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의 연방대법원에서 낙태권(落胎權) 폐지 법안을 통과시키자 요원의 불길맹키로 타오르는 찬반 시위가 연일 그칠 줄을 모르고 있다. 낙태란 태아(fetus)를 제거함으로써 임신 상태의 종료를 말하고, 강제되지 않고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낙태는 유산(miscarriage) 또는 예기치 않은 낙태(spontaneous abortion)라 하는데, 이는 임신 중 대개 30~40%를 차지한다고 한다.
카톨릭의 영향권에 있는 국가들이 낙태권을 인정하지 않는 기본적인 이유는 인간의 생명을 부여하고, 또 가져가는 것은 오직 하느님의 권능이라는 데 있다. 때문에 창조주가 만든 한낱 인간인 주제에 하느님이 보내주신 다른 생명의 삶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해서리 에스파니아의 절대적 영향 아래 있었던 아메리카 대륙에서 낙태는 인간의 선택으로 행해질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와 같이 유럽이나 아메리카 대륙에서 낙태는 곧 범죄라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다는 사실은 세간티니(Giovanni Segantini)의 그림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는 여자로서의 어머니란 존재를 선악의 2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사악한 어머니(evil mother)의 대표적 사례로 낙태한 여인을 꼽는다.
하얀 눈으로 덮인 알프스에서 두 여인이 공중에 뜬 채로 있는데, 이들은 하느님의 의지를 배반한 낙태한 어머니들이다. 순수함을 상징하는 하얀 눈에 발을 디디지 못하고 허공에 떠 있을 수밖에 없는 나쁜 어머니들이 곧 그들이다.
세간티니의 또 다른 그림을 보자. 낙태한 이 여인 역시 대지에 발을 딛지 못한 데다 나뭇가지에 붙잡혀 꼼짝 못하는 모습이니, 낙태에 대한 당시 사회의 부정적 인식을 그림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흘러간 물 다시 되돌릴 없듯 시대가 바뀌면서 경직된 카톨릭 교리에 대한 반발이 지금의 낙태권 논쟁이라 하겠다.
여자의 낙태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논리는 그 기본 배경에 의도하지 않은 임신, 또는 강제된 임신, 그리고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낙태하는 사례에 의해 뒷받침된다고 하겠다. 그에 더하여 최근 10살된 여자 아이가 강제된 성관계, 즉 성폭행으로 임신을 하게 되자, 중절을 허용하는 다른 주(state)에 가서 낙태를 했다는 사실은 여자들에게 낙태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더 힘을 실어 주는 게 사실이다.
한 가지 고무적인 사실은, 케네디(John F. Kennedy)가 카톨릭이 아닌 개신교 교도로서는 처음으로 미국의 대통령이 된 이래, 사회현상을 융통성 있게 바라보고 절대적 권력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하여 미국의 낙태권 논쟁은 결국 낙태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을 것이란 게 나의 생각이다.