 행동했던 지난 시간들이 그에게는 커다란 자산이 되었다. 또한 현재 보여주는 기량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다음 단계를 추구하는 향상심으로 이어졌다. 2011 아시안컵 4강전,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그가 보여준 철저하게 무게중심이 낮은 수비와 승리를 열망하는 강한 눈빛은 1990년대 초반까지 극심한 한국 콤플렉스에 치를 떨어야 했던 고통의 세월이 완전히 끝났음을 알렸다.
최고의 무대에서 보내는 나날들
베이징 올림픽을 마치고 돌아온 나가토모를 기다리고 있는 건 탄탄대로였다. A대표팀은 그를 위해 측면 한 자리를 비워 두었고, 2년 뒤엔 꿈에 그리던 월드컵 무대로 진출하여 일본의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베이징에서 경험했던 아픔을 반복하지 않고자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4년 전만 해도 철저한 무명 선수였기에 TV 중계를 보는 걸로도 만족했던 그였다.
나가토모의 급격한 성장속도를 주목한 건 일본 만이 아니었다. 2008년부터 그의 동향을 예의주시해온 세리에 A의 체세나는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나가토모에게 새로운 도전을 제안했다. 나가토모는 체세나 이적과 동시에 확고한 주전 멤버로 자리 잡았고, AS 로마, AC 밀란, 유벤투스 등 세계적인 강팀을 차례로 상대하며 성장이 멈추지 않았음을 알렸다. 일본 대표팀에서의 위치도 확실했다. 백스리와 백포를 혼용하는 자케로니 감독에게 세계 수준의 체력과 기동력을 갖춘 나가토모는 더 할 나위 없이 든든한 존재였다. 자케로니의 믿음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나가토모는 2011 아시안컵에서 대회 기간 내내 MVP급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일본을 아시아 최강의 자리로 올려놓았다.
나가토모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진화에 진화를 거듭했다. 일취월장하는 기량과 함께 그를 향하는 시선도 무게감이 더해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아시안컵 우승 뒷풀이에서 마신 사케가 입술에서 채 마르기도 전에, 이번에는 더욱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시즌 트레블의 위업을 달성한 인테르가 그를 임대 영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인테르가 클럽의 유망주라 평가 받던 다비드 산톤을 내주면서까지 진행한 트레이드라는 점이었다. 프로 데뷔 3년 만에, 나가토모는 푸른 색 바탕에 검은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네라주리’의 일원이 되었다.그리고 마침내, 리그 28라운드 제노아전에서 교체 멤버로 투입되어 절묘한 터닝슈팅으로 팀의 다섯 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인테르 이적 후 첫 골을 기록한 나가토모가 골 세레모니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어딘가로 바쁘게 뛰어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나가토모는 인터밀란과 6년 계약을 맺었다
첫댓글 제가 인정하고, 좋아하는 몇안되는 일본인. 개인적으로 현 아시아 최고의 풀백이라고 생각합니다. 윤석영도 이런건 좀 본받아 어여 성장해서 QPR에서 멋진 모습 보여주었으면 좋겠군요. (분데스리가나 세리에로 간다면 더욱 열렬히 환영합니다.)
잘봤습니다 ㅎ
융베리님께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 윤석영이 QPR이 아닌 어디로 가셨으면 하세요?
라리가나 세리에를 희망하지만, 이건 말 그대로 쿰이고, 개인적으로는 분데스리가 중위권~중하위권팀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음 합니다. 유럽에 처음 진출한 동양 선수들이 유럽축구에 적응하고, 성장하기 좋은 리그가 분데스리가라서요. 수비수라면, 개인적으로는 리그앙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리그앙이 의외로 수비전술이 좋아서.)
감사합니다ㅎㅎㅎ저는 큐피알에서 윤석영이 배울수 있는게 없을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리그수준은 높지만 지금 팀의 상황을 보면 제대로된 스텝업이 될지 의문스럽기도 하구요
'EPL에 적응한다면' 충분히 최고의 무대겠죠. 허나 적응하는게 문제. 언어나 환경에 대한 적응은 둘째치더라도(이건뭐 어느 리그나 다 비슷한 부분이니) 무엇보다 K리그와 유럽무대는 피지컬, 운동능력, 기본기, 전술등 모든 면에서 클래스가 다릅니다. 상대해야하는 선수들은 그야말로 넘사벽이고요. 이런 차이가 큰 EPL보다는 상대적으로 이런 차이가 적은 분데스리가나 리그앙이 새내기들이 적응하기엔 더 좋다는거죠. (아시아의 어린 선수들에게 있어서 디딤돌에 딱 좋은 리그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는게 더 좋다는 이영표의 인터뷰는 이런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EPL은(특히 강등권팀일수록) 유망주들보다 완성된 선수를 선호합니다. 때문에 유망주들을 기용하더라도 이들이 부진할 경우 가차없이 벤치로 보내거나 내치죠. (지동원을 보면 아시잖아요?) 때문에 유럽축구 경험이 없는 윤석영이 가기에는 EPL보다는 분데스리가나 리그앙이 더 위험성이 적고,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분데스리가나 리그앙에서 유럽축구에 적응하고, 본인 실력도 키우고, 그 다음에 EPL이든 어디든 빅리그에 입성하는거죠 뭐. 어차피 군대도 면제잖아요? 4주 군사훈련이야 프리시즌때 받으면 되는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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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생각 했네요 뭔가 모순이 재능도 없고 성실하지 않았는데 맘 잡으면 잘한다??? 근데 공부도 잘했네....
애 뭐야.... ㅋ
융베리 친구 엘정버그님 글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ㅎㅎ 저는 이상하게 유럽리그에서 뛰는 일본선수들한테는 호감이 가던데(아시아를 빛내주는 느낌이랄까요....) 나가토모와 카가와 둘 다 좋더군요.계속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전 카가와는 입방정이 좀 심해서 별로인데, 나가토모는 참 좋더군요. 맨유 소속이라 아스날 팬으로써 응원하기는 좀 그렇지만 카가와도 반전의 계기를 좀 마련했으면 하네요.
저는 일본선수 중에 나카타를 가장 좋아했는데 요즘 혼다도 괜찮더군요.. 항상 언론에서 설레발쳐서 이미지가 나빠졌지, 혼다 정도면 실력도 멘탈도 빅리그에서 뛸만하다고 생각됩니다.. 러시아에 묶여있는 처지가 참 안타가워요..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