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일 / 김사인
그 여름 밤길
수풀 헤치며 듣던
어질머리 풀냄새 벌레소리
발목에 와 서걱이던 이슬방울 그리워요
우리는 두 마리 철없는 노루새끼처럼
몸 달아, 하아 몸은 달아
비에 씻긴 산길만 헤저어 다니고요
단숨만 들여마시고요
안 그런 척 팔만 한번씩 닿아보고요
안 그런 척 몸 가까이 냄새만 설핏 맡아보고요
캄캄 어둠 속에 올려 묶은 머리채 아래로
그대 목덜미 맨살은 투명하게 빛났어요
생채기투성이 내 손도 아름다웠지요
고개 넘고 넘어
그대네 동네 뒷산길
애가 타 기다리던 그대 오빠는 눈 부라렸지만
우리는 숫기 없이 꿈 덜 깬 두 산짐승
손도 한번 못 잡아본걸요
되짚어오는 길엔
고래고래 소리질러 노래만 불렀던걸요
출근하느라 한껏 차려입은 수 많은 싱싱한 다리들이 분주한 건널목, 샤워로 채 물기 마르지 않은 굽슬거리는 머리 위로 꽃무늬 활짝핀 우산 받쳐들고 적당히 낡은 맨 얼굴에 삘거른 구찌배니 살짝 묻힌 무표정한 여자,
제법 높은 구두 위로 두리뭉실한 몸뚱아리 뒤뚱거리고, 숨가쁜 초록의 외눈박이 얼른얼른 비켜라 등 떠밀어도, 무뎌진 세상일인양 느긋한 발걸음 위로 축축한 물기 튀어 오른다. 집으로 가는 버스안은 시내 반대방향이라 헐렁하니 빈자리가 수두룩하고, 내리기 편한 문 바로 뒤 두칸의 널찍한 좌석을 다 차지하고 밤새워 피곤한 몸 편안히 기대 앉는다
가뜩이나 움푹 들어간 눈, 까칠하게 메말라오는 혓바닥, 여전히 창밖엔 비 내리고, 앉은 머리위로 에어컨 빵빵하게 돌아가고 버스는 달리고 셔틀버스 타고 내달려 온 광나루를 지나고 그 유명한 워커힐 언덕배기도 지나고, 한다리도 지날쯤 스르르 감기는 눈,..
감은 눈 사이로 보이는 까만 적막함, 낡은 필름 돌아가다 지지찍 거리며 잠시 시커멓게 어둔 장막 드리운 곳으로 흑백의 희미한 영상이 펼쳐진다
어둑한 저녁 나절 만큼이나 적적하고 그림자 짙은 얼굴을 가진 남자와 작고 가냘프고 쓸쓸한 표정의 여자가 둥근달 저 멀리 하늘에 떡 하니 매달아 두고 밤길을 걷는다 십리길을 지나고 이십리길 지나고 삼십리길도 지나고, 왁자한 개구리 울음 소리 요란한 논둑을 지나 자갈이 깔린 울퉁불퉁한 미포장 도로를 벌쭉하게 키큰 남자 손 꼬옥 붙잡고 세상의 끝까지라도 함께 갈 듯 자박자박 또박또박 걸어 간다 구불구불 부드러운 곡선의 길 위로 고고한 달빛 스민 푸르고 깊은 긴 그림자 휘청거리고..
달콤한 사랑의 밀어도 없다 말없이 움켜쥔 작은 손 파르르 떨리고, 간간히 불러주는 휘파람 소리만 스물 여섯의 짧은 삶 속을 온통 휘저어 놓는 저 울음 같은 휘파람 . 굳게 맺은 언약은 관습에 걸려 꺽이고 어른들의 호통에 힘 없이 물러서 버린 허망한 청춘의 약속이여......
꿈인듯 환상인듯 아픈 청춘의 언약이, 멀고도 먼 삼십년 전 숨가픈 고개마루에서 멈췄다. 흔들린다 마구 휘청거린다 끝간데 없이 이어지는 굴곡진 춤 사위길을 휘휘 돌아 돌아 너는 어디에? 나는 또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건가? 살아도 산것같지 않을 이 허전함을 너는 어떻게 메우며 살까? 지금쯤 그 작고 가냘픈 쓸쓸한 얼굴의 여자,기억이나 할까?
끝내 함께 도망치지 못하고 오십리길의 길을 걸어 집에 들여보내고 뒤 돌아서던 쓸쓸한 뒷 모습 아직도 생생한데, 지금쯤 아들하나 딸 하나 둔 적당히 뱃살 나온 한 집안의 남편이자 누구의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겠지.
여자 처럼........
여전히 비는 내리고 버스는 내달리고, 흐릿한 차창에 어른거리는 중년의 서글프고 고달픈 얼굴의 여자, 생뚱맞게 올려다 본다
#..........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비가 오네요
오늘은 백수랑 눈 떠자마자 산책 가려고
문을 나서는데 비가와서 도로 들어 왔네요
매일 산책을 하는데 왕숙천 물이 너무 말라 말이 아니더군요 오랫만에 내리는 비 좀 왁자하게 많이 쏟아졌음 싶습니다
요즘 집구석 구신이라 노느니 염불한다고 가리늦게 혼자 공부하니라 굳어진 머리 쥐어 짜 내느라 예삿일이 아닙니다 해서 머리도 식힐겸 오래전 옛일이나 하나 꺼집어 내 봅니다
어느새 세월은 이렇게 흘렀는지..........
첫댓글 석우 님의 '옛일'을 읽고
옛일을 생각하며 쓴 제 시 '첫사랑'을 소환합니다.
첫사랑
-------------------------------------- 박 민 순
첫사랑은 소나기 지나간 후 뜨는 무지개
언뜻 보이는 하늘 그 둘레
난생처음 사랑해 본 얼굴 무지개로 걸리고
거울처럼 서로를 비출 수 없어
입김 불며 지워보는 우리 둘 마음
흰나비 한 마리
곡선 그으며 날아와 풀잎 위에 내려앉으면
얇은 날개의 무게만큼
초록빛 파르르 흔들린다, 물빛으로 일렁인다
그 물빛, 구름 되었나
꽃잎 지듯 떨어지는 빗방울
내 가슴 한복판으로
선명하게 나 있는 오솔길
난, 오늘도 축축이 젖어
하늘과 맞닿은 그 길에서 서성댄다.
감사해요
미욱한 내글이 그대의 첫사랑 글을
불러왔네요
글이란것도 자주 써 봐야 되는데
안써니 글도 늘지 않는것 같아요^^~
어째 이므찐여인의 글이 안오른다 했더만 떡허니 와서는후타닥 흔적을 남기고 가네
청춘의 흔적을 부실부실 비오는 오늘
수십년전 그님의 모습이 왜 갑자기 허나 옆을보니 웬수가 떡허니 자리잡고 있으니
아!
어찌하랴 이숨막힌 삶을
글 좀 올려달라 하는 분들이 계셔서
지나간 글 하나 꺼집어 내 봤어요
날씨가 추워진다니 단도리 잘 하시소~~^
가끔은 옛일도 미소를 지을수가 있게 되네요
비가 오다말다 싱겁게 내립니다
그러게요
저녁 땀에 백수대리고 아침에 못다한 산책 다녀왔네요
바람이 꽤 차더라구요
비도 찔끔 내리다 말고
이왕 내리는것 좀 흠뻑 와 줬음 했는데.....
남은 휴일 저녁도 알찬 시간 되시길 요^^~
여전히 글을 프로페셔널로 쓰시는군요
저는 개떡 같은 잡글 오랜기간 써왔는데 날이 갈수록 이젠 그만 쓰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옵니다 봄비겠지요
에구 무신말씀을?
저는 몸부림만의 재미진 이야기가
더 좋은걸요
자주자주 웃음 짓게 하는 특유의 님의 글 기다리시는 분들 많답니다
댓글 감사해요^^~
석우형.
그 옛날 70년전 수원의 우리집.
집주위에서 들리는 맹꽁이소리. 두꺼비 울음소리. 개구리 울음소리의 합창만 들린다면 입장료가 20만원이라도
그 소리를 들으려 갈것이요.
별일 없지요?
옛날 구리에서 출근할때 만나는 그 남자가 그리운것은 아닐꺼고. 그러면 누구일까?
늙어가면서 이러한 낭만적인 글을보고 회상하면 조금은 젊음을 되찾는것같은 환희를 맛봐요.
ㅎㅎ
호반청솔님?
에공
늙어 치매걸릴까비
더 늙기전에 공부하니라
머리도 식힐겸 지나간 글 뒤적거려 봤네요
안녕 하시지요!
김사인 시인님도 므찌시고..
석우님글도 므찝니다.
시인들은 참...정말 신동이시라니깐요?..ㅎㅎ^^*
ㅎㅎ
조위의 지 존님이 반가워 하시는 연실님
오랫만이네요
봄이되니 살랑살랑 봄 바람타고
그리운 옛님들이 보여 참 좋습니다
반가워요^^~
감성을 부여잡고
글쓰기 잘 합니다
꼼꼼하게 읽지는 않지만
느낌은 알 것 같아요
옛 일
오늘 일
내일 일
기다리지 않아도
잘 흐르고 흘러 잘 도착 합니다
전에는 감성도 부여 잡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 마저도 사라져 버린지 오래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너무도 그리운 젊은 날의 사랑
여전히 젊은 그대로 멈춰진 순간들 추억으로 꺼내 살펴보고 펼쳐 놓으면 이렇게 이쁜 사랑의 서사로 변하니 남이 가지지 못한 보석 품고 산다 자위 하시면 행복하실 듯 ㅎㅎ 이쁜 글 잘읽었습니다.
이미
찐한 감정은 잃은지 오래구요
점점 메말라가는 감성
갑갑하고 답답할 때 한번씩 꺼집어 내 보는게지요
요즘 대학 초년생 재미 있으시지요?
부럽습니다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