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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live/gVhUmI6rjgg?si=Hc3dt76f0DRxF2PG
부부에게 주는 권면 3:1~7
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3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대인 관계에서 취할 태도 3:8~12
8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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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 혹 믿지 않는 남편이라도 아내의 행실로 인해 구원을 얻게 해야 합니다. 아내는 속사람을 온유하게 하고, 남편은 아내를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고 귀히 여겨야 합니다. 성도는 형제를 사랑해 그를 위해 복을 빌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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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에게 주는 권면 3:1~7
당시는 남편의 종교가 가정의 종교가 되던 시절입니다. 베드로는 남편이 믿지 않는 상황에서 복음을 받은 아내들에게 권면합니다. 남편에게 순종하되 경건하고 정결한 행실로 남편을 구원하는 기회로 삼으라고 합니다(1~2절; 고전 7:13~16). 이러한 헌신은 ‘하나님 앞에’ 값진 일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며 순종한 사라같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여인들의 본을 따르는 일입니다(6절). 믿는 남편은 아내와 온전한 가정을 이루도록 힘쓰며, 아내를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귀히 여겨야 합니다(7절). 하나님은 그러한 태도를 보시고 그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성도의 복음적 삶은 가정에서 시작됩니다. 서로를 섬기는 선한 태도로 인해 복음의 문이 열립니다.
● 더 깊은 묵상
베드로는 아내에게, 남편에게 각각 어떤 권면을 했나요?
부부 혹은 가족 간에 갈등이 생길 때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성경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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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 관계에서 취할 태도 3:8~12
베드로는 대인 관계에서 성도가 지녀야 할 태도를 권면합니다. 그것은 ‘복을 빌어 주는 것’(축복)입니다. 이는 단순히 좋은 말을 해 주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한마음을 품고, 서로 동정하고, 우정으로 대하고, 불쌍히 여기고, 겸손히 대하는 것입니다(8절). 또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않는 것입니다(9절). 이를 통해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고 ‘복’을 상속받게 됩니다(9절). 베드로는 시편을 인용해 이러한 실천이 말씀을 따르는 것임을 강조합니다(10~11절; 시 34:12~14). 주님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주님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귀 기울이심을 기억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더 깊은 묵상
베드로는 복을 상속받기 위해서 무엇을 실천하라고 권면했나요?
나를 힘들게 하는 상대방을 축복하기 어려울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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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으로 세우는 건강한 가정
긍휼이 많으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은 연약한 우리를 끊임없이 눈감아 주셨습니다. 실수하거나 죄를 지었을 때 수치감을 심어 주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식이 아닙니다. 싸울 때도 상대에게 모욕이나 수치를 준다면 복음적 태도라 할 수 없습니다. 가정만큼 덮어 줌의 은혜가 필요한 곳이 없습니다. 배우자나 자녀가 실수했을 때는 복음을 보여 줄 기회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아빠와 엄마가 나를 용서해 주는구나.’, ‘남편이 나를 참아 주는구나.’, ‘아내가 내 허물을 덮어 주는구나.’, ‘이것이 은혜요 복음이구나.’라고 느끼게 해 주어야 합니다. 상대의 약점과 실수를 공격하지 말고 주님이 우리에게 하셨던 것처럼 용납하고 기다리며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어느 가정이나 아픔이 있고 실수를 합니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함께 살아가면서 싸우는 일은 지극히 정상적입니다. 갈등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되, 지혜롭게 싸우십시오. 싸움을 하나의 과정으로 보고 얼마든지 회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죄성은 수시로 자기중심적인 삶으로 돌아가게 만듭니다. ‘나만 노력한다고 문제가 해결될까?’라는 생각이 들고 손해 보는 것 같더라도, 내가 포기한 것보다 더 크고 풍성한 행복이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틀어지고 깨어졌더라도 주님은 회복시키실 수 있습니다. 복음으로 초대하십시오. 복음이 우리 가정 안에 역사하면 됩니다.
가정을 말하다 / 이규현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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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베드로전서 3장 10~11절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성품과 경건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이미지에 덜 신경 써도 되는 가족이나 지인을 어떻게 대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자신의 진짜 모습입니다. 성도는 모든 사람을 친절한 태도로 대해야 합니다. 특히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그들을 위해 선을 행하고 축복해야 합니다. 성숙한 삶은 자신의 이미지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가족 관계 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위대한 삶의 기준은 얼마나 높아졌느냐에 있지 않고 얼마나 섬김을 베풀었느냐에 달려 있다. - 조지 풀러
오늘의 기도
주님,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도록 저를 부르신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제가 선 자리, 만나는 모든 관계에서 선을 행하고 화평을 이루며 축복을 나누게 하소서. 사랑하는 가족과 지체들을 말과 행동과 기도로 섬기며 생명의 은혜를 나누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220 사랑하는 주님 앞에)
사도 베드로는 소아시아 지역에 있는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로마로 부타 받은 핍박 가운데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산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성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받아서 공동체가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 기초가 바로 살아 있는 주춧돌인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로마 사회로부터 교인들이 공격을 받아 고난에 빠진다면 맞서 싸우기보다는 차라리 져주라고 합니다. 착한 행동을 보여줌으로 인해 로마 사람들이 성도들이 삶을 통해 그 안에 있는 예수님을 발견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의 핵심 주제는 “고난”입니다. 약 17번 정도 나옵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당하는 고난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가 당하신 그 고난을 통해 답을 줍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을 “나를 위해, 나와 함께 당하신 고난”의 시각으로 나와 그리스도를 연결시켜줍니다.
베드로전서 3장 전반부에는 고대 사회 속에서 부부 사이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아내가 남편에게 종속되어 살았습니다. 오늘날 이 말씀을 접할 때에 고대 사회의 배경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할 것입니다.
* 본문의 정리: 베드로는 그 어떤 경우에도 거룩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계속 설명합니다.
배우자를 존중하고, 그리스도인끼리 서로 사랑하고, 적대적인 사람에게도 복을 빌어 줘야 합니다.
* 본문의 명제: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게서 값지게 생각하시는 일을 행하고,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부르신 목적대로 성실히 살아가길 바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값진 것이 무엇인지를 늘 살피면서 다른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겉치장보다는 우리의 속사람을 더욱 더 온유하고 정숙하게 단장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도록 하자
가족과 이웃들을 돌보고,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서로를 존중함으로써 우리의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그 목적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말과 행동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다른 이들이 우리의 말과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열심히 돕도록 하자
6/4일 삼산동과 청라호수공원 전도
우리가 서로 동정하며 사랑하며 긍휼과 겸손으로 행하는 것, 악에 대해 도리고 축복하는 말로 해야 하는 것은 ‘스스로 가능하다고 여길 때’만이 아닐 것입니다. 무엇보다, 더 나은 상급과 하나님 나라의 의를 이루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고, 모든 악과 영적 전쟁에 대한 심판은 만왕의 왕이신 여호와께 있다는 그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이 분명해야 합니다.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시 120:7)’라고 기록된 것처럼
그 마지막날까지 세상 주관자들과 악의 영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대적하기를 쉬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편에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시 34:15)’ 또한 ‘하나님이 일어나시니 원수들은 흩어지며 주를 미워하는 자들은 주 앞에서 도망하리이다(시 68:1)’ 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보내진 곳에서 화평을 이루고, 의의 기도를 쉬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이루신 그 뜻이 우리를 통해 이 땅 가운데 이뤄져 가고, 그의 나라는 더 힘차게 퍼져나갈 것입니다.
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전쟁터 한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평강을 노래하고, 그가 이루신 화평을 세상 가운데 선한 행실과 온전한 증인의 삶으로 살아내는 성령의 사람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거룩한 나그네의 삶(2:11-3:12)에 대한 결론입니다. 이 단락에서 사도는 믿지 않는 배우자나 호의적이지 않은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신자가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 교훈합니다.
*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2절 국가나 상전 같은 권위에 입각한 관계(13,18절)에만 순종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순종은 가장 가까운 부부 관계에도 요청됩니다. 아내는 믿지 않는 남편일지라도 그에게 순복해야 합니다. 신앙을 이유로 믿지 않는 남편과 불화하거나 가정의 질서를 깨트리는 것은 또 다른 비방거리(12절)를 만들 뿐입니다. 비방을 침묵으로(15절), 갈등을 영적 갈증으로 바꾸는 것은 많은 말이나 부산한 열심이 아니라 거짓 없고 위선 없는 신앙과 삶입니다.
3-6절 단장할 것은 겉사람이 아니라, ‘속사람’입니다. 화려한 장식으로 외모를 치장하기 전에 내면을 단장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하나님 앞에 값진 단장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내면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외형에 천착하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남편을 존중한 믿음의 여인들처럼, 온유하고 정숙한 품행을 갖추는 데 더 큰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합니다.
7절 남편에게 요구되는 삶은 ‘사려 깊은’ 이해와 배려입니다. 남편에게 아내는 각별한 도움이 필요한 연약한 그릇이며, 장차 생명의 유업을 함께 누릴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아내를 무시하고 홀대한다면 하나님도 그를 외면하실 것입니다. 순종(5절)을 요구하고 응답을 기대하기 전에, 아내와의 관계, 아내를 향한 나의 태도를 돌아봅시다.
8,9절 공동체 안의 지체들을 향해서는 ‘같은’ 마음과 ‘낮은’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적대적인 세상을 향하여는 그들과 같은 방식(악)이 아닌, 다른 방식(선)으로 상대해야 합니다. 그것이 선으로 악을 이기는 길이고 주께서 보이신 길이며 복음에 합당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원수에서 친구가 되게 했듯이 ‘사랑’만이 적대감을 잠재우고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10-12절 장래의 영광은 극심한 박해 중에도 보복 대신 축복을, 거짓이 아닌 진실을, 악에서 떠나 선을, 분열이 아닌 화평을 선택하는 이들의 몫입니다. 힘들지만 하나님을 알기에, 하나님을 믿기에 할 수 있는 선택입니다. 손익을 따지지 않는 ‘더 나은 선택’이 나와 지체, 이웃과 원수가 모두 변하는 ‘더 나은 날’을 기대하게 합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모두 하나되어, 서로 동정하며, 사랑하며, 긍휼히 여기며, 겸손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서로 순종하지 않을 수 없고, 서로 귀하게 여지지 않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지요. 이런 삶을 살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여야 하나? 베드로는 다음과 같은 시편 34편 12 ~ 13절을 인용하여 그 해답을 제시했습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여기서 제일 먼저 언급된 것이 혀를 금하며 악한 말을 그치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에서 특별히 부부관계에서 그것이 필수사항이라는 것입니다.
부부는 인생의 동반자입니다. 사역의 동역자입니다. 또한 같은 비전을 갖고 같이 가는 사명자로, 세상에 이 만한 친구가 없고 하나님 다음으로 서로 기댈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인지라 실수할 수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분노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독한 말로 응수하는 것과 거짓말은 안 됩니다.
특별히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은 금물입니다. 진실치 못하여 오히려 화해와 용서의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진실을 밝힘으로 벌을 받는 편이 한결 낫습니다. 간통이 나쁜 것은 성적인 부정이 그 원인이지만, 그것에 못지 않게 계속 거짓말로 배우자를 속이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배우자의 인격을 유린하였기 때문에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악에서 돌이켜 선을 행하고 화평을 이루라고 했습니다. 상대방을 귀하게 보는 마음이 선한 마음에서 출발하고, 거기에서 화평이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귀하게 얻은 화평을 깨는 것이 바로 평소의 언어습관에 있다면 우리는 혀를 단단히 금해야 할 것입니다. 선한 말과 악한 말이 같은 혀에서 나오고, 정직한 말과 거짓말이 같은 입술에서 나옵니다. 악한 말 중에 최고 악한 말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말일 것입니다.
특별히 배우자에게 입니다. 물론 의도적으로 하지는 않겠지만 실수라도 했다면 빨리 사과해야 할 것입니다. 그 효과는 즉시로 나타나니, 던진 사람에게 고스란히 돌아오는 부메랑 같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베드로가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라고 했을까요? 부부싸움하고 출근해 점심시간쯤 되면 어쩐지 마음이 편하지 않는 것을 경험해 본 사람은 잘 알 것 입니다.
상처 주는 말만 자제할 수 있다면 거뜬히 80점은 차지합니다. 더 나아가 공감해주고, 상대방의 실수나 약점을 덮어주고, 그럼에도 불과하고 사랑한다고 표현하면 90 점 이상은 넉넉히 획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배우자는 내편, 영원토록 유일한 내편입니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은 없지만, 배우자는 또 다른 나라는 사실입니다. 엄연히 다른 인격체지만 한 몸인 이유는 서로 도와 아름다운 삶을 살라는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황혼 이혼이 배가 늘었다고 합니다. 결혼은 거저 먹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이해입니다. 그리고 의지입니다. 또한 노력입니다. 결혼생활은 이해와 의지와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땀흘리지 않으면 지옥, 애쓰면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배우자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야 합니다. 서로 아끼는 마음, 서로 안쓰러운 마음이 있다면 더 못해주어서, 더 배려하지 못해서 아쉽기만 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와 친밀하여 기도에 아무 막힘이 없기를 원합니다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시25:14)
(벧전 3:1~12절)
❝아름다운 인생으로 나아가는 삶❞
오직 내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말씀의 기초위에서 서로를 그리고 이웃을 귀하여 여겨야 합니다... -
✔ 서로를 향해 어떠한 태도로 대해야 합니까?
➲ 영혼의 구원을 생각하여 순종해야 합니다(1~2절).
‘아내들아...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일반적인 남자와 여자와의 관계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즉, 맹목적인 순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의 영혼 구원을 위해 주님 안에서 순종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던 남편들이 아내의 순종하는 모습에 의해 하나님을 믿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억지로 설득하려는 백 마디 말보다 온전한 행동이 남편을 감동시킬 것입니다...’(1절,쉬운성경).. 아내는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에 순종하면서 남편이 가정의 머리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적극적으로 돕고 순종해야 합니다.
요즘은 시대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가부장적 요소들이 사라지면서 아내뿐만 아니라 남편들도 불신 아내의 구원을 위해 행실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남편이 가진 권위로 마음대로 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결혼 전에는 신실했던 청년이었는데, 믿지 않는 아내를 만나 신앙의 열정이 식어가는 형제를 많이 보았습니다.
신앙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타협하지는 말되, 서로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배우자를 주님께 인도하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순종과 사랑으로 서로를 대해야 하겠습니다. 서로의 영혼의 구원과 영적 건강을 생각하며 서로에게 순종함으로 아름다운 인생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 부부의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어야 합니다(3~7절).
베드로는 외적인 단장보다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서 내면을 단장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썩지 않는 온유하고 정숙한 마음으로 속 사람을 단장하도록 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값진 것입니다..’(4절,새번역)..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그리고 사라도 남편인 아브라함을 ‘주’라고 부르며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포기하지는 말되, 불신 남편에게 두려움 없이 순종하는 선한 행실을 통해 남편을 구원으로 인도할 여지를 남기는 것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단장이 되며, 사라처럼 아름다운 그녀의 딸이 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남편에 대해서는 아내가 어떠한 존재인지를 인식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
더 연약한 그릇이요,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이기 때문에 아내를 귀히 여기며 존중해야 합니다.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함이라...’ 아내와의 관계가 막히면 기도 생활을 포함한 영적인 생활에 지장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외적인 아름다움을 따르지 말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는 곧 영적 성숙을 의미합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아내로 인해 가족들은 기쁨과 쉼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또한 남편이 자신의 아내를 귀하게 여김을 통해 가정이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권위를 가지고 군림하는 자세가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을 배우고 순종해야 합니다. 사랑과 순종의 관계를 통해 부부는 영적으로 성장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영적 성장을 위해 서로서로 노력하고, 순종함으로 아름다운 인생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 도리어 서로를 이해하고 겸손해야 합니다(8~12절).
베드로가 마지막으로 부탁하는 것은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서로 동정하며, 서로 사랑하며, 자비로우며, 겸손...’(8절)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아야 하며, 오히려 자신을 힘들게 하는 자들을 위해 복을 빌어 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신이 복을 이어받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시 34편을 인용하면서 선으로 악을 이기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선한 사람을 찾으시고, 그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지만, 악한 일을 하는 자는 멀리하시기 때문(12절,쉬운성경)입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비결은 인간적인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선하신 마음을 품을 때, 또한 하나님이 이러한 삶을 내 자신에게 원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확신할 때 가능하게 됩니다. 연일 언론에서는 교회들을 통해 코로나 확산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도하고, 세상 사람들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까지 사용해 가며 조롱하고, 욕을 해 댑니다.
마음속으로는 부글부글 분노가 끓어오르지만 그러한 자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것이 진정 주님을 따르는 제자도의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유 없이 모함을 하고, 왕따를 시키는 그러한 자들까지도 주님의 마음으로 품을 수 있는 성숙한 단계에 까지 이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내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자의적 해석으로 게시판에 올린 글을 다른 사람에게 한껏 부풀려 전달하는 바람에 난처한 상황에 빠졌습니다.
다행히 잘 해명을 해서 넘어갔지만, 누가 그런 말을 전했는지 찾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악에게 지지 않아야한다는 말씀을 통해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습니다. 도리어 서로를 이해하고 모든 이들 앞에 겸손함으로 아름다운 인생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나의 믿음이 말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 짐으로 내 인생을 아름답게 가꾸어 갈 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서로를 향하여 존중과 이해와 배려로 가득한 가정 그리고 사랑과 화평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를 만들어가기에 힘쓰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벧전 3:1~12절)...
하나님의 눈은 믿는 자를 찾으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십니다. 하나님의 귀는 믿음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그들을 사랑으로 돌보시기 위해 늘 바라보십니다.
연약할 때 격려하시고, 낙심할 때 위로하시고, 위험할 때 지키시고 도우시며, 그들이 범죄할 때 근심하시고 책망하시려고 늘 바라보십니다.
또 하나님의 귀는 의인들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의인들이 감사할 때나 회개할 때나 무엇을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얼굴은 악한 자들을 향하십니다. 악한 행위를 눈으로 보시고 판단하시며 기억하시고 진노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한 자들에게 엄위하시고 두려우신 분이십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때론 세상적으로 순복하고 따르기 어려운 많은 상황들과
사람들이 있지만 주님의 그 십자가의 순종과 한없는 사랑이
증거를 바라 보며, 이땅 가운데 보내준 그
리스도의 증인된 삶을 넉넉히 살아갈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힘이 아니라
주님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넉넉히 감당토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을 증거 하는
귀한 선교사님들의 발걸음과 입술위에 기름 부어주시고,
그 가정과 사역가운데 놀라운 동행을 맛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 받고 신음하는 주님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회복과 치유의 손길로 덮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여호와 앞에 순종함으로 엎드리고,
회개하여 돌이켜 주님의 길로, 선한 행실로 나아가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