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인영이를 피해 도망간 건 결코 잘한 일이 아니었다.
왜냐.. 돌아갈 수가 없잖아!!
으아. 배고프고 돈도 없고 비 맞은 꼬락서니로 달려 온 오영주는 우째 이리
재수가 지지리도 없을까. 병원 뒤켠에서 이 게 무슨 꼴이람.
쪼금만 참았음 엄마가 사온 파인애플을 먹었던가, 아니면 유스호스텔로 돌아가
고기라도 먹었던가.. 히잉. 바베큐 파티한댔는데.
앗? 오늘 비왔지..히히..그럼 바베큐는 물 건너갔겠군. 고거 샘통이다.
내가 못 먹으면 아무도 안 먹는거샤!
....................
....................
.............나는 정말 왜 이모양일까.. 심술 부리는 거야 그렇다치고 그래봤자 내 상황 달라지는
거 절대 없는데 그저 남 넘어지는 일에 기뻐하기나 하고.
아 어쨌거나 배가 고프구나.
된장찌게, 김치찌게, 짜장면, 초코파이...
좬장. 오빠 군대 시절 면회갔을 때, 이 거 먹고싶어 저 거 먹고 싶어 하던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오늘 날 내가 한 때 한심해하던 먹깨비가 되어 있을 줄이야.
(*먹깨비- 고스터 바스터즈에 나오는 먹보 귀신)
우쒸- 정말 배고프다. 에라!! 뭐가 되든 일단 달리는 거야.
혹시 모르니까 병원으로 가보자.
혹시 알아? 운 좋으면 인영이를 피할 수 있을지.
걍 오빠만 얼렁 만나 돈 뺏어들고 집으로 튀어버려야지.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좋은 아이디어란 생각이 새록 새록 들었다.
아자! 알통 불끈!
"냐옹~~"
어울리지도 않게 소심 괭이 흉내를 내며 정찰에 나섰다.
또는 본드 걸이 되어 병원 벽을 타고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오늘 나의 주제가는 007 두 번 죽다. 아... 두 번 살다인가? 아무튼.
젠장... 내 인생의 대부분의 문제는 거진 스스로 일으키고 마는 이 한심함이라니.
좀만 참을 걸.
아니 근데!!
그 상황에서 오해하지 않을 사람 있으면 나오라 그래!
내 탓만은 아니라, 그거란 말이지!!
우이...어쩌나.
그렇게 나 오영주는 성냥팔이 소녀가 창 안으로 비치는 행복한 사람들을 보듯 병원
입구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이씨... 김래희, 오현주 둘 다 죽었어.
맨날 자기들 장단에 나만 널뛰다 피보잖아!
투덜 투덜 투덜~~!!
그 때였다. 어디선가 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쮸쮸- 쮸쮸... 요리 요리.."
응? 누가 개 잃어먹었나. 근데 하필 병원에서 잃어버렸담. 그러다 실험용으로 끌려갈라.
아니면 뱃속으로. 낄낄..
화단 근처에 쭈그려 앉아 낄낄 웃고 있는데 개주인 목소리가 도플러 효과를 내며 가까이 오고
있었다.
"쮸쮸...영주야~~ 오영주~~ 쮸쮸쮸..."
오잉? 오잉?
지금 나 부르는 거야?
몸을 굽히고 자세히 들으려 귀에 손까지 댔다.
"..오영주~~ 오리발~~"
......이런!!!
"야!!! 닭발!!!"
벌떡 일어서서 손가락질했다.
"엇따 대고 남의 집 귀한 딸내미 이름을 개부르 듯...!!!"
오 마이 갓. 오 내 갓.
손으로 쮸쭈 하며 부르던 닭발 뒤에는 인영이가 있었다.
이인영, 최 율...언제부터 너희들이 공동전선을 펼치기 시작한거니?
아무튼간에 노려보는 인영이와 떨떠름한 표정으로 손짓하기를 멈춘 율이에게
정말 개 끌리 듯 근처 해장국 집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눈치를 보며 국을 퍼 먹자니 에디오피아 난민이 된 듯 초 찔찔함이 물 밀듯 밀려왔지만
자그마치 내가 5..6..시간? 그러니까 12시 점심 먹고..어이구야.
자그마치 9시간이 넘게 아무 것도 못 먹었잖아?!!
빵 먹은 건 먹다 말았으니까 제하고!
...계산이 서자 배가 더욱 고파왔다.
하지만 국밥이 줄어들 수록 형벌의 시간은 가까워 온다.
그렇다.
으아.
흐아.
"....뭐하는 거야."
용가리 불 뿜 듯 끄억대는 나를 율이가 아픈 애 보듯 바라보았다.
"어?"
"..속 안 좋아?"
"...어."
냉큼 대답했다. 동정표라도 얻어야쥐.
근데 옆에 있는 인영이를 안 보려 사시를 뜬 관계로 먹혔는지는 확인 불가다.
"영주야."
허걱.
데드라인이 다가온다.
내리 깐 목소리의 인영이가 이윽고 물을 마시더니 눈을 희번뜩!! 뜬다. 옴마야...
"...네 죄를 네가 알렸다."
"네?"
".......어디 멀쩡한 총각을 애 아빠로 둔갑시키려는 건데."
"....아 녜.."
눈를 내리깔고 두 손만 비벼댔다. 이럴 때 내가 개라면 복종 자세라도 취하는 건데.
하지만 인영이의 장난 어린 어조가 어느 정도 긴장을 풀게 했다.
생각보다 부드러운 말투는...뭐 안 보겠다는 말 철회한다는 의미겠지?
천천히 시험 성적표를 열듯 인영이의 표정을 확인해봤다.
..................띠요요용~~
......웃고 있다.
나는 가슴뼈를 쓸며 멍한 입을 벌렸다.
"파리 들어갈라."
인영이가 피식 웃으며 손을 갖다대길래 흠칫 뒤로 물러나는데, 약간 이마를 찡그린 인영인
입가에 묻어있는 머리카락 한 가닥을 떼어주었다.
"......어..어. 고마워..."
".....별 말씀을. 색마란 소리도 들었는데 뭐."
쓴웃음을 지으며 팔짱을 끼는 인영이...옆의 율이를!! 냅다 째렸다!!
너..이 내시 같은 노무 자식. 고걸 홀라당 일러바치뿌냐!
그렇지만 율이는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야, 최 율."
".........."
"...화났을 때 한 말을 전해주면.."
"...할만하니까 했어."
율이의 목소리가 냉랭하게 나와서 움찔했다.
...얘가 왜 이러지?
".....니네 둘 산에서 뭐 했냐?"
............그 게 이유였구나..........
웬 갖 얼음덩어리로 무장한 말투니, 표정이니.. 그 게 이유였다.
다시 인영이가 입을 열었다.
"....내가 먼저 말했어. 너 최 율 정리한다고 했잖아."
쾅!!!!!
서로 까발리기 대회라도 하는 듯 나랑 했던 말들을 마구 고자질 해대는 남자도 아닌 노무 자식들이
내 얼굴을 상당히 벌겋게 달구어놓았다.
"....정말 그랬어?"
"사실이야?"
둘이 동시에 물어왔다.
.......이 순간 내가 미안해해야 하는 걸까?
과연 그런 걸까?
웃.기.네
그럼 이 몸은 오영주가 아닌게지.
......내 기분은 살피지도 않고 자기 할 말들만 하고 있는 두 잘난 놈들에게 정말 있는데로 화가 났다-
가 내 결론이요, 심정이다.
신사협정이란 말도 모르지 니네는?
화가 난 나는 수저를 쾅! 내려놓고!
가릴 것 없이 질러댔다.
"니네 진주만 공격이 왜 비겁한 건지 알아?!!!"
"뭐?"
눈살을 찌푸리는 율이를 째린 뒤 또 한 마디했다.
"북한 놈들이 오늘 까지 굶주리고 있는 이유를 니네가 아냐고!!!"
"얘가 뭐래는거야?"
"...야...니가 배가 들 찼구나. 얼른 더 먹어라."
아픈 애 다루듯 서로 내 이마를 짚으려는 손들을 멀리로 치운 나는!!
"선전포고를 안했기 때문이야, 이 것들아!!!!"
"....그러냐?"
"..내가 세계사 공부 좀 했는데 그런 별 해괴한 주장은 듣다 첨이다."
내 앞으로 반찬을 밀어주고, 심지어 자기 밥을 덜어주며 나를 돼지공주 취급하는
두 것들에게 열 받아 벌떡 일어섰다.
"야!!!!"
"............"
"............"
멀겋게 바라보는 눈 앞의 잘차려진 밥상들에게 나는 굿바이를 선언했다.
".......니네랑 안 놀아!!!!"
카페 게시글
로맨스 소설 2.
[ 장편 ]
1994년 어느 늦은 밤 23
송정실
추천 0
조회 320
05.12.03 13:57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