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동 우거에서
김선중
서울생활 삼 년 내내 이 방에서 지내다 보니 조그만 단 칸 방이지
만 제법 정이 들었고 홀아비 생활도 익숙해졌다. 집이라고 해봐야 아
파트 같은 구조가 아니고 아래 층은 상가 위로 사 층은 다가구 주택
으로 이루어진 벽돌집으로 십 년 전에 유행하던 가구 형태이다. 먹을
것 가리지 않는 성격이라 김치 하나에 밥 한 그릇이나마 한 끼 거른
적이 없다. 어렸을 때 김치 국물에 비벼먹던 습관대로 다시 돌아가니
간편하였다. 먹는 것이 뭐 문제란 말인가. 식 때에 밥 한끼면 족하였
다. 거의 소유하지 않는 생활 그런 방식으로 살아가니 한 달 생활비
라야 고작 기 십 만원에 불과하였다. 자동차 유지비만 제하지 않으면
거의 돈이 필요 없었다. 인터넷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컴퓨터 한 대
와 T.V 그리고 설계 사무소에서 옮겨온 책들이 전 재산이었다.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면 어디는 무엇을 잘하고 어느 곳에는 무슨
음식이 맛나고 등의 대화가 많다. 내 귀에는 식도락 취미가 없어서
사치라고 할까 잘 들리지 않는다 동향 친구라도 놀러오면 음식점에
서 소주 한 잔 곁들이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술을 잘 하지 못하는 나
는 집 주위에 술집 하나 모르고 지냈다. 청주에서는 같은 모임을 하
는 동료들과 동료의 맥주 집에 들려 가끔 대화도 했었는데 숫기 없는
나는 혼자서 그런 엄두가 나지 않는다.
청주에서 하던 사무실 문을 닫고 직장에 나가 젊은 사람들과 일하
며 지내다 보면 한 두 달이 훌쩍 지나간다. 주로 컴퓨터 응용에 관한
것은 직원들에게 배우기가 바쁘고 이론적인 것을 정리하여 교육하고
일의 방향을 지시하는 일은 내 몫이었다. I.M.F 시절이라 우수한 직
원들이 건설업계 박봉에도 불평없이 일하는 모습과 직원 입장에서
사람들이 부담이 없어 보여 좋았다. 퇴근 후에 직원들하고 선술집에
서 어울릴 때 말고는 집으로 매양 들어갔다. 빨리 퇴근하는 날이면
저녁 밥 먹고 책과 T.V를 벗삼아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자고 있
다.
어느 날인가 꿈길에서 헤매다 깨어보니 TV는 켜져 있고 한 밤중이
다. 어렸을 때 선친과 가족들이 부여 낙화암 백화정에 올라 사진을
찍던 모습이 꿈속에서 아직도 아롱거린다. 아버님은 꿈속에서 살아
계시고 동생들과 누나가 같이 있다. 덩그러니 앉아 있으려니 영화 필
름 같은 참을 수 없는 그리움이 밀려온다. 그리움에 색깔을 넣으려면
그것은 흑백이리라 손에 닿지 않는 옛 일이 어제와 같이 생생하다.
청주 집에 내려가 옛 날 사진과 아버님께서 주신 간이 족보를 찾아
책꽂이 가운데 한 칸을 비우고 모셔 놓았다. 방에 들어 가고 나올 때
마다 사진을 향해 마음속으로 인사를 한다. 잘 다녀왔습니다 하고.
사진 속의 젊은 아버님은 어린 내 옆에 항상 서 계신다.
집에서 식구들이 올라오는 일은 없고 주말이면 곧장 집에 내려 가
다가 우리 아이가 대학 시험을 본다고 올라 온단다. 깔끔한 아내 성
격을 잘 아는 나는 대청소를 하였다. 이 정도면 되지 않나 하고 제법
했는 데 막상 방에 들어선 아내는 가방을 놓기가 무섭게 청소를 한
다. 구석 구석 들어내고 안의 먼지까지 쓸어내고 닦는다. 거기에 가
스레인지 대까지 반짝 반짝 윤이 나게 해 놓았다. 내가 과연 청소라
고 해놓았는지 무색하다. 해주는 밥을 먹고 있으려니 제법 사람 사는
집 같이 느껴진다. 아이가 시험을 본 후 식구와 같이 내려갔다. 집에
돌아오니 왔다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만들어 놓은 반찬과 국
그리고 새 칫솔이 나란히 꽂혀있다. 마치 사람을 보듯 한 참을 바라
보았다. 같이 산다는 것 자체가 일상사이고 중요한 것인 줄 모르고
사는 법인데 오늘은 왠 일로 칫솔까지 반갑구나.
아이가 대학에 안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렇게 밤을 새며 열심히
공부하던 아이인데 신촌 근방을 지나다보면 대학이 바라다 보인다.
저학교를 가자고 공부를 했는데 한심스러워 얼굴을 돌렸다. 재수를
한다고 짐을 싸들고 아이는 올라오고 직장을 옮긴 나는 청주로 떠났
다. 홀로 아이를 두고 오려니까 하숙집에 들렸다 내려가시던 부모님
의 그림자가 눈에 어른거린다. 두고 온 아이가 안스러웠다. 그러나
이틀 후에 들려오는 추가로 합격됐다는 소식. 내가 대학에 합격했다
고 좋아하시던 부모님의 마음을 알겠구나. 이제 커나가는 네가 아빠
대신 집에서 살며 열심히 공부하려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