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놀라운 구원의 은혜 1:10~12
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거룩함을 추구할 이유 1:13~21
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20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21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
[오늘의 말씀 요약]
영혼의 구원은 선지자들이 예언하고 복음 전도자들이 전한 것입니다. 성도는 주님의 은혜를 온전히 바라고, 주님의 거룩하심을 본받으며,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대속함을 받은 성도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는 자입니다.
---------
놀라운 구원의 은혜 1:10~12
성도의 구원은 우연이 아니라 계획된 것입니다. 성도가 받은 구원(은혜)은 이미 구약성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것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 누가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리스도인지, 그가 어떻게 고난을 받고 영광을 받는지 미리 증언했습니다(10~11절).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덧입은 복음 전도자들을 통해 이 놀라운 계획을 전해 받고 믿게 되었습니다(12절). 하나님이 예비하신 이 구원은 ‘때가 차매’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통해 성도들에게 주어졌습니다(갈 4:4 참조).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 사역은 천사들에게도 감춰져 있었던 놀라운 선물입니다. 성도가 누리는 구원의 은혜는 값으로 따질 수 없이 귀한 선물입니다.
● 더 깊은 묵상
구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구절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내가 받은 구원의 은혜를 더 자세히 알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요?
-----------
거룩함을 추구할 이유 1:13~21
하나님이 거룩하시듯 성도는 거룩해야 합니다(레 19:2). 성도는 구원받기 이전의 삶(사욕, 헛된 행실)을 버리고, 자신을 불러 주신 하나님 뜻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14~15절). 이는 구원에 대한 보답으로서 종교적 공로가 따라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성도의 구원(대속함)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들의 대가가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모두에게 차별 없이(외모로 보지 않고) 주어진 선물이기 때문입니다(18~19절).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그에게 영광을 주신 생명의 주권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믿음과 소망을 오직 하나님께 두고,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 더 깊은 묵상
하나님이 구원받은 성도에게 요구하시는 삶은 어떤 것인가요?
성도인 나는 어떻게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고 있나요?
오늘의 기도
주님, 악하고 추한 저를 위해 보배로운 피를 흘리시고 놀라운 구원의 선물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는 세상을 본받지 않고 거룩하신 주님만 흠모하며 구원에 합당한 삶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하나님 말씀으로 마음과 삶을 동이고 기쁘게 순종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430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본문의 정리: 이 땅의 나그네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베드로는 받을 구원을 바라보며 받은 구원에 합당하게 살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그 삶의 결을 '거룩'과 '사랑'으로 제시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와 세상을 동시에 살아가는 우리가 거룩함을 추구하면서 당신을 두려워하고, 서로 뜨겁게 사랑하길 바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하나님 나라와 세상을 동시에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의 기준을 따라 사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 거룩하고 정결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자
겉모양으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헛된 생활방식에서 떠나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성실히 살아가자
진리에 순종하고, 서로 뜨겁게 사랑하면서 내 주변의 이웃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나눔과 섬김을 삶 속에서 열심히 실천해 나가자
베드로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미래를 바라보면 산소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현재의 고난을 이겨낼 수 있도록 미래를 바라본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금 현재 삶이 거룩한 모습이 되도록 도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성도들이 얼마나 거룩하게 살았는지 평가하실 것입니다. 방탕하였던 삶에서 떠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서 자유함을 누리며 태초부터 계획하셨던 모습으로 완성해 나가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는 삶이 거룩하기를 원하고 있는데, 거룩한 삶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소아시아 지역 교회 성도들이 서로 마음을 다하여 사랑할 것을 명령합니다. 썩어져 없어질 세상의 모습이 아닌 거룩하고 순결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라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삶을 위한 부름(1:13~25) : 새로운 삶의 실재는 1:1~12에 확증되어 있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독자들에게 거룩한 삶을 살아갈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거룩하고(1:16; 레위기 11:44~45; 19:2), 하나님이 독자들을 위하여 하신 일(1:18~21)이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신약 저자는 독자들에게 항상 거룩한 삶을 살아가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고린도후서 7:1; 에베소서 1:4; 데살로니가전서 4:3,7; 히브리서 12:14; 베드로후서 3:11).⑤
내게 주시는 교훈
비록 소아시아에 흩어져 시험과 고난 속에 머물고 있지만 변치 않는 것이 있는데 바로 썩지 아니하는, 마르지 아니하는, 떨어지지 아니하는 주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주의 말씀이 있기에 고난도 잠시 이겨낼 수 있으며, 서로를 거짓 없이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좋은 이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형제자매입니다.
나에게도 이러한 이웃(형제자매)이 있습니까? 또 내가 이런 이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베드로는 산소망을 가진 자들에게 거룩한 삶을 요구하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서로가 말씀 안에 거하며 사랑하는 나그네로써 거룩한 삶을 살라고 도전합니다. 세세토록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삶이 나에게 쭉 이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3줄 요약 ].
①베드로는 현재의 고난을 이겨낼 수 있도록 미래에 대한 소망을 두면서 거룩한 삶을 살라고 도전합니다.
②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어떻게 거룩하게 살았는지 공평하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③베드로가 말하는 거룩한 삶은 사랑하는 삶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바로 말씀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구원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삶❞
- 구원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아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
✔ 구원 얻은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합니까?
➲ 주님처럼 거룩한 행실을 나타내는 삶이어야 합니다(13~17절).
구원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이루어질 완전한 구원 즉 구원의 은혜를 소망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말하고 싶은 것 또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를 소망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해야 하며,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권면합니다.
거룩한 행실은 이전에 알지 못하고 좇았던 이 세상의 악한 욕망을 따라 더 이상 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 된 삶을 살아갈 동안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로 부르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행실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전의 타락한 생활 방식 곧 육체의 허망한 욕망에 따라 살아가는 썩어 없어질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심령을 새롭게 하여 새 사람(엡 4:22~24)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내 자신의 믿음이 연약해지지 않도록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탄의 공격에 넘어지지 않도록 영적 긴장감을 늦추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믿음의 경주는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계속 되기 때문에 혹여나 방심하여 영적 레인을 벗어나 탈락되지 않도록 느슨해진 신발 끈을 다시금 야무지게 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를 부르신 주님이 거룩하시기에 주님처럼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내 자신의 믿음은 순종으로 나타나고, 거룩한 삶으로 증명됩니다. ‘
중심을 보시는 주님을 따르네 날 택하신 주만 의지해.. 보이는 상황에 무너질지라도 예수 능력이 나를 붙드네...’(마커스, 주만 따르네).. 나이 모든 행실이 거룩해 질 수 있기를 기도하며, 성령님을 의지하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 하나님께 믿음과 소망을 향해있는 삶이어야 합니다(18~21절).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헛된 생활방식에서 해방되어 참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구원은 은이나 금 같이 언젠가는 사라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19절)입니다. 이 구원은 또한 하나님이 창세전부터 지금까지 신실하게 역사해 오신 덕분에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 우리가 하나님께 믿음과 소망을 두며 살아가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의 가치와 은혜를 분명히 깨닫는다면 나의 삶이 결코 과거의 악한 삶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내 자신은 공짜로 이 은혜를 누리고 있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독생자 예수님의 피를 내 자신의 죗값으로 지불하셔야만 했습니다.
공짜라고 생각하니 그 가치를 소홀히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다시 한 번 초심으로 돌아가 하나님 아버지를 믿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삶이 되겠노라 결단해 봅니다. 믿음과 소망이 나를 살리게 하셨고, 또 앞으로도 뼈를 깎는 고통의 순간에 직면하더라도 넉넉히 이기게 하는 힘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값비싼 구원함을 얻은 자로써 하나님께 믿음과 소망을 두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베드로전서는 ‘소망’의 서신입니다. 소망은 고난 중에 더욱 빛이 납니다. 사도는 하나님이 계획하고 이루신 영광스런 구원을 상기시키며 현재의 고난을 이기고 장래의 영광을 소망하게 합니다.
사도는 ‘산 소망’(3절)에 어울리는 ‘거룩한 삶’을 강조합니다. 마지막 때를 사는 성도의 삶은 거듭나기 전과 달라야 하고, 이 땅이 전부인 줄 아는 세상과도 달라야 합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0-12절 구원은 영원하고 영광스럽습니다. 그것과 비길 수 있는 가치나 축복이 없습니다. 창세전에 시작하여 영원까지 이르는 구원 자체도 영광스럽지만, 그 구원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이 하신 일을 생각할 때 더욱 경이롭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읽고 묵상하는 성경이 바로 이 영광스러운 구원의 소식(복음)이고, 구원의 하나님에 관한 거대한 서사입니다.
13절 장차 임할 구원의 은혜(10절)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성도에게 필요한 태도는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는 것입니다. 늘 깨어 주님을 맞이할 심령의 채비를 하되, 아직 멀었다 할 만큼 긴장을 늦추거나, 이젠 됐다 할 만큼 조급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언제 오시든 놀라지 않을 만큼 매일의 일상을 소중히 여기며 오늘도 주와 동행하는 삶을 삽시다.
14-16절 거듭나게 하신(3절) 목적은 ‘거룩함’에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때의 불순종과 사욕에 경도된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을 닮은’ 거룩한 행실을 보여야 합니다. 그것은 단지 마음의 허리를 동여(13절) ‘버티는’ 것이 아닙니다. 단호히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부름에 부응하는 삶입니다. 자기 과시와 과욕의 신앙은 거북하여 혐오만 가져올 뿐, 자기 부인의 삶만이 참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17-21절 고난은 우리가 붙들어야 할 대상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극심한 고난 가운데 있는 신자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박해하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믿어야 할 것도 아들의 피로 우리를 살리신 하나님의 사랑이고, 붙잡아야 할 것도 아들을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만이 세상의 헛된 위세, 헛된 희망, 헛된 행실에서 우리를 건져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베드로가 고난 중인 성도들에게 권면하는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소망을 두며 악에서 떠나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그것을 위해 모름지기 성도는 과거의 삶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하며, 나그네로 있을 때에 두려움으로 지낼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도의 대속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것으로 이루어진 것이니만큼 거듭남으로 시작하여 영혼을 깨끗하게 하고 형제를 거짓 없이 뜨겁게 사랑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나그네는 고향을 떠나 여행을 하는 사람입니다. 나그네가 머무는 곳은 영원히 사는 곳이 아닙니다. 사도 베드로는 인생을 나그네로 보고 있습니다. 잠시 있다가 여행을 마치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 갈 나그네처럼, 성도들의 삶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나그네 같은 삶을 살면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말하고 있습니다. 우선, 성도는 완전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긴장 풀지 말고 근신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나 개인 적인 종말에 대비하여 늘 마음을 정돈하고 언행에 유의하며 삼가 삶을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주님을 믿기 전 성도는 욕심대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악한 욕심에 끌려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행실에 구별된 자로 곧 거룩한 자입니다. 오르지 믿는 자는 하나님을 닮아감으로 하나님을 쫓아 거룩하게 살아야 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오히려 두려워하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각 자의 행위대로 판결하시는 공의의 심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경계와 경계를 해야 할 것은 사람은 늘 죄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모든 문제에서 거룩한 삶, 세상과 분리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선, 먹고 사는 문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빵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빵이란 사람의 본능까지 확대해석 가능합니다. 식욕, 성욕 등등 본성을 말하는 것으로 믿음의 분량 껏 넓혀서 적용해도 좋습니다. 사는 것이 다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가치 없는 삶은 수명의 연장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최고의 선인 하나님을 추구함으로 최고의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생존에 무게 중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가치에 비중을 두는 사람들이지요. 먹고 사는 것이 제일 큰 문제라면, 늘 돈만 생각한다면, 눈 뜨면 즐길 것만 찾는다면 거룩한 삶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다음, 고난과 불행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사도들은 한결같이 고난을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온갖 시험을 당해 근심하지만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 도다' (벧전 1;6)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채우노라' (골 1:24)
시련을 통하여 믿음이 정금같이 나옵니다. 고난의 용광로를 거쳐 믿음 아닌 것들이 제거되고 믿음다운 믿음으로 제련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에 질 수 없습니다. 극복합니다. 갑작스러운 불행을 당해도 감정에 끌려가지 않고, 육신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고난을 지나가는 시간으로 처방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적인 믿음으로 차별화하기 때문입니다. 시련을 이긴 믿음은 우리 주님께 칭찬받을 만하고, 영광과 존귀함을 얻을 만한 귀한 것이라 그렇습니다. 고난과 불행 앞에 절망하고, 좌절하고, 우울해하며 과거를 산다면 거룩한 삶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인생 최고의 과제, 죽음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신앙을 가진 자라면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이생에 목매지도 않습니다. 죽으면 하늘나라니까…. 그래서 구차하게 삶을 구걸하지 않습니다. 훌훌 털어버리고 기쁘게 하나님의 품으로 갈 수 있습니다. 보내는 자의 입장에서도 그렇습니다. 여기보다 더 좋은 세상에 간 것입니다. 원래의 본향으로 돌아 간 것이지요. 다만, 조금 일찍 간 것뿐입니다. 그런 이유로 부럽기도 합니다. 그래서 천국환송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보내고 슬퍼하고, 낙망하며, 지나간 추억에 아파한다면 거룩한 삶이라 볼 수 없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서, 사고와 불행이 닥쳐도, 그리고 죽음 앞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그네와 같은 인생에서 돌아갈 본향이 있는 까닭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산 넘어 산이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대신 용기를 갖고 소망을 잃지 말고 기쁘게 사는 우리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믿는 우리들의 도리이며, 본분입니다. 그 소명을 다 하지 못하면 거룩한 삶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 원망대신 감사로, 한탄대신 찬송으로, 슬픔대신 기쁨으로 기꺼이 거룩한 삶을 만들어 나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두려움으로 지내라(13~17절).
두려움으로 지내라는 말씀이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다고 느낍니다. 말세, 즉 그리스도께서 다시 나타나실 때까지 우리는 순종하는 자녀처럼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행위로 구원을 받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살아가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은 곧 심판이 시행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지내야 합니다. 살아가야 합니다.
1.신앙인의 마음
1장의 앞 부분이 '하나님 나라의 국민'으로 거듭난 '신앙인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라면 오늘 본문은 신앙인의 실제적인 모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이제 마음을 그 정체성에 맞게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벧전 1:13)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라고 말합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거룩한 마음
자녀는 부모를 닮는 것이 당연합니다. 닮지 않으면 자녀가 아닙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베드로전서 1:15, NKRV) 신앙인은 거듭났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죽은소망을 가진 이들과 같지 아니하며 자신이 산 소망을 가지고 영광의 길을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 길을 힘 다하여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2.신앙인의 행동
세상의 것을 얻기 위해서는 세상을 따라가야 합니다. 세상의 열심과 노력과 거짓과 탐욕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조금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주님 재림하셔서 주실 선물(은혜)을 사모합니다. 그래서 이제 신앙인은 주님을 따라갑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벧전 1:15) 주님이 거룩하시니 우리도 거룩해야 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주님을 닮아야 합니다. 주님의 거룩을 닮아야 합니다.
.거룩한 행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베드로전서 1:14, NKRV) 이제는 전에 가지고 있는 욕심과 행실을 버려야합니다. 훨씬 더 좋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베드로전서 1:15, NKRV) 우리는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거룩한 행실'을 해야 합니다.
하늘가는 나그네. 베드로가 믿음의 형제들에게 나그네라고 부르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라는 사실을 명심해야합니다. 그런데 목적 없이 사는 단순한 나그네가 아니라 하늘이라는 목적을 분명히 가지고 살고 있는 나그네입니다. 전에는 세상에 더 중요하였으나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나그네로서 살고 하늘에는 본향처럼 살아야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가 영광스런 하늘가는 나그네로서의 삶을 살 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영광스러운 하늘가는 나그네입니다. 그러기에 영광스러운 나그네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십시오. 단단히 하십시오. 하늘에 온전히 소망을 두십시오. 그래서 그리스도의 피로 산 우리의 존귀한 생명을 가지고 영원한 가치를 가지는 존귀한 삶을 사십시오.
주일 열방을 향한 기도
국내 - 핵개인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성도들이 신앙보다 개인의 행복에 더 관심을 보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또한 이웃 섬김과 봉사 같은 신앙의 실천에 관한 부분에는 더 낮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자기 행복과 안정, 만족에 집중하는 이들이 영적 성장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견고 히 다시 서길 기도합시다.
국외 - 방글라데시는 1억 6천만 명이 넘는 인구 중 0.4%만 기독교인이고 이슬람교도가 대부분입니다.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은 가족과 사회, 경제 활동으로부터 고립되고 핍박을 받습니다. 방글라데시의 성도들에게 고난을 이길 믿음을 주시고, 박해와 불이익에서 보호하시길 기도합시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말씀하여 주시고, 말씀의 의미들을 되새길 수 있게 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하나님 나라와 세상을 동시에 살아가는 우리가 세상의 기준보다
하나님 나라의 기준을 따라 거룩하고 정결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와 동행하시고, 우리를 지켜 보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고 서로 뜨겁게 사랑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
함께 나눌 수 있게 되길 소망합니다.
주님, 저희들의 인도자가 되어 주시고, 분명한 인도를 보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며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