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orea....is a remarkably homogeneous nation, yet the people of North Korea are among the poorest on earth while their brothers and sisters in South Korea are among the richest. The south forged a society that created incentives, rewarded innovation, and allowed everyone to participate in economic opportunities. The economic success thus spurred was sustained because the government became accountable and responsive to citizens and the great mass of people. (Daron Acemoglu &James Robinson(2012). Why Nations Fail.)
남북한은 대단히 동질적인 나라이지만 남한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의 하나인 반면에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이다. 남한은 인센티브를 만들어 주고 혁신을 보상하고 모든 국민이 경제적 기회를 포착하도록 허용하는 사회를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경제적 성공은 정부가 국민에게 책임을 지고 국민의 뜻에 반응했기 때문에 지속가능하게 되었다. 〉
지배자들을 존경하고 고마워하는 식민지 사람들
홍콩의 중국 歸屬(귀속) 10주년에 옥스퍼드 대학의 특별연구원(fellow)이며 저술가인 스티브 창(Steve Tsang)은 2007년 6월18일字 <타임(Time)>에 기고한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Putting the people first)라는 글에서, ‘영국인들은 권위적이고 거만한 면도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홍콩에게 善政(선정, good governance)이라는 귀중한 선물을 주었다’고 밝혔다. 영국인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情을 표하는 홍콩 사람들의 모습도 담겨있다.
영국의 홍콩 통치가 끝나 가는 마지막 며칠 동안 홍콩의 많은 중국인들이 정부청사의 외부를 장식하고 있는 植民地 紋章(식민지 문장)앞에서 어린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분명히 곧 끝나게 될 역사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그들이 존경과 애정의 마음으로 기억하게 될 아버지 같은 상징물에게 마지막 존경을 표하고 있었다고 나는 감히 말한다.
왜 존경을 표시하고 있었을까? 홍콩인들이 中國 반환 10주년을 기념하고 본토와의 미래관계를 깊이 생각하고 있는 지금 영국이 홍콩에 남긴 가장 중요한 유물 중의 하나를 되돌아보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그 중 훌륭한 통치방법은 되새겨 볼 만하다. 그 통치는 모든 시대에 걸쳐서 모든 강대국이 통치한 식민지 중에서 가장 ‘훌륭한 식민통치’였다. 민주주의와 민주주의가 만들어내는 책임과 투명성의 不在(부재)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초에 이르러 영국의 홍콩 통치는 시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킴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효과적이었고 정직했다.
영국의 식민통치에 감사하는 사람들은 홍콩의 중국인 뿐이 아니다. 스페인 남서쪽 끝에 있는 영국의 직할 식민지 지브롤터의 사람들은 스페인으로 돌아가기를 한사코 반대하고 있다. 지브롤터가 本國인 스페인 보다 더 살기 좋기 때문이다. 스페인이 영토 반환을 요구할 때마다 영국은 주민들의 의사에 따르겠다며 주민투표를 제안하곤 했지만, 주민들은 투표에 부치는 것조차 반대했다. 조국인 스페인 보다 영국의 통치를 받겠다는 것이다.
영국이 홍콩에서와 마찬가지로 지브롤터에서도 善政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등 따시고 배부르고 자유롭게 살게만 해주면’ 同族이 통치하든 이민족이 통치하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이치가 증명된 셈이다. 多민족 국가인 미국이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대통령이 백인이든 흑인이든 인종에 관계없이 미국인들은 통치만 잘하면, 대통령을 존경하고 감사하며 기리게 된다.
인간의 행복은 경제성장에서
아담 스미스는 경제성장을 경험하고 있는 사회는 그렇지 않는 사회보다도(비록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그 사회가 보다 높은 생활수준을 달성했더라도) 더 행복하고 더 성공하기 쉽다고 주장했었다. 스미스는 “국민의 대다수가 가장 행복하고 가장 안락하게 되는 조건은 사회가 충분한 富(부)를 획득했을 때 보다는, 보다 많은 소득(acquisition)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면서 계속 발전하고 있는 국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성장이 중지된 나라에서는 국민들의 생활이 고달파지고 성장이 쇠퇴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국민들은 비참해진다”고 주장했다.
하버드 대학의 경제학 교수인 벤자민 프리드만(Benjamin M. Friedman)은 “상승하는 생활수준의 가치는 단지 그것이 개인의 삶의 방식에 가져오는 구체적인 개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종국적으로 국민의 도덕적 인격(character)을 형성하는 데에도 놓여 있다”라고 했다. 성장하고 있는 경제는 사람들을 보다 더 관용적으로, 분쟁을 보다 더 평화적으로, 민주주의를 더 많이 선호하는 쪽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반면, 경제적 停滯(정체)와 쇠퇴는 狹量(협량, intolerance)과 인종 분쟁과 독재와 연관된다고 했다. 사람들의 복지에 대한 감각(sense)은 본질적으로 相對的(상대적)이라는 뜻이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사람들은 고정된 생활수준에 익숙해진다. 그들의 생활수준이 상승하고 있거나(원칙적으로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것), 또래보다 더 잘 산다고 느끼면 사람들은 최대로 행복해진다(이것은 상호배타적이라 동시에 실현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등의 선진국도 지속적인 성장이 필요하다. 아무리 부유한 나라라도 지속적 경제성장 없이는 국민의 행복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善政으로 국민을 행복하게 했던 박정희
1945년 해방 당시 북한은 남한보다도 1.7배나 잘 살았다. 제철, 제강, 비료, 발전, 등 당시로서는 세계 최첨단의 산업시설이 모두 북한에 편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70년이 지난 지금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이고 한국은 북한 보다 스무 배나 잘 사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것은 우리가 그동안 행복하게 살아왔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북한은 공산주의라는 최악의 정치체제와, 김일성-김정일이라는 極惡(극악)의 지도자 때문에 지옥의 나라가 되었고, 이승만이 세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은 박정희라는 위대한 지도자의 헌신적이고 善한 통치로 선진부국이 되었다. 박정희 시대에 청·장년기를 보낸 보릿고개 세대의 절대 다수는 박정희의 통치기간 동안 경제성장의 행복을 체험했다. 가난하게 찌들어 살다가 가난에서 벗어날 때의 그 행복감은 筆舌(필설)로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다.
홍콩인들이 식민지 시절의 영국 통치자들을 고맙게 생각하고 존경하듯이 한국 사람들도 박정희 대통령을 5000년 가난의 피맺힌 恨을 풀어준 ‘민족의 은인’으로 숭모하고 그리워한다. 박정희 시대에 피땀 흘리며 열심히 살았던 ‘국제시장’ 사람들이 더욱더 그를 그리워한다. 눈물을 흘리며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많다. 朴 대통령이 떠난 지 30년도 훨씬 지났는데도 그의 生家를 찾는 사람들이 끝이지 않는다. 텔레비전에서 어쩌다가 그의 모습을 볼 때 마다 가슴이 찡해지는 ‘덕수’들이 많다.
용서가 불가능한 악질들
그런데 국민을 잘살게 하기 위해 신명을 바친 박정희를 히틀러로 부르는 인간들이 있다. 제 정신을 가진 정상적인 한국인이라면 박정희를 극악의 살인마 히틀러와 同類(동류)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배울 만큼 배우고 세상물정도 알 만한 나이가 된 이 者들이 박정희의 위대한 공적을 모를 리 없다. 박정희를 히틀러보다 더 극악한 독재자라며 저주하는 것은 박정희 때문에 남한이 북한보다 20배나 잘 살게 되어, 남한의 공산화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者들은 지난 200여 년 동안 한국이 일본과 함께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용오름’한 세계 유일의 나라이며 이런 나라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박정희라는 것을 알면서도, 박정희를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증오하는 것이다. 진실을 알면서도 진실을 왜곡하고 진실을 무시하는 것은 극악한 악마나 할 짓이다. 극빈의 질곡에서 고난을 당해온 민족을 구출한 민족의 恩人을 히틀러라며 증오하는 이런 붉은 악마들은 용서가 불가능한, 용서해서도 안 되는 악질들이다.
첫댓글 올려주신 소중한 말씀 과 이미지 잘 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