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김소월
1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2 이렇게 사모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3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인간의 관계가 끊어진다는 것에 대한 충격과 아픔을 몰랐던 시절이 있었다. 한때 사랑했던 님과 나는 익숙한 그 공간에 서서 한참을 말없이 서로 바라보았다. 님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여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님의 가지런한 앞머리가 눈을 가리고 있었다. 다섯번째 담배를 꺼내 피운 나는 얼마 빨지도 못하고 다시 비벼껐다. 무의식적인 흡연습관처럼 지리해진 사랑.
잘 지내라는 상투적인 인사. 돌아서는 뒷모습을 잡지 못했던 게으른 혀와 따분한 관계가 지루했던 야속하기만 한 내 어리디 어린 청춘. 몇 걸음 멀리 내딛더니 우뚝 서서 다시 뒤돌아보던 님에게 나는 오른손을 들어 가볍게 흔들어보이며 애써 미소지었다. 지독히 근시인 나는 이미 그녀의 눈이 흐릿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니, 실은 내 눈이 흐릿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술에 만취했던 어느날 나는 님에게 전화를 했다. 괴물에 할퀴어 숨을 헐떡이던 한 새벽에, 나는 연유를 알 수 없는 외로움에 지쳐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님의 목소리조차 가지지 못했다는 것을. 님의 기억에 남지 못했음을.
이미 누군가로부터 잊혀져야 했던 정신적 사망신고.
회색 가슴에 비소처럼 퍼지는 후회의 독. 길을 걷다 몇번을 뒤돌아보는 지금에 그때 님을 보냈던 내 미련했던 마음의 진실을 그때도 알 수 있었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