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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후사 도시오·하나후사 에미코 지음 | 고향옥 옮김
328쪽 | 152*225mm | 18,000원 | 2023년 9월 23일
ISBN : 979-11-86342-65-7 03910
주제: 관부재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여자근로정신대, 강제동원재판소송, 한일관계
“일본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 단 한 번의 순간”
1992년 부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1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부산 종군위안부·여자근로정신대 공식 사죄 등 청구 소송’의 재판 과정과
원고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한 28년의 시간을 기록한 책
1992년 12월 25일 부산에 거주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3명과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7명 등 피해자 10명이 일본 정부로 상대로 공식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며 일본 야마구치 지방재판소 시모노세키 지부에 소송을 제기한다. 재판명은 ‘부산 종군위안부·여자근로정신대 공식 사죄 등 청구 소송’으로, 보통 관부재판(關釜裁判)으로 불린다. 1992년 소송을 제기하고, 1998년 4월 27일 제1심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원고가 일부 승소(일부 인용)하여, 우리나라와 세계에 주목을 받았지만, 2심과 최종심에는 패소하고 만다.
관부재판 소송을 제기하긴 전, 1991년 관부재판의 지원 요청을 받은 하나후사 씨 부부와 일반 시민과 변호사들은 일본 후쿠오카에서 ‘전후책임을 묻는다·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을 만들어 재판 지원을 시작하였다.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에서 중심 역할을 했던 분이 하나후사 도시오 씨와 하나후사 에미코 씨 부부이다. 하나후사 씨 부부는 재판을 지원하는 일 말고도, 피해자 원고 할머니들이 재판 일정으로 일본에 오면 숙소와 생활을 돌보는 일도 도맡았다. 이렇게 시작한 재판 지원과 원고 할머니들과의 만남은 소송을 제기한 때부터 모임이 해산한 2013년까지 28년 동안 이어져 왔다. 이외에도 관부재판 소식지를 만들고, 전후 책임과 보상을 위한 입법운동과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자들과의 투쟁, 강제동원 피해자의 유골 조사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일을 해왔다. 하나후사 도시오 씨와 하나후사 에미코 씨 부부 그리고 재판을 지원했던 시민과 변호사들은 일본의 전후 책임의 사죄와 배상을 위해 일본 정부와 맞선 분들로, 사죄와 배상을 통한 피해자들과 화해와 교류로 한국과 일본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 활동을 펼쳤다.
이 《1992년 관부재판과 할머니들》은 한국과 일본에서 공동으로 출간하는 책으로, 일본에서는 2021년 2월에 먼저 출간이 되었다. 《1992년 관부재판과 할머니들》은 하나후사 도시오 씨와 하나후사 에미코 씨 부부와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이 그 동안 해 온 관부재판 소송의 과정과 원고 피해자 할머니의 지원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의 존엄성 회복, 전후 보상과 사죄 등을 위해 분투해 온 일본 시민운동과 활동을 기록한 책이다. 한국과 일본이 교류하며 미래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메시지를 던진다.
책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과 진술, 소송의 시작부터 1심 일부 승소와 2심과 상고에서 기각과 패소에 대한 판결문 요지, 일본 역사수정주의자들과의 싸움, 지역사회와 국회의원에게 펼친 입법운동, 일본군 ‘위안부’와 ‘여자근로정신대’의 차이와 왜곡된 부분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 강제동원의 과정과 자료 그리고 관부재판 연표와 강제동원으로 목숨을 잃은 피해자들의 유골 조사 관련 자료 등 관부재판 지원을 시작한 뒤로 28년간의 활동과 지원 기록 들을 수록하였다.
하나후사 씨 부부가 《1992년 관부재판과 할머니들》 책을 출간하게 된 계기는 관부재판을 소재로 한 영화 <허스토리>가 실제 관부재판과 달리 왜곡된 부분이 있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여자근로정신대’에 대한 오해를 낳을 수 있는 내용과 당시 관부재판을 지원했던 시민들의 활동이 빠져 있었다. 이에 관부재판이 진행된 과정과 일본 역사수정주의자들과의 싸움 등 시민들이 어떻게 재판을 지원하였고 활동하였는지, 당시 일본 사회 분위기를 제대로 알려 한국과 일본 시민들이 공유하여 한국과 일본이 지금의 내셔널리즘을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방향을 제언하는 뜻에서 출간하였다.
이 《1992년 관부재판과 할머니들》 은 전후 책임과 피해에 대한 진정한 해결은 무엇이며, 이를 위해 분투한 일본 시민운동의 귀중한 기록이자 한국과 일본이 교류하며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메시지를 던지는 책이다.
관부재판 지원에 헌신하고 일본에 맞서 분투한 일본 시민과 활동을 만나다
하나후사 도시오 씨와 하나후사 에미코 씨 부부는 후쿠오카에서 양식당을 운영하며,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에서 도시오 씨는 사무국장으로 에미코 씨는 사무국에서 활동하였다. 대학 재학 시절부터 사회운동에 참여한 하나후사 씨 부부는 국적문제로 교원에 임용하지 못하는 재일한국인 3세의 재판을 돕기도 하였다.
하나후사 씨 부부는 1991년 관부재판 지원을 요청을 받고, 처음에는 식당 운영으로 힘들다고 하였지만, 결국 관부재판 지원에 참여하게 된다. 여기에는 전쟁과 일본에게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과 화해의 길이 있는 건 아닐까, 피해자들에게 사죄와 배상을 함으로써 화해의 길이 열리진 않을까 생각하면서, 이 재판을 지원해야 한다고 결심이 썼다고 하나후사 씨 부부는 말한다.
하나후사 씨 부부는 관부재판 지원을 한 뒤로 28년 동안 재판 지원과 관련 소식지도 만들며 원고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하며 전후 책임과 보상 등의 관련하여 일본 정부에 맞서서 시민운동에 헌신해 왔다. 관부재판이 끝난 뒤에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원고 할머니들과 만남을 이어왔다.
책에서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과 하나후사 씨 부부는 관부재판의 소송 진행과 의견 진술 등으로 일본으로 오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생활을 돌보고, 관부재판 소식을 다룬 회지 발간, 홈페이지 운영,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전후 책임과 배상을 위한 입법 운동, 일본 역사수정주의자들과의 싸움, TV 토론회 참여, 관부재판 지원하는 모임에 참여한 일반 시민의 감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관부재판을 지원하고 시민운동을 벌이며 분투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이 보다 나은 미래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방향을 제언하는 책
하나후사 씨 부부와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에 활동한 시민들은 전후 책임과 배상 문제 해결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분들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피해국과 피해국 국민과 화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재판 지원과 입법운동을 펼쳐 왔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무척 악화된 상황이다. 하나후사 도시오 씨는 여기에는 한국과 일본 양국이 민족주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내셔널리즘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책을 쓴 하나후사 씨 부부는 이런 내셔널리즘 극복의 하나로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한국과 일본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관계의 악순환과 내셔널리즘을 극복하고, 역사 인식을 함께 공유하여 다음 세대에 전할 의무가 있다고 전한다.
《1992년 관부재판과 할머니들》은 이런 바람과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메시지이다. 1991년 관부재판을 지원 요청을 받고 시작한 관부재판 지원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한 28년의 시간과 기록을 한국과 일본의 독자, 젊은이들과 함께 공유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피해자들의 상처와 존엄성 회복을 함께 생각하고 나누길 바라는 메시지와 방향을 담고 있다.
저자의 말_시작하는 글에서
이러한 내셔널리즘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길은 한일 양국의 지속적인 대화와 피해자들에 대한 분명한 해결책일 것입니다. 우리가 재판 지원 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솔직한 의문과 어려움이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에게 잘 전달되기를 바라며, 부디 피해자분들의 상처와 진심을 함께 생각해 보고 나누는 데 이 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후사 도시오(저자)
추천의 글
일본군 ‘위안부’와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에게 다가갔던 28년을 돌아보며, ‘관부재판 지원 활동을 하며 느꼈던 의문과 어려움을 전함으로써, 한국과 일본이 ‘피해자들의 진심과 상처를 함께 생각하고 나누길’ 소망하는 메시지이다.
- 야마시타 영애(일본 분쿄대학 교수)
이 책은 ‘위안부’ 문제 해결은 여전히 요원하고, 여자근로정신대 포함 강제동원 피해자의 배상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채, 과거사 문제가 한일 양국 간 갈등과 대립을 조장하는 건 아닌지 염려하는 모든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책에서 여러분은, 한국인 피해자 할머니들과 관부재판을 지원했던 활동가, 재일동포 및 일본인 변호사, 일본 시민들이 교류하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연대하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또 냉철한 태도와 논리로 역사를 직시하면서도, 따뜻한 가슴으로 교류하며 연대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언제나 사람이 답이다.
-윤명숙(역사학자)
차례
시작하는 글
관부재판에 참여한 피해자 원고 할머니들
1부 영화 <허스토리>와 관부재판에 대해서
1. 영화 <허스토리> 감독에게 보낸 항의서와 나눈 논의
<허스토리> 제작자에게 항의서 발송
- 영화 <허스토리> 제작자에게 항의한다!
관부재판에 대해서
여자근로정신대의 피해 실태와 일본군 ‘위안부’와의 혼동
- 의견 진술서 요지
- 조선인 여자근로정신대의 피해 실태
- 모집
- 부모의 의사를 무시
- 자유를 빼앗긴 노예 상태
- 배고픔의 고통
- 가혹한 노동
- 노동 재해와 질병
- 귀국
- 해방 후 일본군 ‘위안부’로 간주되었던 정신대 피해자들
- 한평생 한국에 속죄하며 살아온 스기야마 선생님
한국에서는 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정신대 피해자와 동일시하는 것일까?
<허스토리> 감독과 제작자와 나눈 논의
당시 일본 사회를 혐한 감정이 만연한 듯이 묘사한 점
2부 관부재판의 과정과 후지코시 소송
1. 우리 부부가 전후 보상 재판에 관여하게 된 계기
2. 관부재판의 시작-1심 야마구치 지방재판소 시모노세키 지부
입법 운동 요청
재판 개시
- 의견 진술 요지
재판관의 마음을 움직인 일본군 ‘위안부’ 원고들의 호소
일본군 ‘위안부’ 원고에게 획기적인 승소 판결
판결 요지
- 진술과 공술의 신빙성
- 법적 책임
30만 엔 문제
입법 문제의 현실화
3. 히로시마 고등재판소에서 다시 확산된 재판 지원의 고리
항소심에서의 쟁점
원고 측 주장 - 1985년의 최고재판소 판결 오류
정부 측 주장 -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이미 해결되었다
원고 측 반론 - ‘한일청구권협정’에서 개인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
- 유엔에서의 논의
- 국회에서의 답변
황국신민화 교육의 주술-여자근로정신대 원고들이 입은 피해의 심각성
원고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이용수 할머니, 정신대 원고의 발언에 분통 터뜨리다
항소심 판결을 위한 노력
- 윤정옥 선생의 증언 요지
- 도쿄아사이토공장에 끌려간 강yo 할머니
히로시마 고등재판소 판결에서 패소
- 성명문
최고재판소에 상고, 그리고 기각
4. 제2차 후지코시 소송
헤이든법과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
제2차 후지코시 투쟁 개시
재판에서 연달아 패소 판결
3부 새로운 싸움
1.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과의 분쟁
민간 기금에 대한 반대 결의
일본군 ‘위안부’들이 세상으로 나온 두 가지 배경
민간 기금 구상에 대한 전국회의와 신문 광고 게재
2. ‘위안부’ 문제를 지워 버리려는 역사수정주의자들과의 싸움
<신 고마니즘>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왜곡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과의 투쟁
전쟁 가해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입법 운동
- 국립국회도서관법 일부를 개정하는 법률안(일부 발췌)
3. 조선인 강제동원 노동자의 유골 조사 진행
강제동원 진상 규명 전국 네트워크 결성
후쿠오카현 네트워크, 유골 조사 진행
후쿠오카현 내의 조선인 유골 반환 경위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 유골 반환 실태
강제동원된 조선인 유골에 대한 지쿠호 지역의 역사 인식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의 투쟁(특고경찰 자료에서)
- ‘모집’이라는 명칭으로 강제동원이 시작되다(《특고월보》 1939년 11월, 12월 기사에서)
- 노무 담당자 경질
- 장시간 노동에 항의한 태업
- 배고파서 투쟁(《특고월보》 1940년 6월 기사에서)
- 관 알선 방식으로 강제동원된 상황에서의 투쟁(《특고월보》1942년 4월 기사에서)
- 다수의 노동쟁의가 발생(《특고월보》 1944년 4월 기사에서)
- 징용기(《특고월보》 1944년 11월 기사에서)
4.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입법 해결을 위해
‘빨리 만들자! 위안부 문제 해결법·네트 후쿠오카’의 활동
북한과의 갈등과 혐한내셔널리즘의 확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역사 인식 검증
- 일본군 ‘위안부’와 정신대의 차이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총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강제동원’이며 ‘성노예’
일본군 ‘위안부’는 패전 시 살해되었는가?
‘쿠마라스와 미 보고서’의 문제
- 증언_전옥순(북한의 피해자)
- 이순덕 할머니의 이야기
일본군 ‘위안부’ 문제 입법 해결을 목표로
- 후쿠오카시 의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의견서 가결
국회의원 선거운동에 매진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 출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 2010’ 결성
- 5·13 원내 집회
냉엄한 정세
정국의 격변
한국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1,000회 수요집회 분위기 고양
일본의 여론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제언
한일 양국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합의
피해자는 무엇에 분노하고, 무엇을 요구하는가?
한국 대법원에서 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승소
일본 정부의 대응
4부 관부재판의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한 28년
1.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이란?
글을 시작하며
지원모임의 회원들
활동 변천 과정
2. 관부재판의 원고 할머니들
돌아가신 할머니들과의 추억은 끝이 없습니다
- 하순녀 할머니를 애도하며
- 석별 박두리 할머니 별세_ 할머니, 고마워요! 편히 쉬세요!
- 박so 할머니를 애도하며
- 박su 할머니를 추모하며
- 유찬이 할머니 감사합니다!
3. 지원모임 회원들의 회상
-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에 참여했던 소감_MJ
- 관부재판과 나_이노우에 유미
4.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다가간 지 28년, 지금 생각하는 것
마치는 글 _ 한일 양국 내셔널리즘 대립의 악순환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자료
1. ‘전후 책임을 묻는다·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활동 관련 연표(1991년~2019년 1월까지)
2. 노무 동원 계획에 따른 이입 노무자 사업장별 조사표[쇼와 19년(1944년) 1월 말 현재]
후쿠오카현
3. 이즈카시 매장·화장 허가증 분석, 구라테군 고타케마치 매장ㆍ화장 인가증 분석
저자 소개
하나후사 도시오(花房俊雄)
1943년 일본 오카야마현에서 태어났다. 도호쿠대학東北大學 재학 때, 세틀먼트(Settlement, 인보관운동) 활동을 하였다. 서른 살 때부터 후쿠오카시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1988년에 교원 채용 시험의 ‘국적 조항 철폐 지원 운동’에 참여하였다. 1993년부터 ‘전후 책임을 묻는다・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의 사무국장으로서 진상 규명을 위한 조사회법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법 성립을 목표로 활동하였다. 후쿠오카현의 ‘조선인 강제동원 노동자의 유골 조사’ 등 실시에 참여하였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행동’ 공동대표를 맡았다. 현재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하나후사 에미코(花房恵美子)
1948년 도야마현에서 태어났다. 도호쿠대학東北大學 재학 때, 세틀먼트 동아리에서 만난 하나후사 도시오와 결혼하여 1988년부터 시민운동에 참여하였다. 1992년에 관부재판 원고 할머니들과 만났으며 ‘전후 책임을 묻는다・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의 사무국 살림을 맡아 하면서 재판을 지원해 왔다. 현재 ‘위안부 문제에 대처하는 후쿠오카 네트워크’의 총무를 맡고 있다.
옮긴이 고향옥
동덕여자대학교 일어일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일본문학을 전공하였다. 일본 나고야대학교에서 일본어와 일본 문화를 공부했다. ‘한일 아동문학 연구회’에서 오랫동안 두 나라의 어린이·청소년 문학을 비교·연구해 왔다.
《민담의 심층》, 《아포리아, 내일의 바람》, 《있으려나 서점》, 《아빠가 되었습니다만》, 《나는 입으로 걷는다》, 《컬러풀》, 《일러스트 창가의 토토》, 《핀란드 교육 현장 보고서》, 《카페 레인보우》, 《진짜 가족》 들을 비롯해 많은 어린이책과 청소년문학, 문학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러브레터야, 부탁해》로 2016년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IBBY) 아너리스트 번역 부문에 선정되었다.
2019년에는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소식지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를 아십니까?》를 일본어로 번역하였다.
※ 관부재판을 지원했던 ‘전후 책임을 묻는다ㆍ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은 2013년에 활동을 멈췄지만, 1993년 4월부터 발행한 <관부재판 뉴스> 제1호부터 제61호까지 수록한 《관부재판 뉴스–부산 종군 위안부·여자근로정신대 공식 사죄 등 청구 사건 1993~2013》을 발행하였다. <관부재판 뉴스> PDF판은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홈페이지(http://kanpusaiban.bit.ph)’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