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2.02 05:35
['늙은 말'役의 연극배우로 돌아간… 유인촌 前 문체부장관]
"정권 바뀌어 새로 들어선 대통령에게 자기 사람 쓸 권한을 주는 게 옳아
'임기 보장이 어떻고' 말들 하지만 공공기관장은 물러나는 게 도리"
"문화예술계를 편 가른 것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 시작돼
그때 자기들끼리 지원금 나눠 먹어 정치와 무관한 대다수 예술인 소외"
"한때 실세 장관이 늙은 말로 전락(轉落)했군요."
서울 청담동의 지하 소극장 '유시어터'에서
유인촌(62) 전 문체부장관을 만나 이렇게 말을 걸자, 그는 처음에는 뜻을 못 알아챈 것 같았다.
"아…, 죽음이 임박한 늙은 말이 자신이 살아온 과거를 회상하는 작품이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특히 어떻게 늙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이제 그는 연극배우로 돌아왔다. 톨스토이 원작을 각색한 '홀스또메르'에서 도살 직전의 늙은 말 역(役)을 맡았다.
―TV 드라마와 영화도 있는데, 하필 연극입니까?
"영상(映像)은 남지만 연극은 없어지니까요. 저는 무얼 남기는 것보다 이 시간에만 존재하고 없어지는 걸 좋아합니다."
―보기와는 달리 허무주의적인가요?
"… 그게 아니라, 연극은 순간의 예술이지요. 그 순간을 잡기 위해 더 치열하게 노력하는 거죠. 우리 직업은 옛날로 치면 '광대(廣大)'죠. 광대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 흩어지는 존재지, 자신의 무덤과 비석을 쓰는 것조차 원치 않았습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사람은 뭔가 남기겠다는 욕망이 있지 않을까요?
"이번 작품에서 무대의 막이 내려간뒤 이렇게 말(馬)의 낭송이 나오지요. '죽어서 버려진 내 살가죽은 배고픈 들개나 독수리가 뜯어 먹었다. 마지막 남은 다리뼈마저 농부가 가져다가 농기구로 썼다. 사람은 좋은 옷 입혀 화려한 관에 넣어 멋지게 장례를 치르지만 죽은 다음에 그 살과 피는 쓸모가 없더라.' 극단적으로 말해 무얼 남긴다는 게 이렇게 쓸모없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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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인촌 전 장관은“나는 무얼 남기는 것보다 순간의 무대에서만 존재하고 없어지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덕훈 기자
―이번 첫 공연을 멀리 전남 해남에서 시작했다면서요?
"공연료는 3000원과 5000원을 받았어요. 지방까지 골고루 문화 혜택을 누리게 해야 한다는 게 소신이었지요. 가능하면 서울을 떠나 지방에서만 연극을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그는 강원도 봉평에도 연극 극장을 짓는 중이다)."
그는 장식 끈이 달린 더플코트를 입고 어깨에 가방을 멨는데, 허연 머리만 아니라면 1980년대의 좀 유복한 대학생처럼 보였을 것이다.
―머리가 언제 이렇게 셌지요?
"10년여 전부터 머리가 허옜는데 그동안 염색해온 거죠. 공직에서 물러난 뒤로 염색을 그만뒀어요. 이제 흰머리여도 괜찮을 나이도 됐고요."
―정치와는 완전히 손을 뗐습니까?
"연극판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과 작품을 생각하면 제게 남은 시간이 약 10년입니다. 다른 데 신경 쓰면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게 된다는 뜻이죠."
―환경이 바뀌면 마음이란 또 바뀌지 않을까요?
"저는 뭔가를 남기고 싶지 않은 것처럼, 똑같은 일도 반복하고 싶지 않아요. 한 번 했으면 됐지…."
―연극은 반복이 아닌가요?
"연극은 계속돼도 날마다 무대에서 하는 연기는 달라요. 정치는 그런 스릴이 없어요. 공직이나 정치는 제가 좋아서 한 것은 아니었지요."
―정치 참여가 원했던 게 아니라고 했나요?
"제가 원해서 그 주변을 쫓아다닌 것이 아니라, 어쩌다가 인연이 닿고 기회가 됐던 거죠. MB가 저를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으로 발탁해, 가까이서 일하다 보니 대통령 선거를 돕게 됐지요. 또 장관을 맡겨주셨고. 제 일의 연장선에서 촉매제 역할을 해보고 싶었는데 그런 세월이 8년이 된 겁니다."
―MB와는 이제 만나지 않습니까?
"가끔 찾아가 인사드립니다."
―현 정권 들어 MB 정부의 실정(失政)이 부각되고 퇴임 대통령으로서도 인기가 낮습니다. 보수 정권이 재창출됐는데 마치 여야 정권 교체가 된 것 같아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늘 그랬지 않습니까. 지난 정권에 대해 뭔가 잘못된 것, 비뚤어진 것을 드러내야 지금 정권이 잘 부각되니까요."
―MB 정부가 그 시대적 역할을 제대로 했다고 봅니까?
"국제 경제 위기를 맞아 선방했고, 세계 속에서 우리나라 위상을 높였다고 봅니다. 좌파 정권 10년에서 다른 기조로 바꾸는 역할도 했습니다."
―제 견해는 다른데요. 그때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종북 세력과 대결하고 국가 정체성을 바로 세웠다면 지금 박근혜 정부에서 이렇게 극심한 이념 대결로 시끄럽지 않았을 텐데요.
"사실은 노력했는데…. 그때 상당 부분 걸러줘서 현 정권에 넘겨준 게 아닐까요. 나름대로 완충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지금 MB 때 인사들의 물갈이가 진행되고 있는데?
"제 입장은 '벌써 물러났어야지 왜 아직 있느냐' 쪽입니다. 지난 정권 사람을 어떻게 한다는 식으로는 생각지 않아요."
―정권이 바뀌면 공공기관장들은 물러나는 게 옳다고 봅니까?
"제가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을 할 때 오세훈 시장으로 바뀌었어요. 저는 첫 회의에서 사의를 표시했어요. 박근혜 대통령도 임용 기준에 '국정 철학'을 얘기했습니다. 그게 옳다고 봐요. 새로 오시는 분에게 자기 사람 쓸 권한을 주는 것이 옳습니다. '임기 보장이 어떻고' 하는데 직업 공무원들에게는 그럴지 몰라도, 정무적으로 들어온 사람은 물러나는 게 도리입니다."
―문체부 장관에 취임해 좌파 성향의 문화예술계 기관장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스스로 물러나는 게 순리"라고 말해 논란이 됐지요?
"정책도 새로 짜고 집행해야 하는데, 그 사람들이 딱 앉아있으니 잘 안 굴러갔어요. 기자들이 질문하기에 '나라면 그 자리에 안 있을 거다. 그 사람들은 자존심이 세 붙잡아도 안 있을 거다'라고 했어요. 그게 다음 날 신문에 '스스로 물러나라'는 식으로 대문짝만 하게 났어요."
―같은 배우인 최종원씨가 "유인촌은 완장 찬 정권 호위관"이라고 비판했지요?
"그 사람이 워낙 여러 가지 얘기를 해서…. 사실 문화예술계를 이렇게 편 갈라놓은 것은 노무현 정부였어요. 그때 문화예술 지원금을 자기들끼리만 나눠 먹는다고 말이 많았어요. 정치와 무관한 대다수 예술인이 소외됐지요. 제가 장관이 되면서 '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며, 경쟁을 통해 지원하는 쪽으로 하니까 기득권을 갖고 있던 일부에서 반발한 거죠."
―문화예술 영역에서는 여전히 좌파가 힘이 세지요?
"대다수는 정치적인 것과 무관하고, 좌파는 목소리가 클 뿐입니다. 물론 예술 자체가 진보적 성향이 있어요. 세상의 어둡고 힘든 곳에 관심을 갖기 때문이죠. 이를 통해 인간성이 회복되고 삶의 조건이 개선되기를 바라죠. 하지만 특정 집단이 정치적 목표를 갖고 작품을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죠. 공산당이 예술을 그렇게 도구로 쓰지 않습니까."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마치고 귀국하는 김연아 선수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장면을 네티즌이 악의적으로 편집해서, '성희롱하려 덤비는 장관, 피하는 김연아' 식으로 올렸지요. 소위 '회피 연아' 동영상인데.
"그때 화가 나서 고소했는데, 대상자가 대부분 직업이 없는 데다 사과를 하기에 취하했어요."
―정치만 안 했으면 이런 '안티'가 없었을 텐데요.
"그전에는 원래 '안티'가 없었죠. 이런 걸 의식했다면 두루뭉술하게 장관직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어차피 한 번 할 것인데 뒤를 안 돌아보고 했지요."
―본인은 정치판에 들어갔으면서, 김제동·김미화씨 등의 정치 참여에 대해서는 "안 하는 게 좋다"며 부정적으로 말했지요. 이율배반이 아닌가요?
"제 경험을 통해 한 말이지요. '직업을 연예인과 정치인 이중으로 갖고 있으면 안 된다. 정치를 하려면 확실히 한쪽을 버리든지, 아니면 안 하는 게 낫다'는 것이었지요. 저는 정치판에 들어오기 훨씬 전에 중앙대 교수직도, 연기 생활도 그만뒀어요."
―왜 그런가요?
"연예인이 정치에 참여하면 절반의 '안티'가 생겨요. 말하자면 절반을 잃는 거죠. 정치인은 정말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국민을 위한 봉사와 희생, 국가를 어떻게 만들겠다는 책임이 없다면 안 하는 게 맞아요."
―실제 그런 정치인이 존재하나요?
"(웃음) 별로 못 봤어요."
―지방에 연극하러 가면 전직 문체부 장관으로 알아봅니까?
"연극배우라는 사실도 몰라요. '전원일기'에 나오는 양촌리 김 회장댁 둘째 아들이지요. 그 작품을 22년 했으니까요. 뒷전에서 자기들끼리 '저 양반이 장관도 했다더라'고 속삭여요."
―장관 하다가 연극배우로 돌아가면 주변 대접이 덜하지요?
"그런 면에서 저는 분명합니다. 요즘에는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걸어 다닙니다. 지방에 갈 때도 대중교통을 이용해요. 연극 정신, 헝그리 정신으로 돌아갔습니다. 연극으로는 돈을 못 버니 가난한 삶에 익숙해져야죠."
―가난한 삶이라…, 인사청문회 당시 신고한 재산이 140억원 규모로 기억하는데요.
"그때 '배용준 얘기'를 해서 많이 두들겨 맞았지요. '배용준을 한번 봐라. 과거에 한류(韓流)가 있었으면 내가 그런 역할이다. 나는 배우 생활을 35년이나 하지 않았나'라는 뜻이었는데…. 재산을 불리려고 투자한 적이 없어요. 2백석 규모의 이 극장 건물이 제 재산의 대부분이지요. 소극장 운영은 늘 적자예요. 방송에서 돈도 잘 벌고 한창 잘나갈 때 연극으로 돌아왔어요. 극단을 만들고 극장을 지었던 거죠."
―좁은 공간에서 소수 관객을 두고 하는 연극 장르가 과연 지금 시대에 맞을까요?
"자본이나 상업적 논리로 따지면 답이 없지요. 하지만 연극은 근본과 같은 것이지요. 기계나 과학기술이 아닌 순전히 사람의 땀 냄새로 하는 작업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람들은 제 연기의 50%밖에 볼 수 없어요. 연극에서는 제 모든 것이 드러나죠."
―무대에서 연기를 할 때 어떤 쾌감을 느끼죠?
"허구 속의 진실을 찾아내는 쾌감 같은 것이죠. 작가가 만들어놓은 허구의 작품 속에서 우리는 진짜를 찾지요. 그게 흥미로운 거죠. 우리는 진짜인 현실에서는 거짓을 많이 얘기하는데, 가짜인 무대에서는 악역이든 좋은 역이든 진실을 얘기하니까요."
우리는 조명 속 무대 위에 앉아 있어서 서로 연기를 하는 듯했다. 객석은 비어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신의 삶을 걸 만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하고 질문했을 때, 그의 답이 '연극' 말고 또 있을까.
"가족이지요. 처음 연극을 시작할 때 아내가 안 말렸어요. 고마웠지요. 그때 저는 '가족이 밥 못 먹을 정도로 만들면 연극을 그만두겠다'고 결심했어요. 내가 하고 싶다고 그것만 추구하면 이기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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