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칼럼] 이태준의 '복덕방'에서 보는 세대 간의 갈등
민병식
상허(常虛) 이태준(1904~ )은 문장의 묘미를 강조하는 등 순수 예술을 지향하였다. 주로 인물 성격의 내관적 묘사로 토착적인 생활의 단면을 부각시키는 등 한국 현대 소설 기법의 바탕을 마련했기 때문에 한국문학사에서 소설의 기법과 더불어 그 예술적 가치를 높인 것으로 평가받는다.강원도 철원 출생으로 모친이 별세해 어린 나이에 친척 집을 전전했다.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정지용, 김영랑, 박종화 등을 알게 되었으나 동맹휴교 주모자로 몰려 퇴학을 당한 후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1925년에 ‘오몽녀’가 조선문단에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1933년에는 박태원, 이효석 등과 ‘구인회’를 조직해 소설집 '달밤'을 간행했다. 광복 이후에는 문학가 동맹, 남조선민전 등 조직에 참여했고, 1948년 북조선 문학예술 총 동맹 부위원장을 역임, 1955년 소련파의 몰락으로 숙청되고, 1969년에는강원도 탄광지구에서 살고 있음을 추측한 이후 소식은 알지 못한다.
사진 네이버
복덕방’은 1937년 '조광'에 발표된 단편 소설로 삶의 기반을 상실한 ‘서 참의’, ‘박희완’, ‘안 초시’ 등을 통해 궁핍한 사회상을 보여줄 뿐 아니라, ‘안 초시’와 ‘안경화’를 통해 무너지는 가족 관계를 보여줌으로써 1930년대의 민중들의 피폐한 삶을 드러내고 근대화 과정 속에서 시대적으로 전락한 인물과 영화를 위해 부도덕하고 속물적인 인물 간의 대립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 초시, 서 참의, 박희완, 이 세 노인이 복덕방에서 무료하게 소일하고 있다. 안 초시는 수차례의 사업 실패로 몰락하여 서 참의의 복덕방에서 신세를 지고 있지만, 재기의 꿈을 안고 살아간다. 안 초시에게는 무용가로 유명한 딸 경화가 있으나, 그녀는 아버지를 위하는 마음이 없다. 서 참의는 과거에 훈련원 참의를 지낸 인물로 한 때 무인의 기개를 떨쳤던 시대를 그리워하면 현재는 복덕방을 해서 먹고 산다. 박희완 영감은 복덕방에서 일본어 공부를 하며 대서업을 준비하지만 부동산 사기에 휘말려 낭패를 보는 인물이다.
재기를 꿈꾸던 안 초시에게 박 영감이 부동산 투자에 관한 정보를 준다. 일확천금을 꿈꾸던 안 초시는 딸에게 투자를 권유하고, 딸은 투자 과정에서 안 초시를 배제하고 자신이 마련한 돈을 몽땅 부동산에 투자한다. 그러나 일 년이 지나 그 모든 일이 사기극임이 밝혀지고 투자 실패에 따른 좌절과 미래에 대한 꿈의 상실로 인해 안 초시는 음독자살을 하고 만다.
‘모두 꿈이었다. 꿈이라도 아주 악한 꿈이었다. 삼천 원어치 땅을 사놓고 날마다 신문을 훑어보며 수소문을 하여도 거기는 축항이 된단 말이 신문에도, 소문에도 나지 않았다. 용당포와 다사도에는 땅값이 삼십 배가 올랐느니 오십 배가 올랐느니 하고 졸부들이 생겼다는 소문이 있어도 여기는 감감소식일 뿐 아니라 나중에 역시, 이것도 박희완 영감을 통해서 알고 보니 그 관변 모 씨에게 박희완 영감부터 속아 떨어진 것이었다. 축항 후보지로 측량까지 하기는 하였으나 무슨 결점으로 인지 중지되고 마는 바람에 너무 기민하게 거기에 땅을 샀던, 그 모 씨가 그 땅 처치에 곤란하여 꾸민 연극이었다.’
아버지의 자살로 자신의 사회적 명예가 훼손될 것을 우려한 안경화는 서 참의의 권유대로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루고 서 참의에게는 아버지의 죽음 원인을 비밀로 해달라고 한다. 장례식에 참석한 서 참의와 박 영감은 안경화와 조문객들의 위선에 실망하며 장례식장을 떠난다.
세 노인은 모두 구한말 인물의 전형으로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가난하게 살아간다. 반면 안 초시의 딸 안경화는 새로은 시대에 완벽히 적응한 인물로 자신 밖에 모르며 냉정하고 이기적인 인물이다. 작품에서 안 초시와 안경화는 세대 간의 불화를 상징하고 있으며 세 노인이 소일하는 복덕방은 가족으로부터 소외되고 시대로부터 뒤떨어진 노인 들이 애처롭게 살아가는 공간이다.
일제 강점기에도 택지 지구 개발이나 기획부동산이 있었다니 땅에 대한 욕심이나 부동산투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데 놀랐다. 그러나 이 작품은 부동산 투기의 부작용 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밀려난 노인의 소외와 슬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의 사회는 어떤가. 현재에 우리는 나이 든 어르신 들을 꼰대라 칭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무시하며 살지 않는가. 일제 강점기. 한국 전쟁, 새마을 운동, IMF 위기 극복 등 모든 어려움을 우리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 중년 세대가 겪고 이겨냈다. 대한민국이 오늘날 선진국 소리를 들으며 살 수 있었던 데는 기성세대의 인내와 노력이 없었으면 불가능 했다. 세대 간의 차이는 예로부터 있어왔던 것이지만 지금의 세대차이는 세대간의 혐오와 무시, 기득권 등으로 폄훼되고 있는 듯하다. 세상의 젊은이들의 세상만은 아니다. 어린아이, 청년, 노인 모두의 세상이다. 누가 이렇게 세대를 갈라치기 했는가.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세대 간에 무시와 혐오가 아닌 존중과 화합을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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