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본 의원은 ‘출산과 보육, ‘워킹맘과 워킹대디’를 위한 제언’ 이라는 제하로 기고를 한 적이 있다. 본 의원은 이 기고에서
저출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속초시에 종합적이고 실효적인 출산보육 정책과 인구감소에 따른 대책을 조속히 수립해 줄 것을 강력히 주문한 바
있다. 속초시는 매년 국·도비를 포함한 약 170여억원을 출산과 보육관련 사업비로 지출하고, 순수한 시민의 세금으로 해마다 32여억원을
교육경비와 무상급식비 등으로 교육당국에 지원하고 있다. 출산과 보육은 교육이라는 대명제와 바로 직결되어 있다. 그러나, 사용되는 예산규모에
비해 이렇다 할 저출산대책과 교육여건 등이 나아지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적 상황이다. 배움의 전당인 학교가 요즘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시골학교는 학생이 줄어서 문을 닫고, 도시학교는 학원에 밀려서 설 곳을 잃어가고 있다. 정부의 정책은 해마다 바뀌고 학생들은 우왕좌왕하다가
졸업을 한다. 28년여를 교직에 몸담았던 본 의원은 학교 앞을 지날 때마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수없이 해보며 반성을 거듭한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육의 목적이 무엇이고,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배우는가? 대개의 사람들은 성공하기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흔히들 좋은 학교의 기준은 일류대학교에 많이 들어가는 학교로 친다. 그리고 좋은 대학교의 기준은 대기업에 얼마나 잘 들어가느냐로
따진다. 대기업에 들어가야 월급을 많이 받고, 앞날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사회의 평가기준이 돈 잘 벌고, 출세하는 사람을 성공하는
사람으로 보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 자식이 그런 성공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시험 잘 보고 좋은
대학 잘 들어가는 것을 교육의 첫째 목표로 삼는 한 교육은 언제나 뒷걸음 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황금만능주의와 배금주의사상이 만연하는 한
교육현장은 항상 무미건조해지고 교육의 본질은 호도될 수밖에 없다. 사람다운 사람이 존경받지 못하고, 어떠한 방법으로든 돈만 잘 버는 사람이
존경받는 사회에서는 학교가 학원에 밀릴 수밖에 없다. 교육이 교육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품고 있는
교육의 목적에 대한 의식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사회의 의식풍토가 바뀌어야 한다. 사회풍토가 왜곡되어
있을지라도 교육 본래의 목적은 사람다운 사람, 쓸모 있는 사람, 남과 어울릴 줄 아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사람다운 사람은 인격의 완성체를
말한다. 한 가지에 치우친 사람이 아니라 두루 부족함이 없고, 본분을 알고, 나아갈 바를 아는 사람이다. 쓸모 있는 사람은 그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능적인 사람이자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여 시스템화 시키는 긍정적인 매개체 역할을 한다. 어울릴 줄 아는 사람은 민주사회 시민으로서 남과
더불어 어울리며 살아갈 줄 아는 사람이다. 또 한가지 우리는 교육정책을 ‘백년대계’라고 한다. 교육이란 미래의 사회와 나라를 이끌어갈
인재를 기르는 정책이기 때문에 눈앞의 이익만을 살피면 안 된다는 의미에서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은 백년대계가 아니라
십년대계이다. 영국의 고든 브라운장관은 ‘금융허브 런던의 부활’이란 목표아래 재임 10년 동안 일관성 있는 정책으로 세계 2위의 일본을
따라 잡았다. 우리는 어떠한가? 정부가 수립된 1948년부터 오늘까지 67년간 교육정책이 8회나 바뀌었으니 백년대계가 아니라 십년대계도
되지 못한다. 광복이후 대학입시 제도를 살펴보면 ①1945∼1953년 대학별 단독시험제 ②1954년 국가연합고사ㆍ본고사 병행제
③1955∼1961년 대학별 유시험ㆍ무시험(내신제) 병행제 ④1962∼1963년 대학입학 국가자격고사제 ⑤1964∼1968년 대학별 단독시험제
⑥1969∼1980년 대학입학 예비고사ㆍ본고사 병행제 ⑦1981∼1993년 대학입학 학력고사ㆍ내신제와 병행제 ⑧1994년∼대학수학
능력고사ㆍ내신제ㆍ본고사 병행제로 시행했다. 아마 시민들께서 자기의 대학입시 때를 이에 맞춰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교육정책
여하에 희생양이 된 사람들이 많다고 본다. 1945년부터 단독시험, 1954년부터 연합고사, 1955년부터 내신제, 1962년부터 국가고사,
1964년부터 또 단독시험, 1969년부터 예비고사, 1981년부터 학력고사, 1994년부터 수능고사를 치르고 있다. 지금은 또
어떠한가? 수시모집이란 입맛으로 선발하는가 하면 사교육으로 무장된 특목고나 외국어고가 있다. 이들 특목고나 외국어고는 전문성은 어디가고, 일반
고등학생이 치르는 법대나 상대에 지원해 그 자리를 석권한다. 이렇듯 본연의 목적을 망각한 처사를 관계당국은 지켜만 보고 있을 것인가?
오늘날의 교육은 세 가지 교육의 목적 중에 쓸모 있는 사람 한 가지만 충족시키고 있다. 시험 잘보고, 취직 잘하고, 돈 잘 버는 사람들만이 잘
나가고 사람대접을 받는다. 오늘날의 교육은 결국은 시험 잘 보는 사람만 길러내고 있는 것이다. 사회풍토와 의식이 바뀌어서 시험만 잘 보는
사람이 아니라, 인격을 갖추고, 남과도 어울릴 줄 아는 사람다운 사람을 높이 평가하는 사회가 되어야 교육도 본래의 숭고한 목적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이 어지럽고, 교육이 흔들릴지라도 교육 본래의 숭고한 목적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교육당국에서는 학부모들의 원성을
듣고는 있는지. 일관성 있고 백년을 내다보는 교육정책, 과연 생각이나 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우리 모두가 평생교육 백년대계를 기대하는 것이
무리일까? 이래저래, 학부모와 학생들만 고달프다. 본 의원도 미약하나마 교육자 출신으로서 속초시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거듭 거듭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